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삶 위한 ‘촛불’·‘등대’의 아름다운 만남 (2004.10.1)
공동체 삶 위한 ‘촛불’·‘등대’의 아름다운 만남 | |||
‘풀뿌리가 희망이다’ ③ 잘 먹어야 잘 산다: 광명 YMCA 먹거리 생협 | |||
시민의신문ㆍKYCㆍ아데나워 재단 공동기획 ‘풀뿌리가 희망이다’ | |||
2004/10/1 | |||
강국진 globalngo@ngotimes.net ![]() | |||
시민의신문은 KYC와 시민방송 RTVㆍ아데나워 재단과 공동으로 ‘시민교육자료 발간사업’을 앞으로 두달에 걸쳐 진행합니다. <시민의신문>은 ‘풀뿌리가 희망이다’를 주제로 시민운동의 지역현장에서 풀뿌리 단체들이 진행하고 있는 소중한 ‘실험’들을 소개하고 동시에 ‘실험’이 틔운 희망의 씨앗을 아직 풀뿌리 운동이 활성화되지 않은 다른 지역으로 널리 알려내기 위해 12주에 걸쳐 기획기사를 연재합니다. 동시에 시민방송은 풀뿌리 지역활동가들을 선정, 그들이 지역활동에서 부딪히는 고민과 소망을 담아내는 비디오 자료를 제작합니다. 제작된 결과물들은 각각 연재기사ㆍRTV를 통한 방영 이후에 자료집과 비디오테이프의 형태로 발간될 예정이며, 이제 막 지역 시민사회운동에 참여를 시작한 분들, 또한 지역운동의 얽힌 실타래를 풀어갈 고민을 하는 지역활동가들에게 길라잡이 되기를 바랍니다.
지난 22일 아침 10시쯤 경기도 광명시 하안동 아파트단지에 아주머니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이야기꽃을 피우던 이들은 곧 도착한 광명 YMCA 차량에서 야채, 고기, 생선, 과일, 달걀 같은 유기농 먹거리를 부려놓는다. 미리 주문한 내역과 대조해서 ‘등대’끼리 분배하는데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광명YMCA 생협의 가장 큰 특징은 따로 유기농먹거리 매장을 만들지 않고 ‘등대’별로 필요한 먹거리를 공동 주문하고 분배도 ‘등대’별로 한다는 점이다. 자연스럽게 ‘등대’ 모임이 생협의 중심이 되도록 하는 구조다. 또 ‘등대’ 모임에서는 공동체를 느낄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한다.
광명 YMCA 먹거리 생활협동조합은 회원을 ‘촛불’이라 부른다. 촛불 대여섯은 ‘등대’를 이루고 등대들이 모여 한 마을을 이룬다. 하안12단지에는 다섯 등대가 있다. 화끈한 등대, 빵빵한 등대, 햇살 등대, 개미 등대, 맑은 등대 식으로 저마다 이름이 있다. 이들이 한 마을이다.
등대에는 등대지기가 있고 1주일에 한번씩 정기모임을 연다. 촛불들은 각자 ‘지기’ 모임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생활재, 독서, 나눔, 사귐, 세상 등이 있는데 한 달에 한 번 정기모임을 연다. 각 지기들은 이 자리에서 배운 내용을 등대모임 때 알리고 토론을 벌인다.
화끈한 등대 촛불들이 등대모임을 시작하기 전 담소를 나누고 있다. 11시가 되자 김희진씨 집으로 ‘화끈한 등대’ 촛불 6명이 모이기 시작했다. 서로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으며 사과도 나눠먹는다. 저농약 사과라 그런지 껍질을 깍지 않고 먹는다. 등대모임은 촛불들 집에서 돌아가면서 열고 사회도 교대로 맡는다.
촛불들은 곧 등대모임을 시작했다. 맨 먼저 생협 생활수칙을 낭독한다. “자연자원과 생활용품의 소비를 최대한 줄인다. 환경오염을 줄이는 방향으로 생활방식을 바꾼다. 지역자치에 관심을 갖고 참여한다. 항상 배우고 실천하며 나누는 생활을 한다.” 모임에 노래가 빠질 수 없다. 이번 주 부를 노래는 동요 ‘노을’. 곧이어 이어지는 ‘나만나기’ 시간. 10분 가량 명상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이다. 명상음악이 흘러나오자 모두들 눈을 감고 명상에 빠진다. 함께 온 아이들도 엄마들을 따라 눈을 감고 명상 흉내를 낸다.
‘생활나눔과 반성’은 자신이 일주일 동안 생활하면서 느낀 점과 반성한 일들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시간이다. 이를 통해 다른 촛불이 지난 한 주 어떻게 지냈는지 알게 되고 서로를 더 이해하게 되는 셈이다.
일주일마다 주제를 바꿔가며 벌이는 토론이 등대모임 2부를 이룬다. 오늘은 생활재지기, 사귐지기, 독서지기가 월례 지기모임에서 배운 내용을 설명한다. 생활재지기는 추석을 맞아 국산품과 수입품을 판별하는 방법, 남는 의식 처리법, 기름 종류 구별법 등을 설명한다. 독서지기는 이번달 읽을 책으로 <석유시대, 언제까지 갈 것인가>를 제시했다. 사귐지기가 토론을 이끌 주제는 단점을 바꾸는 법이다.
등대모임이 생협의 힘
“등대모임 활성화가 생협이 성공한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힘주어 강조하는 박제훈 광명Y 생협 간사는 풀뿌리의 힘에 기댄 활동을 무척 자랑스러워한다. 촛불들의 힘이 등대로 다시 마을로 모이고 이 힘이 생협과 광명Y의 힘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실제 촛불들은 생협을 하고 나서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며 생협 자랑이 대단했다. ‘화끈한 등대’ 생활재지기인 심미정씨는 “처음엔 유기농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생협에 가입한 경우다. 그는 “등대모임을 하기 전에는 내성적인 성격이었다”며 “등대모임에 참여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인간관계가 좋아졌다”고 자랑했다. 1년마다 등대모임을 새로 구성해서 계속 새로운 ‘촛불’들과 새로운 만남을 가질 수 있도록 한 방침 덕분이라는 설명이다.
먹거리 생활이 바뀐 점도 큰 변화이다. 촛불들은 대개 아이들에게 인스턴트 식품을 먹이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아이들도 인스턴트 식품이 몸에 안좋다는 걸 듣다 보니 자연스럽게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을 배우게 된다. 한 ‘촛불’은 “아이들이 먼저 감자나 고구마 껍질에 영양분이 많다고 하면서 껍질을 벗기지 않고 먹는다”며 “아이들의 먹거리 문화가 바뀌면서 아이들이 더 건강하게 자란다”고 흐믓해했다.
김지영 마을지기(광명시 철산8단지)는 “모임을 계속하다 보면 다들 환경을 생각하고 자치를 고민하는 등 좋은 방향으로 발전한다”고 자랑한다. 주부 조춘만씨는 “유기농을 먹기 위해 생협에 가입했다”며 “믿고 먹을 수 있고 제철에 난 자연식을 먹으면서 먹거리가 안정됐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공동체 생활을 하게 되면서 생활도 많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햇살 등대’ 생활재지기 황규옥씨는 “시민들이 공동체 생활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먹거리는 오히려 두 번째”라고 설명했다.
촛불들부터 올라오는 먹거리 생협의 힘은 촛불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나눔장터에서 확실히 드러난다. 생협에서는 부정기 나눔장터와 정기 나눔장터를 광명시 곳곳에서 연다. 한번 열 때마다 수백명이 몰리는 이 나눔장터는 준비부터 판매까지 모두 ‘촛불’들 힘으로 해결한다.
촛불들이 준비부터 평가까지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광명시 나눔장터를 찾은 시민들이 물건을 보고 있다.
모범적인 생협으로 알려지면서 다른 풀뿌리단체에서 견학도 많이 오고 배우려는 단체도 많지만 광명Y 생협도 고민이 없지는 않다. 박 간사는 “등대모임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은 대부분 가정주부이고 사실 직장에 다니는 여성은 등대모임에 참여하기 힘든게 사실”이라며 “결국 생협이 중산층 운동이 아니냐는 비판도 듣는다”고 털어놓는다.
또다른 문제는 생협 이사회를 구성하는 마을지기들에게 업무가 과도하게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박 간사는 “마을지기들 가운데 부담을 느끼는 사람도 없지 않다”고 귀띔했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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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0월 1일 오전 8시 22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