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5도위원회, 이경남씨 증언
이북5도위원회 동화연구소 소장으로 오래 재직하다 정년퇴직한 이경남이 있다. 그는 고향이 황해도 안악군이고, 한국전쟁이 일어날 당시 평양사범대학 2학년을 다니다 조선인민군 장교로 징집됐는데 10월 자신의 소대원들을 모두 이끌고 국군에 귀순했고 그 뒤 켈로부대에서 활동했다. 구월산 유격대 참모장을 지내다 1953년 7월 휴전 직후 철수했다. 해방 이후 이북5도위원회와 이북5도민회 관련 활동을 계속했기 때문에 관련 역사를 줄줄 꿰는 분이었다. 서울 광진구 자양동에 있는 한강이 잘 보이는 아파트에서 2007년에 긴 시간 인터뷰를 했다. 그가 들려준 이야기를 기록 차원에서 옮겨본다.
-이승만 대통령은 1949년에 이북5도지사 5명을 임명했다. 직함, 임무 등을 시행령으로 만들었다. 법률근거 없이 도지사 임명하다가 5.16 이후가 되어서야 근거법률이 없다는 걸 깨닫고 1962년에 국가재건최고회의 명의로 특별조치법을 만들었다. 그 이후 운전기사, 비서, 사무직 등 도지사 1명당 5-6명의 직원이 생겼다.
-해방 이후 월남한 청년들 중심으로 서북청년회(약칭 서청)가 생겼는데 내부에선 김구 지지와 이승만 지지로 의견차이가 있었다. 활동자금은 조병옥 경무부장과 장택상 수도경찰청장한테 많이 받았다. 물론 서청과 (이북5도위원회의 근간이 되는) 이북5도민회가 같은 조직은 아니었다. 서청은 30대 전후 젊은이들 위주, 이북5도민회는 50대 이후로 연령대가 달랐다.
-1950년 전쟁이 나고 인천상륙작전 이후 38선 이북으로 진격하는데, 한국정부와 미8군 사이에 점령 북한지역 관리에 대한 협정이 없었다. 38선 돌파가 10월 1일이고 12월에 철수했기 때문에 실제 북한 지역 점령기간은 2개월이 채 되지 않는다. 미군에선 북한 지역에 군정을 실시하려 했다. 미8군 민사처에 한국인 대표와 연락관계를 맺으려 했다. 평북 출신 김성주 서청 사업부장(후에 부위원장)이 미군에 먼저 제안을 했다. 미군에선 한미 사이의 연락관 정도로 생각하고 승낙했다. 김성주는 과장해서 자신이 도지사로 임명된 양 행세하고 다녔다. 정부에서는 화가 났다.
-이승만부터 노태우까지 정부와 이북5도민들은 주고받기, 거래 관계였다. 이북5도민들을 가장 잘 이용한 게 노태우였다. 노태우 당선에 이바지하면서 우리가 조건을 제시했다. 은행설립허가, 공원묘지 허가, 5도청 건립. 노태우는 승낙했다. 그래서 이북5도민 표를 결집해줬다. 동화은행, 통일전망대, 경모공원, 5도청사를 해줬다. 구기동 청사도 노태우가 지어줬다. 중간에서 노태우와 이북5도민들 다리를 놓은 게 홍성철이었다. 육영수 암살 당시 내무부 장관이었다. 홍성철이 노태우 대통령 집권 당시 초대 청와대 비서실장을 했다. 그는 당시 황해도 도민회장이었다. 노태우 대통령 5년 동안 이북출신 국무총리는 강영훈(평북 창성, 88.12-90.12), 정원식(황해 재령, 91.7-92.10), 현승종(평남 강서, 92.10-93.2) 등 3명(3년 7개월)이나 됐다.
-파주에 있는 동화경모공원을 노태우가 허가해줬다. 1기 공사를 4-5년 걸려 다 했다. 2기 공사 허가를 받으려 하니까 김영삼 대통령이 허가를 안해줬다. 당시 정부가 인구조사를 해보니 한국인구 가운데 이북출신이 (우리가 주장하는 800만이 아니라) 41만명 뿐이라고 보고했다. 김영삼이 그 말 듣고 월남민 신경 안써도 되겠구나 생각한 것이다. 김영삼 임기 끝날 때까지 2기 공사 허가 안내줬다. 오히려 김대중은 대통령 되고 나서 반년도 안돼 허가 내줬다. 박정희부터 노태우까지는 집회나 선거에 이북5도민들 동원하며 밥값이나 차비 하라고 주는 정도였는데 김대중은 도민회 예산을 정부 차원에서 지원하게 해줬다.
-김영삼은 표만 받아먹고 해준 건 아무것도 없다. 야박하게 굴었다. 도민회 사람들은 김영삼을 “그 새끼”라고 부른다. 1997년 대선에서 우리는 거의 다 김대중이 아니라 이회창 지지했다. 이회창은 깐깐한 성격이다. 앞에서는 다 들어줄것처럼 해도 냉정하게 생각해서 판단한다. 노태우는 엄벙덤벙한 면이 있어서 요구조건 들어준 것이다.
-김대중 정부는 우리로선 재정이 풍족해졌다. 김대중은 개인적으론 높이 평가한다. 이념으로는 김대중, 노무현 싫어하지만 실제로는 도움 많이 받았다.
-이북5도 도지사들과 명예직 시장․군수 등이 북한에 있을 당시 실향민의 학력과 경력을 보증해주는 역할을 했다. 도지사 등이 보증을 해주지 않으면 실향민의 학력과 경력은 누가 인정해주겠느냐. 도지사가 있어서 나쁠건 뭐 있느냐, 없는 것 보다는 낫다. 이북도민들의 생활 편의도 봐주고 하면 좋은 것 아니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