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雜說

여성부가 나를 웃기다

by betulo 2009. 9. 22.
728x90


“헤겔은 어느 책(역사철학강의)에서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고 했다. 한번은 비극으로, 한번은 희극으로… 그러나 나는 그가 다음을 빼먹었다고 생각한다. ‘처음은 비극으로, 두 번째는 희극으로…….’”


칼 마르크스가 프랑스 혁명을 다룬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서문에 쓴 유명한 문구다. 요즘 여성부 장관 인사청문회를 지켜보다가 마르크스의 선견지명에 무릎을 친다.



2008년 2월24일 부동산 과다 보유와 투기, 축소신고 의혹에 시달리던 이춘호 여성부 장관 후보자가 지명 엿새 만에 사퇴했다. 그러면서도 부동산 투기 의혹에 대해 “대부분 상속받았거나 세상을 떠난 남편으로부터 물려받은 것 … 일생을 바르게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저로선 이런 비판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후보자 사퇴는 현 정권에서 여성정책이 겪어야 할 풍랑을 예견하는 비극의 전조였다.


혹자는 여성부에 관한 한 첫 번째도 희극이었고 두 번째도 희극이었다고 평가할 수도 있겠다. 나는 첫 번째에 대해선 비극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번 백희영 후보자를 둘러싼 세간의 논란은 분명 희극이다. 준비 많이 했다고 자부했는데도 이 모양이니 더 희극이겠다.


애초에 반평생 영양학을 전공한 학자를 여성부 장관 후보자로 발표한 것부터 코미디였다. 논문표절 의혹은 사실 무리한 문제제기라는 측면이 있었기 때문에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부동산 관련 의혹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코미디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여성정책에 식견이 없다는 것은 짐작했지만 인사청문회에서 보여준 모습은 너무 심했다. 서울대까지 나오신 분이 벼락치기 공부를 이다지도 못한단 말인가. <오마이뉴스
보도>에 따르면 지난 9월 18일 백 후보자는 혼인빙자간음죄·간통죄·군가산점 등 사회적 이슈가 됐던 현안조차 제대로 대답을 못했다. 후보자 뒤에 앉은 여성부 간부들이 법안 이름이나 통계수치를 끊임없이 커닝해주는데도 연필만 돌리고 있었다.


여성단체들은 “여성부 직원들은 내정자의 답변 한마디 한마디에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콘텐츠 없는 장관을 위해 매번 ‘답안지’를 들고 수행하는 것이 직원들이 할 일이냐.”고 꼬집었을 정도다.


급기야 한국여성단체연합·한국여성민우회·한국성폭력상담소·한국여성의전화·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 등 여성단체들은 9월 21일 “각종 여성정책과 현안에 대해 족집게 과외를 통해 들은 내용만 답하고 그 이상은 전혀 알지 못했다.”면서 실망감을 표현했다. 사퇴권고와 함께.


민주당 등 야당은 부동산 투기와 자녀 병역, 논문 끼워넣기 의혹을 제기하면서 인사청문회 보고서 채택을 거부했다. 심지어 한나라당 안에서도 자진사퇴론이 터져나왔다.


이런 와중에 여성부가 코미디의 클라이막스를 보여주는 두 장 짜리 자료를 보내왔다. 여성부가 22일 배포한 “백희영 여성부 장관 내정자 인사청문회에 대한 여성계 의견서”라는 자료였다. 제목은 “백희영 여성부 장관 내정자의 임명을 적극 지지합니다.”였다.

090922-지지단체성명서.hwp


내용은 우리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인사청문회 및 언론보도를 보면 여성에게 더 엄격한 잣대를 대어 편중되어 있어 이는 여성에 대한 명백한 차별입니다.” 백희영 후보자가 남자였다면 덜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을까?


“전문성, 다양한 여성․가족․생활 관련 단체 활동을 통한 실천성, 세계무대에서 글로벌 리더로서의 경험과 역량을 두루 갖추었다...” 이건 뭐 장군님 찬양가 수준이다.


가장 나를 웃긴 건 의견서를 냈다는 여성계의 면면이다. 8개 단체가 연명했는데 다음과 같다.


(사)가정을 건강하게 하는 시민의 모임
대한 어머니회 중앙연합회
대한영양사협회
한국부인회총본부
한국영양학회
대한가정학회
한국가정생활진흥개선회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영양이나 가정, 부인, 어머니... 이런 단체들이 언제부터 여성계였을까. 설마 아직도 여성부와 여성가족부를 혼동하는건 아닐까.


지난번 글('여성부의 굴욕')에서도 언급했듯이 퇴행이 계속되다보면 퇴행한 모습이 원래 모습인줄 착각하게 되는게 아닐까. 그렇게 여성부는 퇴행하고 있는걸 아닐까.


하도 희한해서 여성부 담당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봤다.


“이 단체들이 여성계예요?”라고 물었다.


“여성계를 비롯해 영양학계도 있고요...”하더니 얼버무린다.


결국 둘이서 같이 웃고 말았다.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조금 전에 백희영 후보자가 소명자료를 발표했다. 자녀병역문제와 부동산투기의혹에 대한 해명이었다. 솔직히 백희영 후보자가 하는 말이 거짓이 아니기를 바란다. 하지만 적어도 내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백희영 후보자가 설령 노무현 정부 당시 인사청문회를 아무 논란없이 통과했을 정도의 도덕성을 가졌다 할지라도 나는 백희영 후보자를 통해 현 정부 여성정책에서 코미디를 읽었을 게다.

여성정책에 대한 식견과 의지가 부족하다면 그 자리가 본인에게 맞는 자리인지 스스로 생각할 일이다. 백희영 후보자가 앉으려는 자리는 여성부 장관 자리다.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이나 소비자원장이 아니다. 



여성부장관 후보자(백희영) 인사청문회 관련 소명 자료


□ 자녀 병역 관련


 ㅇ 키우는 엄마로서 청문회에서 공개적으로 검진 내역자료를 공개기가 어려웠으나, 여성위원회의 요청에 따라 자료를 제출하여 위원님들이 열람 확인해 주셨습니다. (子: 공익근무요원으로 25개월 근무, 복무만료)


□ 부동산 관련


 ㅇ 본인은 투기를 목적으로 부동산을 취득한 적이 없으며, 법적으로 위법하거나 탈법한 사항이 없었음을 소명하고자 합니다.


 ㅇ 1996년에 복지아파트를 4억여원에 구입(2억+ 조합원분담금 2억), 2001년건축되고 난 후 계속 전세를 주고 있다가, 자녀들이 귀국한 2007년에 입주하여 현재까지 가족과 함께 거주하고 있으며 현재 보유주택은 한 채입니다.


 ㅇ 장 근처에 거주하기 위해 2001년 상도동 아파트를 구입하여 3여년 거주하다가, 자녀의 귀국으로 동 아파트는고, 용산 아파트로 입주하였습니다. 기간(2년1개월)은 1가구 2주택에 해하여 매도시 양도세를 납부하였습니.


 ㅇ 목동아파트는 친구의 어려움으로 샀다가 동일인에게 매도했으며, 이 당시에용산아파트가 멸실되었기 때문에 무주택자로서 구입한 것입니다.


구 분

96

97

98

99

00

01

02

03

04

05

06

07

08

09

용산아파트

 

 

 

 

96.매입

멸실로 무주택

전세 임대를 줌

본인 입주, 현재까지 거주

상도동아파트

매입 및 조합원 분담금

(2억3천3맥만원)

 

 

 

멸실로 무주택

(부부만 거주하여, 학교 근처의 작은 집으로 이사)

매도(4억5천만원)

양도소득세 전액납

(4천6백만원)

목동아파트

 

 

‘00.12월 매입, ’01년 1월 매도

(친구인 동일인에게 사고 팜)

 

 

□ 청문회동안 성실하게 설명하고자 했으나, 일부 오해가 있어 동 자료로 소명하고자 합니다.


2009년 9월 22일

여성부 장관 후보자 백희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