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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11 14:04

송두율 교수에 시대착오적 전향 주장, 우려 커져

"송두율" 시대착오적 전향 주장, 우려 커져
"국가보안법 대처 너무 소극적" 자기반성 촉구
2003/11/6
강국진 globalngo@ngotimes.net

최근 송두율 교수 사건을 둘러싸고 언론과 수사기관에서 "전향"이란 말이 버젓이 등장하는 데 대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와 함께 시민사회에서 송두율 교수 문제의 핵심인 국가보안법과 사상·양심의 자유에 대해 너무 소극적이었다는 자기반성의 목소리가 높다.

 


최정기 교수(전남대 사회학과)는 "검찰, 한나라당 등의 발언에서 보이는 "반성과 참회"란 바로 전향을 말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전향에 대해 "법적 근거도 명확치 않으며" "권력자와 지배체제를 절대화하고 그것에 반대하는 모든 것들을 적대시하는 전체주의적 지배방식"이라고 비판했다. 최 교수는 이어 "탈냉전·평화통일 시대, 보다 열린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이번 사건을 계기로 분단체제의 피해자를 만들지 않는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며 "그것은 바로 전향제도와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석운 변호사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별 고민없이 전향을 강요하는 사용할 사회적 분위기가 될까 염려스럽다"고 밝혔다.

 

 

박연철 변호사도 "검찰이 얘기하는 "더 이상의 요구"란 자신이 그동안 매우 잘못했다는 반성과 참회와 아울러 북한을 비방하고 저주하는 것도 포함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것은 국제사회에 웃음거리가 될 뿐 아니라 송 교수 개인도 파멸시키고 말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 변호사는 "송 교수에게 해묵은 전향을 요구하는 것은 송 교수에게는 되돌아갈 조국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절차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시민사회가 수구세력의 색깔공세에 너무 소극적으로 대응했다는 반성도 나온다.

 

김은주 민언련 신문모니터위원장은 "송 교수가 과거 노동당에 가입했으며 돈을 받았다는 것, 후보위원급의 대접을 받았음을 인지했다는 사실 등이 조사과정에서 알려지면서 시민사회단체의 충격이 컸던 것은 사실"이고 전제한 뒤, "그렇더라도 일부 단체를 빼고는 국가보안법에 대한 별다른 문제제기가 나오지 않고 진취적 입장을 보였던 언론조차 제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것은 매우 아쉬운 점"이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검찰이나 한나라당 등이 이 사건을 대하는 입장은 매우 공격적이고 수사과정에서 드러난 사실에 대해 냉전적 사고와 언어로 재단하는 반면 민변이나 학단협, 민교협 등은 매우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으며 원칙적인 입장 표명 외에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정희 변호사는 "송 교수가 노동당에 가입했다는 보도가 나오자마자 불에 데인 듯이 움츠러든 우리 내면을 살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소설가 서해성씨도 "송 교수 문제에 대해 소위 운동권들이 당혹해 한 것은 운동권들 내부에 국보법을 극복하지 못한 그늘이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왜 국가보안법 얘기만 나오면 스스로 소수파인양 피해자인양 움츠러는지 되돌아볼 것"을 시민사회에 촉구했다.

 

검찰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쏟아지고 있다.

 

이 변호사는 "구속을 자백강요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수사 방식은 사실 일반적인 경우"라면서도 "검찰이 이번처럼 자백강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검찰이 "자백하지 않아서 구속했다. 자백하면 전향으로 봐주겠다"는 식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이는 자백을 사실상 강요하는 전근대적인 방식"이라고 검찰을 비판했다.

 

박연철 변호사는 "정보당국이 북한의 정치국후보위원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 정치국후보위원의 선임사실을 자백에 의해서만 밝혀 내려고 한다면 정보당국과 수사기관으로서 매우 실망스러운 모습"이라고 꼬집었다.

 

변협 인권위원회 송두율 교수 변호인 입회거부 조사단(단장 박석운 변호사)은 △변호사 입회 거부 △자백 강요와 전향 유도 논란 △포승과 수갑 등으로 모멸감 주는 수사방식 등의 절차상 문제점을 지적했다. 박석운 변호사는 "강요 수준의 자백 강요가 이뤄진다고 보진 않지만 결국 그런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심각한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강국진 기자 sechenkhan@ngotimes.net

 

 

사상전향제도의 역사

 

사상전향제도가 처음 시행된 것은 일제시대이다. 일제는 치안유지법의 보완책으로 1931년경 사상전향제도를 시행했다. 해방 이후 한 동안 모습을 감췄던 사상전향제도는 좌우익 사이의 갈등이 심각해지면서 다시 등장했고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사상전향공작이 일상적으로 진행되었다. 1956년도에는 좌익수 가운데 전향자가 62%였고, 1957년에는 전향자가 74%에 이른다는 당국의 조사결과가 있을 정도다. 교도소에서는 전향 여부에 따라 처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사상전향제도의 폭력성과 비인간성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은 1970년대 초 유신체제 성립 직후였다. 그것은 한마디로 비전향 사상범 절멸 정책이었다. 당시 사상범들은 "너희들에겐 전향이냐 죽음이냐라는 선택밖에 없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사상범들의 개별적·조직적 저항과 국내외 비판여론으로 인해 전향제도는 조금씩 사라지게 된다.

 

1980년대 후반부터는 전향의 구체적인 내용없이 "출소 후 대한민국의 법을 준수하고 살겠다"는 정도의 내용만 적어내면 그대로 전향으로 인정하는 추세로 변한다. 1998년 나온 준법서약서는 사실상 이미 실용화되었던 문서의 형식을 제도적으로 수용하는 정도였다. 그나마 1999년에 아무 조건없이 장기수들이 출소하면서 준법서약서마저 유명무실해졌다. 올해 들어 강금실 법무부 장관은 준법서약서를 폐지하겠다고 공식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송두율 교수는 지난 달 14일 △독일국적 포기 △노동당 탈당 △대한민국 헌법 준수를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검찰과 언론에선 여전히 미흡하다는 입장이다. 이렇게 볼 때 현재 송 교수에게 요구하는 수준의 반성은 준법서약서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다.

 

강국진 기자 sechenkhan@ngotimes.net

2003년 11월 6일 오전 0시 1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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