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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생각/지방재정

지방재정, 위기관리시스템이 필요하다

by betulo 2010.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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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에는 변변한 지방재정 위기관리제도가 없다. 반면 다양한 형태로 지방재정 위기를 경험한 미국이나 일본 등 해외 각국에선 각자 실정에 맞는 지방재정 위기관리제도를 구축하고 있다. 지방재정위기를 사전에 예방하고, 적시에 위기를 인지하며, 효과적인 사후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크게 예방 시스템, 엄격한 기준에 따른 위기 여부 판단, 지원·감독 등으로 구성된다.

국내에서도 위기관리를 위한 시스템이 필요하다. 국회입법조사처도 최근 한 보고서에서 특히 위기를 조기에 인식해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상황을 상시 점검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 특히 적절한 개입을 위해서는 명확한 지표와 ‘임계치’를 설정해야 한다. 프랑스의 재정분석·진단제도나 일본의 재정건전화법이 대표적이다.

마지막으로 일단 재정위기가 발생할 경우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공식적이고 강제적인 절차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미국은 주 파산관재인이나 재정파산 절차를, 일본은 재정재생계획을 두고 있다. 실제 1991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정부는 첼시시가 심각한 재정위기에 빠지자 시장을 해임하고 주 파산관재인을 파견했다.



외국 사례를 통해 지방재정 위기관리 제도를 살펴보자.

예방이 우선

재정위기를 예방하기 위한 것으로 가장 일반적인 제도가 재정분석·평가제도다. 전문가들은 특히 프랑스식 재정분석·진단제도를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프랑스 중앙정부 차원에서 실시하는 재정분석·진단제도는 채무부담률과 지출경직도 등 4개 지표를 일정한 공식에 대입해 종합점수를 산출하도록 하고 있다. 종합점수가 20점 미만이거나 2년 연속 30점 미만이면 상급단체로부터 재정건전화를 지도·감독받아야 한다. 재정컨설팅 기능까지 갖춘 셈이다.

미국은 정부 차원의 재정동향점검시스템(FTMS)과 민간 차원의 지방채 신용평가관리제도라는 상호보완적인 감시체제를 가동하고 있다. FTMS는 재정상태에 영향을 미치는 36개 기본지표로 구성된다. 이 가운데 기초자치단체가 각자 실정에 맞는 지표를 선정해 스스로 자신들의 재정을 자체 점검한다.

민간 신용평가회사들도 주정부·지방정부 신용등급과 지방채 등급을 매긴다. 가령 지난달 신용평가사들은 “재정위기를 타개할 충분한 진전이 없다.”며 일리노이 주에 대한 신용등급을 일제히 하향 조정했다. 현재 무디스는 미국 주정부 가운데 캘리포니아와 일리노이의 신용등급을 가장 낮게 유지하고 있다. 

세계은행은 남미 콜롬비아가 운영하는 지방재정 조기경보제도를 모범사례로 각국에 권장한다. 이 제도는 운영자금 대비 이자비용과 경상세입 대비 지방채 잔고를 기준으로 하며 재정위기 정도에 따라 황색·적색 두 종류로 경보신호가 작동한다. 가령 황색경보가 발령되면 지방정부는 지방채를 발행할 때 재무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위기를 알아야 대책이 가능하다

물이 새는 줄 모른 채 바다를 항해하는 배는 결국 침몰할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지방재정이 위기인지 아닌지를 제때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위기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 미국의 정부간자문위원회(ACIR)는 1973년 지방재정위기 기준을 제시했고 주정부는 이를 참고해 주 법에서 재정위기 기준을 규정하고 있다.


일본은 ‘지방공공단체의 재정건전화에 관한 법률’, 이른바 지방재정건전화법에 따라 재정위기 예측력 개선을 위한 네 가지 지표를 만들었다. 이에 따라 중앙정부는 자치단체를 각각 조기건전화 혹은 재정재생단체로 지정한다.

일단 지방재정위기 상태가 되면 엄격한 후속대책이 뒤따른다. 일본에선 자구노력으로 재정건전화가 가능한 경우인 조기건전화 단계에선 재정건전화 계획을 자체 수립하도록 하고, 중앙정부 개입이 불가피한 경우 재정재생 단계로 지정해 총무성 동의 아래 재정재생 계획을 수립해 추진해야 한다.


연방제 국가인 미국은 크게 지원·감독 단계, 파산관재인 파견 단계, 파산법원 조정 단계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연방정부나 주정부 등 상급정부는 재정위기에 직면한 하위 지방정부에 재정 감독을 조건으로 자금을 지원한다. 이를 위해 상급 정부는 재정감시기관을 설치한다. 이런 지원으로도 해결이 힘들 경우 예외적으로 주 특별법을 제정, 지방자치를 일시 중단시키고 파산관재인을 자치단체에 파견한다.

한마디로 법정관리인을 파견하는 셈이다. 실제 1991년 매사추세츠 첼시에서는 주 정부가 시장을 해임했다. 미국은 파산제도를 도입한 주에 한해 카운티 등 자치단체가 파산신청을 할 수 있다. 지방자치가 오랜 미국이지만 자치단체가 파산을 신청한 경우는 1996년 캘리포니아 오렌지 카운티의 파산신청 단 1건이다.


양극화가 부르는 재방재정위기 악순환

미국 곳곳에서 재정적자를 이유로 긴축재정에 몰두하고 있다. 카지노와 주류판매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거나 과속단속을 강화하는 등 재정확충을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한다. 하지만 교육·복지예산을 줄이는 방식은 세입감소와 세출증가라는 악순환에 빠질 수도 있다.

1990년대 이후 미국에서 지방재정위기를 겪은 곳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세입감소와 지출증가에 따른 괴리가 지방재정 악화로 이어지는 양상을 띈다. 1991년 재정위기를 겪었던 매사추세츠 주 첼시 시는 경제불황과 산업구조개편으로 고소득층은 빠져나가고 저소득층이 유입되는 도심공동화 현상이 발생했다. 이는 세입 감소로 이어졌다.

빈곤층 유입과 실업률 증가는 복지지출 확대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고 이는 재정에 엄청난 부담이 됐다. 하지만 캘리포니아 등에서 보듯 재정적자를 줄인다는 이유로 교사나 경찰 등을 정리해고하고 복지예산을 줄일 경우 실업증가와 이로 인한 소비부진이 발생하고 이는 다시 세입감소를 초래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

악순환을 선순환 구조로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좋은예산센터 정창수 부소장은 “미국정부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4%를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공적부조에 쓰는 반면 복지국가인 스웨덴은 오히려 그 비중이 GDP 대비 1%에 불과하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결국 재해 관련 예산을 예방 중심으로 편성할 것인가 사후복구 중심으로 편성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동일한 문제가 지방재정위기에서도 발생한다.”면서 “사후복구가 당장 중요하지만 사후복구만 강조하다보면 해마다 사후복구만 하게 된다.”고 꼬집었다. 그는 “결국 재정을 통해 일자리와 소비를 늘리지 않고 복지예산 축소로 대응할 경우 양극화에 따른 악순환을 피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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