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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說

당원 총투표, 정의당의 유치 찬란한 자해극

by 자작나무숲 2022. 8. 31.

정의당이 듣도 보도 못한 걸 시작했다. 31일부터 닷새 동안 정의당 소속 비례대표 5명에게 총사퇴 권고 여부를 묻는 당원 총투표를 한다고 한다. 물론 가결이 된다고 5명이 자동으로 의원직을 잃거나 하는 건 아니다. 그런 건 전혀 없다. 다만 총사퇴를 ‘권고’하는 것일 뿐. 


이런 황당한 소동은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정의당 전 수석대변인 정호진이 7월 5일 비례대표 총사퇴를 요구하는 당원 총투표를 제안했다고 한다. 정의당 의석은 6석이고 그 중 심상정(경기 고양갑)을 뺀 5석이 비례대표인데,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 참패에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비례대표들을 모두 물러나게 하자는 것이다. 정호진은 “비례대표 5석을 통해 ‘달라지는 정의당’을 보여주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이 힘을 얻으면서 1002명이 당원 총투표 발의 서명부를 제출했고, 당권자 937명의 유효서명을 받아 당원 총투표에 돌입하게 됐다고 한다.(심상정은 왜 사퇴 권고 대상에서 빠진 것인지는 따지지 말자. 아마 총투표 제안한 분도 잘 모를 것 같다.)

 


당원 총투표는 대한민국 정당사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다만 썩 아름답게 기록될 것 같지는 않다. 가결이 된다면 되는대로 부결이 된다면 되는대로 소모적인 갈등과 분열은 불가피해 보인다. 만약 가결이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정의당 의원 5명이 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날 수도 있고, 사퇴를 거부할 수도 있다. 반대로 부결이 되면 어떻게 될까? 정의당 의원 5명이 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날 수도 있고, 사퇴를 거부할 수도 있다. 혼란과 갈등은 불가피해 보인다. 그런 게 ‘달라지는 정의당’일까? 임기 시작한 지 2년쯤 지난 초선의원들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 씌운다는 발상도 참 난해하기만 하다. 더구나 '유일한 방법'이라는 말에는 정말이지 눈꼽만큼도 동의가 안된다. 


물론 정의당 의원 6명에게 불만이 많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거야 당연한 노릇이다. (나도 불만 많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정권교체 프로파간다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는 ‘청년정치’에 부화뇌동해 경험이 일천한 의원들을 발탁한 건 누구였을까. 정의당이 당원의 뜻을 모아 이들 5명을 의원으로 선출해놓고 2년만에 ‘이게 다 너희들 때문이야’라고 하는 건 전형적인 희생양 만들기이고, 의자 모서리에 부딪혀 우는 갓난아기 달래려고 할머니가 의자 때리는 시늉하는 것과 뭐가 다른지도 모르겠다. 


당원 총투표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을 끝내고 돌아온 축구대표팀 선수들에게 자칭 '축구팬'들이 ‘이게 다 너희들 때문’이라며 엿을 집어던지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대한축구협회를 비롯해 정말로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은 엿 뒤에 숨어 버렸고, 선수들만 깊은 상처를 받았다. 그 엿놀음 덕분에 한국 축구가 더 발전할 가능성은 당연히 0%였겠고, 솔직히 엿 집어던지던 사람들이 K리그 발전을 염원하며 프로축구 경기장 한 번이라도 찾았을지도 의문이다.  


당원 총투표가 실망스러운 건 작금의 행태가 ‘숙련노동’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반정치주의, 장기적인 안목을 갖는 전략적인 사고가 아닌 단기실적주의를 바탕에 깔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모두 진보정당이 추구하는 가치 반대편에 있다. 정치인 하루 이틀 한다고 훌륭한 정치인 되지 않는다. 멀리 볼 것도 없다. 우리에겐 정치입문 2년차인 현직 대통령이 있다. 정치인이란 숙련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렇다면 정의당 의원 5명을 숙련노동자로 육성해 정의당과 진보정치의 자산으로 삼는 방향을 고민하는 게 더 생산적이지 않을까. 


이번에 당원 총투표가 가결되고, 압력에 못이겨 5명이 모두 사퇴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일단 새로운 5명이 의원직을 승계할 것이다. 새로운 5명은 당연히 국회의원 경험이 전혀 없는 초짜들일 테고, 준비기간마저 짧으니 실력도 분명히 떨어질 것이다. 당연히 실수도 많을 것이다. 2년만에 의원들 다 갈아치웠으니 다음 5명은 1년만에 갈아치우지 못할 이유가 뭐겠는가. 그 다음엔 뭐 깔끔하게 6개월짜리, 3개월짜리 초단기 계약직으로 의원단 운영하는 것도 한 방법이겠다.  


설마 정의당이 추구하는 목표가 모든 당원에게 국회의원 뱃지 한 번씩 달아주기인 것일까? 계속 갈아치우다 보면 언젠가 백마 탄 왕자님처럼 훌륭한 의원님이 나와서 우리를 구원해줄 거라는 기대라도 하는 건가? 전직 국회의원이 늘어나니 전직 국회의원 모임인 헌정회에서 목소리 더 높일 수 있는 효과 하나는 확실하겠다. 


정의당이 겪는 혼란은 정의당보단 오히려 더불어민주당에게 더 중요한 교훈이 되지 않을까 싶다. 최근 민주당에선 당원들의 직접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당헌 개정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민주당에서 논의하는 직접민주주의를 정의당은 이미 오래 전부터 제도화했다. 정의당 당헌당규는 당직선거 투표권을 가진 당원(당권자) 5% 이상의 동의를 얻으면 ‘당원 총투표’를 발의할 수 있다. 그래서 지금같은 일을 겪고 있다. 이게 민주당이 추구해야 할 길일까? 


한때 직접민주주의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설레곤 했다. 선거를 통해 뽑혔다는 대통령과 국회 하는 짓이 도대체 마음에 들지 않던 때였다. 직접민주주의는 대의제 민주주의란 허울을 쓴 저들의 민주주의를 이겨낼 대안처럼 보였다. 경험이 쌓이고 보니 순진한 착각이었다는 생각이 갈수록 강하게 든다. 직접민주주의 실험으로 칭송받는 주민참여예산마저도 실제 경험해보면 직접민주주의의 이상과 현실의 괴리만 더 강하게 느껴진다. 참여민주주의를 그토록 강조했던 열린우리당이 어떻게 지리멸렬했는지 떠올려 보자. 주민투표는 아이들 밥그릇 뺏는 용도로도 악용될 수 있다는 경험을 통해 마냥 좋은 게 아니라는 걸 극명히 보여줬다. 노무현-문재인 정부는 기회 있을 때마다 '국민참여'를 강조했고, 그럴수록 청와대는 국회(정치)와 멀어져 버렸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은 직접(혹은 참여) 민주주의보다는 오히려 더 책임감 있는 대의민주주의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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