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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생각/보건복지분야

"저출산은 인권문제" 노무현 대통령 한 마디가 인구정책 바꿨다

by betulo 2013. 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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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대책, 1960년대 산아제한에서 2000년대 새로마지까지


 예비군훈련장에서 정관수술을 무료로 해주던 시절이 있었다. 전두환 정권 시절 시행된 이 정책은 박정희 정권이 주력했던 산아제한을 좀 더 강력하게 시행하기 위한 ’49개 시책’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1984년 합계출산율이 1.76으로, 1986년에는 1.58까지 떨어졌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1980년대 필요한 건 ‘무상 정관수술’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정부는 ‘지금 산아제한 정책을 폐기하면 기껏 낮춘 출산율이 다시 반등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에 1996년까지도 산아제한 정책을 계속했다. 


 정책전환을 위한 적절한 시점을 놓친 댓가는 컸다.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이 사회에 쏟아지면서 여성취업률이 급증하고 여권신장과 보육부담이 맞물리면서 합계출산율은 2005년 1.08까지 낮아졌다. 1960년만 해도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전체 인구 중에서 2.9% 뿐이었지만 2000년 7.1%가 되면서 고령화사회에 진입했다. 2017년에는 고령 사회(노인인구 비중 14%), 2026년에는 초고령사회(노인인구 비중 20%)에 진입한다. 


출산억제기→ 인구자질향상 정착기→ 저출산정책 시행기


 학자들은 산아제한정책이 처음 나온 1962년부터 1996년을 ‘출산억제 정책기’로 부른다. 1997년에서 2004년은 ‘인구자질향상 정착기’로 일종의 과도기였다. 인구증가 억제 과정에서 급증한 여아낙태로 인한 성비불균형을 해소하고, 출산에 대한 자기결정권과 건강증진에 주력했다. 2000년대 들어 출산율 문제가 심각해지고 인구감소와 고령화에 따른 국민연금 고갈논란까지 겹치면서 저출산문제가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2005년에 인구정책은 산아제한에서 출산율 높이기로 근본적인 전환을 이룩한 해라고 할 수 있다. 2005년 5월 청와대 주도로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9월 법 시행과 함께 대통령 소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출범했고 이를 지원하기 위해 보건복지부에 저출산고령사회본부가 발족했다. 복지부와 다른 부처, 민간인사 등으로 구성된 50명이 넘는 대규모였다. 지금도 복지부에 남아잇는 출산정책과와 고령사회정책과 모두 당시 처음 생겼다. 


 노무현 정부는 2004년부터 대통령 자문기구로 ‘고령화 및 미래위원회’를 만들고 총리실에 저출산 대책반(TF)을 구성하는 등 저출산 대책마련에 나섰지만 진통과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2005년 노 전 대통령 주재로 저출산 대책마련을 위한 회의를 할 당시 주요 장관들조차 돈만 많이 들고 출산율은 오르지 않을 것이라며 반대가 심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이 ‘출산율 수치에 연연하지 말자. 결혼을 안하고 애를 안낳는 건 인간 기본권 문제인데 그 원인을 치료해줘야지 결과만 보면 안된다’고 못박으면서 저출산대책이 빛을 볼 수 있었다. 


 정부와 집권당이 얼마나 강한 의지를 갖느냐에 따라 저출산 대책은 부침을 거듭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인 2008년 대통령 소속에서 복지부 장관 소속으로 격하됐다. 위원회는 모두 터부시하는 분위기에 휩쓸린 때문이었다. 다행히 2011년 11월 재차 법개정이 되면서 위원회는 2012년 5월에 다시 대통령 소속으로 격상됐다. 하지만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운영지원단에 따르면 올해 1월 대통령이 참석하는 회의는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박근혜, 취임 1년 되도록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참석 안해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 제정 이후 저출산 대책은 범정부 차원에서 주력사업으로 자리잡았다. 정부는 2006년에 범정부 종합대책인 ‘2006~2010 제1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이른바 새로마지플랜을 발표했다. 5년간 42조원을 투입하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이 가운데 20조원 가까운 재정을 저출산 문제에 배정했다. 2010년 나온 제2차 기본계획은 전체 투자규모는 76조원이었고 저출산 대책 계획은 40조원으로 늘렸다. 일·가정 양립 일상화, 결혼·출산·양육부담 경감, 아동청소년의 건전한 성장환경 조성 등 3대 핵심 과제로 설정했으며 올해 예산만 해도 각 과제별로 7000억원, 13조원, 6000억원 등 14조4000억원에 이른다. 지난해보다 3조 4000억원 늘어난 규모다.  


 저출산 관련 예산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올해 정부는 공약가계부를 발표하면서 저출산 대책 관련 재정 규모를 2017년까지 20조원 가까이 더 늘릴 것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무상보육과 유아교육 확대에 약 12조원, 행복한 임신과 출산 장려에 약 4조 4000억원, 안심하고 양육할 수 있는 여건조성에 약 3조 5000억원이다. 하지만 선진국에 비해 최대 4배나 적은 저출산 관련 재정규모를 비롯해 정책목표에 제대로 부합하지 않는 예산 항목 등 다양한 과제가 산적해 있다. 


 지난해 한국은 합계출산율 1.30을 기록했다. 2005년 1.08까지 떨어졌던 것에 비하면 다소 상황이 좋아지긴 했지만 인구감소와 초고령사회를 피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게 냉정한 현실이다. 이에 비해 저출산 극복을 위한 정책은 여전히 미흡하다. 단적인 예가 GDP 대비 저출산 분야 지출규모다. 2009년 기준으로 한국은 1.01%에 불과한 반면 저출산 극복에 성공한 프랑스는 3.98%, 스웨덴은 3.75% 수준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단순하게 말하면 출산율이 인구유지 수준인 2.1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최소 4배 가량 더 많은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만 해도 만만치 않은 과제다. 


예산 절대액 증가와 효과성 증진 같이 가야

 절대액 증가보다도 더 중요한 문제는 얼마나 효과적으로 적재적소에 재정을 집행하느냐에 달려있다. 이 부분에서는 적잖은 비판에 직면해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무상보육을 둘러싼 비생산적인 논란을 들 수 있다. 저출산 원인으로 지목되는 육아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보육정책이 필수다. 영유아보육료지원은 이를 위해 매우 중요한 정책이지만 현실을 무시한 국고보조체계로 인한 지방비 부담이 가중되면서 지속가능성까지 위협받는 실정이다. 


 영유아보육료지원은 저출산 대책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 가까이 된다. 2005년 3349억원이었지만 2011년에는 2조원을 돌파하며 6배 이상 증가했다. 문제는 보육료 지원은 매년 늘면서 매칭사업(국고보조율 서울 10~30%, 지방 40~60%)을 해야 하는 지방 부담이 급증한다는 점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지자체와 정부 사이에 국고보조율을 둘러싼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국회는 지난해 국고보조율을 일괄해서 20% 포인트 높이기로 여야 합의까지 이뤘지만 기획재정부는 이를 무시하고 10% 포인트만 인상해줄 수 있다는 입장이다. 


 보육료 지원정책에도 불구하고 부모들이 실제 부담하는 비용은 생각만큼 줄지 않는다는 것도 정책효과를 떨어뜨린다. 전체 보육시설의 95% 가량을 차지하는 민간중심 보육시설 체제로 인해 보육료를 전액 지원해도 특별활동비 등 기타 필요경비가 늘어나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셋째아이 장학금 지원처럼 효과도 불분명하고 소득분배를 왜곡시키는 정책도 있다. 셋째아이 이상 대학생에게 등록금을 지원한다는 취지로 교육부는 올해에 이어 내년도 예산안에도 1225억원을 편성했다. 하지만 사업수혜자가 40~50대로 직접적인 출산율 증가 효과도 없는데다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자녀 수가 많아지는 현실을 감안하면 고소득층이 더 많은 혜택을 받는다는 논란을 피할 수 없다. 


 이삼식 보건사회연구원 인구정책연구본부장은 “저출산문제 극복을 위해서는 아동수당 도입 등 훨씬 더 적극적인 재정정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많이 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잘 쓰는 것”이라며 예산증가와 예산효과를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면서 “저소득층에게는 소득보전, 중산층에게는 일·가정 양립 지원을 위한 육아휴직, 보육시설 등 서비스 확대 등. 국공립 보육시설 대폭 확대 등 맞춤형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저출산 정책은 단순한 출산율 올리기가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위한 복지정책이라는 틀 속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이를 갖고 싶은 사람은 걱정없이 낳아서 기를 수 있도록 하자. 이 또한 인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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