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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說/역사이야기28

맥락을 모르면 역사왜곡에 빠진다(1) 君子와 小人 우리가 쓰는 언어생활에서 군자와 소인이란 말은 구체적인 실체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 하나의 개념이다. 군자는 멋진 사람, 소인은 찌질이 정도 되려나.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군자’와 ‘소인’은 공자가 ‘소인이 되지 말고 군자가 되라’ 정도 설파하셨다는 것 정도 되겠다. 논어에 보면 '군자는 다른 사람들의 좋은 점은 완성시켜 주고 나쁜 점은 이뤄지지 않게 한다. 소인은 그 반대로 한다(君子成人之美 不成人之惡 小人反是)'고도 했고 '군자는 두루 사귀되 패거리를 만들지 않고 소인은 패거리를 만들되 두루 사귀지는 않는다(君子周而不比 小人比而不周)'라는 말도 나온다. 내가 보기엔 ‘군자’와 ‘소인’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은 역사적 맥락을 몰라서 발생하는 전형적인 오해에서 기인한다. 결과적으로는 이런 오해가 역사왜곡을 .. 2009. 11. 12.
자살 권하는 사회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죽음이 자살이다. 자살은 견디기 힘든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최후의 방법으로써 자기 자신을 위한 행동이다. 자살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기독교 성경을 통틀어 자살 행위를 묘사했다고 볼 수 있는 장면도 모두 합해서 열다섯 군데에 나온다. 뿐만 아니라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기록에서도 자살이 나온다. 이렇듯 자살에 관한 내용은 문학작품과 역사서 전체에 일화 형식으로 산재해 있다. 문자로 쓰인 역사에서 자살은 예나 지금이나 늘 논란이 분분한 행동이다. 물론 세계 어느 문화권에서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윤리적 관습의 틀에 갇힌 금기 행위였다. 사회는 인간에게 스스로 삶을 끝낼 수 있는 자유로운 권리를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높다는 보고는 .. 2008. 9. 24.
유럽의 종교분쟁과 우리의 차이 우리 인식 속에서 유럽은 ‘똘레랑스’ 즉 ‘관용’으로 각인돼 있다. 종교분쟁은 상상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 몇 건의 커다란 계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단연 중요한 계기는 ‘30년 전쟁’이다. 독일에서 일어난 30년 전쟁은 1618년부터 30년 동안 독일을 무대로 신교(프로테스탄트)와 구교(가톨릭)간에 벌어진 종교전쟁이다. 그 규모도 유럽 최대였다. 그런데 이 전쟁은 독일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 전쟁이 아니다. 300여개의 크고 작은 나라들이 개입된 첫 국제전쟁이었다. 사건의 발단은 종교개혁가 후스의 고향이었던 보헤미아(지금 체코의 서부이다)에서 일어난 ‘프라하 창문 투척사건’이었다. 1617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의 페르니난드 2세가 왕으로 즉위하면서 신교도 예배를 중지.. 2008. 9. 9.
우리나라에 왕당파가 없는 이유 21세기에 접어든 현대사회에서도 이름뿐인 존재이지만 왕이 있다. 또한 대부분의 나라에는 왕이 있거나 왕을 지지하는 왕당파가 존재해왔다. 비록 직접통치까지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유럽에서도 왕정폐지론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왕실들이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 이유도 있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존경받는 건강한 보수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민주화의 상징하면서 가장 존경받는 것으로 알려진 스페인의 후안 카를로스국왕이나 문제는 많지만 품위를 지키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대표적인 왕들이다. 우리에게도 왕이 있었다. 비록 그 자체를 부정하는 자칭 ‘새로운 우익’들이 정권을 잡았지만 분명히 수천년을 이어온 역사가 있다. 그리고 그 후손인 영친왕 이은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광복 후 18년이나 지.. 2008. 9. 8.
오바마 '인종차별 벽' 쉽지 않다 미국의 역사는 백인과 흑인의 역사라고들 말한다. 이것은 미국의 건설과정에서 흑인의 역할을 강조한 말이다. 우선 초기미국에 건너온 시기부터 그러하다. 현재 미국의 동해인 버지니아에 영국인이 상륙해서 식민지를 건설하기 시작한 시기는 1603년이다. 그리고 곧이어 흑인이 이곳에 도착한다. 물론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사실상의 노예상태였다. 그런데 미국은 공식적인 역사의 기원을 퓨리턴이라 불리우는 청교도에서 찾고 있다. 하지만 흑인들은 미국에 청교도들보다 먼저 도착한 것이다. 그래서 미국의 역사에 지우고 싶어도 지울 수 없는 것이 흑인들이다. 사실 그들이 초기 미국건설에 있어서 한축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이들이 처음부터 노예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당시 영국에는 노.. 2008. 9. 8.
왜 항상 음모는 '그들'이 꾸미는 걸까 드라마 은 외계인이 등장하는 음모론을 다룬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언제나 음모론을 끊임없이 신봉하고 열광해왔다. 그것은 음모론이 신비주의를 대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뭔가 불가사의한 현상뒤에 어떤 권력이나, 세력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는 식의 해석이 유행하면서 세상의 모든일이 음모론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논리"로 설명 불가능한 모든 것이 "음모"로 설명된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과학(논리)" 이전 시대에 모든 것을 설명해 주었던 "신비"의 대체 개념인지도 모른다. 즉 근대 이전의 "신비"가 오늘날에 와서는 "음모"로 대체된 것이다. 그리고 진위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이 자체는 무척이나 "유용한" 개념이다. 가장 대중적인 혁명중의 하나인 프랑스 대혁명에 대해서도 음모론이 제기되었다... 2008. 8. 1.
호민관클럽 고대로마는 초기에 왕정이었다. 왕은 군사 ·정치 ·제사의 여러 권능을 집중시켜 절대적이며 무제한적인 강력한 임페리움[명령권]을 가졌으나, 사실은 원로원 ·민회가 이것을 제약하여 동방에서와 같은 왕권은 발달하지 못하였다. 이때 시민은 시민에게는 파트리키(귀족)와 플레브스(평민)으로 구별했다. 파트리키는 많은 클리엔테스(피보호인)을 소유하고 있었다. 파트리키와 플레브스를 구별한 유래는 분명하지 않으나 역사가 분명해진 시대에는 파트리키란 특정한 가계에 속하는 사람을 가리키게 되었고, 그 이외의 사람은 아무리 재산이 많고 지식이 있어도, 파트리키가 될 수 없었다. BC 6세기 말 에트루리아인 왕의 압박이 심해졌을 때, 왕을 국외로 축출하고 공화제를 수립한 주체도 바로 이들 파트리키였다. 이들은 원로원을 중심으로.. 2008. 8. 1.
자베르 경감의 딜레마 -경찰은 어떤 임무에 충실해야 하는가 태초에 경찰은 없었다. 다만 사회가 만들어지고 구성원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경찰의 역할을 한 경우는 있었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직업경찰이 생겨났다. 세계에서 근대적인 국립경찰의 역사가 가장 오랜 것은 우리나라이다. 1829년에야 제복을 입고 칼을 찬 근대식 경찰인 파리경찰청과 런던경찰청이 생겼지만 우리는 그보다 300여년전인 1500년대에 포도청이 설치되었다. 조선의 기본법인 경국대전에는 포도청 규정이 없었으나 성종 때 도적의 발호를 막기 위해 한시적으로 포도장이라는 기관을 운영하다가 중종 때 아예 상설기관으로 만든 것이 포도청이다. 이렇게 민생치안을 위해 설치된 포도청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양란을 겪고 난후 왕권을 수호하는 .. 2008. 7. 7.
머슴을 부리는 법 지난 1월 ‘밑빠진독’ 님과 함께 팀블로그를 만들기로 했다고 발표한지 반년도 지나서야 약속을 이행하게 됐습니다. (밑빠진독님! 너무 부지런하신거 아녜요~~~) 밑빠진독님은 제게 ‘예산’ 문제를 일깨워주신 ‘싸부님’ 되시겠습니다. 저와 밑빠진독 님이 둘이서 글을 같이 올림으로써 ‘예산읽기 정책알기’라는 애초 취지를 더 잘 살릴 수 있을 거라 기대합니다. 아울러 밑빠진독 님과 저의 공통 취미생활인 ‘역사’ 주제도 밑반찬으로 내놓습니다. 밑반찬이 맛있으면 밑반찬 혼자서 밥도둑 구실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제 블로그도 그런 구실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머슴을 부리는 법민주주의의 특히 의회의 모델은 영국이 대표적으로 언급된다. 영국의 의회제도는 무려 7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그런데 이들이 완전.. 2008. 7.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