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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장월급 1만원받던 시절, 싸구려 식당에 고급서비스는 없다

by 자작나무숲 2022. 10. 1.

 “너희들, IMF라고 들어봤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대대장은 국제통화기금(IMF) 얘기를 계속했다. IMF가 “I’m Fired” 줄임말이라는 농담도 소개해줬다. 아무도 웃지 않았다. 대규모 훈련을 마치고 이제 막 복귀한 직후였다. 생소한 영어 단어가 귀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장기간에 걸친 짭밥 섭취 부작용으로 구구단이 잘 외워지질 않아 고민이던 나 역시 심드렁하긴 마찬기지였다. 

 귀가 번쩍 트인 건 “고통분담” 얘기를 들었을 때였다. 대대장 말로는, 하여간 잘 이해는 안되지만 이 나라가 망하느냐 마느냐 하는 위기에 빠져 있기 때문에 모든 국민이 고통을 함께 나눠야 한다고 했다. 나라를 지키는 국군장병도 고통분담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는 “자발적” 고통분담을 통보받았다.

 
 전장병 월급과 생명수당을 삭감한다. 1식3찬(한 끼에 반찬 세 가지)을 1식 2찬으로 줄인다. 부식으로 나오던 건빵과 맛스타 지급을 중단한다. 야간에 휴전선 경계근무할 때 1인당 한 봉지씩 지급하던 야식용 라면도 이제는 안녕. 

 다음날 아침밥은 내 인생의 한 끼였다. 찰기와 윤기는 없는 쌀밥에, 건더기 하나 없이 황토색 국물만 있어서 ‘똥국’이라고 부르던 된장국, 배추김치 조금, 포장용 김 하나. 그게 전부였다. 월급에 생명수당까지 깎이고 나니 명색이 선임 분대장인데도 손에 쥔 돈이 1만원이 채 안됐다. 한 달 전엔 2만원은 넘겼던 것 같은데… IMF란 그 얼마나 흉악한 놈인가. 그때는 그저 이게 다 IMF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국가 위기 상황이라면서 정작 추위와 배고픔을 참으며 국가를 지키는 장병들의 생명수당까지 깎았던 국방부 높으신 분들에겐 우리가 ‘전우’였을까 아니면 한 달에 1만원도 안되는 돈으로 마음껏 부려먹을 수 있는 개돼지였을까. 지금 돌이켜 보면 ‘자발적 고통분담’을 결정했던 그들은, “부상병은 후송하기 않는다”거나 “살아서 포로가 되는 치욕을 받지 말라”고 명령할 정도로 장병들을 짐짝 취급하던 과거 대일본제국 군부의 정통 계승자일 뿐이다. 

 사람을 귀하게 생각하는지 소모품으로 취급하는지 알아보는 건 의외로 간단하다. 돈을 얼마나 주면서 일을 시키는지 보면 된다. 죽여도 상관없는 노예에겐 0원일 것이고, 시간제 계약직이라면 월급 100만원도 아까울 수 있겠다. 뛰어난 인공지능 전문가라면 억대 연봉도 아깝지 않다. 웹툰 ‘송곳’에서 갑질이 벌어지는 원인을 “그래도 되니까”라고 짚었는데, 왜 그래도 되는지 따져보면 대체로 돈 문제로 귀결될 것 같다.

 요즘 8·9급 공무원들 퇴직이 늘고 있다는 게 논란이다. 전현직 공무원들과 장래 공무원을 꿈꾸는 수험생들 목소리를 두루 들어봤다. 공공·민간 모든 영역에서 나타나는 거대한 변화라는 걸 인정하더라도 공무원을 그만두는 이유는 대체로 급여와 처우로 수렴되었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하는 일에 비해서 월급이 적다. “야근수당 못 받으면 마이너스”라거나 “왜 9급 공무원은 최저임금법 적용 안 해주냐”는 말에 반박하기는 정말 쉽지 않다. 

 공무원은 고용주가 국민이다. 이제는 고용주가 선택을 해야 한다. 일을 더 시키고 싶으면 사람을 더 뽑든지 월급을 더 줘야 한다. 인건비 부담이니 철밥통이니 하는 어설픈 변명 뒤에 숨는다고 해결될 건 아무것도 없다. 마른 수건 백날 쥐어짜 봐야 물 한 방울 안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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