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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2

리비아 사막에서 길을 잃다 지난 2월 15일 최초로 시위가 벌어지고 한동안은 모든게 분명해 보였다. 시위는 ‘민주화시위’요, 반정부군은 ‘시민군’이었다. 민주화를 요구하며 거리로 뛰쳐나온 (용감한) 민주시민들을 잔인하게 진압하는 (사악한) 독재자. 리비아는 1980년 5월 광주와 겹쳐졌다. 전형적인 ‘민주 대 반민주’로는 제대로 해석이 안되는 구도가 보이기 시작한 건 3월부터였다.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넘어 무력개입 얘기까지 흘러나왔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거치지 않는 ‘인도적 지원’에 이르러서는 프레임 자체를 새로 구성해야 했다. 러시아투데이가 보도한 한 전직 영국 정보기관 간부 말마따나 “모든 인도적 지원 조치는 결국 대규모 침공을 위한 변명에 불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위 당시부터 리비아 상황을 되짚어보자. 벵가지 등에서.. 2011. 4. 10.
리비아 정국 이해하는 열쇠는? 부족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와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이 물너설 수 없는 극한충돌을 이어간다. 향후 리비아 정국을 이해하는 핵심열쇠로 부족들의 움직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리비아에서 국내 정치에 영향력을 가질만한 부족들은 30여개에 이른다. BBC방송에 따르면 카다피는 1969년 정권을 잡은 뒤 초기 10년 동안은 부족들을 평등하게 대하면서 고른 지지를 끌어냈다. 하지만 점차 각 부족들에게 당근과 채찍을 통해 부족들을 관리하는 방식으로 정권을 유지했다. 이로 인해 특정 부족이 정부와 군 요직을 차지하게 되면서 부족간 알력과 갈등이 누적됐다. 리비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부족은 와르팔라, 마가리하, 알진탄이다. 여기에 카다피가 부족장을 맡은 알카다파 부족을 포함해 리비아 4대 유력부족이 리비아 전체 인.. 2011. 3.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