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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철살인 시사만평에 담긴 땀과 눈물...권범철 화백 이야기

betulo 2025. 6. 27.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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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에서 가장 먼저 보는 건 ‘한겨레 만평’이다. 하루 동안 있었던 각종 사건사고에서 추려낸 주제를 네모 안에 펼쳐 보이는데 눈길을 주고 1초 안에 빵 터지는 게 매력이다. 그 만평을 그리는 주인공이 화백 권범철이다. 저널리즘학연구소가 주최하는 월례포럼에 초청강사로 온 권범철을 만났다. 그는 '공론장과 시사만화'라는 발표를 통해 자신이 시사만화가가 된 계기로 시작해 오랜 기간 시사만화를 그리면서 느꼈던 시대변화, 그리고 시사만화가 직면한 도전에 대해 말했다. 그가 말하는 ‘시사만화가 직면한 도전’을 듣다보면 그것이 ‘한국사회가 직면한 도전’과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권범철은 시사만화계에서 막내다. 정식으로 만화를 공부한 것도 아니다. 심지어 색맹까진 아니어도 색약이다. 대학 시절 동아리에 가입했는데 그 동아리가 주로 하는 일이 집회시위에 쓸 현수막과 걸개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그걸 계기로 학보사에서 만평을 그렸다. 대학 졸업을 고민할 무렵 회사원이 되고 싶지 않아서 선택한 게 이주노동자 관련 시민단체였다.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건 참 좋은데 참 경직돼 있었습니다. 대표가 한 명 있으면 십년 이십년 계속 대표를 하는데 답답하더라고요.”

 그때 눈에 들어온 게 시사만화였다. 시골에 있는 빈집을 구해서 시사만화를 연습했다. 당시만 해도 신문사에서 시사만화가를 공채로 뽑았다. 부산에 있는 국제신문에 채요이 됐다. 3개월 동안 수습기간을 거치면 정식직원이 되는 게 보통인데 그러질 못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건방져서 짤렸다고 합니다.” 밤에 잠을 못잘 정도로 괴롭던 시절 오마이뉴스와 인연이 이어졌다. 시사만평 한 편에 1만원을 받으며 한 달간 하루도 빠짐없이 그렸다. 그게 2001년이었다. 그 즈음 경남도민일보에 자리를 잡게 됐다. 그 뒤 노컷뉴스와 미디어오늘 등을 거쳤다. 

 당시는 언론사마다 인터넷 홈페이지를 활성화하던 초창기였다. 시사만평도 온라인에서 유통되고 화제가 되고 논란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시사만평이 필화의 대상이 됐다. 그래도 노무현 정부 시기는 표현의 자유가 활발했다. 모두가 정부와 노무현을 아무 걱정없이, 때로는 너무 지나치게 비판했다. 하지만 넘쳐나던 표현의 자유는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급격하게 위축됐다. ‘길 가다가 넘어지기만 해도 노무현 때문’이라던 국민들이 청와대 눈치를 살폈다. 그런 속에서도 청와대에서 ‘저 만평만 보면 이가 갈린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비판정신이 살아있는 시사만평도 적지 않게 나왔다. 이 즈음 조중동에서 시사만평이 사라졌다. 화백이 퇴사하거나 숨지고 그 빈자리를 메울 사람이 없다보니 나온 현상이었다. 권범철은 “이 시기가 시사만평의 정점이 아니었을까 싶다”고 말했다.

 2015년 9월 국정교과서 논란을 비판하는 한겨레 장봉군 만평이 홈페이지에서 삭제되는 일이 있었다. 사내 여성기자들이 여성혐오라고 문제제기한 게 계기였다. 장봉군 화백이 한겨레에 사표를 던졌다. 정치적 올바름이 공론장을 지배하기 시작하는 한 양상이었다. 

 문재인 정부에선 ‘문빠’가 논란을 일으키는 일이 많았다. 매일신문에서 엄청난 진보적 만평을 그리던 김경수가 온라인에서 문빠들한테 엄청난 비판을 받았고, 그 일을 계기로 극우화했다. 권범철 역시 봉변을 치른 기억이 있다. 만평에서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그걸 자기편들과 힘을 합쳐 행동에 나섰다. 만평가로서 만평 하나 그릴때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구독부수도 상당한 악영향을 받았다. 

 권범철이 지금도 잊지 못하는 게 사드기지를 둘러싼 만평이다. 항의전화가 쏟아져서 하루 종일 회사에 있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며칠 뒤에는 이정렬(전 부장판사)이 <위법성 조각 사유>라는 칼럼까지 한겨레에 실었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기초에 해당하는 것으로 충분히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는 법령이나 판례에서 보듯 ‘진실한’ 사실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허위사실인 때에는 위법성 조각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명백히 위법한 행위이다.” 이 칼럼은 한겨레 시사만평 화백 권범철의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했다.('위법성 조각 사유'라는 칼럼이 다시 생각났다. 처음 봤을 당시에도 그렇고 지금 다시 봐도 일관성있게 끔찍하다.) 

 권범철이 보기에 문재인 정부에선 ‘정치적 올바름’이 활짝 꽃핀 시기이기도 했다. 특히 성역할과 피해자관점을 이유로 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국민의힘 의원들을 치어리더로 풍자했더니 왜 여자로 표현했느냐고 해서 치마를 바지로 바꿔야 했던 일도 있었다. 

 그렇게 윤석열 시대가 왔다. 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위협받은 시기였다. 다행히 그 시대는 3년만에 막을 내렸다. 이제 시사만평은 또다른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정파성과 정치적 올바름은 끊임없이 만평의 상상력을 옭죈다. 안팎으로 사실상 검열에 직면해 있는 것일까. 다른 한편으론 시대변화와 공론장 변화 속에서 새로운 길을 끊임없이 모색해 간다. “복부인이란 표현이나 삽화가 신문에서 사라진 게 꽤 오래 됐습니다. 부동산투기를 여자만 하는 것도 아닌데 선입견을 강화할 수 있다는 지적 때문입니다.” 

신문 만평 자체가 하나 둘 사라지고 새로운 만평가를 육성하거나 채용하는 시스템 역시 사라졌다. 그런 속에서도 그는 하루 하루 만평을 그린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한겨레 시사만평을 보고 1초만에 빵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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