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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사해

이란-미국 갈등에 낀 한국,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질라

by betulo 2012.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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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8일이 결정적 분기점이었다. 그 전에도 물론 오랫동안 미국과 유럽은 이란을 상대로 경제제재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경제제재는 경제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별다른 실효성을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그 날 ‘이란의 핵 프로그램 보고서’를 발표하자 마치 이란을 겨냥한 경제제재가 마치 처음이라도 되는 양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도대체 IAEA 보고서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었던 것일까. 보고서는 이란의 핵 개발 현황이 ‘군사적 활용이 가능한 수준’이라면서 이에 대해 자세히 언급했다. 이례적이었다. 열흘 뒤 IAEA 이사회는 핵문제와 관련해 국제사회가 의무를 이행하도록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보고서 발표 이후 미국은 이란의 에너지 부문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고, 이란의 중앙은행 제재 및 석유수출 금지를 골자로 하는 법을 제정했다. 

미국은 지난해 11월21일 이란의 석유화학 분야에 대한 추가적인 제재조치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또 이란의 핵 활동과 관련하여 개인 4명과 단체 7개를 제재대상으로 추가 지정했다. 11월28일에는 이란과 거래를 위한 미국 내 대리계좌 개설 혹은 유지를 금지하는 규칙도 공고했다. 급기야 2011년 마지막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외국 민간은행이 이란 중앙은행과 거래하는 걸 금지하고 외국 중앙은행이 이란과 석유매매 금융거래도 금지시키는 ‘국방수권법’에 서명했다. 


일각에선 이스라엘이 이란을 선제공격할까 우려한 미국이 추가제재 조치를 취한다는 해석도 내놓았다. 다른 한편으로 미국은 이란 정부가 대내외적으로 어려움이 처한 가운데 제재를 강화할 경우 이란의 경제상황을 약화시키고 국민의 지지를 약화시켜 집권층이 핵을 포기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2011/11/03 - 리비아 다음 공격목표는 이란이 될 것인가 

유럽연합(EU)도 미국과 보조를 맞추고 있다. 유럽연합은 이란에서 수입하는 모든 석유를 금지한다는 초강경 제재조치를 검토하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강경한 입장을 보이는 건 영국과 프랑스다. 영국은 자국 금융기관의 이란 관련 모든 금융거래를 차단하겠다고 했고,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이란 석유를 수입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언급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 등 유럽연합이 수입하는 이란 석유의 80%를 차지하는 국가들은 이란 석유의존도가 너무 높은데다 최근에는 저마다 국내 경기침체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석유수입 금지조치에 신중한 편이다. 유럽연합의 이란산 석유수입 금지조치는 오는 1월30일 유럽연합 외무장관회의를 통해 구체적인 사항이 드러날 예정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여러 해 전부터 외교를 통한 해결을 강조해왔다. 이들은 추가제재 조치도 반대한다. 그 중에서도 주목해야 할 국가는 바로 중국이다. 홍성민 중동경제연구소 소장에 따르면 중국은 2007년 이후 이란의 최대 교역대상국으로 부상했다.

2008년을 기준으로 이란은 중국에 200억달러를 수출했다. 총 수출의 18.6%를 차지한다. 수입도 93억달러로 총수입의 13.5%에 이른다. 2002년에 대중국 수출이 21억달러(9.6%), 수입이 10억달러였던 것에 비하면 각각 10배와 9배나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유럽연합(EU)은 수출 비중은 21.8%에서 17.9%로, 수입 비중은 41.1%에서 25.6%로 급감했다. 특히 이란은 정유시설이 부족해 정유를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데 일일 휘발유 소비량 12만배럴 가운데 3~5만배럴을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박철형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아·중동팀 전문연구원에 따르면 미국은 1987년 수입금지를 시작으로 1997년까지 이란과의 모든 교역·투자를 금지했다. 유엔도 2006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 제재 결의안을 채택했다. 하지만 2008년 이란의 수출규모는 1070억달러로 2003년(320억달러)보다 230% 증가했다.

물론 에너지개발 부문에서는 외국인투자를 억제하는 ‘보이콧’ 효과를 내고 있다. 문제는 경제제재가 계속될수록 이란은 더욱더 중국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미국과 이란 갈등의 최대 수혜자는 바로 중국”이라고 꼬집었다. 
2010/04/16 - 미국 이란 경제제재, 최대수혜자는 중국

 
이란을 겨냥해 석유수출을 금지하는 조치를 시행할 경우 석유수급 불균형과 지정학적 위험비용 증가로 국제유가가 급등할 것이란 전망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란은 지금도 세계 3위 원유수출국이다. 하루에 수출하는 원유만 해도 220만 배럴이나 된다. 특히 세계 원유수송량의 1/3이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긴장은 중대한 복병이다. 이란은 이미 2006년에도 국제사회 제재에 반발하며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을 시사한 적이 있다. 
 
호르무즈해협을 둘러싼 위기는 군사적 긴장이 계속 높아지고 있는 속에서 이스라엘이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점을 눈여겨 볼 수밖에 없다. 지난 3일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해 오만해로 이동한 미국 항공모함이 호르무즈 해협을 다시 통과할 경우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미국은 그럼에도 페르시아만에 항공모함을 재배치하기로 결정했다. 게다가 이스라엘은 지난해 말 전투기를 동원한 군사훈련과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하며 이란 핵시설에 대한 선제공격을 준비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최근 현대경제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에서 군사적 충돌이 발생한다면 단기전과 장기전에 따라 시나리오는 극명하게 달라진다. 특히 장기전 시나리오는 미국 등 서방과 이란이 전면전을 벌이는 상황을 뜻한다.

이스라엘이 이란 핵시설을 선제공격하거나 공습하고 이란이 이에 맞서 바레인 등 주변국 주둔 미군과 이스라엘을 타격할 경우 전쟁은 중동 전역으로 확신될 것이다. 이스라엘과 미국이 이란을 선제공격한다고 해서 신속하게 승리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전문가는 별로 없다.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호르무즈 해협은 원유 수송이 불가능해질 뿐 아니라 사우디 아라비아 등도 원유수출에 상당한 타격을 받게 된다. 이는 곧 국제유가가 폭등한다는 것을 뜻한다. 
 
사실 국제유가 급등이야말로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가장 우려하는 대목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그런 점에서 석유 금슈조치가 국제석유시장에 미치는 파급정도가 제재의 실효성을 결정할 것으로 전망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국제유가 상승을 우려해 최근까지도 이란 추가제재 법안에 서명하길 꺼렸다는 외신보도도 있다. 국제유가 상승이 당초 의도와 달리 이란 곳간만 더 불릴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이란은 총수출의 84%가 원유수출이고 에너지 관련 수익이 정부 세입의 66%를 차지한다. 원유가격이 오르면 그만큼 이란 정부에게 이득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미국 등이 무력이 아니라 경제적인 수단으로만 이란을 강하게 압박하기 위해서는 걸프 산유국의 역할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세계 제1의 원유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증산을 얼마나 할지가 관심꺼리다. 물론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여러차례 위기에도 불구하고 호르무즈 해협이 실제로 봉쇄된 적은 한번도 없다는 점은 다행이다. 
 
이란 입장에서도 경제제재가 반가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당장 제재수위가 높아지면 물가상승 압력이 높아진다. 사실 이란 입장에서 보면 석유와 은행 등 국가주요산업이 국가소유이고 민간자본의 비중이 낮다. 미국 요구처럼 민영화해도 인수할 국내자본이 없기 때문에 결국 고스란히 서방 거대자본만 이득을 챙길 수밖에 없다. 특히 현지에선 미국이 이란의 석유산업을 차지하기 위해 핵개발을 문제삼는다고 의심하는 기류도 강하다. 이런 의심이 근거없는 낭설이라고만 치부할 수도 없다는데서 사안의 복잡성이 자리잡고 있다. 
  
실용적 자세가 절실한 한국 외교

한국 정부는 지난해 12월16일 이란 핵개발과 관련된 단체 99곳과 개인 6명을 금융제재 대상자로 추가 지정했다. 미국은 한국이 경제제재에 더 강하게 동참하길 원한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미국 시키는대로 하다간 한국 경제가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도 한국은 충분히 힘들다. 호르무즈 해협에서 군사적 위기가 계속되고 국제유가가 급등한다면 국내물가상승과 소비침체 등 때문에 스태그플레이션에 진입할 가능성이 높다는게 최근 현대경제연구원 보고서의 결론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란이 수출하는 석유 가운데 59%가 한국, 중국, 일본, 인도로 간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사실 이란에서 수입하는 석유가 한 방울도 없다. 대다수 서방국가는 이란 석유에 의존하는 비율이 극히 낮다. 
 
이란에게 한국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수입대상국이자 수출대상국이다. 2008년 기준 이란의 제3대 수출대상국이 한국이었다. 금액으로 치면 74억 7600만달러나 된다. 그리고 제4대 수입대상국이 한국으로 47억 7700만 달러를 수입했다.

다시 말해 2008년에 한국이 이란에 수출한 금액이 5조원이 넘는다는 뜻이다. 물론 한국이 2010년 9월 이란 제재에 동참하면서 상당한 타격을 받기는 했지만 이란과 한국은 여전히 중요한 교역상대국이다. 현재 미국이 이란을 제재하는 활동은 국제적 합의가 없다. 이런 속에서 한국 정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실익을 지키는 실용주의 외교가 아닐까 싶다. 
2010/08/19 - 이란제재에 외통수걸린 한국, 아랍에미리트를 본받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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