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 편도 차표 없이도 꿈꿀 권리
<처음 만났던, 그 모든 순간들 14>
여름휴가를 맞아 시골 부모님 댁에 다녀왔다. 서울로 돌아오는 300km가량은 아무 문제 없었는데, 서울 시내에 들어서자마자 머릿속 공간 감각에 오류가 난 듯 길을 잃고 헤매기 시작했다. 운전할 때마다 아내가 자주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묻는 말이 있다. 왜 서울만 벗어나면 길을 잘 찾느냐. 뒤집어 말하면, 서울에서 30년 넘게 살았지만 시내 운전대만 잡으면 꼭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해 쩔쩔 맬 때가 많다.
나름대로 변명을 하자면 서울은 여전히 ‘내 도시’가 아니기 때문이겠다. 인구 천만도시인 서울은 길을 나설 때마다 새롭고 낯설고, 어색하다. 수십년을 살았지만 여전히 나는 일자리를 위해 서울에서 사는 ‘이주노동자’일 뿐이다. 서울은 내 고향이 아니다. 내가 나고 자란 곳이 아니다. 내가 죽을때까지 서울에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다지 행복한 느낌이 들지도 않는다. 서울에 대한 얼마 안 되는 관심조차 지금의 번화한 풍경보다는 500년 전 한양이나 1500년 전 위례성에 닿아 있다. 코엑스나 롯데월드타워 같은 현대적 랜드마크보다 경복궁이나 창덕궁의 돌담길에 훨씬 더 애착이 간다.
서울살이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다. 그전까지 서울은 방학 때 친척집 갈 때나 구경하던 곳이었다. 물론 혼자서 돌아다녀 본 적도 없다. 가장 기억나는 건 역시 초등학교(당시엔 국민학교) 수학여행이었다. 수학여행 하면 경주나 제주도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은데, 우리 학교는 서울로 향했다. 국회의사당과 용산 전쟁기념관, 경복궁을 둘러봤다. 난생처음 보는 신기한 풍경에 다들 넋을 잃었다. 국회의사당 잔디밭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갓 당선된 젊은 국회의원의 연설도 듣고 그 정치인이 나눠주는 공책을 받아 들었다. 어린 눈에 비친 서울은 세련되고 거대했다. 심지어 서울 사람들은 다들 키도 크고 피부도 뽀얗고, 몸에서는 뭔지 모를 좋은 냄새가 났다.
서울과 결정적으로 얽힌 건 역시나 대학 때문이다. 고등학교 시절 한 학년에 10개 반이 있었고 한 반에는 얼추 45명 정도였다. 대다수 동창들이 전주나 익산에 있는 여러 대학에 진학했다. 당시 선생님들은 ‘서해안시대’라는 얘기를 많이 했다. 한중수교를 하면서 중국 시장이 열리기 시작하던 때였다. 서해안이 국가 발전의 최전선이 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꽤 현실성 있게 회자되던 시절이었다. 굳이 서울이 아니더라도 지역에서 충분히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만약 내가 전주에 있는 대학에 입학했다면 인생 경로는 꽤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전주는 살기 좋은 도시다.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알맞은 크기에, 공기마저 서울보다 맑다. 무엇보다 프로축구 K리그 10회 우승에 빛나는 전북현대의 홈구장이 있는 곳 아닌가(오오렐레~).

처음 서울에 가서 한동안 정신을 못 차렸다. 서울은 너무 컸고 복잡했다. 마주하는 모든 것이 낯설었다. 신기했던 건, 동기와 선후배들 절반 이상이 ‘지방 출신’이었다. 일자리와 배움의 기회를 찾아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들이 서울로 물밀듯이 쏟아져 들어오던 시기였다. 물정 모르는 서울 출신 선배 한 명이 부산 출신 동기한테 ‘시골에서 왔구나’는 망언을 했을 때 함께 분노해줄 사람이 우리 과 전체에 절반을 넘었다. (물론 나는 그런 말에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다. 내 고향 깡촌이 부산과 동급이 됐다는 게 내심 흐뭇했다.)
대학을 다니던 1990년대만 해도 ‘무조건 인서울’이라는 강박은 지금처럼 절대적이지 않았다. 부산대가 전국 통틀어 다섯 손가락 안에 너끈히 들던 때였다. 전북대나 전남대, 충남대 같은 지방국립대는 굳이 ‘거점국립대’라는 말을 쓰지 않아도 명실상부한 지역 거점이자 자부심이었다. 요즘에는 지방국립대가 서울에 있는 여느 대학보다도 더 낮은 대접을 받는다는 얘길 듣고 꽤 놀랐던 기억이 난다. 세간의 평가가 그리 된 게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당연하게도, 지방국립대가 뭔가 잘못해서 상황이 이렇게 된 것도 아니다. 그건 비유하자면, 50년 전 한강 이남 말죽거리에서 농사짓던 농부들의 선견지명 덕분에 오늘날 서울 강남구가 탄생한 게 아닌 것과 같은 이치다.
수도권이 전국의 모든 자원을 집어삼킨다는 경고는 수십 년째 반복된 이야기다. 이미 박정희가 1970년대에 서울집중 문제를 고민하며 수도이전을 심각하게 준비했을 정도였다. 2000년대 초반 노무현 역시 행정수도 건설을 추진했다. 수도이전이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결이 나오지 않았다면 대한민국의 운명이 지금보다 훨씬 더 좋아졌을거라고 믿는다.(그런 면에서 당시 헌법재판관들은 한국을 망친 100인 안에 너끈히 들 만한 분들이 틀림없다.)
서울과 수도권은 반백 년 넘게 양질의 일자리를 독점하며 전국의 청년들을 빨아들였다. 그렇게 정착한 청년들이 터를 잡으면서, 이제는 수도권 토박이 청년의 수가 지방 전체 청년 인구를 압도하는 기형적 구조가 고착화됐다. 고향이 서울이고 수도권인 이들에게 지방이란 미지의 공간일 뿐이다. 용인이나 평택에 첨단 공장을 짓는다는 발표에도 ‘왜 낯선 지방으로 가느냐’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는 것이 오늘날의 서글픈 현실이다.
산업정책은 필연적으로 선별적이다. 모든 기업이 공평하게 실적을 올려서 평등하게 대기업이 된다는 건 상상 속에서도 불가능하다. 우수한 입지조건을 갖춘 지역으로 기업과 일자리가 몰리는 것 역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특정 지역이나 특정 집단에 인구와 경제가 지나치게 밀집되면 그 자체로 비효율적인 상황이 될 수밖에 없다. 임계치를 넘어선 수도권 과밀화와 지역 불평등은 경제적 효율성까지도 갉아먹으며 국가의 혁신 동력까지 잠식하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지난 수십년 동안 정부가 산업정책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그렇게 된 측면도 크지 않을까 싶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이재명 정부가 나서서 ‘서남권 반도체’를 비롯한 메가 프로젝트를 통해 균형발전을 도모하는 건 산업정책뿐 아니라 국가의 생존을 위해서도 중요한 전환점이다.
‘서남권 반도체’를 둘러싼 정책적 논의의 세부 쟁점을 차치하더라도, 대공황 시절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역설했던 ‘유효수요 창출’의 맥락에서 이는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정부의 전략적 투자를 통해 수도권 밖에서도 질 좋은 일자리와 산업 생태계를 일궈내는 일, 나아가 청년들이 고향을 떠나지 않고도 당당하게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국토 균형발전이자 지속 가능한 성장의 출발점이 아닐까 싶다.
프로축구 K리그의 대표적 전통 강호인 전북현대, 울산 HD, 포항 스틸러스는 모두 비수도권을 연고지로 두고 있다. 현대자동차, HD현대중공업, 포스코처럼 지역에 뿌리를 둔 대기업의 든든한 지원과 최고 수준의 자금력도 갖췄다. 그런 와중에도 많은 축구선수들이 지방보다는 수도권 구단을 선호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더 많은 연봉을 받으며 뛸 수 있는 최고의 명문 구단조차 생활 인프라와 ‘수도권 프리미엄’ 앞에선 지역 청년과 선수들에게 온전한 만족을 주기 어려운 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위기를 상징하는 장면이 아닐까 싶어 씁쓸하다. 어디서 태어나든 서울행 편도 차표를 끊지 않고도 오오렐레를 외치며 내일을 꿈꿀 수 있는 사회를 기대해 본다.

인권연대에 기고한 글을 바탕으로 대폭 수정보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