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한 해 동안 전세계에서 열리는 선거는 모두 60회가 넘는다. 당장 눈길을 사로잡는 것만 해도 남북한을 포함해 미국과 중국, 러시아에서 권력교체가 예정돼 있다. 중국에서는 10월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시진핑 국가주석-리커창 총리 체제가 선보일 예정이고 바로 다음달에는 미국에서 총선과 대선이 실시된다. 러시아 역시 3월 대선을 앞두고 벌써부터 선거열기가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눈길을 유럽으로 돌려보면 핀란드 대선이 1월이고 프랑스 대선이 4월이다. 이밖에도 멕시코(7월), 인도(7월), 터키(12월)에서 줄줄이 선거를 앞두고 있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는 10월3일자 파이낸셜타임스 기고문에서 "내년 선거를 겨냥한 투쟁은 이미 시작됐다. 이로 인해 필요한 경제정책을 수행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고 우려했을 정도다.
올해 선거 첫 타자는 타이완이다. 14일 타이완 총통 선거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타이완 선거 핵심 쟁점이 ‘타이완과 중국 관계설정’에 있기 때문이다. 현 마잉주 총통(국민당)은 재선에 성공하면 중국과 밀월관계를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주권을 침해할지 모른다는 여론을 법학교수 출신인 차이잉원 민진당 주석이 파고들고 있다. 12월2일 여론조사에선 마 총통이 지지율 34%로 26%인 차이 주석을 8% 포인트 차로 앞서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부동층이 30%가 넘어서 속단은 금물이다.
@미국과 중국
한국에서 가장 관심을 가질 선거는 단연 미국과 중국이다. 미국에선 현재 민주당과 공화당이 당의 운명을 건 정책대결을 벌이고 있다. 내년 대선을 앞둔 전초전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민주당은 경기회복과 일자리 늘리기를 위해 부자증세와 재정투입을 하려 하지만 정권교체를 원하는 공화당은 경제성적이 좋아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데다 주요 지지층인 부유층의 이해관계 때문에 경기부양과 부자증세에 결사 반대한다. 오바마는 재선에 성공할 수 있을까?
양대 세력의 갈등 속에 미국의 경제정책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빠져들고 있다. 미국 유권자들은 재정긴축과 감세가 경제를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한다면 공화당을 지지하고, 재정지출확대와 증세가 경제를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한다면 민주당을 지지해야 하는 선택을 내려야 한다.
보통선거를 통해 국가지도자를 선출하지 않는 중국은 내년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내부 선거를 통해 새 지도부를 구성한다. 이변이 없는 한 시진핑 국가부주석이 차기 국가주석으로서 10년간 통치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새 정부 앞에는 성장과 수출 중심 노선과 내수와 분배 중심 노선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과제가 높여있다. 아울러 그동안 경기가 과열되면서 발생한 거품을 걷어내고 경기를 연착륙시켜야 한다.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과제다.
@@유럽
유럽 각국 정부들은 집권당 저주라는 악몽을 내년에는 피할 수 있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2011년 유럽 8개국에선 선거 여덟번에 정권교체 여덟번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2월25일 아일랜드 공화당이 집권 14년만에 패한 것을 시작으로, 6월5일 포르투갈 사회당이 총선에서 졌다. 덴마크에서도 우파 연정이 9월 15일 선거에서 10년만에 정권을 중도좌파 사회민주당에 넘겨줬다.
11월에는 사흘 간격으로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그리스 총리와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가 물러났다. 11월20일 스페인에선 사회노동당이 최악의 패배를 기록했다. 12월4일 크로아티아에선 집권당이던 크로아티아민주연합이 야권연합에 패배했고, 같은 날 슬로베니아 총선에선 창당한지 두 달밖에 안된 신생정당인 '긍정적인 슬로베니아'가 제1당이 되는 파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2012년 첫 선거는 핀란드에서 열린다. 핀란드는 의원내각제이긴 하지만 대통령에게도 일정한 권한이 있다. 임기 6년인 핀란드 대통령은 3선을 금지하기 때문에 현재 연임중인 사회민주당 소속 타르야 할로넨 자리를 두고 중도좌파 사민당 후보 파보 리뽀넨, 자유주의적 보수정당이자 집권당인 국민연합당 후보 사울리 니니스토, 포퓰리즘 성향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진짜 핀란드인’ 당대표 티모 소이니 등 후보 8명이 출사표를 던졌다.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니니스토 후보가 40%가 넘는 지지율을 기록하는 반면 나머지 후보 중에는 지지율 10%를 넘긴 후보가 한 명도 없다.
세계가 주목하는 선거는 단연 4월22일 실시되는 프랑스 대통령 선거라고 할 수 있다. 과반수 득표자가 없을 경우 5월6일 결선투표를 치른다. 대선 직후인 6월10일 총선이 열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차기 대통령은 집권 다수당과 함께 강력한 권력을 쥐게 될 가능성이 높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과 사회당 소속 프랑수아 올랑드, 마르 르펜 국민전선 대표 등이 대선 경쟁에 뛰어든 주요 후보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함께 유럽 재정위기 극복 노력을 주도하고 리비아 내전에 앞장서 개입하는 등 의욕적인 활동을 바탕으로 재선을 노리지만 상황이 썩 녹록치는 않다. 지난달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올랑드 후보가 지지율 30% 안팎을 기록한 반면 사르코지 대통령은 26~29%에 머물러 있다. 극우파인 르펜 후보가 16.5~19.5%를 기록하는 것도 사르코지 대통령 입장에선 지지층 분산 효과가 생길 수밖에 없다.
지난해 각종 선거에서 집권 대중운동연합(UMP)가 거둔 성적표도 전반적으로 좋지 않다. 지난 3월 지방선거에선 사회당 등이 압승을 거뒀다. 이어 9월25일 상원 절반인 170석을 대상으로 한 선거에서 집권 대중운동연합은 72석에 그친 반면 사회당 등 좌파연합이 85석을 차지하면서 제5공화국 수립 이래 처음으로 절대다수인 177석을 차지했다. 상원선거는 리비아 내전 종식이라는 화려한 외교 성과를 과시하는 속에서도 패배했다는 점에서 특히 뼈아픈 대목이다.
이밖에 3월10일 슬로바키아 총선, 6월30일 아이슬란드 대선, 10월8일 슬로베니아 대선, 11월30일 루마니아 총선 등이 예정돼 있다. 그리스에선 당초 2월19일 총선이 열릴 예정이었지만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총리가 물러나고 거국내각이 구성되면서 향후 총선일정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러시아
내년 3월 실시되는 러시아 대선은 기본적으로 푸틴 대 반(反)푸틴 대결 구도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푸틴 총리가 패배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데 대다수 전문가들이 동의한다. 결국 지난달 총선에서처럼 푸틴이 어느 정도 득표율율 거두는지가 관건이 될 것이다. 특히 총선 직후부터 불거진 부정선거 규탄시위는 푸틴에게 상당한 상처를 입혔다.
푸틴 인기가 예전같지 않다는게 만천하에 드러나면서 푸틴에 대항하기 위한 야권 후보들이 저마다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세르게이 미로노프 정의러시아당 원내대표와 신흥재벌 미하일 프로호로프가 공식 출마 의사를 밝혔다. 미로노프는 지난해 5월 푸틴 총리가 이끄는 통합러시아당을 비판했다가 상원의장직에서 쫓겨난 뒤 반 푸틴 노선으로 돌아선 인사다.
프로호로프는 개인 자산이 180억 달러나 되는 러시아 3위 부자다. 물론 일각에선 그가 크렘린의 지시로 현 정권에 불만을 품은 유권자들과 도시 중산층의 표를 끌어들이기 위한 목적으로 출마했다고 의심한다. 지난 대선에서 18%의 득표율을 얻었던 게나디 주가노프 공산당 당수 등도 출마할 것으로 보인다.
@@무엇이 선거를 좌우할까
내년 선거를 좌우하는 핵심 쟁점은 무엇일까. 올해 유럽에선 8개국이나 정권교체가 일어났는데 모두 경기침체와 실업 등 민생문제가 핵심 원인이었다. 이는 내년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영국 시사주간 이코노미스트도 ‘2012년 세계’ 전망을 통해 내년에는 ‘성장으로 인한 이익을 어떻게 공유할 것인가’가 아니라 고통을 어떻게 분담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고, 자연스레 복지문제를 둘러싼 논쟁이 거세질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지난해 12월1일 발표한 '2012년 세계경제 및 한국경제 반기별 전망'도 비슷한 전망을 내놓는다. 세계경제 불확실성이 팽배해 있으며, 유럽 재정위기의 향방이 세계경제 흐름을 좌우할 것이라는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선진국은 민간 회복세가 미약한데다 정부의 경기부양력도 소진됐고 신흥국도 성장률 하락이 불가피하지만 2012년 하반기 이후 완만한 회복세를 예상했다.
결국 관건은 경기침체 국면에서 누가 제대로 된 경제·사회 정책을 대안으로 제시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핵심 정책 구도는 경기회복을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이 구도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이 바로 위에서 언급한 미국, 그리고 유럽 덴마크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내년 선거가 기본적으로 집권당에게 불리한 구도인 것 또한 분명하다. 지난 11월 총선에서 스페인 집권 사회당은 역대 최악의 성적으로 정권을 넘겨줘야 했다.
지난 9월15일 총선 결과 덴마크는 10년간 집권했던 우파 연정이 막을 내리고 좌파 진영이 승리하면서 사상 첫 여성 총리가 취임했다. 선거 기간 동안 우파연정은 재정적자 감축을 위해 긴축정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새 총리가 된 사회민주당 헬레 토르닝-슈미트(44) 대표는 재정 지출을 줄이는 것은 소비 위축을 낳고 다시 세수 감소와 재정적자 확대로 이어진다면서 교육과 건강 등 복지분야 재정지출 확대를 통한 경기 부양을 강조했다. 이를 위한 재원은 부유세 등 부자들과 은행 등으로부터 세금을 더 걷어 충당하겠다고 약속했다.
정부부채 감소를 위한 재정긴축은 민간부채를 늘리고 실업률을 늘리면서 결국 세수감소로 정부 곳간을 마르게 하는 역설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더구나 긴축정책은 통상 사회복지지출을 동반하기 때문에 저소득층에게 가장 큰 피해를 입힌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각국 선거에서 저소득층의 불만을 어떻게 반영하고 어떻게 이들을 설득할 것인가가 선거의 성패를 좌우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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