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났던, 그 모든 순간들>

대북전단을 줍다보니 외환위기가 왔다

betulo 2025. 12. 7.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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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만났던, 그 모든 순간들 006>

국방부 출입기자를 시작하는 날 평양에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태평양으로 날려줬다. 이토록 격렬한 환영인사라니. 국방부를 출입하던 2022년 가을부터 2024년 여름은 틈만 나면 날려주는 미사일로 바람잘 날 없었다. 이에 질세라 국방부는 난데없이 육군사관학교에 있는 홍범도 흉상을 철거한다고 난리를 치고 채 해병 순직 사건 은폐한다고 법석을 떨었다. 그런 와중에 9.19군사합의를 파기했고 대북방송과 대북전단을 재개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호기롭게 하는 것 가운데 납득이 되는 게 뭐가 있을까. 국방부를 보고 있으면 이상한 나라 붉은 여왕 옆에 부동자세로 서 있는 개구리들만 자꾸 생각났다. 

국방부 출입할 때 수많은 기사를 썼지만 가장 즐거운 마음으로 쓴 건 역시나 방탄소년단(BTS) 기사였다. <방탄소년단(BTS) 진 품은 5사단은 어떤 곳…중부전선 최전방 ‘메이커 부대’> <방탄소년단 이젠 ‘대한민국 국방부’ 소속>인데, 국방부 출입하면서 쓴 기사 가운데 가장 많은 독자들이 봤다는 얘기까지 들었다. 사실 어느 정도 사심이 없다고 할 수는 없겠다. 나 자신 군복무를 제5보병사단, 일명 열쇠부대에서 했다. 그러니까 진, 지민, 정국은 내 군대 후배들 되겠다. 

열쇠부대는 경기 연천군에 있다. 대부분 논산훈련소가 아니라 자체 신병교육대에서 교육을 시킨 뒤 자대배치를 한다. 강원 철원군에서 경기 동두천시와 의정부를 거쳐 서울로 이어지는 3번국도를 방어하는 게 기본 임무다. 연천이란 곳이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다. 4월까지 내복을 입어야 했고 10월에 다시 내복을 꺼내 입었다. 대략 영하 10도 정도가 되면 코털이 얼어서 숨쉴 때 불편한 느낌이 있다는 걸 신병교육 받을 때 처음 알았다. 

5사단은 1948년 제5여단으로 창설됐으며 이듬해 정식 사단으로 승격했다. 제1사단(전진부대), 제2사단(노도부대), 제3사단(백골부대), 제6사단(청성부대), 제7사단(칠성부대), 제8사단(오뚜기부대), 제9사단(백마부대), 수도기계화사단(맹호부대) 등과 함께 1950년 이전 창설돼 6·25전쟁에서도 활약했으며 주로 최전방에 배치돼 있는 이른바 ‘메이커 부대’ 가운데 하나다. 사실 이 ‘메이커 부대’라는 게 육군에선 굉장한 자부심의 근원이다.

역사가 80년을 바라보다 보니 열쇠부대 출신 유명 인사도 여럿이다. 박정희나 백선엽을 비롯해, 태권도를 창시하고 초대 대한태권도협회 회장을 지낸 최홍희, 베트남 파병 한국군사령관을 지낸 채명신 등이 모두 5사단장을 역임했다. 박정희 사단장 시절 그를 보좌한 연대장이 훗날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 안가에서 박정희를 죽인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였다. 

5사단 소속 주력 부대는 27·35·36보병여단인데, 27·36여단이 교대로 일반전초(GOP) 경계근무를 맡는다. 내가 제대할 때까지만 해도 36연대였는데 어느덧 여단이 됐다는 건 국방부 출입하면서 알게 됐다. 

훈련이야 육군 나온 장삼이사라면 한마디씩 할 정도는 되겠지만 GOP근무는 꽤 희소가치가 있는 추억꺼리다. 지금이야 ‘과학화 경계시스템’이라고 해서 감시카메라 위주로 바뀌었다고 하지만 내가 근무하던 1990년대만 해도 GOP란 말 그대로 사람을 촘촘히 세우는 방식이었다. 사람이 많이 필요할 수밖에 없어서 1개 소대가 40명을 넘나들었다. GOP 근무가 여느 경계근무와 확연히 다른 게 있는데, 병장부터 이등병까지 모든 병사들에게 실탄과 수류탄을 지급했다. 

GOP근무는 소대 탄약고에서 소대장한테서 1인당 실탄 75발과 수류탄 하나씩 지급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햇빛이 처음 비치는 시간을 BMNT(해상박명초), 햇빛이 완전히 사라지는 시간을 EENT(해상박명종)라고 하는데, EENT+30분부터 자정까지 ‘전반야’, 자정부터 BMNT-30분까지 ‘후반야’가 순서대로 야간 근무를 한다. 전반야 근무자 가운데 교대로 주간 근무를 한다. 주간 근무 초소엔 항상 M60 기관총이 북측 초소를 향해 조준된 채 거치돼 있었다. 물론 실탄이 항상 장전돼 있었다. 

GOP근무란 흔히 병장들에겐 천국 이등병들에겐 지옥이라고 했다. 경계근무만 하느라 훈련을 하지 않는 영향이 컸다. 그런 와중에 연천과 철원 일대에 사흘 동안 900mm 넘게 큰비가 내리는 바람에 난데없는 수재민이 되고 나니 병장부터 이등병까지 평등하게 거지꼴이 됐다. 산사태가 나고 휴전선 철책이 1km 넘게 무너졌는데 그거 복구하느라 석달이 걸렸다. 

GOP근무라는 게 하루 종일 북쪽만 쳐다보는 일이다. 보이는 건 끝없이 이어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산줄기요, 들리는 건 온종일 대남방송과 대북방송이다. 사실 대남방송과 대북방송은 너무 잘 들려서 듣기 싫어도 들어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대북방송을 재개했는데, 그거 층간소음이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게 1996년 5월18일이었다. 대남방송에선 몇시간 동안 5.18추모식 방송을 내보냈다. 그때 추모연설을 했던 최고인민회의 의장 양형섭이란 이름이 지금도 기억난다. 대북방송에선 그날 '월남하면 예쁜여자 많다' 방송만 해댔다. 대한민국 군인인 게 자괴감이 느껴지는 날이었다.

대북전단과 대남전단, 이른바 삐라도 발에 채인다. 가장 기억나는 대남삐라가 있다. 어떤 남녀가 여섯 쌍둥이와 함께 찍은 가족사진이 실린 대남삐라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뒷면에는 대략 이렇게 써 있었다. 그냥 평범한 노동자 부부가 여섯 쌍둥이를 낳았다. 하지만 아무 걱정이 없다. 위대한 조선노동당이 여섯 쌍둥이를 먹여주고 입혀주니까. 국군 장병 여러분도 우리한테 넘어와라. 우리는 그걸 보며 다함께 비웃었다. 총각들한테 쌍둥이 얘기라니. 홍보의 기본이 안 돼 있다. 

국군장병들에게 인기있는 건 대북삐라였다. 북쪽 하늘로 날아가다 실패하거나 바람에 날려 굴러다니는 대북삐라를 보면 얼른 주워다 헬멧 안쪽이나 수첩 사이에 끼워넣곤 했다. 코팅까지 돼 있으니 오래 보관하기도 좋다. 대남삐라와 달리 등장인물은 대개 한 명이다. 지구온난화 때문인지 얼마나 더웠으면 시원하게 (속옷만) 차려입은 젊은 아가씨가 웃고 있다. 뒷면에는 짧고 굵은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월남해라, 이런 아가씨가 줄을 서 있다. 제대하고 나서 유흥가 길바닥에 어지럽게 널려있는 전단지를 보면서 군대 시절 추억에 젖었다. 

군대에 있을 때는 김영삼 정부 후반기였다. 신병 때부터 병장 될 때까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게 북한붕괴론과 국지도발 얘기였다. 북한은 김일성 사망과 곧이은 식량난으로 곧 붕괴할 것이고, 이판사판이라며 남한을 공격할 가능성도 높다는 얘기가 넘쳐났다. 남북 긴장이 윤석열 때만큼이나 높았다. 그러다 말년 병장이 돼 받아 든 건 남침 위기가 아니라 외환 위기였다.

큰 훈련을 마치고 복귀해서 부대정비를 하는데 대대장이 대대원 전원 집합하라고 했다. IMF 얘기를 한참 하더니 '고통분담' 얘기를 꺼냈다. 전장병 월급 일괄 삭감과 생명수당 삭감이란다. GOP 야간근무 때 야식으로 나오던 라면은 물론이고 건빵과 맛스타까지 모두 중단됐다. 1식3찬을 1식2찬으로 줄인다고 했다. 다음날 아침 식판엔 밥, 똥국, 배추김추 쬐끔, 포장용 김 하나가 나왔다. IMF가 그렇게나 무서운 물건이다. 

표현 수위를 (굉장히 많이) 낮춘 대북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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