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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뒷얘기/시민의신문 기사

히로시마 원폭피해 조선인 할머니 증언, “갈기갈기 찢어졌다”

by betulo 2011.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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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이렇게 죽을 수도 있구나 하는 걸 그때 처음 알았지. 다시는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

194586일 원자폭탄이 히로시마에 떨어졌을 때 곽복순 할머니(오른쪽 아래 사진)17살이었다. 일본인 집에서 식모살이를 하던 곽 할머니는 내가 겉보기엔 건강해 보이지만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졌어라는 말로 평화기행 참가자들에게 악몽같았던 그날의 기억을 들려줬다.

히로시마 원폭피해자복지관에서 생활하는 곽 할머니는 후세에게 그날의 경험을 들려주기 위해 강연에 나선다. 처음 강연을 할 때는 그날 죽어간 사람들 생각이 나서 아무말도 떠오르질 않아 학생들을 앞에 두고 그냥 울기만 했다고 한다. 다음은 곽 할머니가 증언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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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194585일에 거리에 나가 집주위 정돈도 하고 쓰레기도 치우는 근로봉사를 했어. 끝나고 나서 이장이 밤에 공습이 있을 거라면서 조심하라고 하더라구. 사람들 모두 방공호에 숨어있는데 공습은 없으니까 경계령도 해제되고 6일은 일상생활로 돌아왔어. 새벽에 사람들이 방공호에서 나와 아침밥도 먹고 출근할 준비도 했지.


  공습경보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자서 잠을 좀 자려고 하는데 옆집 아주머니가 배급쌀 받으러 가자고 하더라. 얼른 화장실 갔다오고 나서 몸빼를 입으려고 하는데 갑자기 건물이 무너져 내렸어. 건물더미에 파묻힌 채로 공습인가 싶어서 평소 연습했던대로 눈과 귀를 막고 바닥에 엎드렸지.


  도와달라고 소리를 쳤는데도 도와주러 오는 사람도 없고 너무나 조용한거야. 건물더미 밖으로 나왔는데 왜 밖으로 나왔는지도 기억이 안나. 그런데 사방이 컴컴한거야. 밖에 나가서 처음 본 사람이 나한테 배급쌀 받으러 가자던 아주머니야. 온몸에 화상을 입었고 옷은 모조리 벗었더라구. 화상 입은 손으로 얼굴을 감싸면서 뜨거워 죽겠네하더라구. 그때는 그 아줌마보다 내가 더 다친 줄 알았지. 나중에 보니 그 아줌마는 옷을 벗은 게 아니라 옷이 다 타버린 거였어.


  사람들이 여기저기 뛰쳐나오더라. 발가벗고 있던 아줌마가 피난가는 사람들 속에 들어가 버렸어. 나도 피난 가고 싶은데 맨발이었고 땅바닥이 너무 뜨거웠어. 별 수 없이 나무판을 받치고 걸어갔지.


  훈도시(일본식 속옷) 차림으로 피범벅이 된 한 남자가 다다미 위에서 밖으로 나가려고 몸부림치더라. 피범벅이 된 할아버지와 손주들이 도와달라고 했지만 사람들도 너무 경황이 없어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더라구.


  피난가는데 비가 왔어. 비가 오면 불이 꺼지려니 생각했지. 나는 그냥 비라고 생각했는데 하늘에서 검은 기름이 떨어지는거야. 하늘에서 불덩이가 떨어질지 모른다 조심해라 그런 소리가 들리더라구.


  무리에 뒤쳐져서 피난가는데 앞서 가는 피난민들이 불더미처럼 보였어. 1.5킬로미터 정도 밖에 피난을 못갔다. 땅바닥이 너무 뜨거웠어. 강에 들어가 몸을 씻다가 추우면 밖으로 나오고 물에 들어갔다가 하는 걸 되풀이했지. 어린이 둘이 숯검댕이가 되어 죽어 있는 걸 보았다. 당시 중학생들은 공부는 안하고 근로봉사에 많이 동원됐거든. 학생들이 근로봉사를 시작할 시간에 원자폭탄이 터진거야.


  저녁이 되니까 방공호로 피신하라는 경고방송이 나오더라. 사람들은 피난가는데 한 할머니만 몸을 구부린채 안움직여. 한 남자가 방공호로 데려가려고 할머니에게 손을 대 보더니 벌써 죽었네라고 말하더라. 인간이 그런 식으로 죽을 수도 있구나 하는 걸 처음 알았지. 나는 방공호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집으로 돌아갔다. 집 근처에 다리가 있었는데 다리 주위에 누워있던 사람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 좀 달라고 애원하고 있었어.


  전시관에 있는 것 같은 원폭피해자들을 나는 본 기억이 없어. 새빨갛거나 새까만 사람들약을 칠해서 새하얀 사람들그런 사람들이 리어카에 실려가고나는 그런 것만 기억나. 전시관에 있는 인형은 옷을 어느 정도 입고 있더라구. 나는 그런 걸 보면 별로 피해를 입지 않았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앞은 멀쩡한데 뒤는 썩어 들어가서 누런 고름이 줄줄 흘러. 길이가 3센티미터는 되는 벌레들이 사람 등에 붙어있고말로 표현을 못하겠다. 사람들이 벌레를 털어낸 다음 신문지를 덮고 벌레를 밟아 죽이는데 벌레가 밟혀 죽는 소리가 나더라고.


  시체들을 쓰레기처럼 수레에 실어 버렸어. 큰길가는 시체를 얼른 치웠는데 내가 살던 곳은 길도 좁고 해서 시체들이 무더기로 쌓여 있었지. 시체들이 누렇게 보일 정도로 벌레가 끓더라구. 그날 이후로 한동안 헛것이 보였어. 악몽도 많이 꾸고 가위 눌린 것도 한두번이 아냐. 도랑에는 시체들이 떠다니고. 사람들이 시체를 건져올려서 들쳐업고 옮기면 시체 팔이 흔들흔들하잖아. 그걸 보면 귀신이 내게 달려드는 것처럼 헛것이 보였지.

 

200524일 오전 316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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