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雜說/자작나무책꽂이74

걷는다, 고로 존재한다 2022년에 읽은 책 99권 가운데 (내 맘대로) 10권을 엄선했습니다. 10권을 위한 짤막한 독후감을 써 봤습니다. (베르나르 올리비에, 임수현.고정아 옮김, 2003, 효형출판) “나는 여행하고, 나는 걷는다. 왜냐하면 한쪽 손이, 아니 그보다 알 수 없는 만큼 신비한 한 번의 호흡이 등 뒤에서 나를 떼밀고 있기 때문에(3권 464쪽).” 퇴직한 기자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터키에서 출발해 중국 서안까지 세 차례에 걸쳐 네 차례에 걸쳐 쉬지 않고 걷는 여행을 했습니다. 이 책의 매력은 너무나도 많지만 첫손에 꼽고 싶은 건 별다른 사진이 없다는 겁니다. 사진이 없기에 우리는 저자가 들려주는 사람들 이야기에 더 집중하게 되고, 저자가 보여주는 풍경을 끊임없이 상상하게 됩니다. 언젠가, 나도 이 고집센 프랑스.. 2023. 1. 9.
영웅이야기를 걷어내고, 세계사를 움직여버린 한 청년에 주목하다 2022년에 읽은 책 99권 가운데 (내 맘대로) 10권을 엄선했습니다. 10권을 위한 짤막한 독후감을 써 봤습니다. (Scott Anderson, 정태영 옮김, 2017, 글항아리) 아라비아의 로렌스라고 하면 많은 분들이 같은 제목을 단 영화를 떠올립니다. 저도 딱 거기까지였습니다만 거기에 하나가 더 있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가 20세기 초 제멋대로 서남아시아를 이리 붙였다 저리 붙였다 담합하고, 당사자들을 속이고 협박한 결과물이 오늘날 우리가 보는 국경선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마당에 T.E.로렌스(1889~1935)가 멋있게 보일 턱이 없습니다. 게다가 그 영화는 똑똑하고 열정이 넘치는 영웅이 순수하고 우직한 사막의 ‘순수한’ 베두인들과 힘을 합쳐 ‘침략자’(!)를 무찌르는 내용으로만 보일 뿐이어서 .. 2023. 1. 9.
아깝다 한 권, 독서로 되돌아 본 2022년 숫자라는 건 참 오묘합니다. 99와 100 사이에는 단지 1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지만 우리는 99와 100을 굉장히 다르게 느낍니다. 99와 100은 98과 99는 물론이거니와 999와 1000과도 사뭇 달라 보입니다. 물론 0과 1은 말할 것도 없겠지요. 우리 머리는 특정한 숫자를 듣는 순간 그 숫자에 담긴 상징과 터부, 역사적 기억을 떠올립니다. 인천국제공항에는 4번과 44번 게이트가 없고 유럽 항공기엔 13번째 줄이 없습니다. 한국인이라면 416이나 518, 미국인이라면 911, 대만인이라면 228, 버마인이라면 8888이라는 숫자를 들었을 때 즉각 특정한 생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맞습니다. 숫자는 숫자일 뿐이라고 아무리 자기 세뇌를 걸어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12월31일과 1월1일은 그냥 하.. 2023. 1. 9.
엉터리 번역이 망쳐놓은 추천도서③ <지정학> 요즘 지정학에 꽂혀 있다. 검색을 쭉 해서 지정학 관련 책을 어지간히 사서 하나씩 읽고 있다. , , , 가 최근 읽은 책들이다. 여러 해 전에 읽었던 이나 도 다시 들춰봤다. 그런 가운데 읽은 책 가운데 하나가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이다. 파스칼 보니파스(Pascal Boniface)가 쓰고 최린이 번였했다. 2019년에 가디언이라는 출판사에서 출간했다. 책 자체는 평이하다. 뭔가 큰 지적 충격을 주는 건 그다지 없고 이미 알던 내용을 펼쳐놓은 정도다. 내용은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은 책이지만,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건 따로 있다. 명색이 지정학을 다룬 책인데 정작 세계지도에 오류가 한 가득이다. 아일랜드를 영국과 함께 표시해 놓거나 북극해에 있는 섬을 제대로 캐나다와 러시아 영토로 구분하지 못한 건 그.. 2022. 11. 28.
그 시절 '남산'으로 불리던 사냥개 이야기 (1) 김충식, 2022, '5공 남산의 부장들', 블루엘리펀트 “앞으로 중앙정보부는 ‘사바크’가 되지 말고 , 모사드가 되어야 한다.” 1980년 4월 15일 보안사령관으로서 중앙정보부장을 겸직하게 된 전두환이 취임식에서 했다는 말이다(1권 137쪽). 사바크는 이란 팔레비 왕정 당시 비밀경찰이었다. 모사드는 이스라엘 해외첩보기관이다. 이제부턴 정권을 지키는 앞잡이가 아니라 국익을 수호하는 첨병이 되어야 한다는 선언이었다. 곧바로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과장급 이상 간부 대다수는 사표를 쓰게 하고, 국내정보인원을 대폭 줄이도록 했다. 그리하여 중앙정보부는 모사드 같은 조직이 되었을까. 이종찬 등이 주도했던 구조조정 작업은 5월 중순 전두환 지시로 중단됐다고 한다. 책에는 당시 학생시윅 갈수록 격.. 2022. 7. 11.
오류투성이 사실관계를 엉성하게 이어붙인 <제국의 시대> 세계사를 아우르는 거시적인 통찰력을 책 한권에 담아낸다는 건 정말이지 쉽지 않은 일이다. 무엇보다도 독자들에게 거대한 숲의 전체 모습을 설득력있게 보여준다는 것 자체가 만만치 않다. 그 숲을 보여주기 위해선 수십 수백그루에 이르는 나무를 전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이해해야만 하는데 이것 역시 보통 일이 아니다. 장삼이사들로선 나무 몇 그루 이해하는 것만도 버겁다. 그렇다고 언감생심 숲은 신경쓰지 말고 나무만 제대로 공부하라는 것도 권장할만한 태도는 아닐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세계사를 조망하면서 역사의 큰 그림을 보여주는 책을 보면 존경심이 절로 들 수밖에 없다. 가령 등 다이아몬드의 문명사 시리즈를 비롯해 나 같은 책들은 전세계를 무대로 하는 역사의 판도를 특정한 주제 속에서 풀어낸 책들이다. .. 2022. 3. 15.
책으로 되돌아보는 2021년 1. 정부나 회사, 군대 가릴 것 없이 조직에선 항상 인사, 평가가 중요한 문제일 수밖에 없습니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가히 틀린게 아닌게 자칫하면 ‘인사가 망사’가 되기 때문이겠죠. 문재인 정부만 해도 감사원장, 기재부장관, 검찰총장, 육해군참모총장 등 대통령한테 임명장 받은 핵심인사들이 줄줄이 야당에서 한자리 차지하는 것에서 이 정부의 실력과 성과가 대략 드러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인사를 잘 하는데는 논공행상과 신상필벌만한게 없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그게 참 쉽질 않습니다. 논공행상과 신상필벌을 제대로 하려면 성과를 정확히 판단하고 측정하고 평가해야 합니다. 여기서 가장 큰 어려움은 ‘어떻게’ 측정하느냐, ‘무엇을’ 판단하느냐, 그리고 ‘무엇을 위해’ 평가하느냐 입니다. 해마다 새해가 되면 지난.. 2022. 1. 3.
책으로 돌아본 2020년 어쩌다 보니 2020년은 코로나19로 시작해 코로나19로 끝났습니다. 저처럼 영화도 로드무비를 좋아하고 낯선 외국 가는 기회가 있다면 어지간해선 마다하지 않는 사람에겐 무척 아쉬운 한 해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나마 흔히 가긴 어려운 축에 드는 대청도-백령도 다녀온것 말고는 어디 하나 제대로 다녀온 적도 없이 한 해가 지나가 버렸습니다. 연말부터 커피숍에 앉아있는게 불가능해진것도 꽤나 뼈아픈 일입니다. 사실 커피숍의 적당한 소음과 넓은 책상은 제가 글을 쓰거나 책을 읽을때 꽤나 선호하는 학습환경이기 떄문입니다. 게다가 마스크쓰고 하는 것도 모자라 온라인으로 일본어 공부를 하라고 하니 이거 참 난감합니다... 올해는 코로나19가 좀 잦아들기를 기대해 봅니다. 2019년 연말에 인사발령이 있었고, 행정안전부와.. 2021. 1. 3.
책으로 돌아본 2019년 2019년을 뒤로 하고 2020년이 됐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우리는 모두 꺾어지는 숫자를 좋아합니다. 뭔가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며, 믿고 싶고 듣고 싶었던 어떤 의미에 귀기울입니다. 하지만 그 꺾어지는 숫자라는건 그 숫자에 담긴 어떤 상징을 공유하는 사람들한테나 의미가 있겠지요. 서기 1000년을 앞두고 유럽인들이 아마게돈 걱정에 불안해하는걸 무슬림과 유대인들이 생뚱맞게 쳐다보았을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꺾어지는 숫자를 맞아 지나간 꺾어졌던 숫자들을 되돌아보는게 아주 의미가 없지는 않을 듯 합니다. 저로선 20년 전인 2000년 1월초가 떠오릅니다. 당시 저는 어학연수를 위해 미국에 있었고, 21세기엔 뭔가 20세기보다 더 나은 세상이 펼쳐지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희망을.. 2020. 1.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