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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6 19:00

‘관피아’를 위한 변명 (하): 공직 개혁, 어떻게 할 것인가

이 글은 '관피아'를 위한 변명(상): 철밥통이 잘못인가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편집자)

앞서 ‘철밥통’과 ‘관피아’로 대표할 수 있는 공직 개혁에 관한 상징 조작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철밥통/관피아 담론은 공무원 신분 보장의 필요성을 애써 무시하는 정치적 담론이다. 공무원의 신분보장은 전문성과 소명의식, 무엇보다 부패방지와 정치적 중립을 보장해 업무의 안정성과 연속성을 담보하기 위해 고안된 근대적 관료제도다. 이는 헌법을 통해 보장하는 가치다.

즉, 공무원의 신분보장을 공격하기보다는 민간에서도 신분보장을 확대해야 한다. 비정규직 800만에 최저임금도 못받는 노동자 200만인 나라에선 혁신도 없고 창조경제도 없고 경제성장도 없다. 그런데 거꾸로 공직 사회를 ‘관피아’ ‘철밥통’이라고 자극적인 용어로 비난한다.

 이는 민간의 신분보장 악화 상황을 공무원 영역에까지 이식하고, 모두 함께 죽자는 ‘자해공갈’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관피아/철밥통 담론의 귀결은 공적인 영역의 사영화(민영화) 그리고 무한경쟁일 수밖에 없다.

공직 개혁,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럼에도 공직 개혁의 필요성에는 모두 공감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공직을 개혁할 것인가.

박근혜 정부에서 공직사회 개혁 방안으로 거론하는 것들은 다음과 같다.

  • 순환 보직 타파 / 직위분류제 강화
  • 개방형 고위공직자 채용 확대
  • 민간경력채용(민경채)확대
  • 고시 축소 혹은 폐지

박근혜는 2014년 5월 19일 세월호 참사 대국민담화에서 “순환보직제를 개선해서 업무 연속성과 전문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개별 제도는 좋다 나쁘다 따지기 힘들다. 장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중요한 건 제도 간 정합성 혹은 제도간 충돌 여부다. 쉽게 말해 아무리 우수한 선수들로 축구팀을 구성해도 팀 전술과 경기스타일에 따라 강팀이 될 수도 있고 오합지졸이 될 수도 있다. "사회체제는 패키지 상품이지, 골라먹는 재미가 있는 옵션 상품이 아니다"

순환 보직 vs. 직위분류제

1. 순환 보직

현재 공직 인사는 일부 업무를 제외하고는 순환근무를 근간으로 한다. 1~2년을 주기로 여러 부서를 경험하게 함으로써 순발력 있게 다양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고 기관 전체 업무를 잘 이해하는 관리자를 육성하는 데 초점을 맞춘 제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재난·안전관리를 총괄 조정하게 돼 있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책임자 가운데 재난관리 전문가가 없었다는 것에서 보듯 전문성이란 잣대로 보면 취약할 수밖에 없다.

2. 직위분류제

직위분류제는 전문성 필요 영역을 정하고 그 영역에 대해서는 직무요건을 갖춘 후보자를 채용해 장기간 관련 업무에 종사하도록 해서 전문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춘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 분야에서 붙박이로 일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전문관료를 육성하는 데 효과적이다. 이는 “직무능력과 전문성에 따라 필요한 직무별로 필요한 시기에 (민간) 전문가를 뽑는 체제”를 전제로 한다.

‘직위분류제’ 껍데기 전락 위험

얼핏 직위분류제가 순환근무제보다 우월한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지금처럼 현장 전문인력에 실질적인 권한을 부여하지 않고 청와대 눈치 보기와 받아쓰기만 만연한 분위기에서 직위분류제란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법이 규정한 정년보장도 제대로 안 되는 현실에서는 특정분야 전문성보다는 어느 부서든 어느 정도 적응할 수 있는 일반능력이 더 유리할 수밖에 없으므로 직위분류제가 껍데기로 전락할 수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계급제와 직위분류제는 각기 장단점이 있다. 상호보완해서 운영하는 게 맞고 정부도 이미 그런 방향으로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직위분류제는 자칫 시야가 좁아져 종합적인 판단력이 떨어지거나 부처 할거주의 등 통합형 인사관리가 힘든 단점이 있지만, 계급제는 순발력 있게 다양한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좋고 부서 간 협력과 조정이 용이한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동덕여대 교양교직학부(행정학) 교수 박현신은 “내부에서 승진한 고위 관료의 경우 특정 분야의 전문성은 떨어질 수 있지만, 정책 조정 등 여러 분야에 걸쳐있는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강점을 보일 수 있다. 반면 전문가로 공직에 들어온 경우 특정 분야에서는 두각을 드러낼 수 있지만 여러 부처에 걸친 종합적 정책 판단 역량은 떨어질 수 있다”면서 “하나의 인사 원칙을 전체 부처에 일괄 적용하기보다는 정책 성격이나 기능, 내용에 따라서 전문가와 일반 행정가의 인사 운영을 다르게 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개방형 고위공직자 채용 확대안

1. 필요성은 인정, 하지만 능력? 도덕성? 기대 없다!

그렇다면 개방형 확대 등 민간채용 확대는 어떨까? 인사행정을 전문으로 하는 교수 등 전문가 35명을 대상으로 정부 방침에 대한 설문 조사를 실행해봤다. 전문가들은 민간 경력자 채용을 놓고 22명(62.8%)은 채용 확대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민간 경력 채용 제도 중 하나인 개방형 직위를 통한 외부 임용 확대에 대해서는 25명(71.5%)이 필요성을 공감했다. 그러면서도 ‘외부 출신 공직자가 고시 출신보다 역량과 직무 능력이 뛰어나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공감한다는 응답은 12명(34.3%)에 불과했다.

제대로 된 검증 없는 ‘개방형’ 인사는 ‘회전문’ 인사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사진: Marcel Oosterwijk, CC BY SA)

2. ‘회전문 인사’로 전락할 위험

정부는 전·현직 관료들의 유착 고리를 끊기 위해 민간 전문가 영입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민간 경력 출신 공무원이 기존 일반 공무원보다 청렴하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17명(48.5%)이 동의하지 않는다고 반응한 점은 민간 채용 확대가 자칫 미국식 ‘회전문’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부패 방지를 위한 보완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임도빈은 특히 개방형 고위공직자를 단기간에 대폭 확대할 경우 “민간 전문가 중에서 공공봉사, 공직윤리 의식을 갖지 못한 사람이 들어올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그는 “개방형 직위를 통해 외부에서 들어온 민간 전문가, 특히 기업 쪽 출신들은 정책 결정 과정에서 자칫 공정성을 해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 “그게 바로 민간 전문가의 청렴도가 높다고만 볼 수 없는 이유”라고 밝혔다.

3. 정책 추진 연속성도 고려해야

강제상은 “개방형에선 일에 맡는 사람을 그때그때 뽑으니까 특정 업무 전문성을 중시하지만, 계급제에선 공무원이라는 사람의 일반적인 역량을 높이는데 더 관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오히려 문제는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근속기간을 충분히 부여하지 않고 너무 빨리 교체해 버린다는 것”이라면서 “한 자리에 오래 일할 수 있도록 근무기간을 보장하지 않다가 이제 와서 전문성이 없다고 비난하는 건 진단 자체가 잘못됐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외부 수혈만 강조하다 보면 전문성 못지않게 중요한 정책 추진의 연속성이 떨어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4. 대안: 학자, 시민단체 등 공공성 영역 민간 전문가를 영입하자

대안을 제시한다면, 개방형에 대한 전제를 조금만 바꾸면 어떨까 싶다.

민간출신이 일반적 공무원보다 덜 청렴하다는 전문가 지적은 다분히 민간기업 출신을 염두에 둔 것이다. 사실 개방형직위 자체가 그런 방향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하지만 개방형 직위로 들어오는 사람을 민간기업 위주로 생각할 게 아니라 시민단체처럼 공공성이 강한 영역에서 활동하던 민간 전문가들로 하면 이해충돌 문제도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급여 수준에 따른 갈등도 적을 수밖에 없고 퇴직 후 자기 본업으로 돌아가도 민관협력에 대한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더 높은 수준의 협치(거버넌스)를 구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공무원 아닌 척하는 대통령의 공무원 죽이기

우리는 왜 이토록 공무원을 비난하고 정부를 불신하는가. 가장 큰 이유는 당연히 정부가 제구실을 못 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공무원을 대표하는 대통령이 마치 자기는 공무원 아닌 척 공무원들을 비난하고 욕보이는데 우리가 부화뇌동해야 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세월호 참사 과정에서 나타난 정부의 부실과 난맥상은 백번 비판하고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을 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 목적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제대로 된 정부’를 만드는 것인지, ‘나는 사오정 오륙도 걱정하는데 자기들만 정규직에 정년 보장되는 공무원’을 때려잡아서 하향 평준화하자는 것인지 분명히 구별할 필요가 있다.

공직 개혁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공공성과 ‘국가의 역할’ 회복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 서둘러 정책 발표하면 ‘졸속행정’이라 비난하다가 신중하게 정책 검토하면 ‘늑장행정’이라 욕하는 방식으로는 ‘좋은 정부’를 만들 수 없다.

이 글은 그간 고민과 기사에 담지못한 취재내용을 바탕으로 서울신문에 썼던 여러 기사를 대폭 수정 보완 종합한 결과물이란 점을 밝힙니다. 슬로우뉴스에도 동시 발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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