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說

‘서남권 반도체’라는 상상력

betulo 2026. 7. 27.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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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할 때 아내가 자주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는 얘기가 있다. 왜 서울만 벗어나면 길을 잘 찾는 것일까. 뒤집어 얘기하면 서울 시내 도로에선 틈만 나면 길을 잃고 방황한다. 서울에서 30년 넘게 살고 있고, 그 가운데 20년가량 같은 동네에서 살았는데도 동네 주변에서 길을 헤맬 때가 많다. 나름대로 변명을 하자면 서울은 여전히 ‘내 도시’가 아니기 때문이겠다. 인구 천만 도시인 서울은 길을 나설 때마다 새롭고 낯설고, 어색하다.

솔직히 서울이라는 도시 자체에 큰 애정이 없다. 서울은 내 고향이 아니다. 내가 죽을 때까지 서울에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다지 행복한 느낌도 들지 않는다.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서울과 너무 깊이 얽혀버렸을 뿐이다. 복잡하고 번잡한 서울보다는, 오히려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던 전주가 훨씬 더 애정이 간다. 전주는 너무 작지도 않고 크지도 않은 적당히 아담한 도시다. 서울보다 공기도 훨씬 맑다. 무엇보다도, 프로축구 K리그 10회 우승에 빛나는 전북현대가 있는 곳이다(오오렐레~).

수십 년을 살았으나 여전히 나는 일자리를 위해 서울에서 사는 ‘이주노동자’일 뿐이다. 그러고 보니 코엑스나 롯데타워 같은 공간보다 경복궁이나 창덕궁에 더 관심이 많다. 경리단길이나 용리단길보다도 지금은 사라져 버린 피맛골을 더 가깝게 느꼈다. 서울에 얼마 되지도 않는 관심조차 지금 서울보다 500년 전 한양이나 1500년 전 위례성에 더 애정 어린 눈길이 간다.

서울에 사는 장삼이사 가운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내 넋두리에 공감해 줄 것이라 믿는다. 요즘이야 다르지만 내 대학 시절 동기와 선후배들 가운데 절반 이상이 ‘지방 출신’이었다. 베이비붐 세대가 일자리와 학교를 찾아 서울로 물밀듯이 밀려들던 때였다. 물정 모르는 서울 출신이 부산 출신한테 ‘시골에서 왔구나’라는 망언을 했을 때 함께 분노해줄 사람이 우리 과 전체에 절반 이상은 됐다. (물론 나는 그런 말에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내 고향 깡촌이 부산과 동급이 됐다는 게 흐뭇한 기분이었다.)

요즘에는 지방국립대가 서울에 있는 여느 대학보다도 더 낮은 대접을 받는다는 얘길 듣고 꽤 놀랐던 기억이 난다. 세간의 평가가 그리된 게 사실 오래된 건 아니다. 부산대가 전국 통틀어 다섯 손가락 안에 너끈히 들던 때가 있었다. 부산대가 뭔가 잘못해서 상황이 이렇게 된 건 물론 아니다. 비유하자면, 50년 전 한강 이남 말죽거리에서 논일하던 농부들의 선견지명 덕분에 오늘날 서울 강남구가 탄생한 게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산업정책은 필연적으로 선별적이다. 모든 기업이 공평하게 실적을 올려서 평등하게 대기업이 된다는 건 상상 속에서도 불가능하다. 우수한 입지조건을 갖춘 지역으로 기업과 일자리가 몰리는 것 역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특정 지역이나 특정 집단에 인구와 경제가 지나치게 밀집되면 그 자체로 비효율적인 상황이 될 수밖에 없다. 임계치를 넘어선 집중과 불평등은 경제적 효율성까지도 갉아먹으며 나라 전체의 혁신을 가로막는다. 대한민국에서 서울과 수도권이 딱 그런 경우가 아닐까 싶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정부가 나서서 균형발전을 도모하는 건 산업정책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이재명 정부가 ‘서남권 반도체’라는 산업정책을 들고나왔다. 다양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반도체 관련 논의는 논외로 치더라도, 대공황 당시 케인스가 강조했던 ‘유효수요 창출’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수도권에서 벗어난 지역에서도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건 꽤 의미 있는 일이니 지지해주고 싶다. 그에 더해, 젊은이들이 수도권만 바라보지 않고도 꿈꿀 수 있다면 국민 행복을 위해서도 가치 있지 않을까 싶다.

인권연대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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