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종횡사해/한반도-동아시아

아시아연대의 아킬레스건 (2006.2.19)

by betulo 2007. 3. 11.
728x90
아시아연대의 아킬레스건
[한국을 넘어 아시아 연대로 2] 해외한국기업
성폭력 임금체불에 ‘최고 경쟁력’ 오명…감시운동은 걸음마 단계
시민사회, 제3세계 연대 중시해야
2004/2/19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아시아연대가 중요하다는 얘기는 예전부터 나왔지만 정작 어느 단체가 있는지도 제대로 모르는 게 한국 시민사회의 현실이다. 여전히 ‘걸음마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한국시민사회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국제연대 사안도 적지 않다. 부시낙선운동은 이와 관련해 하나의 좋은 선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부시낙선운동은 한국시민사회의 경험을 바탕으로 국제적 이슈를 적극적으로 개발했으며, 해외 단체들과 적극적으로 연대를 모색하고 있다. 이밖에도 다양한 국제연대 활동이 벌어지고 있다. 또다른 한편으로 국제연대가 절실함에도 정작 국제연대활동이 미비한 분야도 있다. <시민의신문>은 ‘한국을 넘어 아시아연대로’라는 주제로 사안별 국제연대를 기획, 집중조명한다. [편집자주]


필리핀 가비테에 있는 경제특별구역에 입주한 한국기업 그레벨에서 일하던 여성노동자 레니(18세). 그는 작년 이 회사의 커팅매니저 백모씨(49세)에게 강간당해 임신을 했고 결국 아무런 보상도 없이 회사를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한국으로 도망갔던 백모씨는 1년만에 그레벨의 자회사인 대영 어패럴의 매니저로 복귀했다. 백모씨는 여성노동자들 사이에서 성추행을 일삼는 추잡한 사람으로 악명이 높다. 백모씨 사건은 회사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려고 나서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회사측은 온갖 수단을 동원해 노조설립을 방해하고 나섰다. 현재도 노조설립을 둘러싸고 노동자들과 회사측이 대립하고 있다.


1980년대부터 급격히 늘기 시작한 한국자본·기업의 해외투자생산은 2006년경 제조업의 60%를 넘을 것으로 추정할 만큼 급성장했다. 성폭력 욕설 구타 임금체불 등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해외한국기업은 아시아 민중들의 증오와 원성의 대상이 된지 오래다.

 

해외한국기업 감시운동은 아시아연대의 아킬레스건이다. 이제 해외한국기업은 이주노동자 문제와 함께 아시아연대 과정에서 반드시 부딪치는 문제이다. 한국은 이미 ‘아시아의 제국주의’라는 소리를 듣고 있으며 “이대로 가다가는 아시아에서 발도 못붙이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관련 활동가들 사이에서 나올 지경이다.


필리핀의 한국게 의류회사 파레모의 노조 부위원장인 로페. 그는 한국인관리자들한테 집단구타를 당한 적이 있다. 그 사건은 현재 필리핀 지방법원에 계류중이다. (사진제공 나현필)

 

해외한국기업 감시운동은 1995년에 국제민주연대의 전신인 참여연대 국제인권센터가 처음 시작했다. 현지조사와 토론회 개최 등을 꾸준히 하고 있는 국제민주연대는 지난해 10월 <해외한국기업 인권현황 백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국제민주연대는 2002년 이후 현지조사뿐 아니라 해외한국기업감시활동 전반에 걸친 시민사회 연대를 통한 네트워크에 주력하고 있다. 최미경 국제민주연대 활동가는 “올해 상반기에 네트워크를 만들 계획이며 이를 통해 정보공유와 선전활동을 벌일 것”이라고 말했다.

 

차미경 아시아다국적기업감시네트워크 동아시아연구원은 “한국·필리핀·인도네시아 활동가들이 모여 운동 방향을 모색하는 토론회를 올해 상반기에 개최할 것”이라며 “큰 틀에서는 다양하게 연대를 맺고 풀뿌리 차원에서 아시아를 우리의 친구로 인식하도록 하는 활동을 병행하려 한다”고 밝혔다.

 

차 연구원은 특히 “문제를 일으킨 해외한국기업을 OECD 가이드라인에 제소하는 방안을 적극 활용할 필요도 있다”고 주장했다. OECD 가이드라인은 1976년 다국적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며 제정된 기업윤리강령이다. 그는 “가이드라인이 미흡한 점이 많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문제기업을 제소할 수 있는 국제기구가 없는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시아다국적기업감시네트워크
해외한국기업을 포함한 아시아다국적기업 감시운동을 벌이고 있는 아시아 지역 네트워크이다.
홍콩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회원단체들의 활발한 정보교환과 공동 현지조사같은 연대사업을 통해 아시아출신 다국적기업들의 해외노동권 침해사례를 감시하기 위해 설립됐다. 2001년 몇몇 단체들의 제안으로 느슨한 연대를 이뤘고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을 강화했다. 한국의 국제민주연대를 비롯해 8개국 11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아시아다국적기업감시네트워크는 연구, 교육과 훈련, 캠페인, 출판 4가지 활동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특히 모든 노동자들의 조직화를 돕고 아시아 노동자들의 연대를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장대업 활동가는 “생산현장에서 노동자들의 자발적 조직화를 대안으로 본다”며 “노동자들이 참여하는 작업장 감시체계를 개발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5개 지역별로 담당 현지 연구원을 두고 공동연구를 진행중이며 아테네 올림픽을 앞두고 공동 캠페인을 계획중”이라고 밝혔다.

 

아시아 지역 다국적기업은 크게 노동집약산업(섬유 신발 의류 등)과 자본집중산업(전기 전자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노동집약산업은 서구에 근거를 둔 대규모 상업자본들이 세계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산업이다. 이들이 개발도상국에 근거를 둔 생산업체들에게 하청을 준다. 하청을 받은 한국 등 아시아 1세대 개발도상국들은 저개발국가에 직접투자해서 현지노동자를 고용해 상품을 생산한다.

 

치열한 하청경쟁에 시달리는 이들 기업들은 단가당 노동비용을 줄여서 이윤을 확보할 수밖에 없다. 최저임금 무시, 임금 미지급과 체불, 노조 불인정, 불법해고, 건강보험료 횡령, 안전규정 무시, 폭행, 폭언, 의문사 등 극심한 노동권 침해가 벌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본집중산업은 노동집약산업보다는 좋은 조건이지만 노조 탄압과 회유, 초단기 고용을 통한 착취 등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현재 아시아에는 자본출입과 회사 설립이 무한정 자유로운 수출자유지역이 1천개 이상이나 있다.

 

장대업 아시아다국적기업감시네트워크 활동가는 “자본의 국제이동 속도와 규모가 노동자들의 권리를 본질적으로 억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언제든지 어디로든 생산거점을 옮기거나 철수할 수 있는 자유가 자본에게 보장되는 투자체제에서는 노동자들이나 외부 단체의 어떤 노력도 무력할 수밖에 없다”며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에 대항해 노동자들의 고용권과 생존권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가 중요한 현안”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아시아 기업들의 노동관계에 대한 지속적인 감시와 국경을 뛰어 넘는 노동자 연대, 노동자와 외부노동단체들의 연대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10년이 채 안되는 해외한국기업감시운동은 아직도 초보 수준이라는게 관련 활동가들의 중론이다. 최미경 활동가는 “한국 시민사회의 관심이 최근 높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먼나라 얘기로 느끼는 경우가 많다”며 안타까와 했다. 차미경 연구원은 “한국 시민사회가 제1세계와 연대하는 것만 중시하고 아시아는 알게 모르게 무시하는 경향을 갖고 있다”며 “전세계 자본은 아시아로 몰리는데 시민사회만 서구를 쳐다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재훈 국제민주연대 활동가는 “한국은 스스로 피해자라는 인식을 갖고 있지만 실제로는 아시아 민중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며 이를 ‘천동설적 착각’이라는 말로 꼬집었다.

 

강국진 기자 sechenkhan@ngotimes.net

 

"한국인이란 게 창피하다"

[인터뷰] 나현필 국제민주연대 자원활동가

 

“필리핀 노동자들에게 가장 친숙한 한국말이 뭔지 아느냐? ‘빨리빨리’, ‘새끼야’, ‘××년’이다.”

 

지난달 12일부터 지난 7일까지 필리핀 가비테 경제특별구역에서 아시아다국적기업 조사활동을 벌이고 돌아온 나현필씨(국제민주연대 자원활동가)는 한국기업을 조사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한국기업이 워낙 악명을 떨치기 때문”이다.

 

가비테에 입주한 해외기업의 70%가 한국기업이다. 의류가 대부분이지만 반도체 등을 생산하는 전자회사도 있다. 이들 한국기업은 다른 나라 기업들과 다른 점이 있다. 바로 성희롱·성추행, 구타, 욕설이 너무나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나씨는 “현지 노동자들이 나한테 ‘왜 한국인들은 그렇게 성희롱·성추행이 잦냐’ ‘왜 한국인 관리자들은 입만 열면 욕이냐’ ‘어떻게 어린 여성에게 손찌검을 할 수 있느냐’고 되물을 땐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말했다.

 

한국기업은 군대식으로 회사를 운영한다. 엄청난 노동강도에도 불구하고 한국기업이 여성노동자를 선호하는 것도 “여성이 순종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기업의 채용기준은 성적매력이 있는 여성”이다. 나씨는 “성적인 농담을 던지거나 가슴과 엉덩이 만지는 건 너무 흔해서 얘깃거리도 안될 정도”라고 말했다.

 

한국인 경영진과 관리자들이 여성노동자와 성관계를 맺는 일도 심심찮게 일어난다. 노동조건이 열악하고 성관계 요구를 거절하면 해고 위협을 받는 것을 고려하면 사실상 강간이다. 나씨는 “16-17살인 미성년 여성노동자들도 성관계를 요구받곤 한다”며 “한국인 사장이나 관리자들이 임신시키고 나몰라라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꼬집었다.

 

외자유치정책을 펴는 필리핀 정부는 철저하게 한국기업 편이다.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 철저하고 노조 설립도 쉽지 않다. 파업이라도 벌이면 정부가 나서서 파업을 무력화하기 일쑤다. 나씨는 “정규직 노동자를 휴직시키고 계약직으로 대체하는 경우도 많다”며 “휴직 대상은 대부분 노조원들”이라고 지적했다.

 

경제특별구역에 입주한 외국기업은 5년간 세금을 면제받는다. 한국기업은 이 혜택을 계속 누리기 위해 위장폐업한 다음 이름을 바꿔 새로 공장 문을 여는 경우가 많다. 나씨는 “필리핀 정부가 이 사실을 알면서도 묵인하는 것은 한국기업에 거액의 뇌물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일러줬다.

 

나씨는 “해외한국기업이 벌이는 인권침해는 상상을 초월한다”며 “한국 시민사회단체가 이 문제에 너무 무관심하다”고 아쉬워했다. 나씨는 “필리핀에 있는 내내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이 창피했다”고 말했다.

 

강국진 기자 sechenkhan@ngotimes.net

2004년 2월 19일 오전 6시 41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