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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뒷얘기

일제강점기 생각나게 하는 터키와 쿠르드

by 자작나무숲 2010. 3. 29.
“터키 남부 한 식당에서 아랍어로 대화하던 아랍계 터키인 손님들이 집단구타를 당한 적이 있습니다. 이들이 쿠르드어로 떠든다는게 이유였습니다. 일제시대 우리 조상들이 당했던 일들을 지금 터키에서 쿠르드인들이 겪고 있습니다.”

 터키 동부 디야르바키르에서 6년째 쿠르드인 거주지역에서 활동하다 19일 임시 귀국한 한상진(44)씨. 지난 2003년 이라크 파병 논란 당시부터 현지에서 평화운동에 매진해온 그는 2004년 이라크 입국이 금지되자 터키 접경지역에서 이라크에 들어갈 기회를 노리기로 했다. 하지만 이내 쿠르드의 매력에 빠져 눌러앉았다.

 쿠르드는 독자적인 국가를 갖지 못한 세계 최대 규모의 소수민족이다. 터키, 시리아, 이라크, 이란 등 4개국에 걸쳐 인구가 3000만명에 이르고 그 중 터키 동부와 남부에 1500만명 가량이 거주한다.

한씨는 터키와 쿠르드의 관계에 대해 대뜸 “터키 전체 상황은 80년대 군사독재 시절과 비슷하다.”면서 “거기에 일제 강점기 시절을 덧붙여 놓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터키 정부는 쿠르드 문화를 말살하고 언어사용을 금지했지만 유럽연합 가입을 위해 최근엔 언어사용을 일부 허용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의 ‘문화통치’가 생각난다.”고 꼬집기도 했다.

한씨는 1980년대 후반 터키군 손에 죽은 쿠르드인이 4만여명에 달한다는 사실을 일러줬다.

“친구가 직접 경험한 걸 듣기로는, 디야르바크르 주의 한 도시인 리제에선 80년대 후반, 마을 주민 전체를 군인들이 도시 공터로 불러내서 포위한 상태에서 며칠을 밖에서 풍찬노숙을 해야 했습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빠져나와서 유럽에 있는 친척에게 전화를 해서 살려달라고 했다고 해요. 겨우 겨우 유럽 좌파단체에 연락이 닿아서 독일의 좌파정당에 연락했고, 부랴부랴 대표단을 리제 현지에 보내고 유럽 의회 차원에서 학살을 막도록 한 적이 있었습니다.”

리제는 쿠르드노동자당(PKK) 지도자이고 지금은 감옥에 수감된 오잘란이 처음 봉기를 시작했고 PKK를 처음 조직했던 도시다. 한씨는 지금도 리제는 오래된 집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당시에 거의 모든 건물이 파괴됐다고 전했다.

쿠르드 실종자 가족들이 결성한 '토요어머니회' 회원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


한씨는 “국가주의와 군사주의 성향이 강한 터키 교육 제도가 쿠르드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강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과거 나치 정권이 유대인과 프리메이슨, 집시를 희생양 삼았듯 터키 교육은 쿠르드를 희생양 삼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몇 해 전 터키에서 한국인 관광가이드가 쿠르디스탄(쿠르드인들의 땅)이라는 말을 썼다가 동료 터키인 가이드한테 그자리에서 폭행을 당한 일이 있다.”며 쿠르드에 대한 터키인들의 과민반응을 소개하기도 했다.

“터키 서부 한 호텔에서 일하는 쿠르드 친구가 있는데 이 친구는 영어를 아주 잘합니다. 호텔에 묵던 한 터키 상류층 인사한테 초대를 받았는데 쿠르드 출신이란 걸 알게 되자 대뜸 ‘쿠르드 사람이 어떻게 포크와 나이프를 쓸 줄 아느냐, 쿠르드 사람이 어떻게 영어를 할 줄 아느냐.’고 물어 보더랍니다. 그 이후로는 얼굴을 마주쳐도 그 친구를 철저히 외면했답니다.” 

그는 특히 “터키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의 3분의 1을 군부가 추천한다.”면서 터키 사회 깊숙이 뿌리내린 군부 영향력을 경계했다. 최근 잇따라 터져나오는 쿠데타 기도 사건에 대해서도 “전직 군수뇌부가 퇴임할 때 현직 군수뇌부를 낙점하는 터키 군부의 특성상 전직 군수뇌부가 연루됐다면 현 수뇌부도 연루됐다고 봐야 정상이지만 정부는 현 수뇌부는 처음부터 조사대상에 제외했을 정도로 군부의 힘이 막강하다.”고 귀띔했다.

 터키 정치에 직접 연계된 활동을 하면 추방당할 수 있다. 한씨가 선택한 방법은 쿠르드어 보호활동을 매개로 국제사회에 쿠르드의 현실을 알리는 것. 한씨는 수준급 쿠르드어 실력을 자랑한다. 유럽 평화단체들과 연대한 인권탄압 감시활동도 사안이 생길 때마다 적극 참여한다.

 한씨는 향후 계획에 대해서는 “터키는 워낙 인플레이션이 심하다 보니 경제적 어려움이 만만찮다.”면서 “나뿐만 아니라 제대로 일하는 후배 평화운동가들이 금전적 어려움 때문에 활동을 접는 일이 없도록 기금을 만들고 싶다.”는 희망을 내비쳤다.

이슬람 이전 쿠르드인들의 전통종교가 예지드인데 조로아스터교가 이 예지드에서 갈라져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쿠르드인들은 불을 신성하게 생각한다. 최대 명절인 춘분을 기념하는 축제에서도 신성한 불길이 타오르고 있다

댓글1

  • 대한민국KOREA 2021.03.09 10:14

    말 다했습니다. 중동에서 유일하게 일제강점기와 같은 상황을 겪고 있는 민족이 쿠르드족입니다. 터키와의 우호도 중요하겠지만, 쿠르드와 역사적 동병상련을 겪는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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