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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을 생각한다/판결을 비평한다

소비자는 아파트분양정보 알 권리 있다

by betulo 2007.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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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비평] 분양 전 정보고지의무 인정한 대법원

건설사에 불리한 정보라도 소비자에게 알릴 책임

2006/11/29

지난 10월 12일 대법원(재판장 양승태 대법관, 고현철 대법관, 김지형 대법관, 전수안 주심대법관)은 분양 아파트 인근 쓰레기 매립장 건설 정보를 분양 전 소비자에게 알리지 않은 건설사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모 건설회사는 아파트를 분양하면서 인근에 쓰레기 매립장이 건설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아파트 분양 계약자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입주를 두 달 여 앞두고 방송뉴스를 통해 이 사실을 알게 된 입주 예정자들은 건설회사가 쓰레기 매립장 건설 계획을 사전에 알리지 않아 아파트 가치를 높게 책정하여 비싸게 분양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가치 하락분 상당의 손해 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만약 계약 전에 알았더라면 계약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 명백하다면 신의성실의 원칙상 사전에 그 사실을 고지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와 같은 대법원의 판단은, 정보의 양에서 불리한 입장에 있는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한 긍정적인 판결로 비록 계약서에 명시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계약체결에 중요한 결정 요인일 경우 기업은 이를 알릴 의무가 있음을 명확히 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시민의신문>과 참여연대는 ‘시민포럼-법정 밖에서 본 판결’ 열 한 번째 주제로 아파트 분양 전 인근 쓰레기매립장 건설 고지의무를 인정한 대법원 판결(2004다48515)을 다뤘다. 

/편집자주


○일시 : 2006년 11월 27일(월) 오후 1시

○장소 : 건국대 법대 

○좌담회 사회자: 한상희(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 

○좌담회 참석자 : 

김남근 변호사

신종원 서울YMCA 시민중계실 실장

김성천 한국소비자보호원 정책연구실 연구위원


△한상희: 오늘 판결비평에서 다루고자 하는 판결은 맥도날드 매점에 총을 들고 쳐들어가서는 광고에 나와 있는 햄버거와 실제로 파는 햄버거가 왜 다르냐며 소리를 치는 영화 속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먼저 사건 내용을 간단히 설명해 달라. 


△김남근: 한국은 1970년대 말부터 선분양제도가 정착했다. 이 제도에서는 건설사들이 소비자에게 허위광고를 하고 중요 정보를 알려주지 않고 허위광고를 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오늘 다루는 주제는 선분양 제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여실히 보여준다. 애초 건설회사는 ‘전국에서 주거환경평가 1등을 한 아파트단지’라고 광고했다. 나중에 보니 주거환경평가제도 자체가 없었다. 또 하나는 단지 옆에 쓰레기매립장을 건설하면서도 그 사실을 숨겼다. 허위과장광고에 따른 기망행위와 고지의무 불이행이 사건의 쟁점이었다.  


과연 고지의무라는게 있는가. 결국 분양계약을 체결할 때 사전에 알았다면 계약을 하지 않았거나 그 정도 가격으로 계약을 하지 않았을 것이므로 알려줬어야 한다는 게 우리 주장이었다. 관련 법규에는 소비자와 관련한 내용이 제대로 돼 있지 않다. 그럼에도 이번 판결은 관련법리를 대법원이 처음으로 인정했다는데 의미가 있다. 허위과장광고 부분에 대해 기존 대법원 판례는 광고가 청약유인에 불과하기 때문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했다. 이는 소비자에게 불리한 판례였다. 현행 선분양제도 자체가 일단 계약만 체결하면 무조건 건설회사에 유리한 제도다. 


이번 판결이 있고 나서 여러 소송이 나오고 있다. 의정부에서 송전탑을 세운 것을 둘러싼 소송도 있고 일조권침해를 미리 알려주지 않았던 사례도 있다. 바닥재를 원목 온돌마루로 깔았다고 했는데 나중에 보니 원목이 아니라 원목무늬라는 것이었다든가. 


△신종원: 우리 사회는 소비자소송이 대단히 어렵다. 상품판매와 관련해 소비자운동하는 사람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되지만 어느 정도 허위과장광고를 용인하는 게 대법원 판례다. 유감스러운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사회를 흔들 수 있는 중요한 판결이 나올 수 있는 게 소비자분야다. 


손해배상액 60%는 유감


△김성천: 소비자문제에 관한 10대 판결을 꼽는다면 반드시 들 만한 판결이다. 소비자소송에서 많이 사용하는 말이 정보제공을 얼마나 제대로 하는가이다. 즉 정보진정성이 핵심이다. 그걸 어떻게 하면 높일 것인가가 소비자법을 둘러싼 주요 논쟁이다. 물론 민법이나 손해배상법 등을 통해 해결이 가능한 것도 있다. 문제는 법원이 ‘기망행위’를 판단할 때 너무 소극적이라는 점이다. 기망행위를 거의 사기죄에 준해서 판단하다보니 승소한 선례가 없었는데 이번 판결은 그런 면에서 의미가 있다. 


프랑스는 오래전부터 소비자법을 통해 정보제공을 의무화했고 위반했을 경우 소비자는 계약을 취소할 수 있는 권리도 있다. 일본도 계약취소권을 규정했다. 아파트분양은 고정된 물체를 중심으로 한 것이니까 앞으로는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그 문제를 해결해야 소비자 보호 확대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유럽에서도 모든 계약에 대해 정보제공을 의무화하는 논의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금융부문은 정보제공보다도 강한 의미인 설명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아쉬운 점도 있다. 판결은 민사법적 효력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손해배상액을 60%로 제한했는데 이 부분은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선진국 사례를 보면 부당이득까지 손해배상 범위에 넣었다. 말 그대로 토해내게 한 것이다. 이번 판결이 정보제공의무에 대한 입법론적 대안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김남근: 계약무효를 잘 인정하지 않으려는 게 대법원판결 취지다. 이번 소송에서도 애초에 계약해지를 주장했으면 승소했을까 부정적이다. 이번 사건에서는 대량 계약해지사태가 벌어졌다. 약 500세대가 분양대금의 10%를 위약금으로 내고 분양계획을 해지했는데 우리가 계산해보니 건설회사가 위약금으로 얻은 수익만 140억원 가량이다. 미분양 사태가 벌어지니까 할인분양을 했는데 그 전에 분양받은 사람은 제값내고 들어왔기 때문에 별도로 손해를 본 셈이다. 


△한상희: 생산자 권력이 강한 상태에서 시민사회가 압력을 가할 다양한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신종원: 이번 소송은 전체 2천여 세대 가운데 360명이 1차 소송에 참여했고 2차 소송은 100여명이 참여했다. 많은 이들을 변호하는 사건은 대단히 힘들다. 단체 차원에서 3500명을 원고로 하는 소송을 해본 적이 있다. 자료정리만 해도 한달은 고생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뜻깊은 판례를 만들고 변화를 이끌어내려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갖춰야 한다. 물론 그 제도를 시행하는 나라에서는 부작용도 있다고 하지만 우리 사회에선 경제환경을 고려할 때 사후적으로 소비자 권리 찾기 위한 예방적 장치가 필요하다. 


△한상희: 60~70년대 미국에서 법이 사회를 얼마나 바꿀 수 있는가를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졌다. 적어도 미시적인 흐름을 바꿀 수는 있다는 점에선 다들 동의했다. 이런 판결을 바탕으로 새로운 법제를 만드는 문제도 고민해야 할 것 같다. 


△김성천: 소비자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정보제공을 법제화하고 위반시 취소권 인정하는 법제가 필요하다. 소비자 스스로 권리를 실현하려면 집단소송제도 허용해야 한다. 소비자보호원은 이번 판결을 계기로 해석론 뿐 아니라 입법론 차원에서 정책대안을 제시해 입법에 반영하도록 노력할 계획이다. 참고로 국회는 지난 9월 소비자보호법을 소비자기본법으로 전부개정했다. 내년 3월에 시행할 예정이다. 


선분양제도 자체를 바꿔야


△한상희: 아파트 분양 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김남근: 이론상 선분양제도는 일반분양제도보다 훨씬 우수해야 한다. 일종의 선물거래니까 엄청난 신용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파트 대량공급을 위해 선분양제도를 만들었다. 소비자가 낸 분양대금으로 아파트를 짓는 대가로 건설회사는 분양가 규제를 받았다. 1998년 이후 분양가 규제는 없어졌는데 선분양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결국 건설사만 이득을 보게 됐다. 이제는 후분양을 해야 한다. 그래야 소비자 입장에서 검증된 제품을 살 수 있다. 지금 상황에선 소비자로서 알아야 할 중요 정보를 알 수가 없다. 입주 전에 건설회사가 부도나면 소비자가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선분양은 계약제도도 부실하다. 분양계약서에 ‘모델하우스의 전시내용은 계약내용으로 한다’는 내용만 있어도 좋을 텐데 그마저 인정하지 않는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제공하는 모범계약서도 돈 내는 절차만 있고 소비자권리는 없다. 법령 자체도 돈 내는 것과 관련해서만 소비자 보호하는 조항만 있다. 


그런 문제 때문에 시민단체는 줄기차게 후분양제도를 주장했다. 정부도 내년부터 공공분양에서는 후분양을 단계적으로 도입하겠다고 하고 있다. 우리는 무조건 후분양을 하자는게 아니다. 소비자선택권을 기준으로 생각해야 한다. 


△한상희: 모델하우스 광고를 보면 조그만 글씨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는 문구가 있다. 그럼 왜 모델하우스 보여주는지 모를 일이다. 


△김성천: 선분양제도에 따른 소비자 피해가 크다. 핵심은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주거가 아니라 투기를 위한 아파트거래니까 아파트 품질이 중요한게 아니라 계약여부가 중요한 게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후분양으로 하더라도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신종원: 1995년에 삼풍사건 일어났을 때 붕괴신드롬이 일어났다. 당시 대규모아파트단지에 바다모래 썼다는 제보가 많았다. 물론 그런 사태가 벌어지진 않았다. 하지만 10년이나 15년 후 한국 사회 인구구성이 바뀌게 되면 어떻게 될까. 지금은 선분양을 후분양으로 바꾸는게 시급하다. 하지만 10년쯤 후에는 선분양 후분양 논의 자체가 무의미해질 것이다. 충실한 정보제공 뿐 아니라 잘 만든 제품으로서의 주택이 소비자 선택을 받는 상황으로 귀착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징벌적 손해배상·집단소송제 절실


△한상희: 쓰레기매립장은 공익시설이다. 그걸 알리지 않은 게 귀책사유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잘못하면 님비현상을 부추긴다는 오해를 살 수도 있다. 


△김남근: 대규모 계약해지사태가 벌어지자 건설회사는 할인분양을 했다. 그때는 아파트 단지 인근에 쓰레기매립장이 있다는 것을 고지했다. 쓰레기매립장이 계약에 영향을 미친다는 걸 회사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는 걸 뜻한다. 님비현상을 따지는 것과 이번 사건은 맥락이 다른 것 같다. 공익시설인가 혐오시설인가를 떠나서 소비자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했느냐 그렇지 않은가가 문제다. 


△한상희: 여러 방법 중에서 소비자를 위한 제도로 무엇이 있을까. 


△김남근: 원하지 않는 계약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소비자가 계약을 취소할 수 있는 권리를 줘야 한다. 지금은 소비자 권리보호 측면에선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이다. 시대가 변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들어가야 한다. 


△신종원: 다단계판매와 방문판매는 계약서를 소비자에게 주지 않으면 계약서에 하자가 없더라도 소비자는 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 계약서 미교부 자체가 과태료 대상이다. 그건 그나마 소비자 권리 보호 적극적으로 하는 거다. 아파트 분양제도에서도 그걸 반영해야 한다. 


우리 단체에서는 작년에 교복3사 담합에 따른 손해배상청구를 해서 작년 6월에 승소를 했다. 그 후에도 가집행을 한다는데 3천5백명에게 어떻게 연락을 할까 고민스러웠다. 해당자 2백만 중 극히 일부인 원고가 모여 소송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힘을 들었다. 우스갯소리로 원고가 500명 넘는 소송은 앞으로 하지 말자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준비단계에서 이미 힘이 다 빠져버린다. 집단소송제가 있다면 사건 자체에 충실할텐데, 지금은 주변정리하는 것부터 너무 힘이 든다. 


담합행위로 얻은 기업체 이익은 2천억원 가량이다. 과징금은 1백억원이었고, 배상해야 할 손해배상액이 4억원 정도다. 그런 상황이면 누구라도 담합을 하려는 유혹이 생길 것이다. 이건 누가 봐도 사회정의에 반한다. 담합을 제어할 사회적 수단이 무엇이 있겠는가. 바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다. 제도적 뒷받침이 돼야 기업 부당행위, 정보은폐나 기망 등을 예방할 수 있다. 


△한상희: 국가경제가 발전할수록 경제력을 가지고 생산에 임하는 기업의 힘이 날로 막강해진다. 그에 비해 소비자는 기업이 내세우는 광고만 믿고 계약을 체결해야 하는 상황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소비자가 광고를 믿고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신뢰관계가 있어야 한다. 생산자가 정보를 숨겨서 부당이득을 얻거나 소비자에게 부당한 손해를 주는 경우가 있다. 오늘 판결은 이런 관례에 대해 소비자권리 찾도록 하는 의미가 있다. 이번 판결 취지를 살려 소비자 권리와 신뢰관계 구축할 수 있으면 좋겠다. 


정리= 강국진 기자


2006년 11월 28일 오후 18시 11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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