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진 새 이사 최홍재, 만세파에서 네오콘으로
나는 여러 해 전에 그를 취재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와 그의 동료들을 ‘네오콘’으로 결론 내렸다. 당시 내가 썼던 기사들을 토대로 최홍재가 어떤 인물인지 소개해본다.
극단에서 극단으로, 북한민주화운동
우파,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2004.11.24)
‘생활인 386’들, “극우 치중 안쓰럽다” (2004.11.25)
“합리적 보수 선언한 것” (2004.11.25)
뉴라이트, "한국판 네오콘"인가 (2004.11.26)
‘뉴라이트’ 이름값 제대로 하긴 하나
“전향한 전직 주사파들의 처절한 몸부림” (2004.11.25)
2004년 11월 23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21세기형 자유주의 전사 집단”을 자처하는 자유주의연대 창립식이 열렸다. 동아일보가 그 즈음 ‘뉴라이트’라는 신조어를 회사 차원에서 퍼뜨리던 당시여서 안팎의 관심을 모았다. 최홍재는 자유주의연대 운영위원이었다.
그들은 창립선언문에서 이렇게 외쳤다. “국민적 예지를 모아 선진국 건설에 매진해야 할 무한경쟁의 시대에 자학사관을 퍼뜨리며 ‘과거와의 전쟁’에 자신의 명운을 걸었다”고 했다. ‘자학사관’이란다. 한국 동쪽에 있는 이웃나라에서 자주 들리던 말 아닌가.
또 이런 말도 했다. “노무현 정권은 좌파 포퓰리즘 정권이다. 국가정체성을 훼손하는 집권세력으로 인해 대한민국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 있다. 대한민국은 공산주의의 위협이라는 백척간두의 위기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냈으며 한강의 기적을 이룩했다. 북한 인권개선과 민주화를 추구한다. 부시행정부의 대북정책을 지지한다.” 역시 80년대 교련시간이나 국민윤리 시간에 많이 들어본 소리다.
자유주의연대는 자신들의 개혁방향을 △과거청산보다 미래건설에 초점을 맞춘 개혁 △시장주도형 방식(작은 정부 큰 시장)으로 경제시스템 전환을 통한 2만달러 시대 개척 △자유무역협정 능동적 추진 △빈부격차 해소가 아닌 빈곤 해소 △학생에게 학교선택권을 학교에게 학생선발권을 주는 교육혁신 △북한 대량살상무기 문제의 근원적 해결을 통한 전쟁가능성 제거 △북한 인권개선과 민주화 추구 △한미동맹 발전 등으로 규정했다.
최홍재는 창립식과 함께 열린 토론회에서 발제를 했다. 제목은 ‘잃어버린 세대 386(?), 386에 대한 성찰적 회고’였다. 그는 먼저 이렇게 치고 나간다. “386운동은 반미친북 사회주의자 그 자체였으며 386에게 민주화는 사회주의나 북한화 통일로 가는 전술이었다.”
이어 “386은 김정일과 운명공동체가 되었다. 유엔인권위의 대북인권결의안 채택과정에서 386의원들이 보여준 모습은 반미-반인권-친김정일의 사고방식을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햇볕정책으로 친북반미가 사회적으로 확산됐다.”
최홍재는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도 의견을 밝혔다. “국보법에는 국가안보와 정권안보라는 측면이 존재한다. 정권안보를 위해 인권을 침해하는 사례가 한국사회에서 자유주의 풍토를 약화시킨 것은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국가보안법이 국가안보에 도움을 준 측면도 분명히 있다”며 “김신조 사건, 아웅산 묘지 사건, KAL 858기 사건 등에서 보듯 한국전쟁 이후 국가안보는 절실한 과제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형법개정이니, 대체입법이니 하는 것은 부차적이고 소모적”이라고 덧붙였다.
행사가 끝나고 며칠 후 나는 그와 직접 인터뷰를 했다. 당시 그는 “자유주의연대는 ‘신우익’이 아니라 ‘진정한 우익’”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했던 핵심 발언을 인용해본다.
방송에 진입한 한국판 네오콘
취재 당시 나는 자유주의연대를 비롯한 뉴라이트를 ‘네오콘’이라고 규정하는 기사를 쓴 적이 있다. 여러 전문가들을 취재했을 때 의견이 대체로 일치했다.
이철기 동국대 교수는 “극단적인 반공주의, 대북대결주의, 북한인권문제 거론 등은 ‘뉴라이트’와 미국 네오콘의 공통점”이라고 지적했다.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도 “좌파에서 우파로 전향했다는 점, 입지를 정당화하기 위해 중도를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우익입지를 강화시키려 한다는 점, 엔지오를 표방하지만 굉장히 정치적이라는 점” 등을 들어 “네오콘과 비슷한 점이 많다”고 말했다.
사실 ‘뉴라이트’와 네오콘의 관련성은 당시 동아일보도 인정했다. 동아일보는 뉴라이트를 다룬 일련의 기획기사 가운데 2004년 11월 8일자 ‘왜 움직이기 시작하나’에서 “뉴라이트가 정치적 자유주의, 경제적 시장주의, 외교적 국제주의를 표방한다는 점에서 1980년대 등장해 미국 ‘레이거노믹스’의 정책기조를 이룬 뉴라이트 신보수주의 운동과 맥이 닿아 있다”고 밝혔다.
당시 동아일보는 11월 8일부터 15일까지 6번에 걸쳐 ‘뉴라이트 침묵에서 행동으로’라는 기획연재기사를 내보냈다. 이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 중 하나는 당시 이동관 동아일보 정치부장(현 청와대 대변인)이 2004년 11월 18일자에 쓴 ‘뉴라이트를 잡아라’이다. 그는 여기서 “이제 한나라당의 유일한 활로는 뉴라이트로 상징되는 이념의 중간지역으로 진출하는 길밖에 없는 듯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 말은 뒤늦은 예언이 돼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만세파에서 네오콘으로
자유주의연대가 386을 싸잡아 비난한 것과 관련해 전대협과 한총련에서 일했던, 그러니까 최홍재와 비슷한 시기에 학생운동 핵심부에 있던 사람들을 여럿 인터뷰했다. 이 가운데 모 인사가 해준 말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말인즉슨, 주체사상에 심하게 경도된 학생운동그룹을 일컫는 은어 혹은 속칭이 ‘만세파’였는데 최홍재가 딱 그랬다는 것. 최홍재는 고려대 총학생회장을 하면서 학생운동 핵심부에 있었는데 다른 학교 간부들과 회의를 할 때면 항상 “장군님 만세”를 외치고 회의를 시작하자고 제안을 했다고 한다.
만세파에서 뉴라이트라는 이름의 네오콘으로. 최홍재의 인생경로는 그 자체로 대하소설이라는 건 누가 봐도 분명해 보인다. 읽고 싶은 내용인지 아닌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말이다. 그의 다음 변신은 또 얼마나 드라마같을지, 호불호를 떠나 기대가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2004년 11월. 인터뷰할때 찍은 최홍재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