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남북정상회담4

뿌리 얕은 나라의 ‘사초(史草) 폐기’ 소동 느닷없이 연산군이 뉴스에 오르내린다. “연산군도 하지 않은 사초 폐기”라며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대화록)을 폐기했다고 노무현을 비난한다. 한때 역사학자를 장래 희망으로 삼았던 사람으로서 '사초(史草)'라는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사초’가 뭔지나 알고 떠드는 거냐고 비웃어주지 않으면 잠이 안 올 것 같아 몇 자 적기로 했다. 이극돈 뇌물수수 기록한 사초로 비롯된 무오사화 연산군 4년, 그러니까 1498년에 사화(士禍), 지금으로 치면 공안사건이 일어났다. 유자광과 이극돈 등 대신들이 김일손이라는 사관이 쓴 사초를 문제 삼으면서 시작됐다. 사초 때문에 발생한 사화였기 때문에 ‘무오사화(戊午史禍)’로 표현하기도 한다. 수많은 신하가 무고하게 사형을 당했다. 이미 죽은 시신을 무덤에서 꺼내 부관참시.. 2013. 10. 14.
남북공동선언 전문가들은 어떻게 보나 공동선언이 나오자마자 각 분야 전문가들에게 전화를 돌렸습니다. 얘기를 들으면서 녹취한 내용을 그냥 버리긴 아까워서 올려놓습니다. ●김영수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총평 적정하게 다룰 수 있는 건 다 다뤘다 문제는 파격적인 내용은 없다. 예상했던 내용이 다 나왔다. 가장 큰 특징은 미래지향적이다. 앞으로 해야 할 내용들이다. 실천이 담보되지는 않았다. 약속하기 보다는 미래에 서로 하자고 의사를 모은 것이다. 선언과 실천은 상당히 거리가 멀 수도 있다. 남북협력 잘 되면 빨리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다. 1차와 비교하면 훨씬 구체적이고 내용도 훨씬 길다. 추상성은 확 줄었다. 실천에 훨씬 가깝다. 전제조건은 남북이 협력하면. 그게 아주 특징이다. 뭐뭐 한다가 아니고 뭐뭐 하기로 하였다라는 선언으로 특징지을.. 2007. 10. 5.
10월2일, 손을 맞잡은 남북 정상 10월2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프레스센터에서 제가 맡은 임무는 군사분계선을 넘을 때부터 평양까지 하루 일정을 정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 저것 확인하고 고치고 또 고치고... 결국 자정에야 퇴근. 제가 쓴 기사를 단 한 문장으로 줄인다면 어떻게 할까. "역사는 2007년 10월2일 오전 9시5분을 특별한 순간으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라는 말로 정리하고 싶습니다. 그런 순간을 기록했다는 데 보람을 느낍니다. 사상 처음으로 남한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한 걸음으로 훌쩍 넘었다. 평양까지 승용차로 3시간이 채 안 걸렸다. 반세기 넘게 대치해온 남과 북은 지척에 있었던 것이다.2일 평양 시내 한복판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굳게 맞잡은 손엔 7000만 겨레의 통일 염원이 응축돼 있었다. ●.. 2007. 10. 3.
남북정상회담 프레스센터는 지금 얼떨결에 남북정상회담 프레스센터에 파견나왔습니다. 1일부터 계속 프레스센터가 설치된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정상회담 소식을 점검하며 기사를 쓰고 있지요. 발로 뛰는 기사는 나올 수 없는 구조기 때문에 상황을 계속 확인하며 정리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인 현장을 가장 빨리 접할 수 있다는 건 나름대로 좋은 경험입니다. 2일 정오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만나는 장면이 방영되자 프레스센터에 있는 모든 눈이 화면을 향했다.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만 들렸다.방영이 끝나자마자 프레스센터는 수십개 언어가 쏟아져 나오며 돌연 ‘만국박람회’로 돌변했다. 7년만에 이뤄진 남북정상회담 취재를 위해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 설치된 프레스센터는 1000명이 넘는 내·외신 기자들이 내뿜는 취재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 2007. 10.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