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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說

<자작나무숲>님의 정치성향은 □□□□다.

by betulo 2009.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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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정치성향을 나누는 기준은 꽤나 ‘천박’하다. 내 경험으로는, 1992년 무렵 미국을 비판하는 얘길 했다가 후배한테서 “운동권”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간단한 경찰조사를 받을 당시 나는 “<태백산맥>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비롯한 ‘사회과학’ 서적을 읽었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어떤 분은 “6.25는 남침이냐 북침이냐”로 내 정체성을 규정하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운동권”은 “빨갱이”를 완곡하게 표현한 것으로 이해해도 무방할 게다. 사회과학 서적을 읽는 것은 “너는 운동권이냐”는 질문이고 이 역시 “너는 빨갱이냐”와 같은 뜻이다. “북침”이라는 대답도 “나는 공산당이 좋아요” 혹은 “나는 빨갱이입니다”라는 말과 똑같은 효력을 갖는다. 결국 그 모든 질문들은 ‘빨갱이와 그렇지 않은 사람’ ‘나쁜 놈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사람을 가른다.


21세기가 되면서 세상은 좀 더 좋아지는 듯 했다. 내가 ‘운동권’ 소리를 듣고 나서 10년 후인 2002년 겨울 세종로 사거리에선 내가 했던 것보다 더 ‘쎈’ 발언이 울려퍼졌고 열렬한 박수를 받았다. <태백산맥>은 이적성이 없다는 판결을 받았고 <난쏘공>은 스터디셀러로 여전히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한국전쟁과 관련해서도 ‘총을 누가 먼저 쐈느냐’를 벗어나 보도연맹사건이나 제2국민방위군사건 같은 민간인학살 혹은 국가폭력에 관심을 기울이게 됐고 빨갱이로 낙인찍히며 자신의 땅에서 유폐된 사람들 얘기가 공감대를 얻기도 했다.


하지만 역사는 전진할 때가 있으면 반동도 있다. 다시금 ‘좌빨’과 ‘수꼴’이라는 수준 떨어지는 이분법이 횡행하는 시절이 왔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상황의 1차 책임은 말 그대로 ‘수꼴’에게 있다. 언제나 그렇듯이 한국사회에 가장 필요한 건 ‘진정한 보수우파’가 많아지는 거다.


문제는 한국에서 자신의 정치성향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하는거다. 진보신당 대표 노회찬이 서울신문와서 강연하면서 이런 얘길 했다. “보험판매하는 분들 수십명과 대화를 할때 핀란드 공교육 얘길 해줬다. 설명을 들은 분들이 하나같이 ‘세금 더 내도 좋으니 우리 아이가 그런 공교육을 받으면 소원이 없겠다’라고 하더라.” 이 아줌마들의 정치성향은 우파 자유주의일까? 아니면 좌파 사민주의일까?


이념지향 혹은 정치성향을 왜곡시키는 대단히 큰 책임은 정치권과 언론에 있다. 자주 찾는 블로그 <현실창조공간>을 운영하는 ‘리승환’님이 잘 표현한대로 한국 언론에서는 기준이 너무 명쾌해서 문제다.




‘리승환’님은 꽤 가치가 있는 정치성향 자가진단 방법을 소개했는데 내가 보기에도 굉장히 유익하다. 하여 꽤나 실용적이고 상대적으로 정확한 이 방법을 소개할까 한다. 아울러 이 방법을 통해 내 정치성향도 점검해보고 싶다.


피앤씨정책개발원(www.pncreport.com)에서 10분만 투자할 수 있는 이 정치성향 자가진단법은 이른바 ‘블런델-고스초크 모델’이라고 한다. 사이트에서 소개하는 내용을 요약해 따라가보자.


한국에서 정치성향은 좌빨과 수꼴 두개뿐?


“한국사회는 분단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현실적으로 이념지형 자체가 형성되지 못했는데도 이념지표를 사용하는 것은 그 출발부터 무리가 있다. 전후 한국사회는 ‘좌파’ 존재 자체를 부정ㆍ탄압해 왔으며, 1980년대 학생운동ㆍ노동운동 진영에서 발생한 자생적 좌파세력 역시 사회주의 국가 붕괴 이후 소멸되다시피 하면서 이념지형 자체가 거의 형성되지 못했다. 용어로도 ‘좌파’ 라는 말이 금기시되면서 ‘진보’ ‘개혁’ 등을 혼용, 이념지형 형성에 있어 많은 혼란을 야기시킨다. 민주노동당 등은 ‘좌파’로 분류할 수 있으나 이들 역시 ‘진보’ 라는 용어를 택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서론이다. 이 다음이 중요하다. 바로 “국민들은 이념적 태도에 의한 정당선택 경험이 없다”는 대목이다.


“일반 국민들은 좌파정당 vs 우파정당의 대립을 경험해 본적이 없으며, 정당지지 역시 우파들의 보수정당 중에서 선택해 왔다. 이렇듯 이념지형이 거의 형성되지 못한 한국사회에 진보 vs 보수 라는 이념적 분석틀을 적용하는 것은 매우 한계가 많다. 예를 들어 보수주의자라 할 수 있는 이명박 전 시장이 유권자들에게 ‘진보적’ 이라고 평가받는 것은 한국사회에서의 이념분석틀의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자 그럼 우리가 해보려고 하는 모델은 어떤게 장점일까. 바로 “전통적 좌우대립 축 (경제적 태도)에 개인주의 축을 추가한 모델을 적용했다.”는 점이다. 1997년, 영국의 존 블런델(John Blundell)과 브라이언 고스초크(Brian Gosschalk)는 영국에서 사회적ㆍ정치적 태도에 따라 보수주의적, 자유지상주의적, 사민주의적, 권위주의적이라고 일컫는 네 집단으로 나누어지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블런델-고스초크 모델에 따른 각 유형별 특징


보수주의적(conservative) : 신자유주의적인 것으로 시장의 자유에 찬성하지만 가족, 마약, 낙태와 같은 쟁점에서는 강력한 국가 통제를 원함

자유지상주의적(libertarians) : 모든 방면에서 개인주의와 낮은 수준의 국가 관여를 원함

사민주의적(socialists : 진보.개혁주의적) : 보수주의자들과 반대로 경제 생활에서 더 많은 국가 관여를 바라고 시장을 불신하고 있으나 도덕적 쟁점에 관한 한 정부관여에 회의적

권위주의적(authoritarian : 국가주의적) : 경제적인 것과 도덕적인 것 양자를 포함하여 모든 영역에서 정부가 강력한 통제를 유지하기를 희망함


자 그럼 나와 함께 정치성향 자가진단을 해봅시다. 질문은 22개다. 간략한 질문에 대해 동의와 반대로 5점척도를 한다. 실제 해보면 10분이 채 안걸린다.


<자작나무숲>의 정치성향은?


첫 번째 질문. “자유로운 기업활동과 시장활성화를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을 지금보다 축소해야 한다.”
나는 이 주장에 매우 반대한다. ‘시장’과 ‘정부’ 모두 경제를 구성하는 제도일 뿐이다. ‘시장이냐 정부냐’ 하는 주장 자체가 성립할 수 없는 우문(愚問)이라고 본다.


(2) “공정한 시장경제를 위해 출자총액제한제도 등 대기업규제는 유지되어야 한다.”
이런 걸 하라고 정부가 있는거다. 정부가 이런 제도를 잘 관리하는게 경제발전을 위해 필요하다. 시장 발전을 위해서도. 하지만 출자총액제한제도의 적절성과 실효성에 대해서는 진보성향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이견이 있다. 나 자신 경제학에는 문외한이지만 그 ‘이견’도 경청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


(3) “중소기업 경쟁력은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정부가 중소기업을 지원해서는 안된다.”
아까와 같은 맥락에서 이건 대단히 잘못된 정책방향이다. 기업 경쟁력은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으로 만들어진다. 맞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지금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삼성, 현대 등 재벌기업의 첫 경쟁력은 어디에서 나왔나. 현대는 적산불하, 삼성은 3불산업 편승이었다. 모두 정부정책에 엄청나게 큰 빚을 졌다. 발전과정도 정부정책에 빚을 졌다. 그리고 그보다 더 큰 빚을 경제발전 과정에서 국민들의 희생과 고통분담(혹은 고통전담)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4) “일자리를 늘리는 것은 시장과 기업에서 해야 할 일이지 정부가 할 일이 아니다.”
시장과 기업이 해야 할 일이고 또한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70년대 중공업 우선 정책으로 엄청난 중공업 일자리를 창출했던 걸 기억해보자. 포항제철은 또 어떤가. 또한, 우리에게 필요한 건 ‘행정인턴’이 아니라 사회복지서비스 강화를 위한 공공일자리 확충이다.


(5) “우리나라 기업들은 공공의 이익에는 관심도 없고 기여하는 것도 없다.”
기업 일반에 대해서라면 다르게 생각하겠지만 솔직히 ‘우리나라 기업들’ 상당수에겐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일부 기업은 예외겠지만. 이 역시 기업으로 하여금 공공이익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정부정책과 제도가 미비한 것에도 큰 영향이 있다고 본다.


(6) “경제성장도 중요하지만 소득양극화 대책과 중산층, 서민을 보호하는 것이 더 시급한 과제다.”
맞다. 소득양극화가 극심한 사회에선 경제성장도 안된다. 남미를 보자. 풍부한 자연자원을 가진 남미는 한때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신흥경제지역이었다. 하지만 소득양극화가 발목을 잡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 경제성장을 하는 목적이 뭔가? 어느 정도 소득차이는 인정하지만 기본적으로는 함께 잘살기 위함이다. 사흘 굶은 옆집 사람이 언제 먹을걸 훔치러 우리집에 올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 만찬을 벌이는 게 행복할까.


(7) “민간기업의 국내 투자나 고용은 기업의 자율적인 판단에 맡길 일로 정부가 간섭해서는 안된다.”
당연히 말도 안되는 얘기다. 장하준 교수가 <국가의 역할>에서 지적했듯이 ‘기업가정신’도 국가가 해야할 중요한 구실 가운데 하나다. 우리가 누리는 세계최고 수준의 인터넷과 휴대전화 등은 상당 부분 정부가 적극적으로 그 분야에 예산을 배정하고 인력을 배치하고 발전을 독려한 ‘정책’에 빚지고 있다.


(8) “토지나 아파트 같은 부동산을 일반적인 상품처럼 자유롭게 사고 팔 수 있도록 허용해서는 안된다.”
토지공개념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이 주장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상적으로 비친다는 건 잘 알지만. 토지나 아파트는 “일반적인 상품”과는 다르니까.


'국가의 역할'은 긍정해야 한다


(9) “복지 등 정부지원을 늘리면 사람들이 나태해져서 실업자가 더 늘어나게 된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다. “이등병은 잘해주면 기어오른다.” “마누라와 북어는 시간 날 때마다 패줘야 한다.” “후배들이 버르장머리가 없어. 옛날처럼 고생을 안시켜서 그런거야.” 이 모든 말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그 권력을 놓치기 싫어서 하는 말이다. 그들이 바로 조그만 비판을 귀에 담을 자신도 없는 ‘나태한’ 이들이다.


(10) “우리나라는 부유층에 지나치게 많은 세금을 물리고 있다.”
사실은 정 반대다. 우리나라에서 그들은 지나치게 세금을 적게 낸다.
2011/12/06 - 주식양도차익 '소득' 있는 곳에 '과세'도 있어야 한다
2009/11/30 - 독일법원 판결 통해 임시투자세액공제를 생각한다
2011/10/29 - 신용카드 소득공제는 반서민 정책이다

(11) “노후준비는 개인이 알아서 할 문제다.”
질문은 처음에 경제문제에 대한 국가의 역할을 묻다가 점차 사회복지정책에 대한 국가의 역할을 묻고 있다. 노후준비는 공동체가 함께 풀어줄 문제다. 가난해도 정이 있었던 예전 시골에서 그랬듯이.


(12) “내 의료보험료가 돈 없는 사람들의 의료비로 사용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이해한다. 그래야 한다. 세금이야말로 ‘연대’의 매개체가 돼야 한다.


(13) “같은 분야라면 민간 기업보다 공기업이 더 신뢰가 간다.”
나는 이번주에 공기업 직원들의 상상초월 황당 근무행태 기사를 두 개나 썼다. 공기업이 신뢰를 받기를 바란다. 그건 공공성에 기반할 때 가능하다. 하지만 요즘은 공기업에게 돈벌이를 강조하면서 통제는 예전 공공성 강조하던 시절에 맞춘다. 이번 질문은 대답하기가 힘들다.


(14) “어려운 사람과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세금을 더 많이 낼 생각이 있다.”
그래야 한다. 그럴 용의가 있다. 물론 그러려면 세금이 제대로 쓰인다는 확신을 국민들에게 줘야 한다. 제발 좀 예산낭비 좀 그만 했으면 좋겠다. 요즘 경제위기라고 한다. 정부는 한입으론 세금을 줄인다고 하고 다른 입으로는 경기부양한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 지금 필요한건 증세와 경기부양이다. 더 걷은 세금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웃을 위해 써야 한다.


(15) “정부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
이건 헌법에도 나와있는 원칙이다. 정부가 자꾸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니까 문제가 될 뿐이다.


(16) “교육비를 더 많이 낼 수 있는 사람이 수준높은 교육을 받고자 한다면 허용해 줘야 한다.”
나는 반대다. 핀란드 공교육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공부잘하는 학생과 공부 못하는 학생이 서로 어울려봐야 하고 부자 학생과 가난한 학생이 같은 반에서 쌈박질도 해봐야 한다. 그렇게 커야 세상을 넓게 볼 수 있다. 세상에 저같은 사람만 있는 줄 알고 큰 어른들이 어떻게 되는지는 뉴스에 등장하는 재벌2세들의 행태로 자주 보지 않았나.


(17) “어떠한 일이 있어도 정부가 개개인의 생각이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된다.”
15번 질문과 비슷하지만 맥락은 다르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개인 자유를 일부 제한하는 것과 개개인의 머릿속을 통제하는 건 다른 문제다. 더 이상 ‘미네르바’같은 희생자가 나오길 원하지 않는다.


(18) “범죄예방을 위해 경찰의 불심검문을 허용해야 한다.”

90년대 불심검문을 받아본 경험이 있다. 영장도 없는 불심검문을 허용하면 그 다음엔 불심검문 불응하면 유치장 가두자고 할 거다. 권력이란 끊임없이 감시하고 견제하지 않으면 “마누라와 북어는 패줘야 맛”이라는 환상에 빠지게 된다.


(19) “늘어가는 범죄를 막기 위해 CCTV를 확대하고 검경의 도청도 제한적으로 허용해야 한다.”

아까와 같은 맥락이다. 세계에서 CCTV가 가장 많은 영국조차도 CCTV의 ‘실용성’은 검증된 적 없다. CCTV를 다룬 ‘그것이 알고 싶다’의 결론은 우리가 두고두고 생각해봐야 할 화두다. “범죄의 손길에서 우리 아이를 지켜주는 건 CCTV의 차가운 모니터가 아니라 우리 이웃들의 따뜻한 관심이다.” CCTV는 범죄앞에 직면한 아이를 그저 지켜보고 촬영하는 사후약방문일 뿐이다. 범죄자를 잡는데는 편리해서 경찰의 위신을 세우는데는 좋을 지 모르지만 아이를 구해주진 못한다. 도청? 그건 불심검문과 다를게 없다.


(20) “정부는 언론을 감시하거나 통제할 가능성이 있는 어떠한 방법도 가져서는 안된다.”

항상 ‘어떠한 ...도 안된다’는 말은 위험하다. 언론이란 가면을 쓴 생활정보지는 어찌해야 할까? 언론의 탈을 쓴 정치집단은 어찌해야 할까? 언론이든 종교든 정부든 뭐든 간에 성역은 없다. 필요한 규제는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 질문은 감시와 통제라고 물었다. 그러므로 동의하는 편이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21) “우리 사회 모두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내 개인의 이익을 어느정도 희생할 수 있다.”

사실 그렇다. 나는 동의한다.


(22) “정부가 하는 일에 대해서는 가급적 믿고 따라줘야 한다.”

원론적으로는 동의하고 싶기도 하지만 정부가 믿을 만하게 일한 적은 내 기억엔 없었다. 너무 어려운 질문이다. 대답을 회피하기로 한다.


자 그럼 결과를 볼 시간이다.


자유시장 -23, 개인자유 6으로 나왔다. 이게 갖는 의미를 찾아보자.



아하. 나는 사민주의 성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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