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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說/詩9

자작나무 숲으로 가서/ 고은 광혜원 이월마을에서 칠현산 기슭에 이르기 전에그만 나는 영문 모를 드넓은 자작나무 분지로 접어들었다누군가가 가라고 내 등을 떠밀었는지 나는 뒤돌아보았다아무도 없다 다만 눈발에 익숙한 먼 산에 대해서아무런 상관도 없게 자작나무숲의 벗은 몸들이이 세상을 정직하게 한다 그렇구나 겨울나무들만이 타락을 모른다 슬픔에는 거짓이 없다 어찌 삶으로 울지 않은 사람이 있겠느냐오래오래 우리나라 여자야말로 울음이었다 스스로 달래어 온 울음이었다자작나무는 저희들끼리건만 찾아든 나까지 하나가 된다누구나 다 여기 오지 못해도 여기에 온 것이나 다름없이자작나무는 오지 못한 사람 하나하나와도 함께인 양 아름답다 나는 나무와 나뭇가지와 깊은 하늘 속의 우듬지의 떨림을 보며나 자신에게도 세상에도 우쭐해서 나뭇짐 지게 무겁게 지고 싶었다.. 2013. 1. 13.
당신들이 아무것도 배우려 하지 않는다고 나는 들었다 당신들이 아무것도 배우려 하지 않는다고 나는 들었다. 추측컨대, 당신들은 백만장자인 모양이다. 당신들의 미래는 보장되어 있다. - 미래가 당신들 앞에 환히 보인다. 당신들의 부모는 당신들의 발이 돌멩이에 부딪히지 않도록 미리 준비해 놓았다. 그러니 당신은 아무것도 배우지 않아도 된다. 당신은 지금 그대로 계속해서 살 수가 있을 것이다. 비록 시대가 불안하여, 내가 들은 대로, 어려운 일이 생긴다 하더라도, 당신에게는 만사가 잘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 지를 정확하게 말해 줄 당신의 안내자들이 있다. 어떤 시대나 타당한 진리와 언제나 도움이 되는 처방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그들은 모든 요령을 수집해 놓았을 것이다. 당신을 위하여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 한 당신은 손가락 하나 움직일 필요가 없다. 그러.. 2012. 12. 18.
우리가 기억해야 할 마르틴 니묄러의 詩 나치는 우선 공산당을 숙청했다. 나는 공산당원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유태인을 숙청했다, 나는 유태인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노동조합원을 숙청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가톨릭교도를 숙청했다. 나는 개신교도였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나에게 왔다. 그 순간에 이르자, 나서줄 사람이 아무도 남지 않았다.- 마르틴 니묄러 어느 블로그에서 찾아보니 이 시의 영어제목은 (First they came)이라고 한다. 브리태니에서 찾은 설명을 인용하면 이렇다. (Friedrich Gustav Emil) Martin Niemöller 1892. 1. 14 독일 리프슈타트~1984. 3. 6 독일 비스바덴. 고백교회의 창설자이며 세계교회협의회 회장을 지냈다. 목사의 .. 2012. 7. 9.
신동엽 '산문시1'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탄광 퇴근하는 광부들의 작업복 뒷주머니마다엔 기름묻은 책 아이덱거 럿셀 헤밍웨이 장자(莊子) 휴가여행 떠나는 국무총리 서울역 삼등대합실 매표구 앞을 뙤약볕 흡쓰며 줄지어 서 있을 때 그걸 본 서울역장 기쁘시겠오라는 인사 한마디 남길 뿐 평화스러이 자기 사무실문 열고 들어가더란다. 남해에서 북강가지 넘실대는 물결 동해에서 서해까지 팔랑대는 꽃밭 땅에서 하늘로 치솟는 무지개빛 분수 이름은 잊었지만 뭐라군가 불리우는 그 중립국에선 하나에서 백까지가 다 대학 나온 농민들 추럭을 두대씩나 가지고 대리석 별장에서 산다지만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이름 꽃.. 2012. 5. 27.
이소라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서러운 마음에 텅 빈 풍경이 불어온다 머리를 자르고 돌아오는 길에 내내 글썽이던 눈물을 쏟는다 하늘이 젖는다 어두운 거리에 찬 빗방울이 떨어진다 무리를 지으며 따라오는 비는 내게서 먼 것 같아 이미 그친 것 같아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바람에 흩어져 버린 허무한 내 소원들은 애타게 사라져간다 바람이 분다 시린 한기 속에 지난 시간을 되돌린다 여름 끝에 선 너의 뒷모습이 차가웠던 것 같아 다 알 것 같아 내게는 소중했었던 잠 못 이루던 날들이 너에겐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사랑은 비극이어라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나의 이별은 잘 가라는 인사도 없이 치러진다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내게는.. 2011. 12. 22.
백석 시인이 노래한 자작나무 '白樺' 白樺 / 백석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山도 자작나무다 그맛있는 모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 그리고 감로(甘露)같이 단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 山넘어는 평안도(平安道)땅도 뵈인다는 이山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 백석, ,『조광』 4권 3호, 1938.3 2011. 11. 23.
꽃 (김춘수) 어제 질적연구방법론 수업시간에 교수가 이 시를 직접 인용했다. 이유인즉슨, 질적연구의 핵심을 이만큼 잘 표현한 시가 없다는 것. 우리가 밤하늘에 떠 있는 별 7개를 국자 모양을 한 북두칠성으로 인식하는 것은 그 별 일곱개가 하얀 줄로 서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가 그 별 일곱개를 북두칠성이라는 별자리로 인식하기 때문에 그 별 일곱개가 북두칠성이라는 상호 연관된 별들의 모임이 된다. 누구는 그걸 이라고도 하더라.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 2011. 9. 8.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김수영)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王宮 대신에 王宮의 음탕 대신에 五十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越南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二十원을 받으러 세번씩 네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앞에 情緖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第十四野戰病院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느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 2011. 8. 22.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김광규. 1979)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 김광규 4.19가 나던 해 세밑 우리는 오후 다섯시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불도 없이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정치와는 전혀 관계 없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 결론 없는 모임을 끝낸 밤 혜화동 로우터리에서 대포를 마시며 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 문제 때문에 우리는 때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 노래를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노래를 저마다 목청껏 불렀다 돈을 받지 않고 부르는 노래는 겨울밤 하늘로 올라가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 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어 혁명이 두려운 기성 세대가 되어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 회비를 만원씩 걷고 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 월.. 2011. 7.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