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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사해/여행기

투르크메니스탄, 한혈마(汗血馬)를 만나다

by betulo 2016. 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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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걸그룹 에이핑크의 멤버 정은지가 신곡을 소개하면서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일하는 아빠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했다”고 하면서 잠깐 주목받은 정도를 빼면 투르크메니스탄은 우리에게 이름조차 생소한 게 현실이다. 


중앙아시아에 위치한 투르크메니스탄을 대표하는 이미지는 유럽에서는 ‘파르티아 사법’(射法·말을 달리면서 몸을 뒤로 돌려 활을 쏘는 기술), 동아시아에선 ‘한혈마’(汗血馬·피땀을 흘린다는 천리마) 정도다. 하지만 투르크메니스탄은 파르티아 제국의 수도였던 ‘니사’ 유적지 등 헬레니즘을 대표하는 역사가 살아숨쉬는 독특한 매력으로 가득한 곳이다.

 

내년 9월 열리는 아시아 실내무도대회를 앞둔 투르크메니스탄을 다녀왔다.

 

 지난 6일 투르크메니스탄 정부가 개최한 아시아 실내무도대회 개막 500일 전 기념행사에서 하이라이트는 한 소년이 ‘아할테케’ 이른바 한혈마를 데리고 니사 성채에서 내려오는 장면이었다. 해외 언론인들과 각국 정부 관계자들을 초청한 투르크메니스탄 정부가 자랑하고 싶은 국가적 자존심인 니사 유적과 한혈마 두 가지를 결합했다.


 니사 유적지는 투르크메니스탄 수도 아시가바트에서 서쪽으로 15㎞가량 떨어진 곳에 있다. 코베트다크 산맥이 바라보이는 산기슭에 넓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기후와 상수원 모두 도읍지로 적당하다. 과거 동아시아 문헌에는 안식(安息)으로 등장하는 파르티아는 기원전 248년에 이란계 유목민의 한 족장인 아르사케스(Arsaces)가 건국했다. 파르티아 제국은 기원전 3세기 중반부터 서기 3세기까지 고대 서남아시아를 무대로 동서 교역을 장악하며 번성했다.


강력한 기병 전력을 무기로 기원전 53년 카르헤 전투에서 로마군에게 치욕적인 패배를 안겨주기도 했다. 이 전투에서 로마군은 '파르티아 사법' 공포감을 갖게 됐지만 사실 파르티아 사법 자체는 파르티아에서 처음 시작한 아니라 이미 유목세계에서 수백전부터 광범위하게 확산된 기술이라고 한다(강인욱, 2015, <유라시아역사기행>). 고구려 무용총 수렵도에 등장하는 사냥 모습이 바로 파르티아 사법과 동일한 활쏘기 기술을 보여준다. 


유네스코는 2007년 니사 유적지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20세기 들어 본격적인 발굴을 시작하면서 다양한 건축물 유적이 드러났다. 유적지는 왕궁인 5각형 내성, 이른바 ‘옛 니사’와 바깥쪽 상업·거주 지역인 외성, 이른바 ‘새 니사’로 나뉜다. 내성은 진흙과 벽돌로 20m 높이 벽을 쌓고 그 안쪽으로 정원과 신전, 탑, 방 같은 구조물을 배치했다.


 니사 유적지가 세계사에서 중요한 것은 이곳이 바로 헬레니즘 문화를 만들어낸 동서문화의 용광로였기 때문이다. 조로아스터교 사원과 그리스 신상이 공존하고 그리스식 양조법에 따라 포도주를 빚은 흔적이 남아 있다. 동서교류사 권위자인 정수일 박사는 한 글에서 니사 유적지가 바로 헬레니즘의 산실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니사 유적은 이런 모양이었다고 한다.








행사장에서 전통복장을 한 여성이 '각배'를 들고 있다. 니사 유적지에서 많이 발견된 '각배' 양식은 신라나 가야까지 영향을 미쳤다.


 

고[선지] 안서도호(安石護)의 푸른 호마(胡馬)

이름을 날리고 홀연 장안으로 왔네

전장에서는 당할 자 없었고

주인과 한마음으로 큰공을 세워

함께 다니는 곳마다 대우 극진하였네


오색 꽃무늬 흩어져 온 몸에 감도니

만리를 뛰는 한혈(피땀)마를 이제 보았네

장안의 장사들이야 감히 타보기나 하랴

번개보다 더 빠른 걸 세상이 아는데

푸른 실로 갈기 딴 채 늙고 있으니

언제나 서역 큰길을 다시 달릴까!

 

 당나라 시인 두보가 지은 ‘고도호총마행’(高都護聰馬行)은 고구려 유민의 후손이었던 고선지 장군이 아끼던 한혈마를 소재로 했다. 피 같은 땀을 흘린다는 한혈마는 동아시아에서 천리마의 대명사다. 그 한혈마의 후손들이 현재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천연기념물로 귀한 대접을 받는 아할테케다. 아시아 실내무도대회 엠블럼도 아할테케를 형상화했다. 투르크메니스탄을 구성하는 5대 부족 중 가장 규모가 큰 부족 이름도 역시 아할테케다. 


   아할테케가 한혈마란 이름이 붙은 것은 뒷목과 어깨 사이 피하조직에 서식하는 기생충 떄문에 그 부위가 부어올라 달릴 때면 땀과 피가 흘러 나오기 때문이라고 한다(정수일[깐수], 1992. <신라서역교류사>, 47~49쪽).



아시아 실내무도대회 개막 500일 기념행사에서 전통 복장을 한 의장대가 아할테케를 타고 도열해 있다. 고대 동아시아에서 천리마의 상징이었던 ‘한혈마’가 바로 아할테케다. 투르크메니스탄은 아할테케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집중 관리한다.




 소련에서 독립한 뒤 외교 무대에선 영세 중립국으로서 독자 생존을 모색하는 투르크메니스탄은 내년 9월 열리는 제5회 아시아 실내무도대회를 통해 국가적 위상을 높이려 한다. 천연가스 매장량 세계 4위인 지하자원을 갖고 있지만 최근 수송로를 장악한 러시아와 관계가 나빠지면서 발생한 경제적 어려움을 탈피하자는 국내외 정치적 목적도 있다.


 아시아 실내무도대회는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가 실내 아시안게임과 무도 아시안게임을 통합해 주최하는 국제 스포츠 행사로 4년에 한 번씩 열린다. 제4회 대회는 인천에서 열렸다. e스포츠, 당구, 볼링, 체스, 바둑을 비롯해 태권도와 킥복싱, 무에타이 등 다양한 종목을 포함하고 있다.


 특이한 점은 아시가바트에서 만난 시민들이 하나같이 “내년에 아시안게임을 개최한다”고 말한다는 점이다. 각종 시설 건설비로만 50억 달러를 쓰는 그 ‘아시안게임’과 2014년 인천에서 열렸고 2018년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우리가 익히 아는 아시안게임과 다르다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1991년 독립 이후 처음으로 자신들이 주체가 돼 개최하는 대규모 국제 행사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 나라에게 '2017년 아시안게임'은 한국에게 1986년 아시안게임과 묘하게 겹쳐 보인다. 


   1986년과 2017년이 겹쳐 보인다는 걸 생각하다가 이 나라 모습이 1980년대 한국과 비슷하다는걸 떠올렸다. '응답하라 1988'에서 불편할 듯 한 건 모조리 거세하고 '그 때가 좋았지' 하는 식으로 뭉개고 들어가는 1980년대 말고, 욕설과 폭력이 일상이었고 삥뜯기와 갈취가 사회스포츠였으며 전라도를 향한 이지메가 난무하던 그 1980년대 말이다. 


   저항은 모조리 빨갱이로 매도하고 찍어 누르던 정부가 '맛사지'를 위해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에 총력을 기울이던, 그러면서도 경제성장 덕분에 새 건물이 계속 들어서고 신도시가 생겨나던 바로 그 1980년대 말이다. 그런 점에서 내 눈에 비친 투르크메니스탄은 '중앙아시아 속 낯선 응팔'이다.  


방송 카메라들이 아시아 실내무도대회 개막 500일 기념행사를 촬영하고 있다. 가운데 성벽을 중심으로 왼쪽이 고대 파르티아 제국 수도였던 니사 유적지, 오른쪽이 기념행사를 위해 동원된 투르크메니스탄 사람들.


아시가바트 시내 곳곳에선 대회까지 남은 시간을 표시한 전광판을 볼 수 있다.



투르크메니스탄과 한국, 태권도와 가스에 매혹되다

 투르크메니스탄에 태권도 바람이 불고 있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태권도 열성 팬이다. 한국 기업 사이에서는 투르크메니스탄이 새로운 시장으로 가치가 급상승하고 있다. 특히 현대엔지니어링과 LG상사가 진행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는 규모가 100억 달러를 바라본다.


 투르크메니스탄 수도 아시가바트에서 만난 정태인 대사는 “이곳 방송에서 10년 전쯤 태권도 시범 영상을 내보냈는데 말 그대로 대박이 나서 3시간 간격으로 30분씩 틀었다고 한다”고 소개했다. 거기다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함메도프 대통령까지 태권도복을 입고 시범을 보였을 정도다. 지난해 10월 우즈베키스탄에서 열린 아시아 태권도 대회에서 종합 1위를 차지하는 등 기량도 꾸준히 올라가고 있다.


 투르크메니스탄에선 한국에 전자 호구와 헬멧 등 장비와 지도자 파견을 바라고 있다. 역대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 1개, 동메달 4개를 따낸 이웃 나라 아프가니스탄에 질 수 없다는 경쟁심도 한몫하고 있다. 최기천 한국대사관 서기관은 “태권도 사범 유치가 국가적 숙원 사업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열성적”이라면서 “양국 우호 관계를 높이는 데 태권도만 한 게 없다”고 강조했다.


 투르크메니스탄이 태권도에 매혹됐다면 한국 정부와 기업에선 ‘가스 위에 떠 있는 나라’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천연가스가 풍부한 투르크메니스탄의 잠재력에 주목하고 있다. 가장 앞서 있는 것은 현대엔지니어링과 LG상사다. 두 기업은 협력을 통해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천연가스 합성석유(GTL) 플랜트 건설 사업(39억 달러), 가스탈황설비(11억 6000만 달러) 등 4가지 대형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모두 단순한 자원 개발이 아니라 추출·가공, 판로 연결까지 고려한 종합 개발이다.


 양국 정부 역시 자원을 매개로 본격적인 협력 관계를 발전시키고 있다. 2008년 5월 당시 한승수 총리가 투르크메니스탄을 방문하고 뒤이어 그해 11월 베르디무함메도프 대통령이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2014년과 2015년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투르크메니스탄을 방문했고, 다음해에는 베르디무함메도프 대통령이 답방했다.

 


언제 어디서나 '그 분'이 지켜보신다


흔히 투르크메니스탄을 '중앙아시아 속 북한'이라고 빗댄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나라 대통령인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함메도프는 투르크메니스탄에 머무는 내내 우리를 따라 다녔다. 공항과 호텔 로비는 물론이고 텔레비전에서도 끊임없이 그 분이 등장한다. 심지어 6일 기념행사 만찬장에서 목격한 모습은 솔직히 충격적이었다. 


대략 7시 무렵부터 시작한 야외 만찬은 전통공연 위주였다. 재미있게 봤다. 그런데 9시30분 무렵부터 무대 중앙 화면에 '그 분'이 연주를 하는 모습이 비치기 시작했다. 다른 음악이 나오고 배경화면으로만 나오긴 했지만 영상이 나오자 마자 현지 사람들은 죄다 기립한다. '그 분'은 꽤 다재다능하시다. 아코디언, 기타, 피아노, 드럼 등 다양한 악기를 연주한다. 심지어 노래도 부른다. 영상 속 외국 손님들은 감동한 낯빛으로 박수를 치고 있다. 그 영상을 30분씩이나 보고 있어야 했다. 



조직이나 국가에서 권력을 집중시키는 명분은 '효율성'과 맞닿아 있다. 박정희가 5.16 쿠데타를 할 때도 그렇고 유신헌법을 내놓을때도 모두 '혼란'과 '국론분열' 때문에 나라가 위기에 처했다는 걸 들먹였다. 하지만 실제 투르크메니스탄에서 목격한 것은 극심한 비효율과 복지부동 뿐이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장관들 해외출장 일정까지 대통령에게 허락받아야 한다는 나라에선 자율적인 결정도 없고 재량권도 없다. 일이 제대로 될 턱이 없다. 결정할 게 없으니 할 수 있는 건 '그 분'의 지침을 기다리는 것 뿐이다. 


투르크메니스탄에선 예상과 달리 구글이나 페이스북을 쓰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카카오톡을 쓸 수가 없다. 라인도 되고 심지어 텔레그램도 되는데 이 무슨 조화인가. 혹시나 해서 확인해보니 한국 사이트는 죄다 막아놨다. 뉴스사이트도 안되고 포털은 당연히 안된다. 심지어 한국 정부 사이트도 접속불가다. 이렇게 저렇게 취재해보니 이유가 황당하다. 


작년에 '그 분'이 한국을 방문하셨는데 누군가 '그 분' 사진을 휴대전화로 찍어서 카카오톡으로 공유했고 그 사진이 퍼졌단다. 그게 이유다. 아마 카카오톡 차단하면서 한국 사이트도 같이 차단한 모양이다. 말도 안된다고 생각이 들겠지만 그게 이 나라가 굴러가는 방식이기도 하다. 


아시가바트는 외벽을 모조리 흰 색 대리석으로 마감한 새 빌딩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너희 나라 사람들은 흰색을 좋아하나봐?" 현지인에게 물어봤다. "아닌데." 대답이 시큰둥하다. 그런데 왜 모든 건물이 흰색인걸까. 정답은 무척이나 단순하다. "대통령이 흰색을 좋아하거든." 




권위주의 성향을 가진 국가들은 대규모 전시성 건축물과 도시경관 조성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시내 곳곳에는 국영 어린이궁전이나 국립 결혼식장(아래 사진)처럼 보기에 따라선 매우 쌩뚱맞게 보이는 조명으로 치장한 건축물 뿐 아니라 독립 기념탑, 중립국 기념탑 등 각종 기념물이 즐비하다. 게다가 대통령궁과 국회의사당, 국방부 등 화려하고 거대한 정부건물이 보는 이를 압도하려 한다.



수많은 청소부들이 아침 저녁으로 쓸고 닦는 거리는 그 흔한 종이 쪼가리 하나 보이지 않는다. 도로는 넓고 자동차는 적다. 출퇴근 시간을 빼고는 길거리에 사람도 별로 보이지 않으니 도시 전체가 마치 거대한 영화세트장처럼 느껴진다. 


물론 소련 시절 조성한 구도심으로 가면 풍경은 달라진다. 건물은 높지 않고 오래됐지만 사람도 많이 눈에 띄어서 좀 더 사람 사는 곳 같다. 밤늦게 결혼식 기념촬영을 하는 신랑신부와 친구들이 웃고 떠들며 자동차 오디오에서 흥겨운 노래가 크게 울려퍼지는 모습은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이란 느낌을 갖게 한다. 


아시가바트에서 부정적인 인상을 받은 사람이라도 나무를 열심히 심고 가꾸는 모습만은 좋게 비칠 것이다. 투르크메니스탄은 국가 차원에서 식목일을 지정하고 1인당 두 그루씩 할당을 주는 방식으로 나무심기를 적극 추진한다.  거리는 물론 도시 외곽으로 대규모 인공조림을 한 숲이 펼쳐져 있다. 아직 어린 묘목인 곳도 많지만 어엿한 숲을 이룬 곳도 꽤 된다. 



아쉬가바트 인근 산에 핀 양귀비꽃. 5월 중순만 되면 산과 들판은 초록색에서 노란색으로 바뀌기 시작한다고 한다.


투르크메니스탄과 이란을 나누는 국경 구실을 하는 코베트다크 산맥 중턱에서 바라본 투르크메니스탄 수도 아시가바트 시내 모습. 봄만 되면 투르크메니스탄 들판에는 양귀비가 지천으로 피어 들판을 붉게 물들인다.



투르크메니스탄 인구 대다수는 무슬림이다. 하지만 히잡 쓴 여성은 한 명도 못봤다. 전통복장을 한 여성이 대부분이지만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차려있은 멋쟁이 아가씨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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