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월까지 발표하기로 했던 ‘재정분권 종합대책’을 둘러싼 진통이 계속되고 있다. 정부부처간 엇박자에 더해 정부 차원의 총괄조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2월 발표는 물건너갔고 상반기 발표 얘기까지 나온다.
복수의 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재정분권 종합대책은 국세와 지방세 배분 방식과 국고보조사업 정비 등 핵심쟁점에서 기획재정부와 행정안전부 사이에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2월 발표가 힘들게 됐다. 당초 지난해 연말 발표하기로 했다가 올해 2월로 연기한데 이어 다시 한번 늦어진 것이다.
지방분권 종합대책에서 핵심은 국세와 지방세 구조개편을 통해 현행 국세·지방세 비중(8:2)을 장기적으로 6:4가지 개선하고 지자체 자주재원을 확충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국고보조사업 보조율 체계 개혁과 중앙·지방간 기능조정도 담을 예정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부관계자는 “2월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3월로 연기한다고 했다가 상반기에 발표한다는 얘기까지 나온다”고 전했다. 다른 관계자는 “기재부는 물론이고 행안부조차 재정분권 의지가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다”면서 “전체적인 조율을 해야 할 청와대 자치분권비서관은 몇달째 지방선거 출마를 하니 안하니 하며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핵심 쟁점은 지방소득세를 ‘독립세’에서 “비례세’로 바꿀지 여부다. 현재는 과세표준에 따른 소득세율의 10%에 해당하는 지방소득세를 추가로 지자체에 납부한다. 과세표준 1200만원 이하는 국세 6%와 지방소득세 0.6%를 내고 과세표준 1억 5000만원 초과는 국세 38%와 지방소득세 3.8%를 내는 방식이다. 하지만 비례세 방식으로 바꾸면 과세표준에 상관없이 일정한 지방소득세율이 지자체 세입이 되기 때문에 지방재정의 안정성이 높아진다. 가령 지방소득세에 비례세율 6.6%를 적용한다면, 과세표준 1200만원 이하와 과세표준 1억 5000만원 초과 모두 지방소득세율은 6.6%가 되는 식이다.
지방소득세 비례세화는 일본이나 스웨덴 등 재정분권을 추구하는 대부분 국가에서 채택한 제도다. 지방재정을 전공하는 학자들도 대체로 이 방안을 지지한다. 지역간 세수격차가 지금보다 더 벌어질 수 있다는 단점이 있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기 위해 절반은 해당 지자체에 주고 절반은 지자체간 수평적 배분을 하는 방안도 함께 거론된다.
이에 대해 기재부에선 지방소득세를 비례세화하려면 국세 과세표준을 이용해야 하는데 세무행정이 복잡해진다는 이유를 들어 난색을 표한다. 한 기재부 관계자는 “국세인 소득세와 지방세인 지방소득세는 체계가 동일하지 않다”며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고 밝혔다. 기재부에선 초기에 독일식 공동세제도를 내놓았지만 지자체에 입법적 권한이 없는 우리나라 실정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우선순위에서 밀린 것으로 전해졌다.
기재부에선 국세·지방세 조정과 국고보조사업 조정에 따른 중앙정부 재정부담 확대가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기재부 관계자는 “무분별한 국고보조사업을 정리해서 국가사무와 지방사무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는 동의한다”면서도 “국고보조사업 정비에 필요한 중앙정부 부담이 대략 20조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어 “국세·지방세 비율을 현행 8:2에서 6:4 정도로 조정하는데 필요한 약 50조원까지 하면 중앙정부 부담이 약 70조원을 넘어선다”고 털어놨다.
지방소득세에 비해 지방소비세 인상은 대체로 의견이 모아지는 분위기다. 한 기재부 관계자는 “지방소득세에 비해 지방소비세 인상은 상대적으로 쉬운 문제”라고 말했을 정도다. 부가가치세의 11%인 현행 세율을 어느 정도 수준까지 늘릴지가 관건이다. 지방이전 세수는 20%까지 올리면 약 6조 4000억원, 30%로 올리면 약 7조 7000억원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지방소비세 확대로 인한 지역간 격차 확대 문제는 현행 상생발전기금 모델을 확대하거나 지역간 가중치를 두는 방법을 검토중”이라면서 “일부에서 주장하는 관광세와 지역자원시설세도 적극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지방재정부담심의위원회에 지자체 대표가 직접 참여하게 해 실질적인 위상을 부여하는 것에 대해서도 큰 이견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방재정부담심의위원회는 2013년에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고 기재부와 행안부 장관이 참여하도록 위상을 격상시켰지만 지난 정부에선 실질적인 심의보다는 정부 결정을 사후 추인하는 정도에 그쳤다. 심지어 2013년에는 지방재정부담심의위원회에서 영유아 무상보육에 따른 국고보조율을 상향조정하도록 결정했지만 정부가 이를 무시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이낙연 국무총리가 직접 회의를 주재하는 등 실질적인 조정자 구실을 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분위기다.
공론화가 본격적으로 이뤄지진 않았지만 폭발력이 매우 큰 쟁점은 지방교육재정과 지방재정을 통합하는 문제다. 기재부에선 예전부터 원칙적으로 지방재정과 지방교육재정을 통합해야 한다는 기류가 강하다. 지방교육재정 자체가 지자체 지원금에 의존하는 등 지방재정과 지방교육재정을 굳이 칸막이를 둘 이유가 없다는 고민 때문이다. 한 기재부 관계자는 “당장 뭔가 결론을 내기엔 현실적인 벽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걸 잘 안다”면서도 “단순히 효율성 차원 뿐 아니라 지방자치에 대한 고민과도 연관되는 중요한 중장기과제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부처 간 재정분권 논의를 이끄는 지방발전위원회 관계자는 “진통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국민 여망에 부응하기 위해 최선의 논의를 이어 가고 있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