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소설에 손이 가는 이유는 뭘까... 독서로 돌아본 2025
이제 나라꼴이 좀 제대로, 정상화된다는 걸 느끼는 한 해다. 시작은 우중충했지만 끝은 상큼하다. 다만 한파가 꽤 매서운 게 좀 걱정되는 건 사실이다.
2025년을 결산해보자. 한 해 동안 읽은 책이 109권이다. 지난해 101권보다 더 늘었다. 다만 2005년 당시 120권에는 한참 못 미친다. 쪽수로는 4만 6,988쪽인데, 2023년(4만 1891쪽)보다는 늘었지만 2024년(4만 7,075쪽)보다는 살짝 못 미친다. 월평균으로는 9.1권, 3,916쪽이다.
월별로 보면 11월에 13권으로 가장 많이 일겄고, 그 다음이 3월(11월)이고 4월, 7월, 10월, 12월에 10권을 읽었다. 가장 적게 읽은 건 1월, 5월, 8월, 9월인데 각각 7권씩 읽었다. 논문은 한 해 동안 5편에 불과하고 시사IN은 49편을 읽었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밤 새는 줄 모른다. 문학소년조차 꿈꿔 본 적도 없는 처지에 소년 티를 벗은 지 수십년 만에 책꽂이에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소설로 손이 곧잘 가고 있다. 근묵자흑(近墨者黑), 먹물을 가까이 하다보면 옷에 먹물이 묻기 마련이고, 담배 피우는 사람들이랑 자꾸 어울리다보면 담배에 손이 가기 십상이다. 나로선 문학 담당 후배 영향을 받은 게 컸다. 아직은 문학청년인 이 후배랑 얘기하다보니 깊숙하게 봉인돼 있던 소설책 관심이 살아났다.
하필이면 첫단추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인 건 누가봐도 명백한 시행착오였다. 너무나 재미없고 지겨웠다. 이게 어딜 봐서 세계문학사에 빛나는 명작이란 말인가. 비평도 읽어보고 소개 영상도 찾아보고 나서야 대략 이유를 알게 됐다. 도스도옙프스키 평생의 화두는 ‘구원’ 문제였고, 나는 철 들고 나서 아무 관심이 없는 게 구원 문제다. 그 아버지가 뭔데 우리를 구원하고 말고 오지랖을 떤단 말인가, 그런 사람한테 구원 문제를 다룬 소설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시행착오를 거치긴 했지만 그래도 2025년에는 소설을 꽤 읽었다. 새해 <본 슈프리머시> 두 권을 시작으로, <압록강은 흐른다>, <달과 6펜스>, <파리대왕>, <거인들의 몰락>, <검은 꽃>,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3권), <햄릿>, <리어 왕>, <오셀로>, <맥베스>, <파운데이션>(7권), <객주>(10권),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읽었다.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이라는 책들은 사실 올해 처음 읽어봤다. 기대만큼 감동은 없었다. 어쨌든 읽기는 했다. 정말 재미있게 읽은 건 <검은 꽃>과 <객주>였다. 사실 김영하는 우연히 읽은 <빛의 제국>에서 느낀 짜증과 분노가 너무 커서 선뜻 손이 가지 않는 작가였는데 <살인자의 기억법>으로 인상이 바뀌었고, <검은 꽃>으로 저자서명을 받고 싶은 작가가 됐다.
<객주>는 대학 시절 워낙 재미있게 읽긴 했는데, 군대 가느라 끊긴 채 수십년이 지나고 나서야 완독을 했다. 김주영 소설은 언제 읽어도 글로 풀어 쓴 입담이 최고다. <파운데이션>은 엄청나게 빨리 읽히는 쪽은 아니지만 차근차근 읽어나가며 태양계, 은하계, 초우주 하는 식으로 상상의 범위를 끝간 데 없이 넓히는 책이다.
한 해를 되돌아보니 중국 관련 좋은 책들을 여럿 읽었다는 걸 알겠다. 역시 최근 중국이 화두는 화두라는 생각이 든다. <현대 중국의 탄생: 청제국에서 시진핑까지>, <<礎材晉育: 미국이 길러낸 중국의 엘리트들-미국의 중국 유학생들, 1872~1931>, <장제스 일기를 읽다> <헨리 키신저의 중국 이야기>, <당과 인민: 우려와 기대를 모두 넘어 진화하는 중국>, <피할 수 있는 전쟁> 등등.
그 밖에 읽은 역사책으로는 <제국은 왜 무너지는가>, <역사의 맞수2. 고구려 고국원왕과 백제 근초고왕>, <실크로드의 악마들>, <하룻밤에 읽는 남북국사>, <호박 목걸이: 딜쿠샤 안주인 메리 테일러의 서울살이>, <두 강 사이의 땅 메소포타미아>, <예고된 쿠데타, 8월 종파사건>, <백제의 대외 교섭과 교류>, <고대 동아시아의 이주와 고구려> 등이 있다.
2025년을 빛낸 109권 가운데 가장 추천해줄만한 책 10권을 골라본다. 기준은 언제나 그렇듯이 ‘연어가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기분으로 내 잠든 뇌세포를 펄떨 펄떡 깨우는 걸 중시하는 취향’에 입각했다.
클라우스 뮐한, 윤형진 옮김, 2023, <현대 중국의 탄생: 청제국에서 시진핑까지>, 너머북스.
헨리 키신저, 권기대 옮김, 2012, <헨리 키신저의 중국 이야기>, 민음사.
켄 폴릿, 남명성, 2015, <거인들의 몰락>, 문학동네.
브루스 J. 딕슨, 박우, 2024, <당과 인민: 우려와 기대를 모두 넘어 진화하는 중국>, 사계절.
셰릴 스트레이드, 우진하 2024, <와일드>, 페이지2.
라훌 바티아, 양진성 2025, <거대한 퇴보: 인도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졌는가>, 글항아리.
김재웅, 2024, <예고된 쿠데타, 8월 종파사건>, 푸른역사.
아이작 아시모프, 김옥수 옮김, 2013, <파운데이션>(1~7권), 황금가지.
굽시니스트, 2025, <본격 한중일 세계사>(1~20권), 위즈덤하우스.
유홍준, 2024,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 창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