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났던, 그 모든 순간들>

골프, 골프장 너머 산줄기도 아름다운데

betulo 2026. 10. 26.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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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났던, 그 모든 순간들 15>

연습라운드 하기 전에 신발을 벗고 큰절을 올려야 하는 건데.

골프장을 처음 와 봤다는 얘길 들은 후배가 대뜸 나를 놀린다. 아이고 그걸 몰랐네. 신발을 벗는 시늉을 하며 하하 호호 함께 웃긴 했지만, 솔직히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 함께 라운딩을 하는 세 명에게 시작부터 이실직고를 했다. 완벽하게 순수한 초짜입니다. 캐디한테는 두 손 모아 팁을 내밀며 공손히 말했다. 초짜입니다. 잘 이끌어 주십사. 인터넷 검색을 해보고 유튜브도 살펴보며 골프장 처음 갔을 때 필요한 팁을 찾았는데 캐디를 잘 모시라는 얘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꼭 필요하다는 갖가지 잡다한 것들도 이것저것 샀다.

누구나 그럴듯한 계획은 있다. 하지만 아무리 잘 준비해도 초보는 초보다. 클럽하우스 직원이 골프백 어디 있느냐고 묻길래 트렁크에 있다고 순진하게 답했다. 왜 클럽하우스 앞에 차를 대고 골프백을 내리지 않았느냐고 옆사람이 묻는다. 그건 VIP들만 하는 거 아닌가요. 다른 사람이 티샷을 하는데 옆에서 연습 스윙을 하면 안 된다는 것까지는 예습을 했는데, 막상 내가 티샷 차례가 되자 연습을 너댓번씩 하고 있으려니 골프 경험이 많은 분이 그러면 안된다고 귀띔해준다. 연습은 딱 두 번씩만.

캐디가 쥐여주는 골프채로 공을 맞히긴 맞힌다. 심지어 멀리 날아가기도 한다. 그렇게 멀리 멀리 숲속으로 물속으로 사라진다. 넉넉하게 챙겨온 로슽볼이 금방 바닥을 드러낼 기세다. 그날 하루 내 손을 떠난 공이 스무 개는 넘는다. 캐디는 내 공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마다 목청껏 “볼!”이라고 외치느라 바쁘다. 잠정구를 치러 갈 때는 뛰는 시늉이라도 내는 게 에티켓이라는 것도 한참 지나서야 알았다.

캐디가 스코어카드에 숫자를 적는다. 볼 것도 없이 압도적인 꼴등이다. 많이 봐주고 까까아준 게 130~140타를 아득히 넘어선다. 숫자를 적는 게 의미가 없어 보인다. 한 후배가 말해준다. 처음 골프장 와서 공을 맞춰서 날려 보내는 것만 해도 대단한 거예요. 글쎄, 썩 위로가 되진 않는다. 역시나,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 그러다 생각을 고쳐 먹는다. 처음 해보는데 잘 하면 그게 더 이상한 것 아닌가. 내가 이걸로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지. 그럼그럼. 마음을 비우고 골프장 18홀을 따라다닌다. 슬슬 긴장도 풀리니 나름대로 재미도 생긴다. 물론 그게 골프 때문인지, 공기 맑은 산속을 걷기 때문인지는 좀 헷갈리긴 했다.

푸르른 잔디가 단정하고 넓게 깔린 골프장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홀인원의 짜릿함이나 양파의 씁쓸함, 혹은 벙커의 악몽을 떠올릴 것이다. 물론 소수의견이란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마라톤에 진심인 한 후배는 1번 홀부터 18번 홀까지 힘껏 달리는 트레일러닝 코스로 딱 맞겠다는 생각부터 했다고 한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골프장에 처음 들어섰을 때 그린이나 벙커가 아니라 그 너머 굽이치는 산줄기에 눈이 먼저 갔다. 저 산에 올라 봉우리에서 막걸리 한잔 걸치면 참 좋겠다, 풍경이 멋지겠다.

오랫동안 산줄기엔 호젓한 등산로가 제격이지, 카트 타는 것보단 배낭을 메고 걸어야 제맛이지 하는 생각을 꽤 오랫동안 갖고 있었다. 고백하자면, 워낙 산을 좋아한다. 설악산 공룡능선과 지리산 종주가 인생 최대의 추억 가운데 하나이고, 월출산부터 백두산까지 걷는 백두대간 종주가 버킷리스트 앞순서를 차지한다. 그러니 주말에 누구라도 산에 가자고 하면 피곤한 줄 모르고 새벽에 집을 나선다. 혹시라도 누가 골프장 가자고 하면 손사래부터 쳤다. 제가 새벽잠이 워낙 많아서요.

골프를 멀리한 또 다른 이유는 좀 더 현실적인데, 왼손잡이 문제다. 대학 시절 사돈댁 어른이 골프를 맛보기로 가르쳐 준 적이 있었다. 그 분은 나를 골프연습장으로 데리고 가서 기본자세를 알려주며 시범도 보여줬다. 자 한 번 해봐. 시킨 대로 하는데 뭔가 어색하다. 너 왼손잡이구나. 그 뒤로 수십 년 동안 골프채를 잡아본 적이 없다. 솔직히, 잡고 싶은 마음 자체가 고갈돼 버렸다. 골프를 배워볼까 싶었던 적이 없진 않았지만 왼손잡이용 클럽은 없다는 걸 알고 미련 없이 마음을 접어 버렸다.

어릴 때 아버지는 왼손 쓰지 말고 오른손을 쓰도록 했다. 그 덕에 젓가락질과 글씨쓰기는 지금도 오른손으로 하는데, 나머지는 아무리 노력해도 오른손이 익숙해지질 않았다. 공던지기나 가위질이 어색하다며 아버지는 항상 가락잽이라며 혀를 차곤 하셨다. 대학에선 왼손으로 술잔을 받는다며 세상에서 제일 무례한 사람 취급을 받은 적도 있었다. 신병교육대에서 오른손잡이에 맞게 구성된 총검술을 어색하게 연습하거나 수류탄 투척훈련을 할 때 왼손잡이들만 관심사병이 됐던 기억도 유쾌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토록 완강하게 골프를 거부하던 내가 어쩌다 이 초록의 필드 언저리로 발을 들이게 되었을까. 마음을 고쳐먹은 건 골프를 다뤄야 하는 데스크라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겠고, 골프를 배우는 건 왼손잡이나 오른손잡이나 상관없이 평등하게 어렵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었다. 오른손잡이라고 특별히 유리할 것도 없고, 오히려 왼손에 힘을 싣는 게 자연스럽기 때문에 왼손잡이가 더 유리할 수도 있다는, 근거는 불분명하지만 심리적 저항은 무력화시키는 조언도 한몫했다.

그렇게 심기일전하여 틈틈이 골프를 배우기 시작했다. 놀라울 정도로 실력이 제자리다. 징그럽게도 실력이 늘지 않는다. 가장 당황스러운 건 고질적인 우편향 문제다. 공이 줄기차게 오른쪽으로 쭉쭉 쏠린다. 그것도 아주 많이. 아무리 호쾌하게 뻗어나가는 홈런성 타구를 날려도 1루 관중석으로 떨어지는 파울이면 아무 작에도 소용없는 법인데 말이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극우 성향에선 벗어났다는 점 하나 뿐이다.  극우라니. 그건 수치스러운 것이다.

골프를 배우는 재미는? 글쎄다. 처음 몇 달은 세미프로한테 30분씩 레슨을 받았다. 채 잡는 그립부터 기본자세를 배웠다. 칭찬을 많이 들었다. 배우는 속도가 빠른데요. 금방 늘겠어요. 이제 필드에 나가봐야겠네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그리고 춤추는 고래는 정신줄 놓은 고래다. 입에 발린 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인간의 뇌는, 그리고 내 뇌는 달콤한 칭찬에 너무 쉽게 녹아내린다. 나도 모르게 그 칭찬을 믿어버린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믿고 싶은 걸 믿어버리는 것이고, 믿고 싶은 걸 믿을 준비가 돼 있었던 것이겠다. 환상에서 빠져나온 건 칭찬전도사가 자꾸 지각을 하고 대충 가르친다는 걸 깨달은 덕분이겠다.

동네 다른 골프연습장으로 바꿨다. 새로 만난 분은 칭찬 따위는 모른다. 자세를 보더니 대뜸 이렇게 말한다.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겠네요. 그러면서 기본자세부터 다시 가르친다. 골프는 야구가 아닙니다. 팔을 뻗으세요. 어깨 힘 빼시고. 몇 달을 똑같은 지적을 도돌이표처럼 듣고 있다. 신기한 게, 그렇게 혼나며 배운 덕에 자세가 조금씩, 아주 조금이라도 나아졌다는 것이렸다.

그 눈물겨운 ‘반년의 공력’의 결과는 아주 많이 봐준 140타였다. 홀을 마칠 때마다 골프장 너머로 고개를 돌린다.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선 고민이 가시질 않는다. 이걸 대체 계속 배워야 하나.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숲속으로 사라진 골프공 수십 개와 그동안 쏟아부은 시간, 레슨비를 생각하면, 깃대 너머로 아득하게 펼쳐진 공룡능선과 지리산, 월출산의 그 웅장한 바위 능선만 자꾸 눈앞에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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