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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7 00:30

전혀 객관적이지 않은 모순덩어리 '객관성'


지난해 2학기 질적연구방법론 수업 당시 기말고사용으로 제출한 짧막한 보고서였는데 '객관성' 개념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내용을 좀 더 다듬어 나중에 논문에 써먹고 싶은데 찬찬히 다시 읽어보니 허점이 엄청나게 많아 민망하다. 그래도 블로그에 올리는건 혹여 도움을 주는 조언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 때문이다. 가차없는 비판을 기대해 본다. 


  
1930
년대 미국 사회심리학자 Sherif(1935) 객관성에 대한 매우 흥미로운 연구를 시도했다. 그는 소규모 집단을 어두운 방에 집어넣었는데 실험 참가자는 앞에 있는 중앙에서 불빛 점을 있었다. Sherif 빛이 움직일 것이라고 설명했고 실험 대상자들은 불빛이 얼마나 멀리 움직이는지 보고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안이 너무 어두워 거리를 달리 측정할 방법은 없었다


놀랍게도
, 집단은 불빛이 얼마나 움직였는지 합의에 도달했다. 하지만 합의는 집단마다 제각각이었다. 사실 불빛은 실험 내내 제자리에 있었다. " 집단이 특정한 망상에 합의했다는 점에 주목하라. 그들에게 빛의 운동은 사실적이었다. 그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창조된 실체였다. 다시 말해, 사회적으로 구성된 실체였던 것이다(Babbie, 2007: 61)."


  
실험을 언급하면서 Babbie(2007: 60~61) "객관성은 개인들의 관점을 넘어서기 위한 개념적 시도다. 객관성이란 궁극적으로는 당신과 사이에서 발견할 있는 주관적 경험에 대한 공통된 근거를 찾는 것과 같이 의사소통의 문제인 것이다. 연구가 성공적으로 끝날 때마다, 우리는 실체를 객관적으로 다루었다고 말한다." 지적한다.

17
세기부터 지금까지도 과학을 주도하는 것은 개인의 인지적 사고에서 독립된 객관적 실체가 있다는 믿음이었다. '실증주의' "논리적으로 질서정연하고 객관적인 실체에 대한 믿음을 대표해 왔다." 있다.

  Abelmann(1997; 조용환, 1999: 24-26에서 재인용)은 한국 여성의 계급의식을 다룬 연구를 통해 객관적 실체인 것처럼 보이는 계급조차도 그런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연구에서 한국 여성의 계급의식은 자신이 현재 속한 가족의 객관적인 계급지위보다는 과거 자신이 속했던 친정의 계급기반과 미래에 자기 자녀들이 갖기를 바라는 계급지위에 영향을 받는다.

가령
Abelmann 인터뷰한 강씨 부인(50 후반) 서울 빈민지역에서 전세로 얻은 세탁소를 운영하면서도 자신을 하류층이 아니라 중산층으로 인식한다. 이유는 자신이 양반 가문에서 태어났고 친정 형제들이 중산층인데다 자녀들도 웬만큼 산다는 사실 때문이다. 비록 자신이 "때를 잘못 만났고"  "남편을 잘못 만나서 평생 고생" 하지만 강씨 부인에게 중요한 객관적인 계급지위가 아니라 친정의 계급기반, 그리고 자녀들이 '객관적인' 중산층이 됐다는 주관적인 계급의식이다.

  이렇듯 객관성이라는 개념이 과연 얼마나 객관적이냐는 문제제기가 끊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회과학에서 객관성이 차지하는 위상은 여전히 강고하다특히 질적연구를 비판할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이 바로 객관성이 부족하다는 점이다조용환(1999) 이렇게 반박한다.

 "양적 연구자들은 '과학은 객관적이어야 한다' 신화를 믿는다그러나 질적 연구자의 눈에는  신화의 '객관성' 많은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우선, 객관성의 가장  취약점은 '누가 보아도 그렇다' 주장은 그렇게 보지 않는   사람의 출현으로 쉽게 허물어지는  있다. 또한 객관성은 '사람의 ' 불신한다는 점에서  존재 기반이 허약하다객관성의 신화를 맹신하는 사람들은 부단히 '달리 보는 사람() 출현을 우려할  아니라 자신의 눈마저 계속 의심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다그러한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들은 '사람의 밖에 (실상은  위에허구적인 '사물의 ' 설정한다바꾸어 말하면사물의 기준을 빌어서 자신의 객관성을 입증한다(조용환, 1999: 26)."

 
 
객관성과 주관성을 보는 관점 차이는 실증주의적 인식론과 구성주의적 인식론의 차이로 정리할 있다. 적연구는 보는 눈과 관계없이 사물이 보편적으로 실재한다고 믿는 실증주의적 인식론에 기반하는데 반해, 질적연구는 보는 눈에 따라 사물을 달리 인식한다는 점을 전제로 하는 현상학적 인식론에 기반하고 있다(조용환, 1999: 16). 조용환(1999: 16) 따르면 세상을 구성과 해석의 관점에서 인식한다는 점에서 현상학적 인식론은 구성주의나 해석주의와 혼용할 있다.

  Miller&Fox(2001: 675) 실증주의적 연구방법에 대해 "객관과 주관의 분리, 사실과 가치의 분리, 보편적 연역모델의 존재, 역사적 맥락과 무관한 사회과학적 지식의 존재를 가정하고 '보편적 대진리' 추구한다." 지적한다. 하지만 실증주의적 관점 자체가 거센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무엇보다 객관성이라는 관념 자체가 객관적이지 않다는 역설적 상황에 자주 직면한다.

  Babbie(2007: 61)
"과거에 서구 사회과학에서 객관성이라고 간주되어 오던 것들은 실제로 유럽의 백인, 중산층 남성의 합의에서 나온 것들"이라고 지적한다. 때문에 그는 이렇게 강조한다


"과학이 객관적 세계를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다는 실증주의자들의 믿음은 궁극적으로는 신앙적 신뢰에 바탕을 두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를 알고 있는 시점에서 신뢰는 '객관적' 과학으로 증명할 없다. 아무것도 객관적인 것은 없으며 따라서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주관적이라고 말하는 탈현대주의자들은 실제로 그렇다고 느낀다(Babbie, 2007: 62)."

 
  실증주의에 입각한 분석방법의 문제점은 현실 공공정책에 적용할 더욱 심각한 양상을 있다. Ostrom(2010: 54~57) 이와 관련, "현실에 대한 지나친 단순화에 기초한 정책(54)" 위험성을 경고한다. 오스트롬은 "모델을 은유적으로 사용하는 목적이 유사성에 대한 주목을 환기시키는 것이라면, 이는 분명하고 신속한 정보 전달에 기여하는 것으로 있다(32)"면서도 "정책적 처방전이 은유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55)." "간명한 분석 모델은 좋은 정책 분석을 위한 이론적 토대의 부분이 수는 있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342)." 강조한다.

  그
이유에 대해 오스트롬은 "어느 모델에서 명쾌한 결과를 얻으려면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일부 변수들을 생략하거나 상수로 취급"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왜냐하면 "많은 학문 영역에서 명료한 예측을 낳을 있는 엄밀한 분석적 모델에 대한 강력한 선호(330)"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이론가들은 단순한 가정을 채택해야(330)"하는데 오스트롬에 따르면 "이러한 단순한 가정은 이를테면 매개 변수를 상수화하는 것과 같다(330)".

  다시
말하면 "변수를 상수화하는 것은 모델의 적용 범위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줄이는 것이다(331). " 나아가, 상황 구조를 불변 혹은 '외재적으로 주어진 '으로 간주하는 모델에 입각한 정책은 상황 밖의 누군가가 상황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정책 권고로 이어진다(331)." 결과 "완전한 정보나 독자적 행동, 완벽한 대칭성, 무오류 인간, 수용 가능한 행위 규범의 부재, 비용이 들지 않는 감시 활동 집행, 상황 구조 자체를 변화시킬 있는 역량 부재 등의 가정에 입각한 모델들은 단지 분석가들이 정밀한 예측을 내놓도록(343)" 해줄 뿐이다.

 
오스트롬은 "이론의 위력은 이론을 적용시킬 있는 상황의 다양성에 비례(58)"하지만 "어느 이론이든지 한계를 갖게 마련(58)이고 더구나 "이론을 바탕으로 구성된 모델은 한계를 지닌다(58)" 점을 말한다. 더구나 "이론의 적용으로서의 모델을, 예를 들어 완전 경쟁 시장 모델을, 이론과 혼동하면 이론의 적용 가능성을 더욱 제약한다(58)." 밝혔다. 

  
이런 태도는 연구자를 지적 함정에 빠트리게 된다. 오스트롬은 다음과 같이 꼬집는다


"정책 분석의 기초를 제공하기 위해 모델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데에 따르는 지적 함정은 연구자들이 스스로를 모든 것을 아는 전지(全知) 관찰자로 가정하여, 복잡하고 역동적인 체제의 몇몇 양상에 대한 상투적 기술을 행하는 것으로써 마치 체제가 어떻게 작동되는지 모든 핵심적 사항을 이해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전지' 전제로 잘못된 확신을 가지고, 학자들은 모든 실제 상황에 존재하는 결함을 교정할 있다는 '전능(全能)' 힘이 자신들의 모델에 있는 것인 , 정부에 대하여 제안서를 제출하면서도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못한다(380~381)."

 
 오스트롬이 비판하는 점들은 고스란히 실증주의적 분석방법의 한계점에 해당한다고   있다.  

 
객관적 실체 자체를 거부하려는 구성주의적 관점은 허무주의로 귀결된다거나 사회과학의 기본 전제 자체를 무너뜨린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와 관련 역사학자 젠킨스(1999) '객관적 역사서술'이라는 개념 자체를 비판한 대안으로 '객관성' 아니라 '공정성' 제시한다.

  전통적인
역사서술은 극좌에서 극우까지 1에서 10까지 단선으로 가정한 반드시 5라는 균형점을 유지해야 한다는 관념에 입각해 있었다. 하지만 이는 애초에 불가능한 목표다. 젠킨스는 오히려 각자의 입장 위에 1에서 10 이르는 추를 맞추는 것을 강조한다. , 연구자는 1 위치할 수도 있고 10 위치할 수도 있지만 입장 위에서 1에서 10 '공정'하게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그가 '무엇이 역사인가' 혹은 '어떤 역사적 사실이 있었는가'라고 묻지 않고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라고 묻는 이유이다.


  "나는 역사란 기본적으로 상충되는 담론, 즉 사람과 계급과 집단이 말 그대로 자신들을 위해 과거의 해석을 자서전적으로 구성해내는 전쟁터이기 때문에 이해의 차이는 바로 이곳에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어떤 역사든 이러한 압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일시적인 합의라는 것은 지배적인 힘이 공공연한 권력이나 은밀한 개입을 통해 다른 사람을 침묵시킬수 있을 때만 달성된다. 역사는 이론이고 이론은 이데올로기적이며 이데올로기는 바로 물질적 이해일 뿐이다. 이 이데올로기는 사회구성 가운데 전적으로 이데올로기라는 목적을 위해 구분된 제도, 특히 대학에서 행해지는 역사만들기의 일상적 관행을 포함한 모든 역사의 구석구석에까지 파고든다(젠킨스, 1999).

  

  담론분석 역시 실증주의를 지양하는 연구태도를 견지한다. 담론분석은 해석학, 비판이론, 구성주의 다양한 인식론적 뿌리를 두고 있지만 핵심 공통분모는 보편타당한 절대적 진리표준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이런 특성 때문에 담론분석은 문제주도적 연구 특색을 띄고, 특정 이론을 등장하게 만든 사회적 조건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것을 목표로 삼게 된다(강국진.김성해, 2011: 217).

<참고문헌>


강국진·김성해.(2011). 정치화된 정책과 정책의 담론화: 부자감세 담론의 역사성과 정치성. 『한국행정학보』,45(2): 215~240.

조용환.(1999). 『질적 연구: 방법과 사례』. 교육과학사.

케이스 젠킨스.(1999).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 최용찬 옮김. 혜안.

Abelmann, N.(1997). Woman's Class Mobility and Identities in South Korea: A Gendered Transnational, Narrative Approach. The Journal of Asian Studies, 56(2): 398-420.

Babbie, Earl.(2007). 『사회조사방법론(제11판)』. 고성호 외 옮김, 센게이지러닝코리아; The Practice of Social Research(11th Edition), Cengage Learning, 2007.

Miller&Fox.(2001). The epistemic Community. Administration and Society,32(6): 668~685.

Ostrom, E.(2010). 『공유의 비극을 넘어서; 공유자원 관리를 위한 제도의 진화』, 윤홍근·안동경(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Governing the Commons: The Evolution of Institutions for Collective Action,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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