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났던, 그 모든 순간들>

한덕수, 사랑과 호남을 그대에게

betulo 2025. 11. 5.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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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만났던, 그 모든 순간들 003>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을 통해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물론 너무나 교활하게도 ‘아무 생각없는 공무원’ 행세를 하는 아이히만에게 아렌트가 깜빡 속았다는 얘기도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의 평범성’ 자체는 여전히 두고 두고 곱씹어야 할 통찰력이 아닐까 싶다. 사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 저지르는 끔찍한 악행이라는 모순을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사람이 있긴 하다. 한덕수. 만화 캐릭터 라바를 닮은 하버드 졸업생, 대통령 권한대행, 중요내란임무종사자.

  공교롭게도 한덕수와 두 번 만나봤다. 그는 처음 만났던 2007년에 국무총리 내정자였는데 두 번째 봤던 2023년에도 국무총리였다. 두 자리 모두 한덕수가 한 시간 넘게 하는 얘기를 들었다. 그 뒤 한덕수는 윤석열 탄핵 이후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했고, 본인 역시 탄핵을 당했다. 대통령 후보를 미치도록 하고 싶어 새벽잠을 설치더니, 광주 망월동에서 사랑과 평화를 목놓아 외쳤다. 지금은 중요내란임무종사자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한덕수는 꽤 성공한 공무원이다. 1967년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했고 1970년에는 제8회 행정고등고시에 합격했다. 대학은 1971년에 졸업했다. 이른바 ‘소년급제’다. 경제기획원에서 일하다 미국으로 유학가서 1984년 하버드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특히 노무현 정부에서 승승장구했다. 국무조정실장, 재정경제부 장관을 역임했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 마지막 국무총리였다. 이명박 정부가 전임 정부 사람들 들들 볶는 속에서도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주미대사로 일했다. 윤석열 정부 유일한 국무총리였다.

  사실 한덕수 같은 사람을 임기 마지막 국무총리로 시키는 걸 보고 노무현 대통령에게 엄청나게 실망했다. 이런 사람을 기용했으니 정부 꼴이 그 모양이지 하는 생각을 했다. 그 결정적인 계기가 2007년 3월이었다. 당시 한덕수는 국무총리 내정자 신분으로 대학교 새내기 10명을 서울 중구 코리아나 호텔에 초청했다. 이름도 거창하게 ‘서울지역 대학 우수 합격자와의 간담회’였다. 당시 엄청난 논란이 벌어지고 있던 한미FTA 문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아주 솔직하게 밝혔다. 사실 너무 솔직해서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가령 이런 말을 했다.

“경쟁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한미FTA를 반대한다.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그렇다. 그들에 대해서는 답이 안 나온다. 그들에게는 ‘하루빨리 외무고시 합격해서 대외협상을 맡아 달라’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과거처럼 정부가 어느 분야를 막아주고 규제하고 보조금을 퍼붓고 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이제는 자유를 가지는 경쟁을 통해서만 우리가 발전할 수 있다.”

  노무현 정부는 국민을 소비자로 둔갑시키는 안 좋은 행태를 많이 보였는데 한덕수가 딱 그랬다. 한덕수에 따르면 “한미FTA는 소비자들의 장바구니 물가를 싸게 해주자는 것”이다. 농수산물 수입개방 문제는 “소비자들 장바구니 사정을 고려할 때 사실은 (농업도) 빨리 개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숙명여대 학생이 쇠고기 수입 문제를 묻자 한덕수는 “국가가 나서서 쇠고기에 관세를 높게 하면 소비자는 굉장히 비싼 값으로 쇠고기를 먹어야 한다”고 답했다.

  광우병 우려에 대해선 이렇게 말했다. “국제수역기구 기준을 우리가 따르면 된다. 현실적으로 적절한 방법은 국제기준을 따르고 국제기준보다 더 엄격하게 하는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을 때 해야 한다. 미국 국민은 정부 조치를 믿고 미국산 쇠고기를 먹고 있다. 한미FTA반대론자들은 미국 가서 미국 쇠고기 안 먹을 건가. 2003년까지 한국은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했고 그 중 60% 가량이 뼈가 붙어있는 갈비였다.” 이 자리에 배석한 한미FFA체결 지원위원회 관계자는 “한국 쇠고기는 호주산보다도 비싸다. 발견됐다는 뼈도 700상자에서 하나 발견된 것이고 그나마 손톱만한 크기였다”고 말했다.

  연세대 학생이 한미FTA 체결이 헌법을 포함한 국내 법률 169개를 개정 또는 폐지하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갖는다는 주장에 대한 생각을 묻자 한덕수는 “그런 주장하는 사람들은 거짓말쟁”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 선진국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고칠 부분이 더 많을 것이다. 문제는 법률을 고쳐서 한국이 도움이 되느냐 하는 여부”라면서 “우리는 우리에게 도움이 될 거라 믿는 것만 고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도 한미FTA 체결하고 나면 그를 위한 법률을 제정하게 돼 있다”면서 “그 법률 안에 한미FTA를 집행하기 위한 항목을 다 집어넣는다”고 주장했다. 물론 그 뒤 미국이 한미FTA 때문에 법률을 고쳤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당연한 것 아닌가? 하버드 근처에도 안 가본 사람도 아는 걸 모르시다니. 실망이다.

  2023년 7월에는 한덕수가 공관에서 주최한 만찬에 갔다. 여러 가지 얘기를 했는데 가장 기억나는 건 당시 한창 논란이 되고 있던 양평고속도로 노선 변경 문제였다. “내가 솔직히 고속도로 하나 어떻게 다 알겠느냐. 사안 불거지고 어떻게 된 건가 하니까 어떤 사람이 그냥 원희룡TV 보면 이해 잘 될 거라고 해서 그걸로 보고 이해했다. 원희룡이 고속도로 백지화 발표한 건 나중에 알았다. 당시 나는 카리브해 해외순방중이었다. 논란이 이미 됐고 원안대로 하면 야당에서 자기들 투쟁 결과라고 할 것이고 수정안 고수하면 총선까지 끌고 갈 것이다. 야당이 어차피 예산반영도 안 해줄 것이고, 그래서 이럴 거면 백지화하자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장관이 알아서 하는 거지 도로 하나 갖고…”

  그는 여전히 경쟁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박정희 때가 자유시장경제 제일 활성화됐던 것 같다. 그 이후론 이념이 개입해서… 병원을 비영리로 묶어놓은 게 말이 되나. MBA 나온 사람도 병원 운영하게 해서 경쟁을 시켜야지.”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

솔직히 그 뒤 한덕수에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한덕수가 내 눈을 다시 한 번 사로잡은 건 2025년 5월 대통령 선거 후보를 자처하는 와중에 광주 망월동 묘역을 방문했다는 뉴스를 봤을 때였다.

한국 사회에서 “너 전라도 사람이냐”는 질문은 구별짓기와 낙인찍기를 상징한다. “너 경상도 사람이냐” 혹은 “너 서울 사람이냐”는 질문에서는 그런 맥락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미국에서 “너 기독교도냐”와 “너 무슬림이냐”라는 두 질문과 본질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다. 최근 서울서부지법 폭동에서 폭도들이 “너 중국 사람이냐”라고 묻는 장면을 뉴스에서 봤는데 그런 질문을 했다는 것 자체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지역감정’이라는 근본없는 물타기 용어로 통용되던 호남차별은, 차별이 흔히 그렇듯이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대학 시절 어떤 자리에서 “전라도 사람은 뒷통수 잘 친다”고 확신하는 사람들과 얘길 해본 적이 있다. 그들은 “주변 사람들이 다 그렇게 얘기한다. 사람들이 다 그렇게 말하는 건 뭔가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혹시나 싶어 전라도 사람한테 배신당한 적이 있느냐고 물어봤는데 그런 적도 없다. 그들은 알고 지내는 전라도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했다. 그들은 나와 인사한 지 한두 시간밖에 되지도 않았는데 내 앞에서 그런 말을 아지도 않게 했다. 그들은 내가 전라도 사람일 가능성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눈치였다. (아마도 내가 겁나 완벽한 서울 사투리를 썼기 때문일지도 모르것다.)

그때 경험은 그냥 똥 밟았다 생각해버리면 그만일지도 모른다. 당당하게 “전라도 것들은 죄다 빨갱이”라고 떠드는 사람과 말 섞어봤자 정신건강에 좋을 게 하나도 없다. 하지만 사회생활 하다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고향을 밝히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운 상황에 빠질 가능성은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 정부부처를 출입하면서 고향 얘기만 나오면 대충 얼버무리는 사람을 여럿 봤다. “나는 태어나기만 전라도일 뿐 어릴 때 (서울로) 이사 와서 잘 몰라요.” 그렇게 얘기하던 차관도 봤고 장관도 봤다.

한덕수는 좀 더 심한 사례였다. 그는 서울에서 나고 자란 서울 사람 행세를 했다. 어릴 때 고향 전주를 떠나 서울로 이사했고 서울에서 초중고는 물론 대학까지 졸업하고 수십년을 서울에서 살았으니 아주 이해 못할 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두 가지는 꽤 불편했다. 하나는 그가 어디서 태어났고 언제 서울로 이사 갔는지 뻔히 아는 기자들이 ‘전북 출생’이라고 썼다고 굳이 전화해서 고쳐 달라고 항의했다는 증언을 들었을 때였다.

  또 하나는 고향을 이리저리 갈아 끼웠다는 걸 알았을 때였다. 예전 신문기사를 찾아보니 한덕수는 1996년과 1997년에는 분명히 서울출생이라고 했는데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1998년에는 갑자기 ‘전북 출생’이라고 출생지를 바꿨다. 그가 ‘통상의 달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세탁의 달인’이라는 건 분명해 보인다.

한덕수는 지난 5월 1일 대통령선거 출마를 선언하고 다음날 광주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았다가 문전박대를 당하자 “저도 호남 사람입니다.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미워하면 안 됩니다”라고 말했다. 신문에서 이 발언을 듣고 보니 한덕수에게 따뜻하고도 구수한 고향말로 대답을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염병헐 사랑이 다 얼어 죽었다냐. 니미 코꾸녁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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