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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04 08:00

큰 칼 옆에 찼던 충무공, 큰 칼 들고있는 이순신


 대체로 한국 사극에는 몇가지 전형적인 특징이 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먼저 좋은 일 중요한 일, 훌륭한 일은 모조리 주인공 몫이다. ‘주몽’을 보면 주몽이 예수같고, ‘광개토대왕’을 보면 광개토대왕이 다윗같다. ‘왕건’에서는 왕건의 훌륭하신 ‘교시’에 온 나라 사람들이 감화를 입어 ‘왕건은 뇌수요 우리는 손발이라’ 죽어라 싸운다. 


그런 주인공 옆에는 대개 ‘주체성 상실한’ 예쁘고 착한 아줌마들이 있다. 착한 척은 혼자 다 하던 ‘허준’ 아내가 딱 그런 인물이다. 주인공은 언제나 조국과 민족만 생각한다. 주인공은 언제나 좋은 편, 상대편은 언제나 나쁜 편이라는 너무나 순진무구한 세계관도 불편하다.(주몽,대조영,연개소문... 사극드라마의 공식


 한국 드라마치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게 거의 없지만 그 중에서도 사극을 특히 싫어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고증을 등한시하기 때문이다. 명색이 역사학도였던 내 감수성으로는 사극을 곱게 보아 넘기는게 너무나 어려운 노릇이다. 가장 최근 사례로는 영화 ‘명량’을 들 수 있다. 


활에 대한 치밀한 고증에 감탄했던 ‘최종병기 활’을 만든 감독 작품이라길래 기대를 많이 했건만, 차라리 명량해전 장면 전까지가 나름 괜찮았을 뿐 그 뒤로는 악몽 그 자체였다. 배 위에서 백병전을 벌인다거나 신기전을 직접 활로 쏘는 장면, 판옥선으로 박치기하는 장면은 그 중에서도 최악이었다. 


 세종로 네거리에 있는 충무공 이순신 동상은 수십년 동안 우리에게 이순신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오른손에 큰 칼을 ‘들고’ 있는 거대한 동상이 고증을 잘못했다는 지적 또한 끊이지 않았다. 갑옷이 중국풍이라는 건 일반인들에겐 어려운 문제라고 양보하더라도, 이순신이 왼손잡이냐 하는 지적 앞에선 반론의 여지가 없어진다. 거기다 이순신 스스로 밝혔던 “큰 칼 옆에 차고”고 아니라 “큰 칼 들고” 있는 모습은 한국에서 역사고증이 얼마나 관심밖에 있는지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가 아닐까 싶다. 




 최근 미국 드라마 ‘더 닉’을 봤다. 20세기 초 미국 뉴욕을 배경으로 한 의학드라마다. 이 드라마에는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과 부정부패 등 당시 생활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가령 팔을 다친 백인 여성을 치료하는 흑인 의사에게 “왜 내 딸 팔을 자꾸 만지느냐”고 따지는 장면이나, 흑인을 구타하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모습은 “부정적인 역사관”을 심어준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또다른 미국 드라마 ‘로마’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묘사하는 동성애 풍습이나 근친상간, 불륜 역시 마찬가지다. 


 사실 ‘더 닉’이나 ‘로마’에서 묘사하는 시대상은 어느 정도 불편하기만 하다. ‘패트리어트’처럼 흑백갈등을 적당히 얼버무릴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적나라한 어제를 통해 우리는 오늘을 더 잘 인식할 수 있다. 오늘이 어제와 어떻게 다른지 제대로 알게 되면 오늘이 거저 얻어걸린게 아니라는 것도 깨닫게 된다. 


의학박사조차도 대놓고 무시당하는 모습을 통해 인종차별이라는 현실을 직시할 수 있다. 비록 ‘객관적인 역사’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사실 자체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사실이라는 토대가 없으면 진실은 모래성에 불과하지 않겠는가. 


 권력은 예나 지금이나 예외없이 오늘을 정당화하기 위해 어제를 재구성하려 시도했다. 세종은 ‘용비어천가’를 통해, 일본은 식민사관을 통해, 박근혜는 국정교과서를 통해.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조선왕조실록 가운데 유일하게 선조에 대해서만 선조실록과 선조수정실록이라는 서로 다른 판본이 존재한다. 인조반정 뒤 새롭게 선조수정실록을 쓰면서도 선조실록을 그대로 뒀다. 


‘터럭 하나라도 다르면 그 사람이 아니다’는 원칙을 철저히 지키느라 얼굴 한가운데 곰보 자국까지도 그대로 그려넣은 조선시대 초상화는 또 어떤가. 자기 맘에 안든다고 수상한 우주의 기운을 느끼는 21세기 권력자보다 조선시대 권력자들이 더 대인배스럽다. 

 

 <사족>

 그런 점에서 보면 11월27일 경남 창원에 있는 해군사관학교 교육시설인 ‘통해관’ 앞 충무광장에서 열린 제막식에서 선보인 새 이순신 동상은 여러모로 반갑다. 왼손에 칼 대신 활을 잡고 등에 화살통을 메고 있다. 특히 눈여겨 볼 대목은 칼머리를 뒤로 가게 한 점이다. 18세기 동래부사가 초량 왜관에 온 일본 사절을 환영하는 모습을 담은 ‘동래부사접왜사도’를 보면 한일간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아무래도 칼을 위주로 한 전투방식과 활을 위주로 한 전투방식의 차이에서 나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세종로에 있는 이순신 동상이 엉터리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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