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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로이2

자다(Jada) - 날씨를 내맘대로 1232년 1월 당시 금나라의 서울인 개봉의 서남쪽 삼봉산(三峰山). 이 곳에서 몽골군과 15만의 금나라군이 나라의 운명을 걸고 맞붙었다. 몽골군 총사령관은 칭기스칸의 막내아들 톨로이(Tolui). 금나라는 완안합달(完顔哈達)이었다. 당시 몽골군의 병력은 1만 3천이라고도 하고, 4만이라고도 한다. 몽골군은 참호를 파고 말과 몸을 숨겼다. 계속된 폭설로 세상은 온통 눈으로 뒤덮였다. 금나라 군대는 사력을 다해 공격을 거듭했지만 큰 타격을 입히지도 못한 채 추위와 허기로 급격히 전력이 약해져 버렸다. 이 때를 놓치지 않고 몽골군은 반격을 시작했다. 금나라의 최정예 부대는 전멸했다. 금나라는 저항할 힘조차 잃어버렸다. 왜 톨로이는 참호를 파고 말과 몸을 숨기는 작전을 썼을까? 기병전은 참호전과는 영 어울리지.. 2007. 7. 21.
코빌라이(쿠빌라이)가 카간이 되기까지 대몽골제국의 네 번째 카간인 '멍케'는 칭기스칸의 손자로서 카간이 되기 전부터 그 능력을 검증 받은 사람이었다. 여러 나라 말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유클리드 기하학을 비롯해 동·서의 학술과 문화에 능통했다. 동쪽으로는 아버지 톨로이를 따라 금나라의 숨통을 끊어버린 전쟁에 참여했다. 서쪽으로는 바토(Batu, 칭기스칸의 큰아들인 조치의 아들)와 함께 헝가리까지 나아갔다. 멍케는 명실상부한 "준비된 황제"였다. 그는 지난 수년간 정체상태에 있던 세계 정복계획을 다시 추진했다. 동으로는 남송을 정복하고, 서로는 지중해를 넘어 유럽까지 나가고자 했다. 남송 공략의 책임자가 바로 그의 친동생인 코빌라이였다. 코빌라이의 젊은 시절 행적은 알려진 게 거의 없다. 1251년, 그는 서른 일곱 살의 나이로 세계 무대의.. 2007. 7.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