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발에 짝발 이봉주, 그를 마라톤 우승으로 이끈 세 가지 원칙은
<처음 만났던, 그 모든 순간들 004>
“규칙의 힘을 믿어라. 페이스메이커를 곁에 둬라. 데드포인트를 즐겨라.”
이봉주가 마라톤 선수일 때만 해도 솔직히 그를 잘 알지 못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을 딸 때 나는 군대에 있었고 1998년 방콕과 2002년 방콕 아시안게임 금메달, 거기다 2001년 보스턴 마라톤대회 우승을 했을 때는 뉴스 자체를 거의 안 보고 공부만 하던 시절이었다. 그냥 이봉주라는 마라톤 선수가 있는데 별명이 봉달이다, 딱 그 정도였다. 한참 시간이 흘러 그가 희귀병으로 고생한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오히려 이봉주가 한국 마라톤에서 얼마나 위대한 선수였는지 알게 됐다.
지난해 9월 우연찮은 기회로 이봉주가 어느 조찬모임 특별 강사로 나와서 ‘봉달이의 인생 완주법’을 강연하는 걸 들을 기회를 얻게 됐다. 이 자리에서 이봉주는 자신이 이룬 성취보다는 자신이 가진 약점과, 그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담담하게 풀어줬다. 특히 인상적인 건, “인생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다”라는 마라톤을 통해 건강한 인생, 목표를 완주하는 인생을 위한 세 가지 원칙을 들려주는 대목이었다.
이봉주는 한국 선수로는 반세기만의 세계 4대 마라톤대회라는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했다. 그가 가진 한국 신기록은 지금도 깨지지 않고 있다. 그는 구수하게 생긴 외모만큼이나 자신을 소재로 한 농담으로 사람들을 배꼽 빠지게 했다. 보스턴마라톤대회 우승을 설명하면서 “‘동네 슈퍼마켓 아저씨처럼 생긴 사람도 마라톤 우승하는데 나라고 못 하겠느냐’라는 자신감을 국민에게 심어 준 덕분에 마라톤 대중화가 가능했다”라는 얘기도 했다.
마라톤 선수로서 이룬 성취에도 불구하고 사실 이봉주는 운동선수를 하기엔 불리한 조건이 너무 많았다. 고등학교 때 육상을 시작했다. 보통 초등학교에서 시작하는 여느 선수들보다 한참 늦었다. 어릴 때부터 운동에 관심은 많았는데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태권도를 배우고 싶어도 도복을 살 돈이 없었다. 그나마 육상이 돈이 제일 적게 들었다. “반바지와 신발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뛸 수 있으니까.”
육상부에 들어가서 운동을 시작하긴 했는데 육상부에 코치가 없었다. 선수들끼리 알아서 뛰었다. “그렇게 뛰다 보니 재미가 붙었다. 버스 요금도 아낄 겸 학교까지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집에서 학교까지 거리가 12km였다. 처음엔 한 시간 반 걸렸는데 나중엔 한 시간으로 단축했다. 그걸 지켜본 다른 학교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전학하려면 1학년부터 다시 다녀야 했다. 부모님이 반대를 많이 했는데 고집해서 재입학하는 식으로 해서 삽교고등학교에 들어갔다. 그제야 제대로 된 지도를 코치한테 받을 수 있었다. 운동선수가 되었다는 기분을 처음 느꼈다.”
세상 쉬운 게 하나도 없다. 전학을 가고 1년도 안 돼 육상부가 해체됐다. 학교 재정 상태가 안 좋다는 이유로, 대회에서 성적이 안 좋은 육상부를 해체했다고 한다. 이봉주는 “다들 떠나고 마지막에 나 혼자 남았다. 1년을 운동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공부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백수 아닌 백수로 지냈다”라고 회상했다. 천만다행으로 3학년 때 충남 홍성군에 있는 광천고에서 연락이 왔고 전학을 할 수 있었다.
사실 이봉주에겐 그것보다도 훨씬 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그는 평발에다 짝발이었다. 그는 “시합 때마다 발톱이 빠지고 피 물집이 잡혔다. 신발도 특수제작을 해야 했다”라고 말했다. 이봉주는 자신의 약점을 어떻게 극복했을까. 여기서 이봉주가 강조하는 첫 번째 원칙이 나온다. 규칙을 만들고 실천했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달리기했다. 이봉주는 “이불 속에서 고민에 빠질 때도 많았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솔직히 귀찮은 적도 많았다. 하지만 내가 만든 규칙이니까 무조건 지켰다”라고 말했다.
규칙과 실천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또 하나 규칙은 훈련일지 쓰기였다. 무엇을 먹었는지 무슨 훈련을 했는지 일일이 기록하고 되돌아봤다.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유혹을 느낄 때마다 유혹에 굴복할 때마다 훈련일지를 다시 펼쳐보며 자신을 다잡았다. “무슨 일이건 규칙이 있으면 힘이 덜 든다. 규칙은 자동차 연비와 같아 일정한 속도로 정속 주행하면 연비가 높아지듯이 규칙을 만들고 지키면서 꾸준함, 지구력을 키웠다.”
이봉주가 강조하는 두 번째 원칙은 ‘페이스메이커’다. 최근 이재명이 트럼프와 정상회담을 하면서 이 표현을 쓴 게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원래 페이스메이커란 마라톤에서 다른 선수를 위해 일정한 속도를 내주는 보조 역할 선수를 가리킨다. 이봉주는 “내 인생에 페이스메이커가 세 명 있었는데 그들 덕분에 내가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다”며 “롤모델이었던 황영조 선수, 경쟁자였던 김이용 선수, 스승이었던 오인환 감독”이라고 밝혔다. 그는 “마라톤을 완주하려면 페이스메이커가 중요하다. 인생에서도 그런 사람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봉주는 “황영조는 아내와 중학교 동창이었고 아내를 만나게 해준 은인”이라고 소개했다. 황영조와 이봉주는 1970년생 동갑내기이지만 실력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고 한다. 이봉주는 “나는 운동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는 햇병아리였는데 황영조는 이미 그때 최고 A급 선수였다. 황영조가 출전한다고 하면 1등은 포기해야 했다”라면서 “나도 언젠가는 황영조처럼 뛰어야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라고 회상했다. 김이용에 대해선 “강력한 경쟁자가 있었던 덕분에 항상 긴장하고 나만의 페이스를 유지하지 않았나 싶다”라고 말했다. 오인환은 시합을 앞두고 흐트러질 수 있는 이봉주를 따끔하게 혼내며 바로잡아준 사람이었다.
죽을 것 같은 고비 다음이 결승점이다
이봉주가 강조한 세 번째 원칙은 “데드포인트에서 포기하지 않고 즐기는 것”이다. 데드포인트는 마라톤에서 체력이 고갈되면서 죽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고통스러운 순간을 말한다. 이봉주는 “데드포인트가 오는 시점이 그때그때 다르다. 마라톤 초반이 될 수도 있고 막판이 될 수도 있다”라며 “데드포인트가 오면 ‘지금부터 시작이구나’라고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데드포인트에서 ‘이 고비만 넘어서면 완주’라고 생각으로 나를 이겨 내며 앞서 나가는 희열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라면서 “데드포인트를 즐기면서 오버페이스를 경계하고 자제하는 것 또한 마라톤에서 배울 수 있는 인생의 핵심 지혜”라고 밝혔다.

이봉주가 밝히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컸던 데드포인트는 코오롱스포츠에서 탈퇴했을 때라고 했다. “1999년이었다. 오인환 감독과 함께 코오롱스포츠에서 나와서 허름한 여관방에서 먹고 자며 훈련했다. 사비 털어서 4~5개월 버텼다. 마라톤 인생 끝나는 것인가 불안하기도 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훈련해서 2000년 도쿄 마라톤에서 한국 신기록을 세웠다. 그때 감독과 부둥켜안고 많이 울었다. 죽기 살기로 훈련했다. 뭔가 보여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결과적으로 삼성전자 창단멤버로 들어갈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데드포인트가 나에겐 드라마 같은 역전을 가져왔다.”
이봉주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봉주의 모든 이야기를 관통하는 건 지구력, 꾸준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봉주 역시 이 점을 강조했다. 평발에 짝발에 빠르지도 않았던 자신이 세계적인 선수가 된 원동력은 지구력이라고 했다. 평소 언덕을 뛰어오르는 연습도 많이 했다. 다른 선수들이 언덕에서 힘들어할 때 이봉주는 더 치고 나갈 수 있었다. 이봉주는 이렇게도 말했다. “세상 모든 핸디캡을 다 이기는 걸 결국 지구력이다. 뭔가를 이뤄내는 힘은 한순간 반짝하는 게 아니라 버티는 힘이다. 그걸 마라톤을 통해 배웠다.”
숱한 우승 경험과 인간 승리로 한국 마라톤을 대표하던 그는 중추신경계 이상으로 근육이 경직돼 몸이 뒤틀리는 희소질환인 근육긴장이상증 판정을 받았지만 수년간의 수술과 재활로 다시 건강을 회복했다. 그는 “한창 아플 때는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100m를 걷는 것도 힘들었다”라며 “요즘은 두 번째 인생을 사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 사족. 마라톤 선수 출신인데 이 질문이 안 나올 수가 없다. 러닝화는 중요한가요? 어떤 걸 신어야 할까요? 대답은 꽤 간단하면서도 충청도 화법을 느끼게 했다. 그대로 옮겨본다. 과거엔 짚새기만 신어도 뛸 사람 잘 뛴다는 말도 있었는데... 장비가 전부는 아니라고 본다. |
이봉주 “데드포인트도 즐겨라… 마라톤에 인생의 지혜가 있다”
서울신문 ‘광화문라운지’ 강연, 규칙·페이스메이커 등 3원칙 강조근육긴장이상증 시련… 건강 회복 “규칙의 힘을 믿어라. 페이스메이커를 곁에 둬라. 데드포인트를 즐겨라.” 5일 서울 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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