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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뒷얘기

장관의 자격, 인사청문회의 품격

by betulo 2017. 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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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은 약점을 잡아보겠다는 생각으로 폭로성 의혹을 던지고 여당은 후보자를 감싸거나 정치적 이슈에 대한 논쟁과 설전을 벌인다. 인사청문회가 인격파괴, 사생활 캐내기, 흠집내기로 전락했다.”

“인사권자가 ‘도덕성에 다소 흠결이 있더라도 일만 잘하면 된다’는 발상을 갖는다면 공직사회에 대한 국민적 불신은 회복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될 것이다.”

 얼핏 보면 첫번째 발언은 여당을 옹호하는 발언같고 두번째 발언은 야당을 편드는 것 같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첫번째는 박근혜 정부 첫해 후보자들이 줄줄이 낙마하던 2013년 2월 보수 시민단체인 바른사회시민회의가 낸 보고서에 등장하는 발언이다. 두번째는 2014년 8월 새누리당 인사청문제도 개혁TF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참여연대 관계자가 도덕성 검증을 비공개로 하는 운영 개선을 하자는 의견을 비판하면서 나온 경고였다.


또다시 인사청문회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인사청문회 제도가 생길 때부터 계속된 각종 논란은 이제 정권이 두 번 바뀌면서 이제 인사청문회 자체에 대한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인사청문회는 대통령중심제의 산물이다. 미국은 대통령과 상원 가운데 누구에게 연방정부 공직자 임명권을 부여할 것인지 논쟁을 벌인 끝에 대통령이 지명하고 상원이 인준하는 절충안을 택했다. 한국에서 인사청문회가 처음 도입된 것은 2000년이었다. 인사청문회법 제정 당시만 해도 헌법상 국회의 임명동의가 필요한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 국무총리, 감사원장, 대법관, 국회에서 선출하는 헌법재판관, 중앙선거관리위원만 대상이었다. 이후 인사청문회 대상자는 꾸준히 확대되었다. 2003년에는 국무총리와 국가정보원장, 국세청장, 검찰총장, 경찰청장이 추가되었다. 2005년에는 국무위원도 대상이 됐다.


 인사청문회 경험이 쌓이면서 제도에 대한 비판 목소리도 커졌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보고서에서 인사청문제도의 문제점으로 지나치게 짧은 인사청문기간 자료 미제출 및 증인 불출석 후보자의 허위진술 도덕성 검증에 치중한 청문회 당파적인 질의 문제를 거론했다. 최신 자료같지만 사실 2010년에 나온 보고서에 등장하는 내용이다(여기). 당시 보고서는 도덕성 검증 등 과거 행정을 확인하는 예비심사를 실시한 뒤 자질과 정책수행능력을 검증하는 2차 청문회를 하자는 대안을 제시했다. 대신 인사청문 기간을 확대하고, 자료제출 의무를 강화하고 허위진술을 처벌하는 규정을 두자는 것이다.


 인사청문회 제도를 도입하고 확대했던 여당이 야당이 되었다. 각종 도덕성 시비를 일으켜 몇 명을 낙마시키는 ‘성과’를 거뒀던 야당은 여당이 된 뒤 자신들이 10년 동안 낙마시킨 후보보다도 훨씬 많은 후보가 줄줄이 낙마하는 사태를 겪었다. 인사청문회제도를 개혁해야 한다는 의견이 커졌지만 정권재창출 가능성에 대한 위기감이 커지면서 흐지부지됐다. 그리고 여당이 다시 여당이 되면서 이전보다 더 큰 낙마 사태로 정권 초기 동력까지 잃을 지경이 됐다.


 여당은 이제 야당이 됐다. 공수가 바뀌었다. 방식은 더 독해졌다. 정책검증은 사라졌다. 뭔가 제도변화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커지고 있다. 20대 국회 들어 발의된 인사청문회법 개정안만 14개나 됐다. 특히 안경환 법무부장관 후보자 낙마는 특히 ‘과도한 신상털기’ 논란을 일으키면서 새롭게 인사청문제도 개혁 논의에 불을 붙였다. 



 장덕진(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은 최근 분위기를 “주변에 (장관 되고 싶은) 마음을 접은 분들이 굉장히 많다”는 말로 표현했다. 그는 “한자리 해보고 싶은 욕심이 강한 분들은 그래도 욕심을 내지만 전문분야를 살려서 정책을 펴보고 싶어하던 분들은 대부분 마음을 접어버렸다”면서 “결국 지금 인사청문회 제도는 정말로 능력있는 분들은 배제하고 자리욕심 많은 분들만 남기는 방식이 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김성해(대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인사청문회를 하는 본질이 한결 흠이 없는 사람을 뽑는지 아니면 일을 제대로 할 사람을 뽑는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지금 인사청문회는 일종의 미인대회처럼 돼 버렸다. 문제는, 보기에 아름답고 흠이 없는 사람을 뽑은들 그런 사람이 장관으로서 일을 잘하겠느냐는 것”이라면서 “지금 인사청문회는 후손들에게 ‘규칙만 지켜라’라고 요구하는 것이 돼 버린다. 인사청문회가 후손들에게 범생이를 요구하는 자리가 되는 것이 국가적으로 옳은 것인가”라고 질문했다. 


 장관은 정치인인가 행정관료인가

 문제는 도덕성이 인사청문회 통과의 주요 기준이 되면 장관 인재풀이 관료 중심으로 좁아질 우려가 크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공무원집단만큼 전문성, 중립성, 객관성에 부합하는 직업군이 없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장관은 정치가인가 관료인가라는 논쟁과 직결된다. 막스 베버는 이에 대해 꽤 명확한 화두를 던진 적이 있다. 


“관료의 명예는 그가 보기에 잘못된 명령을 상급자가 고수할 경우, 그를 마치 자기의 신념과 일치하는 듯이 정확히 수행하는 능력에서 나온다. 이에 반해 정치가의 명예는 자신의 행위에 전적으로 스스로 책임진다는 것에서 나온다.”


 베버에 따른다면 장관은 관료가 아니라 정치가이다. 잘못된 행정으로 인한 책임은 정치가인 장관이 질 수밖에 없다. 통치이념을 공유하는 대통령·총리·장관들로 이뤄진 내각이 국민들 앞에 ‘정치적’ 책임을 지는 셈이다. 김상조는 공정거래위원장 취임사에서 이를 잘 표현했다. 


“저를 믿고 여러분께서는 적극적으로 판단하고 일관되게 실행하십시오. 그다음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여러분들이 하신 일에 책임을 지는 것이 제 역할임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장관의 본질이 정치가라는 점, 김상조 취임사가 그걸 잘 표현했다는 언급은 시사IN 510호에 실린 '코드인사가 답이다'에 크게 빚지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그럼 장관은 도덕적 흠결이 있어도 상관없다는 것이냐’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실제 많은 공무원들이 일부 장관 후보자들의 ‘도덕적 흠결’에 거부감을 보인다. 여기에는 자기관리에 대한 자부심도 자리잡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국장급 D씨가 “공무원들은 승진할 때 음주운전 등 각종 전력을 굉장히 빡빡하게 보는데 장관 후보자들은 대충 보고 넘어가는 것 같아 억울한 측면이 있다”면서 “공무원 출신 장관들은 비교적 관리를 많이 하니까 신상털기에서 털릴 게 별로 없기도 한 것”이라고 말한 것이 이런 인식을 잘 보여준다.


 정치학 박사인 박상훈(정치발전소 학교장)은 이 문제에 대해 한국이 일종의 전환기에 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그는 “정치는 도덕적으로 살기 위한 조건을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 정치적이되 도덕적으로 바꿔나가는 쪽으로 가야 한다”면서 “솔직히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제시했던 5대 기준은 지금 당장 실현하기엔 무리라고 본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종의 과도기를 설정해서 5대 기준을 점진적으로 적용하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면서 “여당일 때 다르고 야당일 때 다르고, 누구는 통과하고 누구는 낙마하면 공직사회와 국민들이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고민은 장관의 역할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것으로 이어진다. 박상훈은 “장관은 정치인으로서 ‘권력을 해석’하는 자리”라면서 “당연히 장관은 선출직에서 나오는게 민주주의 원칙에 부합한다”고 말했다. 장 덕진은 “장관이 정권과 임기를 함께 하고 국정철학을 공유하면서 가는 책임장관제가 절실하다”면서 “임기 1년도 안되는 장관으로는 공무원조직을 통솔하지 못하고 결국 청와대만 비대해지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고 밝혔다. 그는 “유럽처럼 정무적 역할과 행정적 역할을 하는 차관을 별도로 둬서 장관을 보좌하게 하는 방식도 검토해볼만 하다”고 덧붙였다.


 많은 공무원이 인사청문회를 보면서 느끼는 ‘자괴감’은 “하급직 공무원은 무단횡단만 해도 징계받는데...”였다. 이에 대해서도 이제는 접근법 자체를 달리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성해는 “애초에 공무원들에게 그런 요구를 하는 관행 자체가 문제라고 본다”면서 “우리 사회가 공무원에게 정말로 요구해야 할 것이 ‘착하게 살자’밖에 없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장덕진은 “10년 20년 전 얘기를 가지고 따지는건 도덕적 비난은 모르겠지만 장관직 수행을 못할만큼 중대한 문제인지 별도로 논의를 해야 한다”면서 “한국같은 수출경제에서 후보자가 외제차를 탄다고 혼나고 사과하는게 제대로 된 모습인지 따져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인사청문회를 통해 후보자의 부동산투기나 전관예우, 음주운전, 위장전입, 논문표절 등 각종 의혹이 쏟아지고 해명이 이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들을 상관으로 모셔야 하는 공무원들은 어떤 마음이 들까. 인사청문회를 바라보는 공무원들의 각기 다른 속내를 들어봤다.


하급직은 징계, 장관은 면죄부? 

 행정자치부 간부급 공무원 B씨는 인사청문회를 지켜보면서 “솔직히 존경심이 생기지 않는다”고 표현했다. 그는 “공무원은 음주운전 한 번만 걸려도 승진에서 배제되거나 불이익을 받는다”면서 “음주운전은 물론이고 위장전입, 논문표절, 부동산투기, 탈세 등을 해도 관행이라고 넘어가니 저들을 상사로 모셔야 하는게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고 꼬집는다. 경제부처에서 일하는 한 하급직 공무원 B씨 역시 “빽도 없고 능력도 없는 하위직은 법대로 징계하고, 실력도 있고 권력자와 연줄이 있는 사람은 그냥 넘어간다는 건 ‘무전유죄 유전무죄’와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많은 공무원이 도덕성이야말로 장관으로서 권위를 보장한다는 의견을 보인다. 국민권익위원회 사무관 D씨는 “장관이든 일선 공무원이든 똑같이 공직을 수행한다. 도덕적 잣대는 단일하고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면서 “도덕적으로 한참 떨어지는 사람이 온다면 어떻게 믿고 따르겠느냐”고 강조한다. 해수부 과장 E씨는 “도덕성 검증 때문에 업무공백이 지나치게 길어지는 현실적인 문제는 있지만 사회가 투명해지는 만큼 지도자의 자질은 국민의 눈높이를 맞출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경제부처 국장급 공무원 C씨는 “일부에선 ‘예전 정권 후보들은 더 심했는데 이 정도면 양반’이라고 하지만 지금은 1970년대 장관을 뽑는 게 아니라 2010년대 장관을 뽑는 것 아니냐”면서 “과거보다는 모든 지표가 향상되고 좋아졌는데 그 당시 관행이어서 봐주는 식으로 간다는 건 맞지 않은 시각”이라고 말했다.


 일부 장관 후보자들은 이런 시각을 강화시키는 명백한 근거로 작용한다. 경제부처 공무원 D씨는 송영무 국방부 장관 후보자를 직접 거론하며 “공무원 기준에서는 절대 돼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며 “한 두번의 실수가 아닌 자기 관리가 너무 안 돼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B씨 역시 “장관이 없어 업무공백이 생기는 건 문제지만 그래도 깜냥 안되는 사람이 장관 되는 게 더 큰 문제 아니겠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신상털기는 이제 그만

 반론을 제기하는 공무원들도 많다. 한국이 엄청나게 압축성장을 했다는 걸 감안하지 않고 지금 잣대로 모든 걸 평가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있었다. 중앙부처 서기관 E씨는 “음주운전이 잘했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50대 이상은 젊은 시절 음주운전이 비윤리적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게 당시 우리나라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신상털기해서 장관을 시킬 거라면 아예 산골짜기에서 도 닦는 종교인을 수장으로 앉히라는 말이냐”고 꼬집었다. 그는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공직자가 수장에 앉는 건 물론 문제가 있다”면서도 “그렇지만 정부부처를 이끌고 정책을 펼치기 위해서는 고고한 딸깍발이가 아니라 명민한 개혁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과거 장관 인사청문회 준비팀에서 근무했던 경제부처 사무관 F씨는 현행 인사청문회 제도가 젊은 공무원들에게 주는 폐해를 잘 지적한다. 그는 “절대 장관이 되고 싶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처음 공직에 들어설 때만 해도 언제가 장·차관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었다. 하지만 청문회 기간 내내 장관 후보자의 사생활이 탈탈 털리는 것을 보고선 마음을 바꿨다. 그는 “본인의 비위나 재산에 대한 문제 제기는 합당하다. 하지만 배우자나 자녀, 장인·장모에 대한 검증은 왜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가족이 장관을 하겠다는 게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사실 인사청문회가 지나치게 ‘신상털기’로 가는 건 문제 아니냐는 대목에선 장관에게도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요구해야 한다고 보는 이들도 대체로 동의한다. B씨조차도 “수십년도 더 된 위장전입까지 게거품 물고 달려드는 행태는 한심하다”면서 “오직 낙마만을 위해 시덥잖은 신상털기하는 건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부처 국장급 공무원 G씨는 “그 당시 통념대로 살았을 걸 가지고 마녀사냥하기보다는 근대화된 정치 경험이 짧은 근본 문제도 감안해야 한다”면서 “여야간 인사청문 대상자에 대한 대합의가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국방부 공무원 H씨는 검증에 관한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송 후보자가 최근 대형 로펌에서 일한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면서도 “20년 전 음주운전, 논문표절 등이 지금 장관직 수행에 영향을 주는 건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산업부 과장급 공무원 H씨는 상황을 감안해 면죄부를 줄 건 주자는 현실론을 주장했다. 그는 개인의견을 전제로 “47살을 기준으로 위 세대는 당시 월급이 적다보니 공무원, 교수, 경찰 등 할 것 없이 부동산 투기했고, 강남에 없던 특목고에 8학군이 생겨 위장전입이 생기게 된 것 같다”며 “도덕적 잣대를 엄격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사청문회는 신상털기보다 능력에 대한 검증에 좀 더 초점을 맞추면 좋겠다”고 말했다.

 

청문회 준비팀은 출세팀?

 인사청문회 제도운영에 대한 찬반과 별개로 청문회 준비팀에 대해서는 양면적인 반응이 나왔다. 청와대에서 장관 후보자를 발표하면 해당 부처는 국회를 맡는 기획조정실장, 후보자의 재산을 살피는 감사관, 언론 관련 업무를 책임질 대변인, 후보자의 인적사항들을 챙기는 운영지원과장 등으로 준비팀을 구성한다. 준비팀이 대체로 장관 재임 기간 동안 승승장구한다며 부러워하는 측면과 함께, 고생은 엄청나게 하는데 후보자가 낙마하거나 청문회에서 고생하면 불똥이 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국무총리실 사무관 I씨는 “인사청문회 준비팀에 합류하는 직원들은 대체로 총리실에서 인정받는 인재들”이라면서 “총리에게 잘보여 잘나간다기보다는 어차피 그만한 능력이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최소 한 달 정도는 집에도 못들어갈 정도로 일이 힘들다. 후보자 입장에선 당연히 고생을 함께 한 동지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개고생하기 싫은 사람과 그래도 뭔가 ‘도약’해보고 싶은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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