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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13

프랑스는 말리 내전을 말릴 수 있을까 2011년 리비아에선 동부를 중심으로 무아마르 카다피에 대항하는 내전이 발발했다. 1969년부터 시작해 42년이나 최고권력자 자리를 지키던 무아마르 카다피는 반군에 맞서기 위해 용병들을 긁어모았다. 사하라사막 남단 말리를 중심으로 알제리와 니제르 등지에 사는 유목민인 투아레그 부족 전사들이 계약금 1만 달러에 일당 1000달러를 받고 전장에 나섰다. 이들은 프랑스와 미국 등이 군사개입에 나서며 패색이 짙어지자 카다피가 지급해준 각종 무기를 들고 흩어져 버렸다. 결국 카다피는 10월20일 동부에 있는 지중해 연안도시 시르테에서 반군에 체포돼 끌려가다 총에 맞아 죽었다. 용병들 실업자돼 귀향한 뒤 내전 불길 카다피가 죽은 직후인 10월26일 실업자가 된 용병 출신 투아레그 병사 400여명이 선발대로 말리 북.. 2013. 2. 11.
카다피 이후 리비아, 장밋빛 아닌건 확실하다 ‘카다피 이후’ 리비아가 어디로 갈지 국제사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주적’인 무아마르 카다피가 숨지면서 과도국가위원회(NTC)의 정부 구성 작업이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혁명의 공과를 둘러싼 지역별, 부족별 이해 다툼 등 넘어야 할 장애물 또한 만만치 않다. 부족 중심 사회?국가 정체성도 약해 유엔 등 국제사회로부터 리비아의 유일 합법 정부로 인정받아 온 NTC는 지난 8월 카다피를 권좌에서 몰아낸 뒤 물밑 조각 작업을 진행해왔다. 또 국제사회가 동결했던 리비아 자산을 해제하면서 정부 구성과 국가 운영을 위한 자금 운용에도 숨통이 트였다. NTC는 헌법에 따라 8개월 안에 권력 이양을 위한 선거를 치를 것이라는 안도 마련해 놓고 있다. 향후 작업이 순조로운 듯 보인다. 하지만 .. 2011. 10. 24.
리비아 사막에서 길을 잃다 지난 2월 15일 최초로 시위가 벌어지고 한동안은 모든게 분명해 보였다. 시위는 ‘민주화시위’요, 반정부군은 ‘시민군’이었다. 민주화를 요구하며 거리로 뛰쳐나온 (용감한) 민주시민들을 잔인하게 진압하는 (사악한) 독재자. 리비아는 1980년 5월 광주와 겹쳐졌다. 전형적인 ‘민주 대 반민주’로는 제대로 해석이 안되는 구도가 보이기 시작한 건 3월부터였다.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넘어 무력개입 얘기까지 흘러나왔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거치지 않는 ‘인도적 지원’에 이르러서는 프레임 자체를 새로 구성해야 했다. 러시아투데이가 보도한 한 전직 영국 정보기관 간부 말마따나 “모든 인도적 지원 조치는 결국 대규모 침공을 위한 변명에 불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위 당시부터 리비아 상황을 되짚어보자. 벵가지 등에서.. 2011. 4. 10.
미군이 9일간 리비아에 쏟아부은 폭탄값은 얼마나 될까 미국이 리비아에 공습을 시작한 3월19일부터 28일까지 부담한 전쟁 비용은 5억 5000만 달러나 된다고 국방부 캐슬린 케슬러 대변인이 이메일을 통해 배포한 성명에서 밝혔다. 이 비용의 대부분은 토마호크 미사일과 공습에 동원된 폭탄이 차지한다고 한다. 5억 5000만달러에는 리비아 주변에 미 해군 함정과 미군 병력의 배치에 따른 비용은 포함하지 않았다. 케슬러 대변인은 "함정과 병력은 리비아 군사작전에 투입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밖의 여타지역에 배치돼 작전을 수행하는 만큼 리비아 전비 산정에 포함시킬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우리 돈으로 약 6108억원이다. 9일 동안 쓴 이 정도 예산이면 1년 내내 서울시내 모든 초등학생들에게 1년 내내 무상급식을 할 수 있지 않겠나 싶다. 2011. 3. 30.
리비아 공습, 미국은 발빼고 나토는 지지부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리비아 공습에서 미국은 제한적인 역할만 할 것이며 작전지휘권도 이양할 것이라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반면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는 전날에 이어 이날도 미국이 뒤로 물러날 경우 지휘권을 넘겨받는 문제를 두고 토론을 벌였지만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리비아 공습 작전은 영국과 프랑스가 주도하고 미국은 뒤에서 보조해주는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나토는 주저하는 햄릿? 미국은 현재로선 나토가 작전을 지휘하길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뜩이나 금융위기 이후 정부 재정이 압박을 받는 데다 이라크·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황이라 국내 여론도 곱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리비아 공습작전은 통일된 중앙지휘부 없이 각국 지휘부가 그때.. 2011. 3. 22.
카다피는 다국적군의 '약한 고리'를 알고 있다 2011년 3월19일부터 리비아 상공을 다국적군이 장악한 채 공습을 이어가고 있다.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지휘하는 정부군은 일단 공습을 피해 납작 업드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모든 군사작전은 보병이 고지에 올라 깃발을 꽂아야 마무리가 되는 법. 현재 리비아를 겨냥한 작전엔 그게 없다. 카다피는 무엇을 노리고 있을까. 카다피 입장에선 현 정세를 조망해봤다. 무엇보다도 카다피는 다국적군의 ‘약한 고리’를 알고 있다. 30대 후반에 쿠데타로 국가수반이 된 이래 42년이나 권좌를 지켜온 노회한 독재자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누구보다 잘 안다. 그는 어떻게 하면 자신이 사담 후세인처럼 되지 않을까 머리를 굴리고 있다. ●縱深防禦- 지연시켜라 지난 17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비행금지구.. 2011. 3. 22.
리비아의 미래는 이라크? 아프간? 키프로스? 미국·영국·프랑스 등 세계 최강의 군사대국들이 리비아를 겨냥한 군사작전을 전개한 목적은 사실상 ‘카다피 제거’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도 (2011년 3월) 20일(현지시간) 지적했듯이 “겉으로는 인도주의를 내세우고 있지만 진정한 목적은 정권교체”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카다피 이후’ 리비아는 어디로 가게 될까. 선례에 비춰보면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키프로스 모델 중 하나가 종착지가 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유력하다. 이라크 시나리오는 다시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카다피의 휴전 제의가 다국적군의 공습 위협을 막지는 못했지만 카다피가 유화적으로 나온다면 리비아 사태 해결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이 좀 더 장기화할 가능성이다. 미국 등이 1992년부터 이라크에 2개의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했지.. 2011. 3. 22.
리비아의 미래는 이라크가 될 것인가 리비아 사태에 대한 국제사회 해법이 군사 제재 조치에 방점을 두는 미국·영국과 여기에 제동을 걸려는 여타 국가로 양분되고 있습니다. 미·영은 ‘인도적 개입’을 명분으로 하지만 여타 국가들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합의를 전제조건으로 내세우죠. 미·영이 유엔을 통한 문제 해결보다는 리비아의 석유 자원을 노려 과거 이라크에서처럼 독자적인 군사작전을 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오는 실정입니다. 미·영이 과거 이라크를 침공해 석유 자원을 차지했던 사례가 리비아에서 재연될 수 있다는 겁니다. 논쟁지점을 제 나름대로 세 가지로 나눠서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군사개입은 효과적일까? 중동 문제 전문가인 미국 정책연구소(IPS) 필리스 베니스 연구원은 4일 연구소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미군이 1986년 트리폴.. 2011. 3. 10.
리비아 정국 이해하는 열쇠는? 부족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와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이 물너설 수 없는 극한충돌을 이어간다. 향후 리비아 정국을 이해하는 핵심열쇠로 부족들의 움직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리비아에서 국내 정치에 영향력을 가질만한 부족들은 30여개에 이른다. BBC방송에 따르면 카다피는 1969년 정권을 잡은 뒤 초기 10년 동안은 부족들을 평등하게 대하면서 고른 지지를 끌어냈다. 하지만 점차 각 부족들에게 당근과 채찍을 통해 부족들을 관리하는 방식으로 정권을 유지했다. 이로 인해 특정 부족이 정부와 군 요직을 차지하게 되면서 부족간 알력과 갈등이 누적됐다. 리비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부족은 와르팔라, 마가리하, 알진탄이다. 여기에 카다피가 부족장을 맡은 알카다파 부족을 포함해 리비아 4대 유력부족이 리비아 전체 인.. 2011. 3.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