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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6 07:00

메멘토 모리, 원폭2세 환우 김형율 혹은 김형률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는 라틴어라고 한다.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외치며 짧은 생을 치열하게 살았던 김형율 혹은 김형률. 그가 죽은지 5월 29일로 9주기가 된다.

기자 초년 시절 기자회견장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인터뷰 기사를 쓰라는 선배 지시에 따라 나는 그와 인터뷰 약속을 잡았다. 약속은 몇차례 연기됐다. 그가 과로로 병원에 입원했기 때문이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기차를 타고 왕복하는 것조차 그에게는 병원신세를 져야 할만한 '과로'였다.

깡마른 체구와 삶을 향한 열정. 형형한 눈빛으로 그는 내 기억에 남았다. 2년 후 그의 사망 소식을 대구 지역단체 분한테 들었다. 그리고 나서 다시 3년이 흘렀다. 원폭피해자 진상규명에 관한 법은 국회에서 먼지만 뒤집어쓰다가 자동폐기되는 와중에 올해도 어김없이 그의 기일이 다가온다.

우리는 그를 기억해야 한다. 한일 양국 정부를 향해 원폭피해자 문제를 외쳤던, 그리고 그 중 일부는 원폭2세 환우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1세대는 그의 밭은 기침소리를 기억해야 한다.

원폭 문제는 먼나라 얘기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를 기억해야 한다. 나가사키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 70만명 중 7만명이 재일조선인이었다. 그는 그들 중 한명의 아들이었다.

원폭피해자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외침에 귀를 막고 있는 전현직 국회의원들과 일부 정부관료들은 그의 커다란 눈망울를 기억해야 한다. 당신들은 원폭2세 환우를 두번 죽였다.

'경제 하나는 확실히 하겠읍니다'라고 외치고는 감감무소식인 대통령은 그를 기억해야 한다. 그는 중요한 건 경제 이전에 '삶' 자체라는 것을 보여줬다.

우리 모두 언젠가 아기를 갖는다면 건강한 아기이기를 바라고 기도할 것이다. 꿈에라도 그렇지 못한 아기를 갖는 꿈을 꾼다면 주저없이 악몽이라 할게다. 그런 바람을 품는 우리 모두 김형율 혹은 김형률을 기억해야 한다. 그가 건강하지 못했던 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는 다만 자기처럼 평생을 병마와 싸워야 하는 이들을 위해 싸웠을 뿐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 건강하게 사는 세상을 위해 거친 숨을 내쉬면서도 멈추지 않았을 뿐이다.



"원폭피해 없는 세상에 살고 싶어요"
'원폭2세 환우' 김형률씨 호소
시민의신문
506호 030811 6면에 게재

키 163cm, 몸무게 37kg인 김형률(33)씨. 중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15번 이상이나 폐렴으로 입원해야 했던 그는 이제 30%만 기능하는 폐에 의지해 가쁜 숨을 내쉰다. 그는 '원폭2세 환우'이다.


히로시마에서 태어나 4살 때 원자폭탄에 맞아 평생 악성종양과 피부병에 시달리는 어머니한테서 X염색체상에서 열성유전자를 물려받아 면역체계가 결핍된 채 세상에 태어났다.


그는 인권위에 제출할 진정서를 준비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다 결국 객혈(결핵이나 폐암 따위로 피를 토하는 것)이 심해져 부산대 응급실에서 2시간30분 동안 기관지동맥색전술을 받아야 했다.


그럼에도 외출허가를 받아 기자회견장까지 달려온 그는 기침을 심하게 하면서도 분명한 어조로 원폭2세환우들에게 의료 생활 지원체계를 수립하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진정서를 제출하고 나서는 다시 부산에 있는 병원에 입원했다. 이틀 후 기자와 가진 전화통화에서 그는 "9층 입원실에서 2층 로비까지 내려가는 것조차 힘에 부칠 정도"로 몸상태가 나빠져 있었다.


어릴 때부터 급성폐렴 때문에 입원과 퇴원을 되풀이해야 했던 그는 1995년에야 자신이 '면역글로블린M의 증가를 동반한 선천성면역글로블린결핍증'을 앓고 있으며 직접 피폭자인 어머니한테서 유전받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걸 알게 되었다. 면역력이 떨어져 바이러스에 쉽게 노출되는 병으로 이 병에 걸린 사람의 평균 수명은 10세 미만, 30세 이상 생존율은 20%밖에 되지 않는다.


무엇이 그가 병마와 싸우며 '목숨을 건 투쟁'을 벌이게 만들었을까.


한번 감기라도 걸리면 보름 이상을 집에서 누워있어야만 한다는 김씨는 작년 겨울과 봄 동안에도 감기 때문에 큰 곤욕을 치렀다. "한 달 이상을 고생하면서 부모님과 나는 이것이 단순히 개인문제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2002년 3월 기자회견을 갖고 자신이 원폭 후유증을 앓고 있다고 밝히며 원폭2세환우 문제의 해결을 호소했다. 노력 끝에 8월에 '한국원폭2세환우회', 12월에는 '한국원폭2세환우회를 지원하는 모임'이 결성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8월5일 '원폭2세 환우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이하 공대위)'로 작은 결실을 맺게 되었다.


물론 원폭2세 모두가 후유증을 겪는 건 아니다. 실태파악이 제대로 되진 않았지만 1991년 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 대상이었던 1천9백82명의 피해 1세들은 평균 3.72명의 자녀를 두고 있었으며 응답자의 41.1%가 1명 이상의 자녀에게 원폭후유증이 있다고 밝혔다. 공대위는 현재 원폭2세환우의 수를 최소 2천3백여명 정도로 추정한다.


김씨는 "원폭피해자들이 겪고 있는 피해의 정도는 일반적으로 생기는 사회적 위험과는 구분되는 특수성과 심각성을 갖고 있다"며 "국가는 인권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는 이들에게 특별한 지원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원폭2세환우회 cafe.daum.net/KABV2PO 원폭2세환우 상담 전용전화 0505-555-1945(서울) 0505-911-1945(부산)

강국진 기자 tengis@ngotimes.net



*사진은 모두 구글 이미지 검색으로 찾았다. 예전에 시민의신문에 글을 올릴 때는 대단히 인상적인 사진이 있었지만 사이트 폐쇄로 찾을 길이 없다. '기록없는 시대, 온라인의 역설'이라는 글도 썼지만 이보다 더 좋은 사례가 또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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