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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說/자작나무책꽂이

글쓰기? 마음쓰기!

by betulo 2008.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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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 대한 경험적 고찰

“기사가 안 써지는 이유가 뭔지 알아? 취재가 덜 돼서 그런거야!”

초짜 기자 시절 마감시간은 닥쳐 오고 기사는 제대로 써지지 않아 애꿎은 머리만 뜯고 있는 내게 한 선배 기자는 단호하게 말했다. 듣고 나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 말이 정답이었다.

글에는 여러가지 종류가 있다. 기자로 일하는 나로서는 주로 쓰는 글은 기사와 블로그에 올리는 글 두 종류다. 기사와 블로그 글을 쓸 때는 물론 여러 가지가 다르다. 일단 기사는 정확한 사실전달이 중요하다. 감정을 자제하고 냉정하고 정밀하게 써야 한다. 블로그에선 근거없는 얘길 쓰진 않지만 나 자신의 견해와 태도를 솔직하게 드러내려 노력한다. 하지만 이러저러한 차이는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다. 결국 글이란 본질적으로 다 똑같다.

‘취재’라는 말 속에는 많은 의미가 들어있다. 사람을 만나서 얘기를 듣거나 보고서같은 2차자료 혹은 어둠의 경로로 입수한 1차자료를 충분히 숙지해야 한다. 다시 말해 충분한 사전조사가 필수다. 그리고 전체 글을 어떻게 구성하고 어떻게 논리를 전개하고 어떻게 결론을 내릴 것인지 머리속에 그려야 한다.

아무래도 글을 많이 쓰는 직업이다보니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은 별로 없는 편이다. 그럼에도 글을 써야 하는 상황에서 글이 제대로 써지지 않거나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고민스러울때는 십중팔구 단 한가지 이유 때문이다. 바로 “취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건 단순히 자기가 쓰려는 문제 하나만 제대로 취재한다고 완벽해지는 건 아니다. 한가지 사안을 쓰더라도 그 전에 그 사안과 연관된 다양한 측면을 이해하고 있으면 사전조사와 머릿속 설계도를 더 잘 정리할 수 있을게다. 글을 어떻게 쓸까. 좋은 글을 어떻게 쓸까. 어떻게 쓰면 좋은 글이 될까. 내 경험에 비춰서 부족한대로 ‘강국진식 작문론(作文論)’을 펼쳐본다.

읽은 글은 머릿속 어딘가에서 살아 숨쉰다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다. 시골이라 유치원도 못다니던 시절 한글도 모르면서 난생 처음 그림책이란 걸 보고 검은색으로 인쇄된 ‘글’을 접했다. 사실상 처음으로 글이라는 걸 인식했다. 초등학교 때는 학교도서관을 담당하는 선생님 덕분에 도서관에서 숱한 위인전, 공상과학소설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고등학교 때는 중간고사 기간인데도 시험공부해야 할 시간에 ‘이러면 안되는데’ 하면서 홍명희가 쓴 ‘임꺽정’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여담이지만 사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뛰어노는 것보다 책읽는걸 더 좋아할 정도로 독서에 ‘지나치게’ 탐낙하는건 썩 추천해줄만한 게 못된다. 내 경험상 책에 대한 감수성은 또래에 비해 상당히 조숙해졌지만 사람 사귀는 능력은 대단히 지진해졌기 때문이다.

20대에 들어서는 어떤 책을 읽었는지 메모해두는 버릇이 생겼다. 가령 지난해 나는 1월에는 8권(2512쪽), 2월에는 1권(612쪽), 3월에는 2권(559쪽), 4월에는 8권(2283쪽)을 읽었다. 지난해 내가 읽은 책은 58권(1만 8891쪽)이다. 한달에 4.8권(1574쪽)을 읽었던 셈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책을 읽고 나서 내용이 다 기억나지는 않는다. 사실 대부분 내용은 잊어버린다고 보는 게 맞을꺼다. 하지만 그게 반드시 맞는 말은 아니다. 책에서 읽은 내용은 머릿속 어딘가에서 살아 숨쉰다. 그리고 읽은 내용과 연관된 내용을 읽거나 생각할 때 혹은 얘기할 때 잠에서 깨어난다. 처음에는 엉성하게 띄엄띄엄. 하지만 지식이 쌓이면서 조밀하게 눈을 뜬다. 임계점을 돌파하면 언제나 나와 함께 숨을 쉰다. 그쯤 되면 어느 한 분야에서 전문가 소리를 듣게 될꺼다.

나는 예산전문기자를 꿈꾼다. 처음 2005년에 예산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예산을 다룬 책을 읽고 예산을 다룬 기사를 눈여겨 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당최 무슨 말인지 어렵기만 하고 정리도 안된다. 책을 읽고 또 읽어도 새로운 얘기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시간이 지나고 내공이 조금씩 쌓이면서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할 정도는 되고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이 지나면 또다시 한계에 부닥칠 거라 생각한다. 더 많이 읽고 배우면 한 단계를 넘어설 수 있을거라 믿는다.

쓰고 또 써라, 뭐든 써 봐라

군대를 제대하고 하인리히 슐리만이 쓴 ‘고대를 향한 열정’이란 책을 우연히 읽었다. 고대 트로이 유적을 발굴했던 슐리만은 가난을 극복해 돈을 벌어 꿈을 이루기 위해 외국어 공부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치열한 노력 끝에 10개가 넘는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게 됐다고 한다. 그가 제시한 외국어 공부방법의 핵심은 큰 소리로 읽고 작문을 하고 외우라는 거였다. 1999년에 미국 시카고로 어학연수를 가면서 날마다 영작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나는 두께가 2cm 가량 되는 대학노트를 가져갔다.

처음엔 쓰고 나서 내가 읽어봐도 무슨 말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교정을 해주던 선생이 곤욕스러워하던 표정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영작을 하다보니 미국인 선생도 별 어려움 없이 교정을 해줬다. 나중에는 교정보다는 내가 쓴 글을 읽고 그 주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더 많아질 정도가 됐다. 그렇게 1년을 하고 한국에 돌아올 때는 대학노트가 온전히 영작으로 채워졌다. 물론 영어공부에 큰 도움이 된건 물론이다. 시간이 지나 당시 온 힘을 다해 배운 영어는 ‘머릿속에서 잠자고 있다.’ 하지만 당시 영작연습의 위력은 다른 측면에서 내게 큰 도움이 됐다. 영작은 영어공부였을 뿐만 아니라 글쓰기 훈련이었던 게다.

대학을 졸업할 즈음 선배들이 하는 벤처기업에서 꽤 오랫동안 아르바이트를 했다. 초중등학생을 위한 인터넷 문화유산백과사전 비슷한 걸 만드는 건데 내가 한 일은 각 지역에 있는 문화유산이나 기념물 등을 설명하는 글을 써야 하는 일이었다. 처음엔 엄청나게 헷갈렸다.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하는지 도대체 감이 잡히질 않았다. 하지만 시행착오 끝에 나중에는 노하우가 생겼다. 한정된 분량 안에서 가장 핵심적인 정보를 먼저 쓰고 점차 중요성이 떨어지는 순서로 쓰게 된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기본적인 기사쓰기인 ‘역피라미드 기사체’를 배운 셈이다.

글은 쓸수록 늘게 돼 있다. 글을 쓰면서 머릿속에서 잠자던 지식을 깨울 수 있다. 어떤 주제라도 상관없다. 쓰다 보면 자연히 더 좋은 글쓰기가 가능해진다. 문학인들이 습작노트를 갖고 다니며 머릿속에 떠오르는 걸 항상 메모하는 건 다 이유가 있는거다.

생각하고 경험하고 직접 해보자

지금 이 글을 쓰기 시작한지 한시간이 지났다. 나름대로 꽤 빨리 쓰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 글을 쓰기 위해서 나는 지난주부터 틈틈히 글을 어떻게 쓸지를 생각했다. 경험담을 최대한 담고, 다작과 다독을 강조하고 마무리는 어떤 식으로 할지 머릿속에서 글의 설계도를 짰다. 그런 과정이 있었기에 그래도 수월하게 글을 쓰고 있다. 만약 그 과정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쓰다 지우고 쓰다 지우기를 반복하면서 시간은 오래 걸리고 뭔가 마음에 안드는 문장을 이어가고 있을게다. 글을 쓰면서 동시에 글의 설계도를 짜는건 대단히 비효율적이다.

‘생각’을 하라는 건 글 하나를 쓰는 문제 이상의 의미가 있다. 아무리 글을 잘 못쓰는 사람이라도 자기가 평소에 많이 고민하던 주제는 확실히 다르게 써진다. 축구에 대한 글을 가장 잘 쓸 수 있는 사람은 운동에는 관심이 없는 교수나 건설업자가 아니라 축구선수다. 비록 기교는 떨어질지 몰라도 축구선수는 자신의 혼을 담은 축구 이야기를 쓸 수 있다. 인터넷 축구포탈에 설기현 선수가 쓴 축구 관련 글을 읽어보라.

마찬가지 맥락에서 경험과 실천을 강조할 수 있다. 설악산을 직접 자기 발로 디뎌보지 않고 설악산에 대한 글을 쓴다고 상상해보자. 그 글은 설악산에 대한 글이 아니다. 다만 허무맹랑한 말장난일 뿐이다. 몇 년 전에 뉴욕타임스 기자 한 명이 해고된 적이 있는데 그 기자는 직접 인터뷰를 하지도 않은 사람 인터뷰 기사를 쓰고 직접 가보지도 않은 취재현장에 대한 르포기사를 썼다. 기교는 있어서 처음엔 사람들이 속을지 모르지만 자기 경험과 실천이 담기지 않은 글은 피리부는 사나이를 뒤쫓아가는 들쥐 무리와 같은 운명일 뿐이다.

글쓰기는 기교가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글쓰기는 ‘기교’의 영역이 아니다. 그건 아래에서 내가 강조하고자 하는 몇가지 원칙을 기반으로 한다. 그 원칙이 없으면 글쓰기는 모래위에 집짓기에 불과하다. 글쓰기를 다룬 책을 읽는것보다 다양한 책을 읽고 써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리고 다양한 경험과 실천, 치열한 고민으로 다작과 다독을 떠받치면 된다. 그걸 바탕으로 글을 쓰면 그게 바로 훌륭한 글이 된다.

그러므로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진정한 글쓰기는 결국 마음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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