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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을 생각한다/송두율 교수 사건

송두율 교수, 37년만에 고국에서 강연

by betulo 2007.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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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9/30

"37년만의 첫 강연입니다"

방명록에 쓴 글처럼 송두율 교수(독일 뮌스터대)는 "고국에서 한국말로" 강연하는데 37년을 기다려야만 했다. 이와 관련해 기념사업회의 원칙없는 행태를 두고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다.
 

당초 송 교수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 박형규, 이하 기념사업회)와 학술단체협의회(이하 학단협)에서 공동주최한 "한국 민주화운동의 쟁점과 전망"이라는 학술심포지엄에서 "한국 민주화운동-과연 성공적이었는가"라는 주제의 기조발제를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최근 그의 과거행적과 관련해 논란이 불거지자 기념사업회에서 송 교수에게 불참을 요청해 기조발제 발표가 무산됐다. 손호철 교수(서강대 정치외교학과)는 "어제 기념사업회에서 비상이사장단회의를 열어 결정해 송 교수에게 통보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기념사업회의 방침이 전해지자 학단협과 민교협 등에서는 거세게 반발했다.

안병욱 교수(학단협 공동대표)는 "송두율 교수 토론회 불참에 대한 학술단체협의회의 입장"이라는 성명서에서 "학문의 자유와 진리의 영역은 실정법을 넘어선다"고 강조하며 "기념사업회 측에 엄중히 항의한다"고 밝혔다. 특히 김세균 교수(서울대 정치학과)는 "기념사업회에서 스스로 결정해 송 교수에게 기조발제를 못하게 권유한 것은 학문연구와 발표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며 예정됐던 주제발표도 하지 않은 채 퇴장해 버렸다.

11시 쯤 1부 사회를 맡았던 박호성 교수(서강대 정치외교학과)는 "송 교수가 5시30분에 폐막연설을 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기념사업회가 방침을 변경한 데에는 심포지엄 공동 주최자인 학단협의 강력한 항의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희연 교수(성공회대 사회학과)는 "학단협과 민교협에서 "정치적인 문제와 학문적인 문제는 별개"라며 기념사업회를 설득했고 기념사업회는 이를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송 교수가 폐막연설 형식으로 10여분간 "나의 통일철학"을 발표한 것에 대해 조 교수는 "우리 사회가 정치적인 문제와 학문적인 문제를 구분해서 볼 정도로 성숙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박 교수도 "우리는 역사적인 현장에 함께 하고 있다"고 감회를 드러냈다.

이 과정에서 "자기검열에 빠진" 기념사업회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다. 임종인 변호사(해외민주인사 명예회복과 귀국보장을 위한 범국민추진위원회 집행위원장)는 "기념사업회가 원칙이 없다"고 비판했다. 손 교수고 "불행 중 다행"이라면서도 "기념사업회가 학문의 자유를 침해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심포지엄 실무 담당자였던 송병헌 박사(기념사업회 학술연구부장)은 "송 교수가 심포지엄에 참석하는 것이 (송 교수에게) 도움이 안 될거라 생각한 건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순수 학술행사에 참석해 그의 진면목을 보이는 것이 오해를 없애고 그가 상징했던 "냉전"을 해체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나의 통일철학" 주제로 상생과 미래 위한 통일론

아무도 가보지 못한 "미래의 고향"을 민족 성원들이 같이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통일이다."

송 교수는 이날 오후 5시 25분께 행사장에 도착해 방명록에 "37년만의 첫 강연입니다"라고 서명한 뒤 주제강연을 시작했다.

 그는 "나의 통일철학"이란 주제강연에서 통일의 철학적 범주를 △상생의 철학 △평화의 철학 △과정의 철학 △긴장의 철학 △아름다움의 철학 △고향의 철학 여섯 가지로 정리했다. 특히 "통일은 오늘을 사는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책임을 져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송 교수의 강연을 요약했다. 

먼저 통일은 상생의 철학에 기반해야 한다. 남북을 관계체제로서 상호연관된 전체로서 파악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최근 유럽 학계에서도 그런 경향이 보인다. 가령 어느 철학자가 제시한 "과정 속에서 서로 연결되는 것을 연구"한다는 명제를 들 수 있다. 독일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 가운데에도 "원래 하나인 것은 같이 자라야 한다"는 것이 있다. 

동양철학에서도 이런 문제의식을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가령 "화엄경"에는 "A가 B속에 들어 있고 B가 A속에 들어있다"는 식의 구절이 나온다.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緣起)"도 같은 개념이라 생각한다. 요컨대 모든 것들은 관계 속에서 자란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평화의 철학이다. 

노르웨이의 평화학자 요한 깔툰은 평화를 적극적 평화와 소극적 평화로 구분했다. 소극적 평화란 "전쟁 없는 상태"를 말한다. 반면 적극적 평화란 "평화적 수단을 통해 구조적으로 평화가 존재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현재 한반도는 휴전 상태이다. 휴전은 말 그대로 전쟁을 잠시 쉬고 있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소극적 평화도 못된다고 할 수 있는 휴전 상태를 적극적 평화체제로 만들어야 한다. 즉 평화를 수단으로 해서 한반도에 평화가 굳혀지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 사람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독일 통일에 대해 "어느 날 사고처럼 갑자기 왔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과정이 생략된 통일이란 게 과연 있을까? 독일도 하나가 되는 수십년에 걸친 과정을 거쳐 통일이 나타난 것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이런 면에서 과정의 철학을 말할 수 있다고 본다. 

다음으로 긴장의 철학을 말하고 싶다. 

한국사람이 유럽에 가보면 말만 다르다 뿐이지 큰 지장 없이 어느 나라든 여행할 수 있다. 몸으로 유럽연합의 존재, "탈민족"의 현실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탈민족"이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 "민족"과 "탈민족"이 동북아에 가지는 의미는 뭘까? 세계화라는 동시성을 추구하는 남, 주체화를 외치며 동시성을 거부하는 북. 이 둘을 어떻게 수렴할 것인가. 이것은 학계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과제이다. 

 그러면 과연 우리는 통일을 통해 어떤 사회를 건설할 것인가. 거기에 대한 명확한 상(像)이 있어야 한다. 나는 우리가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름다움이란 화해와 조화이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사이의 화해와 조화를 통해 아름다움을 구현하는 "아름다운 나라". 그것이 바로 통일의 핵심 상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통일은 고향의 철학이다. 

 아무도 가보지 못한 미래의 고향을 민족성원들이 같이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통일일 것이다. 바로 "미래의 고향으로서의 통일"이다. 

대나무 이야기를 예로 들어주고 싶다. 큰 대나무와 작은 대나무는 겉으로는 다른 나무 같지만 땅 속으로는 뿌리가 서로 얽혀있다. 하나가 죽으면 다른 하나도 죽는 것이다. 대나무 숲은 그렇게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죽순도 일정한 거리를 두고 나온다. 다음 세대를 위한 자리를 만들어두는 것이다. 


2003년 9월 30일 오전 11시 35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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