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관상 관심많은 평범한 무신론자가 만난, '신'(神)
<처음 만났던, 그 모든 순간들 12>
스승이 제자들에게 새를 한 마리씩 나눠주며 숙제를 냈다.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이 새를 죽여라. 아무도 새를 죽이는 걸 보지 못하도록 해라. 제자들은 비둘기를 품에 안고 흩어졌다. 저녁이 되어 숙제를 마친 제자들이 스승에게 돌아왔다. 한 제자가 말했다. 산에 올라가 동굴에서 새를 죽였습니다. 다른 제자가 말했다. 깊은 숲속에서 새를 죽였습니다. 또다른 제자는 깜깜한 곳에 들어가서 암흑 속에서 새를 죽였다고 말했다. 오직 한 제자만이 살아있는 새를 품에 안은 채 돌아왔다. 스승이 물었다. 왜 너는 새를 죽이지 않았느냐. 제자가 대답했다. 스승님 말씀대로 아무도 없는 곳을 찾았습니다. 아무리 깊은 숲이나 어두운 동굴에 들어가도 신께서 지켜보고 계시지 않은 곳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 새도 자신을 보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은 아무리 해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신(神)이라는 존재를 생각할 때마다 이 이야기를 떠올린다. 수피즘이라고 하는, 이슬람 신비주의에서 전해오는 이야기다. 신이 전지전능한 분이라면 어디에나 계시다는 뜻이 된다. 그렇다면 항상 경계하고 겸손한 자세로 살아야 한다. 그것이 신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사람의 자세다. 비록 나 자신은 무신론자이고 종교인이 될 생각도 없지만,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을 생각할 때마다 조금이나마 겸손해지고 경건해지곤 한다.
‘신’을 무어라 불러야 할까. 신이라는 특정한 존재가 있다면 응당 ‘바른 이름’(正名)이 필요할 터. 개신교에선 하나님, 가톨릭에선 하느님이라고 하는데, 절대자를 특정한 이름으로 부르는 것 자체가 신의 존귀함과 전지전능함에 족쇄를 채우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특정한 문화권에 그 신을 알리기 위해서 그 문화권에서 익숙한 이름을 차용하기도 한다. 중국어로 번역된 성경을 잠깐 본 적이 있는데 상제(上帝)가 천지를 창조했다고 나오는 걸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존귀하고 전지전능한 분이라면 하느님이자 하나님일 터인데 그걸 갖고 싸우는 인간들이란 얼마나 어리석은가 싶기도 하다. 더 아쉬운 건 성경을 아침저녁으로 묵상한다는 분들이 이슬람을 적대시하는 모습을 볼 때이다. 무슬림에선 신을 ‘알라’라고 부른다. 알라라는 이름을 가진 신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알라’는 특정한 신을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일반명사다. 한국어 번역본에는 하나님이라고 옮겼다. 코란을 읽어보면, 이슬람에서 가리키는 신(알라)이 정확하게 아브라함과 이삭의 그 분, 모세의 그 분, 다윗과 솔로몬의 그 분이라고 나온다. 사실 그런 이유로 과거 이슬람 전성기에 유대인들은 ‘성경의 백성’이라 하여 다른 이교도들보다 우대를 받았다.
(내게 전도하지 않는) 모든 종교를 존중합니다
누군가 나에게 ‘당신의 종교는 무엇입니까’ 묻는다면 답은 항상 정해져 있다. 사주 관상에 관심많은 평범한 무신론자입니다. 흔히 교회에서 말하는 전지전능한 유일한 존재는 믿느냐 안 믿느냐 하면 솔직히 관심이 없다. 한동안 굳게 믿었고, 한동안 굳게 믿지 않다가 이제는 나이도 먹을 만큼 먹고 나니 무심해졌다. 이 또한 철드는 한 징표인지도 모르겠다. 도스토옙스키가 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대심문관’ 부분은 종교에 대한 고찰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는데, 나는 아무런 감흥을 느낄 수가 없었다. 신과 구원에 대한 철학적 고찰에 무관심하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 당신의 종교관은 무엇입니까 묻는다면 대략 이렇게 대답한다. 세상 모든 종교를 존중합니다. 나한테 전도하려고 헛된 시도를 하기 전까지는.
어릴 때 어떤 그림책을 읽은 적이 있었다. 성경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한 책이었는데, 내용 자체보다도 그 책에 담긴 낯선 풍경과 웃차림에 더 매혹됐다. 야자나무가 뻗어있는 도시, 낙타를 타고 멀리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 변변한 포장도로조차 없는 곳에 사는 시골 소년에게 성경의 무대라는 땅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샘솟았다. 당시 교회라는 곳은 뭔가 세련되고 멋진 신세계였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도시 생활을 하게 되자 교회에 대한 선망과 매혹은 자연스럽게 사그라져 버렸다. 거기다 대학도 사학과에 진학했다. 교회나 성당이나 법당이나 모든 종교가 역사의 한 분야로만 보이게 됐다. 그 즈음 한창 영향을 받은 유물론까지 더해지니 종교에 더욱더 시큰둥해질 수밖에 없었다.
군대에 가보니 신병교육대에서 주말에 반드시 종교행사에 참석해야 했다. 어디를 갈까 생각하다가 결국 교회, 성당, 법당에 다 가봤다. 처음 찾아간 곳은 성당이었다. 미사라는 걸 처음 참석해봤는데 차분하고 경건한 분위기가 참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두번째 갔을 때 미사가 끝나고 밖에 나와보니 하나씩 나눠주는 초코파이가 다 떨어졌다고 했다. 성당 앞자리에 앉아있는 게 아녔다. 미사 시간에 자꾸 앉았다 일어났다 시키는 것도 불편했다.
결국 그 다음주 주말에는 교회에 갔다. 중학교 이후론 처음으로 교회에 갔다. 마침 민간인 교회에서 주최하는 시끌벅적한 예배가 열렸는데 귤이며 초코파이며 초코렛까지 나눠줬다. 다음주에도 교회에 갔다. 하지만 너무 노래 위주로 흥을 돋구는 건 역효과가 났다. 잠시 멍때리며 잠도 자고 싶은 신병에게 시끌벅적한 노래판은 맞질 않았다. 결국 신교대 5주차엔 법당으로 가봤다. 거기서 안식을 찾았다. 자리에 앉아있으면 조교들이 초코파이를 하나씩 나눠주고, 잠자는 건 뭐라하지 않을테니 코는 골지 말자는 말 속에는 부처님의 자비로움이 느껴졌다. 계속 법당에 갔고 나중엔 수계도 받았다. 법명은 모른다. 알려주지 않았다.
미국 시카고에서 어학연수를 할 때 학교 선생은 독실한 개신교 신자, 그 중에서도 복음주의자였다. 복음전파를 꽤 중시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금요일 수업이 끝나고 내게 한 시간 정도 함께 성경읽기 공부를 하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주저없이 동의했다. 함께 구약성경 창세기부터 읽고 대화를 나눴다. 그 선생은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하고 싶어했다. 나는 ‘영어 잘하는 길’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 선생이 창세기를 읽고 해석을 해주고 토론을 하는 그 모든 복음이 내게는 영어 듣기능력향상을 위한 귀중한 공부시간이었다. 영어 공부를 위해 몰몬교 선교사들과 한동안 정기적으로 만나며 몰몬경도 읽어봤다. 서로에게 좋은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천국을 위한 복을 쌓았고 나는 영어실력이 차곡차곡 쌓였다.
종교적 감수성은 전혀 없지만 그래도 종교엔 관심이 많은 편이다. 종교만큼 그 사회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열쇠도 없기 때문이고, 종교의 역사는 언제나 흥미진진하기 때문이다. 어학연수할 때는 복음주의자 교회도 가봤고 몰몬교 예배도 참석해봤다. 튀르키예에서 온 내 친구 이스마엘과 함께 모스크를 방문해서 기도시간에 참석한 적도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한 남성이 내게 무슬림이냐고 물었다. 아니다, 다만 무슬림의 친구일 뿐이라고 웃으며 대답해줬다. 그 남성도 함께 웃으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우리는 악수를 했다.
전도는 취지와 무관하게 불신과 거리감의 원천이 된다. 2007년 사회부에 있을 당시 접했던 샘물교회 피랍 사태도 아프가니스탄에 단기선교단으로 간 샘물교회 교인들이 현지에서 선교를 하던 게 발단이 됐다. 어린이들 모아놓고 찬송가 가르치고 아랍어로 된 성경을 나눠주는 건, 다른 것 다 떠나서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이해가 안된다. 어차피 같은 신을 모시는 사람들인데 말이다. 설령 완전히 다른 종교라고 해도 그냥 각자 자기가 믿는 신 믿으라고 놔두면 안되는 걸까. 자신의 종교가 아무리 훌륭해도, 아랍에미리트까지 가서 그랜드 모스크 주변을 돌며 모스크가 무너지기를 기도하는 이른바 ‘땅밟기’를 선교활동이라는 이름으로 해야 하는 것일까. 땅밟기는 구약성경 여호수아기에 나오는 예리코 성을 함락시켰다는 전설에서 보듯 기본적으로 상대방을 멸망시키겠다는 관념을 바탕에 깔고 있다. 모스크를 찾는 사람들도 하나님의 자녀일텐데, 그런 행동에 기뻐하는 하나님이란 도대체 어떤 분이란 말인가.

2000년대 초반부터 대형교회가 주도하는 대규모 정치집회가 시작되며 영향력을 과시했는데, 정치적 영향력을 추구할수록 대중적 신뢰는 하락하는 듯 하다. 특히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흔드는 모습은 생뚱맞기도 했거니와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자타공인 독실한 신자인 이명박의 종교적 호들갑은 불신을 드높이는 전환점이 되지 않았나 싶다. 그때부터 개신교 신자들은 자신의 종교적 배경을 말하면서 이명박과 도매금으로 취급받는 걸 부담스러워하기 시작했다. 저는 교회는 다니지만 거기랑은 다릅니다. 그나마 대규모 개신교 집회는 이제 사랑제일교회 목사 겸 알뜰폰 사업자 전광훈의 전매특허가 돼 버린 지 오래다.
한동안 광화문 주변은 일요일만 되면 전광훈이 주최하는 예배 겸 기부금품 모집 행사가 빠지지 않고 열렸다. 근처를 지나갈때는 머리가 빠개지고 귀가 지끈지끈 아프니 고문이 따로 없었다. 나도 모르게 오만상을 찌푸리게 되는데 영화 ‘28일후’에 등장하는 분노 바이러스가 공상이라는 생각이 안 든다. 한번은 종종걸음으로 청계광장을 지나치다가 듣고야 말았다. 하긴 워낙 큰소리로 떠드는 데다 한영동시통역까지 하고 있으니 듣기 싫어도 듣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전광훈이 했던 말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내가 목사를 수백 명을 키웠어. 그런데 그 새끼들이 여기에 한 놈도 오질 않아(그 새끼라고 말했는지, 개새끼라고 말했는지는 불분명하다). 그래도 여기 모인 수백 명은 하나님이 축복을 해주실 거야. 여기 온 사람들은 죽어서 아무도 지옥에 안 가. 내가 하나님한테 그렇게 얘길 했어(기도했다고 했는지 시켰다고 했는지 기억이 확실하지 않다). 믿습니까?
확신에 찬 말씀을 듣고 보니 느끼는 게 적지 않았다. ‘하나님의 뜻’이란 게 참 편리하다. 누군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얘기하면 그걸 검증할 방법이 없다. 창조주 체면에 하늘나라 직인을 찍은 각서를 줄 것도 아니다. 자기가 그렇게 들었다는데 따로 증인이 있는 것도 아니다. 독대했다는 사람이 난청이 있다거나 문해력이 떨어져서 하나님 말씀을 오해하거나 왜곡해도 바로잡을 방법도 없다.(여기)
하긴 하나님의 뜻이란 평범한 장삼이사가 이해하기엔 너무나 난해하고 혼란스러울 뿐이다. 열왕기에서 임금이 필요하다고 하는 백성들에게 경고하는 얘기만 보면 아나키스트가 따로 없고, 지상에 재물을 쌓지 말라는 마태복음을 읽어보면 사회주의자들 보기에 좋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가 하면 창세기에선 믿음을 시험한답시고 늦둥이 외아들을 죽여보라며 가스라이팅과 살인교사를 하질 않나, 말 안 듣는다고 출애굽 동지들을 수천명씩 대량학살하는 게 전범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무엇보다도, 삼손이 찰랑거리는 머릿결에서 힘이 솟고, 선지자 엘리사를 대머리라고 놀리는 동네 꼬마 42명을 곰 두 마리로 남김없이 찢어죽인 걸 보면 역시 하나님은 탈모 스트레스에 마음 깊이 공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이 틀림없다(하긴 ‘어머니 하나님’이있으면 외아들이 죽어가는데 손 놓고 구경만 하고 있었을 리가 없다).(이 글에서 옮겼음.)

신이라는 존재가 세상만물을 창조하시고 전지전능하다면, 그러니까 세상 모든 것을 아시고 세상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는 존귀한 분이고 그분의 존재를 의식하고 명상한다면 오히려 동네방네 ‘하나님의 뜻’을 떠들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오히려 천문학이나 식물학, 동물학 같은 책을 더 열심히 읽으며 그분께서 창조한 이 세상의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을 탐구하는 것에서 기쁨과 보람을 느끼지 않을까. 또한 이해도 되지 않고 썩 마음에 들지도 않는 동성애자들을 보더라도, 그 또한 존귀하신 그분께서 만드신 아들딸이라는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외람된 흰소리를 지껄이는 대신 100년도 채 살지 못하는 인간이 어찌 그분의 깊은 뜻을 알 수 있겠느냐 하는 마음으로 섣부른 판단을 유보하며 겸손해져야 하지 않을까. 무엇보다도, 경건한 안식일에 고성방가로 하나님의 쉴 권리를 침해하면 안 된다는 두려운 마음을 갖게 되지 않을까.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해본다.
대학 시절 학생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식당 문 닫을 시간에 청소를 했는데, 식당 밥을 공짜로 먹을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하루는 청소를 마치고 커피를 한 잔 하는데 한 친구가 내 관상을 봐준다고 했다. 긴가민가하는 나를 요렇게 저렇게 살펴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넌 밥 굶을 일 없을 거야, 아주 잘 살겠어. 돈 많이 벌어? 아니 돈 버는 재주는 없는데, 들어온 돈이 밖으로 나가진 않겠다. 코스피 6000 돌파 뉴스를 보며, 아끼면 잘 산다는 말을 이렇게 우애 넘치게 해줬던 친구 생각이 났다. 다시 생각해봐도, 그 친구의 관상풀이는 종교의 가장 긍정적인 본보기였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