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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뒷얘기/파병반대운동

협상도 못해본 정부 믿어야 하나 (2004.6.25)

by 자작나무숲 2007. 3. 13.
협상도 못해본 정부 믿어야 하나
[파병반대] 저항세력에 “파병불변” 맞서 불지펴
2004/6/25
강국진 globalngo@ngotimes.net

김선일씨 피살사건을 둘러싼 의혹이 꼬리를 물고 있다. 설령 의혹을 모두 부인하더라도 NSC와 외교부 등이 이번 사건에 대처한 방식은 정부의 위기관리능력과 정보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시민사회와 정치권에서 청문회 개최 주장이 제기되는 것도 이런 사정을 반영한다.

 

의혹의 뿌리는 정부가 과연 피랍사실을 몰랐느냐는 데 있다. 이는 곧 피랍사실을 일부러 숨긴 게 아니냐는 의혹으로 이어진다. 정말 몰랐다고 하더라도 정부는 ‘중상’을 받게 되지만 일부러 숨겼을 경우 ‘치명상’을 넘어 정권의 존립근거 자체가 무너질 수도 있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을 불러올 수 있다.

 

피랍사실을 21일 알았다는 정부 발표를 믿는다 해도 이후 정부가 보여준 태도는 “정부가 김선일씨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비난을 들을 정도로 최악이었다는 게 시민사회의 일반적인 평가다.

 

김선일씨 피랍, 몰랐나 숨겼나

 

바그다드 AP텔레비전 뉴스(APTN) 사무소가 지난 6월 3일 김선일씨의 모습이 담긴 비디오 테이프를 입수하고 나서 외교부에 사실 여부를 문의했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파문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AP측은 24일 보도에서 “김씨의 신원을 한국 외교부측에 문의했지만 외교부는 한국인 피랍 보고를 받지 못했다고 답변했다”고 밝혔다.

 

지난 22일 KBS는 “주 카타르 한국대사관은 이미 지난 2일 김씨의 피랍사실을 공식확인했다”고 주장하는 인터뷰기사를 내보냈고 외교부는 이를 부인했다. 정부는 일관되게 21일 피랍사실을 처음 알았다고 얘기했다.

 

AP와 KBS의 보도가 사실이라면 이는 정부가 추가파병을 강행하기 위해 김선일씨 피랍사실을 고의로 은폐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사안이다.

 

정부가 김선일씨 피랍사실을 몰랐다고 해도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은 두고두고 도마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지난 4월8일 한국인 7명이 이라크 무장세력에 억류되었다 풀려난 사건이 벌어졌을 때도 “교민안전을 위해 일일점검체제를 더욱 강화하고 이라크 외교부와 연합군임시행정처와 유사시 신속하고 긴밀히 협력하는 체제를 구축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정부가 21일 피랍사실을 처음 알았다는 건 피랍 이후 3주 가까이 교민안전을 전혀 점검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교민안전대책이 ‘눈가리고 아웅하기’였던 셈이다.

 

김 사장도 하는 직접교섭, 정부는 왜 못했나?


김천호 가나무역 사장은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10일께 무장세력에 억류중인 사실을 알고 현지직원과 이라크 변호사를 보내 두 번 정도 석방교섭을 했고 현지직원을 보내 무장세력 간부를 중재자로 해서 여러번 협상을 했다”고 밝혔다. 김선일씨를 납치한 무장세력과 협상하는 것이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김선일씨 피살 직후 “단 한차례도 직접협상을 하지 못했다”면서 “이라크 무장세력의 실체를 파악하기 어려웠으며 이들과 직접교섭하는게 불가능했다”고 밝혔다.

 

22일 NSC와 외교부 등은 대통령에게 “현지 언론보도와 현지공관들과 연락을 취해본 결과 희망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다”고 보고했다. 그 때는 김선일씨가 이미 피살된 뒤였다. 한 나라의 최고급 정보가 모이는 부서가 내놓은 정세분석은 심각한 오류와 정보부재, 안일한 기대에 불과했던 셈이다.

 

게다가 정부가 현지대책반을 파견했을 때 정작 바그다드 대사관에서는 아랍어 전문 외교관이 없어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현지 공관은 중재 접촉선을 확보하는데 24시간이라는 요구시한을 다 허비했다.

 

정부가 김씨를 사지로 내몰아


영화 네고시에이터(미국,1998)를 보면 주인공이 동료에게 인질범과 협상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을 설명하는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은 “절대로 부정적인 단어를 쓰지 말라”고 말한다. “안된다 못한다는 말을 하지 마라.” 이에 비춰보면 김선일씨 납치사건을 다루는 한국정부는 ‘최악의 협상팀’이란 평가를 받기에 손색이 없을 것 같다.

 

김선일씨 피랍사실이 알려지고 정부가 맨 처음 보인 반응은 “파병원칙은 변함없다”였다. 김선일씨를 납치한 이라크 저항단체가 내건 요구조건이 이라크추가파병중단이었다. 이라크 저항단체 입장에서는 정부가 사실상 인질협상을 거부했다고 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정부 관계자들이 아랍계 위성방송 알자지라 등에 출연해 “한국군 파병은 이라크 평화재건을 위한 것”이라고 강변한 것도 이라크 저항세력의 마음을 돌려놓진 못했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사건 일지>(한국시간)


김선일씨가 피랍된 것은 5월31일 11시경이었다. 6월 첫주 김선일씨 모습이 담긴 비디오 테이프를 입수한 APTN은 지난 3일 외교부에 김씨 신원과 비디오 내용 사실여부 문의했지만 외교부는 한국인 피랍 보고를 받지 못했다고 답변했다.

 

김선일씨 행방이 묘연하자 김천호 가나무역 사장은 자체적으로 조사에 착수했다. 현지 직원을 팔루자 지역에 보내 탐문하는 과정에서 10일께 무장세력에 억류중이라는 것을 알게 된 김 사장은 이라크 변호사와 현지 직원을 이용해 인질협상을 시작했다.

 

21일 4시경 알자지라 방송은 김씨 피랍 사실을 최초로 보도했다. 정부는 곧바로 심야대책회의를 열고 긴급대책반을 가동했다. 최영진 외교부차관은 10시 브리핑에서 “파병원칙은 변함없다”고 발표했다.

 

파병반대국민행동은 그날 낮 1시 김선일씨 피납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으며 저녁 7시 김선일씨 무사귀환 염원 촛불집회를 개최했다.

 

22일 밤 10시20분경, 이라크 주둔 미군이 김선일씨의 시신을 바그다드에서 팔루자 방향 35km지점에서 발견했다. 미군 군의관은 그날 아침 8-9시를 사망시간으로 추정했다. 밤 11시 주이라크대사관은 한국본부에 시신확인을 보고했으며 23일 새벽 2시 외교부는 김씨 피살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9시 30분 담화를 발표했다.

 

23일 여야 국회의원 50명은 추가파병중단․재검토결의안을 11시30분에 제출했다. 파병반대국민행동은 저녁 7시 김선일씨 추모 촛불집회를 개최했다. 파병반대국민행동은 26일과 30일에도 대규모 촛불집회를 열겠다고 밝혔다.

 

24일 AP는 6월 첫째주 김선일씨 비디오를 입수해 외교부에 문의한 적이 있다고 발표했다. 외교부는 즉각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했고 AP측은 외교부에 문의한 날짜가 3일이었다고 말했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2004년 6월 25일 오전 6시 53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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