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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사해/한반도-동아시아

10월2일, 손을 맞잡은 남북 정상

by betulo 2007. 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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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2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프레스센터에서 제가 맡은 임무는 군사분계선을 넘을 때부터 평양까지 하루 일정을 정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 저것 확인하고 고치고 또 고치고... 결국 자정에야 퇴근.

제가 쓴 기사를 단 한 문장으로 줄인다면 어떻게 할까. "역사는 2007년 10월2일 오전 9시5분을 특별한 순간으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라는 말로 정리하고 싶습니다. 그런 순간을 기록했다는 데 보람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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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청와대 사진기자단.(남북정상회담 프레스센터 내부망에 실린 사진)

사상 처음으로 남한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한 걸음으로 훌쩍 넘었다. 평양까지 승용차로 3시간이 채 안 걸렸다. 반세기 넘게 대치해온 남과 북은 지척에 있었던 것이다.2일 평양 시내 한복판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굳게 맞잡은 손엔 7000만 겨레의 통일 염원이 응축돼 있었다.

●군사 분계선 넘자 최승철 부부장이 영접

역사는 2007년 10월2일 오전 9시5분을 특별한 순간으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건너는 것 자체가 특별했던 금단의 선인 군사분계선을 걸어서 넘었다.

군사분계선을 넘기 직전 노 대통령은 감회에 젖은 표정으로 “한마디 하고 넘겠다.”며 짤막한 대국민 메시지를 남겼다.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여기 있는 이 선이 지난 반세기 우리 민족을 갈라놓고 있는 장벽이며, 이 장벽 때문에 우리 민족은 너무 많은 고통을 받아왔다.”고 했다. 이어 “이제 제가 대통령으로서 이 금단의 선을 넘어 다녀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다녀오게 될 것이고, 그러면 마침내 이 금단의 선도 점차 지워지고 장벽도 무너질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과 부인 권양숙 여사가 군사 분계선을 넘어 북측으로 걸어가자 최승철 통일전선부 부부장, 최룡해 황해북도 당 책임비서 등이 노 대통령 일행을 맞았다.

최 부부장은 노 대통령에게 “통일전선부 부부장입니다. 모셔가기 위해 나왔습니다.”라며 인사를 했다. 노 대통령은 밝은 얼굴로 북측 인사들과 악수를 나눴고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북측 여성들한테서 꽃다발을 받았다.

노 대통령은 환하게 웃으며 “같이 사진 한 장 찍으시죠.”라고 청해 즉석에서 노 대통령 부부와 북측 여성 두 명이 기념촬영을 했다.노 대통령은 9시9분쯤 “잘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손을 흔든 뒤 전용차에 올라 개성으로 향했다.

노 대통령을 맨 앞에서 영접한 최 부부장과 최 책임비서는 모두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 큰 신임을 받는 인물들로 알려져 있다.최 책임비서는 고 김일성 주석과 함께 동북항일연군에서 항일 유격대 활동을 했던 최현(1982년 사망) 인민무력부장의 아들이다.그의 어머니 역시 김 주석의 유격대 동료였다.최 부부장은 대남분야의 ‘실세’다.김양건 통일전선부 부장과 함께 대남사업을 실질적으로 관장하고 김 위원장에게 대남사업을 직접 보고할 정도다.

노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넘는 순간을 북측 지역에서도 촬영하기 위해 남측 방송사가 북측의 양해를 얻어 잠시 군사분계선을 넘었다가 촬영 뒤 곧바로 남측으로 철수하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 일행은 북측 CIQ를 그대로 통과해 ‘교류협력의 땅’ 개성공단 부근으로 진입했다. 한반도기를 흔들며 환영하는 개성공단 근로자들을 뒤로한 채 노 대통령은 안암굴 터널을 통과해 왕복 4차선 160㎞에 달하는 평양~개성 고속도로를 북녘 산하를 보면서 내달렸다.

노 대통령은 오전 11시30분쯤 평양에 도착했다. 노 대통령은 인민문화궁전 앞에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영접을 받은 후 11시42분쯤 무개차에 함께 올라 20분 동안 4·25문화회관까지 6㎞ 정도 카퍼레이드를 펼쳤다. 연도에 늘어선 수십만 평양 시민들은 저마다 붉은색, 분홍색, 자주색 꽃다발을 흔들며 “만세”와 “조국통일” “환영”이라는 함성으로 노 대통령을 맞았다.

노 대통령과 김 상임위원장은 카퍼레이드를 하는 동안 평양 시내의 건물과 지리, 최근 날씨 등을 화제로 담소를 나눴다고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노 대통령의 전용차량인 벤츠 S600은 차량 우측에 소형 태극기를, 좌측에는 대통령의 상징인 ‘봉황기’를 함께 매달고 달렸다. 이는 노 대통령의 전용차량 방북에 이어 또 다른 파격으로 받아들여진다.

●또다시 파격적 영접

2일 오전 11시57분 평양 4·25문화회관에 운집한 평양 시민들이 큰 환호성을 올리자 남북정상회담 생중계 방송을 보던 국민들은 잠시 노무현 대통령이 도착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었다.2000년 정상회담 때처럼 김 위원장은 자신이 직접 영접을 나옴으로써 최고 수준의 손님맞이를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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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위원장이 도착한 지 5분 뒤 노 대통령이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함께 무개차를 타고 환영식장에 도착했다. 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서로 “반갑습니다.”라고 인사하며 악수를 나눴다.

두 정상은 붉은 색 카펫을 함께 걸으며 북한 육·해·공군으로 구성된 명예위병대를 사열했다. 노 대통령은 환영식에 참석한 김영일 내각 총리를 비롯한 북한 당·정·군 고위층 인사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인사를 했다.

두 정상은 4·25 문화회관 앞 중앙단상에 나란히 올라 인민군의 분열을 받았다. 이날 환영식은 정오부터 12분가량 진행됐고, 두 정상은 환영식이 끝난 뒤 각각 자신의 차를 타고 식장을 떠났다.

●환영식장 철통 보안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등장은 1차 정상회담 때와 마찬가지로 막판까지 철통 보안이 지켜졌다. 공식환영식 예정 시간을 불과 한 시간여 앞두고 환영식 장소가 두 차례나 바뀌어 선발 취재진에 통보됐다.

당초 남북 실무 접촉에서 합의된 공식환영식 장소는 평양 입구의 조국통일 3대 헌장 기념탑이었다.

그러나 오전 10시20분쯤 공식환영식 일정에 변화가 생길 조짐이 포착되기 시작했다. 이 무렵 공식환영식 취재를 위해 3대헌장 기념탑으로 이동하려던 남측 취재단 11명에게 환영식 장소가 인민문화궁전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이 전달됐다.

북측은 남측에서 2차 선발대로 파견된 청와대 의전팀에 이 소식을 통보했고, 취재단에도 이같은 사실을 전했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5분쯤 지나 찾아온 북측 관계자는 환영식장이 다시 4·25 문화회관 앞 광장으로 바뀌었다고 취재진에 통보했다. 이때도 북측은 김 위원장의 참석 여부를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남측 청와대 선발팀에만 오전 10시를 조금 넘긴 시각 김 위원장의 영접 사실을 통보했다고 한다.

●점심 메뉴는 신선로와 쏘가리 간장조림

공식 환영식을 마친 노 대통령은 전용차를 타고 낮 12시21분쯤 숙소인 백화원 영빈관에 도착했다. 노 대통령은 낮 12시50분에 부인 권양숙 여사와 공식 수행원들과 함께 평양∼개성 고속도로를 지나오며 본 북한의 풍광과 농업, 지하자원 개발, 경공업 등을 주제로 환담을 나누며 점심을 함께했다. 점심 메뉴는 신선로, 쏘가리 간장즙(간장조림), 냉채, 송편 등 한식이었다.

김영남 상임위원장의 공식 환영만찬은 만수대의사당에서 진행됐다. 한때 김 국방위원장이 만찬장에 나타나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나왔으나 김 위원장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의 건강을 기원하는 건배를 제의해 분위기를 북돋았다.그는 “남북이 평화롭게 공존하면서 함께 번영하는 길로 나아가는 것은 우리의 의지와 노력에 달려 있다.”면서 “우리 하기에 따라서는 동북아시아에 새로운 통합의 질서를 만드는 데도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만찬 메뉴는 게사니구이(수육과 비슷한 요리),배밤채(배와 밤을 채 썬 것),오곡찰떡,과줄(쌀과자),김치,잉어배살찜,소갈비곰(갈비찜 종류),꽃게 흰즙구이,송이버섯완자볶음,대동강숭어국과 흰밥이었다.후식으로는 수박과 성천약밤구이가,만찬주로는 고려개성인삼주와 들쭉술ㆍ룡성맥주ㆍ동양술(고량주의 일종) 등이 곁들여졌다.
 
●특별수행원 김책공대 시찰

정계·재계 인사 등 특별수행원 40명은 오후 4시 김책공대 전자도서관을 참관했다. 지난해 완공된 전자도서관은 지하 1층, 지상 5층에 1만 6500㎡ 규모로 컴퓨터 420대, 일반도서 200만권, 전자도서 1150만건이 비치돼 있어 랜선이 연결된 다른 기관에서도 컴퓨터 접속이 가능하다.


이날 평양은 다소 쌀쌀한 가운데 잔뜩 찌푸린 날씨였으나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의 열기를 식히지는 못했다.

평양 남북정상회담 공동취재단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기사일자 : 2007-10-03    2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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