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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11 17:19

송두율 교수 1심 최후진술 (2004.3.9)




송두율 "국가보안법은 반통일적 장애물"
검찰,송두율 교수 15년 구형
검찰, 자기주장과 인신공격으로 일관 “한나라당 논평이냐” 방청객 항의 쏟아져

2004년 3월 9일 오후 14시 14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원숭이 사육사가 아침마다 나무 꼭대기에 신선한 바나나를 매달고 그 근처에 전류를 통하게 했다. 첫 번째 원숭이가 바나나를 따먹으려고 나무에 오르다가 흐르는 강한 전기에 놀라 곧 포기했다. 두 번째, 세 번 째 그리고 네 번째 원숭이도 흐르는 강한 전기에 놀라 연이어 포기했다. 이튿날 새롭게 우리 안에 들어온 다섯 번째 원숭이가 걸려있는 바나나를 보고 나무에 오르려고 하자 이미 혼난 경험이 있는 네 마리 원숭이가 다 나서서 그를 말렸다. 그러나 이 다섯 번째 원숭이는 이 만류를 뿌리쳤다. 사육사가 이미 전류를 끊었는데도 네 마리 원숭이는 그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9일 결심공판에서 징역 15년을 구형받은 재독철학자 송두율 교수는 최후진술에서 “국가보안법을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국가정보원과 공안검찰, 이른바 거대언론, 그리고 이에 덧붙여 기존의 선입견을 지식으로 포장하고 확대재생산해온 이른바 지식인들이 바로 위에서 지적한 네 마리 원숭이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이와 함께 송 교수는 “네 마리 원숭이가 벌였던 그 시끄러운 굿판이 결국 도깨비장난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몰고 올 또 한번의 충격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송 교수는 △국가보안법의 실체 △나의 통일철학 △경계인의 의미 등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상세하게 밝혔다. 그는 다양한 비유를 들어가며 국가보안법, 국정원, 공안검찰, 거대언론, 일부지식인 등을 비판했다. 특히 검찰에 대해서는 “검찰 주장대로라면 재한독일문화원장도 국가보안법 위반이냐”며 “공안검찰이 중세때나 가능한 마녀사냥을 작태를 태연히 벌인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송 교수는 "국가보안법은 분단국가가 통일된 민족국가로 나가는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17세기 중반의 법 이해수준에도 못미치는 법 아닌 법"이라며 “국가보안법은 반통일법”이라고 규정했다.

“솔직히 재판과정을 거친 나의 심정은 착잡하다. 악몽같은 일이 끝난다는 안도감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론 통일을 바라는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걱정된다”는 말로 최후진술을 시작한 송 교수는 “온 나라와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재판부의 미래지향적인 판결에 희망을 건다”는 말로 최후진술을 끝냈다.

변호인단은 최후변론에서 △정치국 후보위원 △남북학술대회 △저술활동 △친북활동 △특수탈출 등의 공소사실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공소사실 모두 무죄”라고 주장했다. 변호인단은 “국가보안법 자체가 위헌이며 검찰이 제시한 증거도 모두 증거로 인정할 수 없는 것”이라며 “오히려 검찰측 주장을 반박하는 반대증거가 재판과정에서 수도 없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변호인단은 끝으로 “조국을 사랑했고 조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한 송 교수에게 인간의 얼굴을 한 조국의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검찰은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재판장 이대경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결심 공판에서 논고를 통해 송 교수에게 징역 15년형을 구형했다. 검찰은 “피고는 경계인으로 위장한 북한의 고위공작원이자 북의 선전임무 담당자이며 뉘우치는 기색도 전혀 없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검찰은 “펜은 칼보다 강하다”“저술활동을 통해 대남적화통일을 획책하고 자유민주주의를 무너뜨리기 위해 노력한 피고의 이적행위는 간첩행위나 요인암살행위보다도 위험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검찰은 “기회주의적 인간” “해방이후 최대 거물 공작원” “혐의사실에 대해 변명만 일삼는다”는 등의 원색적인 인신공격을 퍼붓기도 했다.

검찰이 15년 구형을 밝히자 재판정 여기저기에서 탄식과 한숨이 쏟아져 나왔다. 공판이 끝나자 재판 방청객들은 “지금이 5공 때냐” “유신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는 등 검찰에 강하게 항의해 소란이 일기도 했다.

김정인 학단협 정책위원장은 “법조인의 기본도 못지킨 논고”라며 검찰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공소사실과 관련한 법조문 얘기는 없고 인신공격과 자기 주장만 있었다”며 “검찰 논고가 한나라당 논평같다”고 비꼬았다.

송 교수 변론을 맡고 있는 송호창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검찰의 논고는 매우 이례적”이라고 지적했다. 송 변호사는 “공소사실과 관련없는 인신비하만 늘어놓은 것은 공소사실을 전혀 입증하지 못해서 할 말이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송 변호사는 국가보안법 3조 지도적임무수행이 헌법에 위반한다는 위헌제청이 기각된 것과 관련 “조만간 헌법소원을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국가보안법 6조 특수탈출, 8조 회합통신 등에 대해서도 위헌제청이나 헌법소원을 제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송 교수 부인인 정정희씨는 “대한민국이 법치국가 맞느냐”고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정씨는 “검찰의 논고를 들으면서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며 “양심적인 학자의 학문활동을 구시대유물인 국가보안법으로 재단한다는 것이 안타깝다”고 울분을 토했다. “국가보안법이 있는 한 민주화는 멀기만 하다”고 강조한 정씨는 “오늘의 고통을 개인으로 희생으로 보지 않는다. 민주주의로 가는 디딤돌이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정씨는 “마녀사냥을 일삼았던 조중동 수구언론이 이제는 모르쇠로 일관한다”며 “언론이 무책임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송 교수의 아들인 송린씨도 “검찰의 사고방식이 여전히 70년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 놀랍다”며 “아버지 말씀처럼 국가보안법을 철폐해 사회에 자극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송 교수 선고공판은 오는 3월 30일 오전 10시 서울지방법원 417호 법정에서 열린다.

송두율 교수 최후진술 전문 

존경하는 재판장님

국내외의 지대한 관심 속에서 진행된 이번 재판에 많은 노고를 기울여주신 재판부에 우선 심심한 사의를 표합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씀 드려 여러 재판 과정을 거쳐 지금에까지 이른 저의 심정은 여러 가지로 착잡합니다. 한편으로는 악몽 같기만 했던 지난 일이 일단 끝난다는 기대감도 있지만,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분단시대를 뒤로하고 이제 바야흐로 통일시대로 접어들었다고 기뻐하며 가슴 가득 희망에 부푼 많은 분들에게 이번 재판의 결과가 과연 어떤 의미를 던질 것인지를 가늠해보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국가 보안법의 실체

외국 땅에서 40년 가까이 살아온 저로서는 지금까지 <국가보안법> 하면 겨우 <반국가단체>, <고무찬양>, <잠입탈출>, <회합통신>과 같은 단어 정도를 겨우 연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넉 달 넘게 <국정원> 조사로부터 시작해서 검찰의 심문조사를 거치며 지금까지 숨 가쁘게 이어져온 수차례에 걸친 재판 과정을 통하여, 저는 <국가보안법>의 실체를 몸으로 터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국가보안법>을 저에게 적용하려는 검찰의 시도가 얼마나 심각한 모순을 안고 있는가 하는 것을 저의 변호인단 측에서 법적으로 충분히 지적했기 때문에 그것을 재차 여기서 반복할 필요를 느끼지는 않습니다. 그 대신 <국가보안법>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에 대해서는 짧은 언급이나마 절실한 듯이 보입니다. 여러 가지 가운데 우선 두 문제만 지적하고자 합니다.

베를린 시의중심에 있는 쇠네베르거 우퍼(Schoeneberger Ufer) 거리에는 재독 <대한민국> 대사관이 있습니다. 이곳에서부터 자동차로 겨우 10분 정도 떨어진 글린카 거리(Glinkastrasse)에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대사관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외국인이 평양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이 대사관을 방문하여, 입국사증의 신청 등 필요한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그런데 검찰의 <공소장>은 제가 이 대사관을 방문한 것이 "국가를 참칭한 반국가단체가 지배하는 지역"으로 들어가 <반국가단체>의 성원과 <회합․통신>한 죄를 범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런 식으로 말한다면 지금 평양에 상주하는 독일대사관 직원들은 모두 <국가보안법>의 위반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서울에 있는 <괴테 문화원 원장은 평양에 있는 괴테 문화원의 <독서실>을 함께 관장해야 하기 때문에, 자주 평양을 방문해야 합니다. 검찰의 논리를 따른다면 이러한 행위 역시 당연히 <잠입․탈출> 죄를 범한 것이 됩니다. 그래서 제 사건을 보고 충격을 받은 독일인들은 한국이 드디어는 <국가보안법>을 독일에까지 수출하려 하느냐고 비아냥거리기까지 합니다.

뿐만 아니라 16년 전에 제가 독일말로 쓴 책의 내용을 문제 삼아 역시 <국가보안법>에 저촉되는 양 검찰이 논리를 세우는 것을 보고 모두 아연실색하고 있습니다.

프랑크푸르트에서는 매년 10월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국제도서박람회(Buchmesse>가 열립니다. 이 행사기간 1871년 독일제국헌법을 제정 통과시킨 제국의회가 열렸던 파울교회(Paulskirche)에서는 인류문화의 지적보고인 책을 통해서 평화에 기여한 인사에게 유명한 평화상(Friedenspreis)도 수여됩니다. 내년 2005년에는 한국이 이 박람회 측에서 특별 선정한 "손님나라"(Gastland)가 되었습니다.

세계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해서 <고금상정례문>이나 <직지심경>등을 인쇄해서 인류문화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문화 국가에 대한 당연한 예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나라임에도 아직도 사상 관련 저술에 중세 때나 가능한 마녀 사냥 식의 <국가보안법>을 적용하는 반문화적인 현실을 이 세계는 어떻게 이해하겠습니까?

오늘의 세계는 문화를 존중하는 시대로 나아가고 있는데도, 우리의 공안 검찰은 이러한 반문화적인 작태를 태연히 자행함으로써 한국의 국위를 너무나도 심각하게 실추시키고 있습니다.

검찰은 <실정법>이라는 이유를 들어 <국가보안법>을 옹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법은 지상유일의 <분단국가>가 통일된 민족국가로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는 반통일적 장애물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법은 세계화의 기치 아래 <세계시민사회(Weltbuergergesellschaft)>를 지향하는 오늘의 국제적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습니다. 제가 가르치고 있는 대학이 있는 뮌스터시에는 <30년전쟁(1618-48)>을 종결시킨 <베스트팔리아평화조약(Westfaelischer Friedensvertrag)>이 체결된 회의실에 아직도 보존되어 있습니다.

근세 국제법적인 의미에서 최초의 평화조약이라고 불리우 는 이 평화조약의 정신은 칸트의 <영구평화론(Zum ewigen Frieden)>을 거쳐 나치 독일을 피해 미국에 망명, 법을 통한 평화를 설파해서 초국가적인 평화기구인 UN의 설립정신에 기여한 한스 켈젠(Hans Kelsen)의 법철학의 근간을 이루었습니다. 민족국가를 기초로 해서 구성된 이러한 평화개념은 이제 민족국가의 국경개념을 희미하게 만드는 <세계화>의 과정 속에서 국가대신에 <시민사회>에 근거한 보다 보편적이고 사해동포적인 네트워크를 지향하는 탈현대적 (postmodern)인 법 이해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불구하고 <국가보안법>은 <남북기본합의서>가 이미 밝히고 있는 원칙, 즉 남북은 통일을 지향하고 있는 <특수한 관계>도 인정치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위에 말한 <베스트팔리아 평화조약>이 전제하고 있는 국민, 국토, 그리고 주권이라는 기본요건마저 무시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17세기 중반의 법 이해수준에도 훨씬 못 미치는 법 아닌 법입니다.

나의 <통일철학>

그러나 저는 이 기회에 - 걸림돌을 디딤돌로 만들어가고자 하는 심정으로 - 이러한 <국가보안법>이 이해하려고 시도하지도 않고 또 이해할 수도 없는 저의 통일철학의 핵심을 간략히 밝히고자 합니다.

통일 문제를 말할 때, 언제나 저는 제일 먼저 「상생 相生」의 원칙을 강조해 왔습니다. 불교적 용어로 이해되고 있는 <상생>은 <연기 緣起>라는 개념을 전제합니다. 즉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는 이 가르침은 남북으로 갈라진 우리의 민족현실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이는 <남이냐, 북이냐>라는 양자택일의 논리가 아니라 <남과 북>이 공유하는 관계를 중시하는 논리로서, 저는 이 큰 대나무와 저 작은 대나무가 실은 땅속에서 뿌리를 통하여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비유를 들어 이 관계를 설명합니다.

1989년 봄, 비엔나에 있는 유명한 <문학의 집(Literaturhaus)>에서 행한 <탈현대의 고고학(Zur Archaelogie der Postmoderne)>이라는 강연에서 저는 대나무와 도토리나무의 비유를 들어 현대의 인식론적인 문제를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어미대나무(母竹)로부터 뿌리가 옆으로 퍼지면서 일정한 거리에 죽순이 나오는데 이들이 서로 연결되어 번식하면서 무성한 대나무밭을 형성하게 됩니다. 그러나 도토리나무는 도토리가 땅에 떨어져 떡잎이 나오고 어느 정도 성장하지만 어미 도토리나무의 무성한 잎의 그늘 때문에 이 어린 나무는 자라지 못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죽습니다.

대나무는 <관계철학>, 도토리나무는 <주관철학>을 각각 상징합니다. 또 <관계철학>은 <상생>을, <주관철학>은 나만이 옳다는 <아만(我慢)>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상생>의 원칙에 입각할 때, 비로소 남과 북은 서로를 <자기 속의 타자(他者)>로 인식하는 발상의 전환이 가능하게 됩니다. 남과 북이 똑같다면 이미 통일이 이룩된 상태일 것이고, 남과 북이 완전히 다르다면 통일 이야기를 꺼낼 필요조차 없는 상황일 것이기 때문에, "같으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같은" 남북은 긴장 속에서도 계속 줄기찬 여유를 지니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태도는 통일을 어떤 <사건>이 아니라, 끊임없이 전개되는 <과정>으로서 바라보는 훈련을 요구합니다. 왜냐하면 반세기 이상 서로 이질적으로 형성되어온 남북의 체험공간은 서로의 기대지평을 달리 만들어 왔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은 필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서로가 <주인>과 <종>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인정하는, 그리하여 서로의 관점을 바꾸어 보는 <합리적인 대화>를 가능하게 합니다.

폭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평화적 수단을 통해 갈등을 해결한다는 이러한 원칙을 우리의 현실이 그 어느 때보다도 분명히 요구하고 있습니다. 비록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체제의 수립이라는 <적극적> 의미의 평화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전쟁이 없다는 의미에서의 <소극적>인 의미의 평화 정도만이라도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 오늘의 한반도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상생>, <자기 속의 타자>, <과정>, <합리적인 대화>, 그리고 <평화>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 제 스스로의 <통일철학>의 실현을 위해 <배제하고 동시에 통합하는 제3의 무엇>을 지향하고자 하는 <경계인>의 삶을 "기회주의적"이라고 오해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제 뇌리 속에는 초기 불교의 성전 <쌍윳따 니까야>의 함축적인 비유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즉, 흰 소와 검은 소가 서로 묶여 있는 것을 보고, 대개는 검은 소가 흰 소에, 또는 흰 소가 검은 소에 묶여있다고 보는데, 사실은 이 두 소를 서로 묶고 있는 것은 단지 <끈>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남과 북의 관계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이 비유는 남이 북에게, 또는 북이 남에게 묶여 있는 것으로 보기보다는, 이 남북의 <사이>를 생각해보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현재 남북을 가르는 휴전선이라는 <제3의 공간>이 전 한반도로 확장된다면, 위에서 지적했습니다만, 전쟁이 없다는 뜻에서의 소극적인 평화 정도는 가능하다는 발상으로 통하기 때문입니다.

<경계인>의 의미

37년 만에 <경계인>으로서 제 조국 땅을 밟으면서, 저는 <조직 사회학>에서 종종 거론되는 다섯 마리 원숭이에 대한 우화를 생각했습니다. 원숭이 사육사가 매일 아침 나무 꼭대기에 신선한 바나나를 매달고, 그 근처에 전류를 통하게 했습니다.

첫 번째 원숭이가 바나나를 따먹으려고 나무에 오르다가 흐르는 강한 전기에 놀라 곧 포기했습니다. 두 번째, 세 번 째 그리고 네 번째 원숭이도 흐르는 강한 전기에 놀라 연이어 포기했습니다. 이튿날 새롭게 우리 안에 들어온 다섯 번째 원숭이가 걸려있는 바나나를 보고 나무에 오르려고 하자 이미 혼난 경험이 있는 네 마리 원숭이가 다 나서서 그를 말렸습니다. 그러나 이 다섯 번째 원숭이는 이 만류를 뿌리쳤습니다. 사육사가 이미 전류를 끊었는데도 네 마리 원숭이는 그 사실을 몰랐던 것입니다.

이 우화는 지식의 역할이 사회에서 반드시 긍정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드러내고자 한 것입니다. 즉 <지식은 조직을 멍청하게 만든다(Intelligenz macht Organisation dumm)>는 역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회를 항상 깨어있게 하는 지식은 기존의 선입견을 파괴하고 새로운 의견을 제시하는 이른바 <달리 생각하는 사람(Andersdenkender)>을 요구합니다. 국가보안법을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국가정보원>과 <공안검찰> 및 이른바 <거대 언론>, 그리고 이에 덧붙여 기존의 선입견을 <지식>으로 포장하고 확대 재생산시켜온 이른바 <지식인들>이 바로 위에서 지적한 네 마리 원숭이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그러나 저는 동시에 이 사회를 항상 깨어 있게 만드는 많은 <달리 생각하는 사람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다섯 번째 원숭이는 <해방 이후 최대간첩>이니 <말 바꾸는 지식인>이라고 저를 매도하는 네 마리의 원숭이가 벌이는 그 시끄러운 굿판(Affentheater) 속에서도 달리 생각하고 행동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회를 건강하고 새롭게 만드는 지식체계의 구성은 사실 그리 간단치는 않습니다. 특히 사회의 위기를 미리 감지하고 이를 예방하는 문제는 사회가 복잡해지면 복잡해질수록 더욱 어려운 과제로서 등장합니다. 또한 <위험사회>니 <보험사회>니 하는 말처럼, 위험이 항시적으로 도처에 도사리고 있으면서도 이에 대한 우리들의 감각이 둔화하기 때문에 위험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생태철학자 그레고리 베이트슨 (Gregory Bateson)은 재미있는 비유를 들어 설명합니다. 개구리를 미지근한 물에 넣어 점차적으로 조금씩 온도를 높여서 가열하면 이 개구리는 끓는 물 속에서 그만 죽습니다. 그러나 만약 끓는 물에 개구리를 집어넣으면 이 개구리는 펄쩍 뛰어 밖으로 도망치려고 시도합니다.

이 비유는 분단 시대를 오래 살아온 우리에게도 해당된다고 생각합니다. <국가보안법>이 민주화 진전에 따라 유명무실하게 되었다고 믿었던 많은 사람들에게 저의 입국을 전후해서 생긴 소용돌이는 분명히 큰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민족분단을 확대 재생산해온 우리의 의식구조 속에서 제 문제가 충격적이라면, 저는 차라리 이 충격이 지속적이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놀라게 했던 모든 사건도 곧 잊혀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또 한번의 가능한 충격을 곧 있을 재판의 결과에서 기대해 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네 마리 원숭이가 벌였던 그 시끄러운 굿판이 결국 도깨비장난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몰고 올 또 한번의 충격을 기대해봅니다. 그러한 충격은 우리의 정신적 위기상황을 적극적으로 깨닫게 하는 일종의 <정신 생태학(Oekologie des Geistes)>을 가능케 할 수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이러한 <정신생태학>은 자연환경을 문제시하는 <생태학>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저의 문제를 계기로 해서 분단된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서로 화해할 수 있는 그러한 아름다운 나라로 한 걸음 더 다가섰으면 하고 저는 바랍니다.

최후진술을 마치면서

저는 부모가 난 땅을 난생처음 밟았다가 기대가 실망으로 뒤바뀐 엄청난 충격을 경험했던 저의 자식들이 재판부의 현명한 판단에 거는 기대도 같은 맥락이라고 믿습니다.  이 나라가 깨어있고 또 건강해서, 바로 그 때문에 사랑할만하다는 확신을 불러일으키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판결을 저의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민족과 세계를 함께 생각하면서 걸어온 지난 40년 가까운 학자생활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새로운 전기(轉機)를 맞아 또 한번 비상할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주는 그러한 재판의 결과를 기대합니다.

온 나라와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재판부의 미래지향적인 판결에 희망을 걸면서 저의 최후진술을 경청해주신 재판부에 거듭 감사를 드립니다.


2004년 3월 9일                                    송 두 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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