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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12

내가 홍명보 유임을 지지했던 이유 세월호 참사를 통해 드러난 시스템 문제 중 하나는 현장책임자에겐 권한이 없고, 권한을 가진 자들은 현장을 모른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현장책임자에게 실질적인 권한을 부여하고 그에 맞는 책임을 요구하라고 지적했다. 홍명보가 사퇴했다.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현장 역량 강화와 현장책임자 권한 문제를 학습해놓고도 성적 나쁘다며 곧바로 현장지휘자를 국민의 이름으로 날려버렸다. 그리고 나자 현장을 모르는 혹은 현장에 관심없는 실권자들에 대한 논란과 토론은 쑥 들어가 버렸다. 참 기막힌 인지부조화다. 1년 전에 축구협회가 다급하게 홍명보에게 SOS를 요청했고 홍명보는 응했다. 대표팀은 분열돼 있었고 사기는 땅에 떨어져 있었다. 이래가지고 월드컵 가겠느냐는 말이 많았다. 많은 이들이 당시 홍명보가 브라질월드컵 끝나고.. 2014. 7. 18.
정대세, 안영학...'재일'로 살아가야 한다는 굴레 지난 16일 북한과 브라질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맞붙었을 때 북한 대표팀의 정대세 선수가 국가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잊지 못할 장면으로 남았다. 정대세 못지 않게 주목해야 할 선수가 한 명 더 있다. 월드컵 조별예선 세 경기에서 미드필더로서 고군분투했던 안영학 선수다. 남과 북, 일본 세 국가 사이에서 방황하고 갈등하고 선택을 강요받아야 했던 이들의 남다른 인생역정을 통해 재일동포로 살아간다는 것이 갖는 의미를 되돌아본다. “왜 여권이 세 개냐” 붙잡힌 적도 K리그에서 주전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올스타로 선정되기도 했던 안영학의 국적은 한국도 북한도 아니다. 법적으로 ‘조선적’(朝鮮籍)인 안영학은 엄밀히 말해 무국적자다. 정대세도 아버지는 한국국적이지만 어머니는 ‘조.. 2010. 7. 2.
베어벡 사퇴. 내가 언론인이라는게 부끄럽다 미리 얘기하는데 저는 축구를 잘 알지 못합니다. 1992년 월드컵은 대입준비 때문에, 1996년 월드컵은 이등병으로 전방근무하느라 단 한 경기도 보지 못했습니다. 사실 축구에 별 관심도 없어서 월드컵이 뭔지도 제대로 몰랐고 관심도 없었습니다. 월드컵을 처음 접한 건 1998년 월드컵 때 잠깐, 그리고 히딩크 감독 부임 이후입니다. 다행히도 저는 제가 축구를 제대로 모른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하여 축구경기를 보면 언론보도와 사커월드, 토탈사커 등에서 ‘고수’들의 글을 탐독합니다. 솔직히 경기를 텔레비전으로 보는 것보다 ‘고수’들의 글을 읽는게 더 재미있을 때가 많지요. 베어벡 감독이 사퇴했습니다. 개인적으로 2010월드컵까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상관없이 ‘곰가방’ 감독이 계속 국가대표팀.. 2007. 7.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