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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사해/한반도-동아시아

[르포] 축복의 땅 대추리에 희망은 있는가

by betulo 2007.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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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메일을 보다가 평택 대추리 주민들이 송화리 임시거주지에 산 지 1년이 됐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궂은 날씨를 만나 오래된 흉터가 아리듯이 다시 한번 대추리를 떠올립니다.

제가 대추리를 처음 찾았을때가 2003년 10월. 벌써 5년 전 일입니다. 대추리 얘기를 정면으로 거론한 첫 기사라는 점에서 혼자서만 대단한 특종이라고 생각하며 애지중지하던 기사를 다시 꺼내놓습니다.

다행히 예전 파일에서 당시 사진기자가 찍었던 사진도 찾았습니다. 미군기지 확장예정지라는 얘기가 돌면서 주민들이 긴장을 높여가던 당시 모습을 되돌아보니 격세지감과 함께 마음이 아파옵니다. )

미국은 현재 주한미군 재배치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 계획에 따르면 한강 이북에 있는 미 2사단과 용산기지를 평택으로 집중하게 된다. 이를 위해 한국정부는 평택시에서 3백만평이 넘는 땅을 매입해 주한미군 기지를 확장하려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농토와 집을 잃게 되는 미군기지 주변 농민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더구나 이 마을 주민들은 1952년 당시에도 미군기지에 밀려 보상도 없이 집에서 쫓겨난 적이 있다. 일부는 1941년 일본군 기지 건설 당시에도 쫓겨나기도 했다. 현재 대추리 주민들은 마을 대책위를 만들어 주한미군 확장반대 평택대책위와 함께 "미군기지 평택 총집결 반대투쟁"을 벌이고 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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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계탁 기자


미군기지확장 예정지 평택 대추리를 가다

*2003년 10월27일자 시민의신문에 실렸던 기사를 복원했습니다.


평택평야에 자리잡은 대추리에서 해지는 들녘을 바라보면 사랑하는 여인의 머릿결처럼 포근하기만 하다. 끝없이 이어지는 논에는 노랗게 익은 벼들이 추수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귀청을 울리는 헬기 소리를 하루에도 수 십번씩 들을 때, 일주일마다 소방훈련이라며 쓰레기 소각한 냄새와 그을음이 집으로 밀려들 때, 해마다 폐유가 흘러들어 논을 망칠 때, 미군기지 철조망을 이웃집 담장 삼아 반세기를 지내올 때, 그리고 이제 정든 삶터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할 때, 대추리 주민들은 현실의 모순과 싸우는 최전선에 설 수밖에 없다.

"농민에겐 땅이 생명"

팽성읍에서 대추리로 가려면 미군기지 주위를 한참 돌아야 한다. 도로 바로 옆으로 넓직한 미군기지를 둘러싼 철조망이 보인다. 팽성읍 안정리에 있는 1백50만평 규모의 캠프 험프리(일명 K-6)이다. 이 곳에는 미군 범죄자 구치소, 환태평양 통합망 위성 지구국, 아파치 공격용 헬기부대, 제6기갑연대, 제6항공 기동여단, 화학부대, 카투사 신병교육대 등이 자리잡고 있다. 감청·도청 부대인 미 육군 751 정보부대의 기지국도 K-6 안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철조망 옆 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철조망 바로 옆으로 마을이 하나 나타난다. 바로 미군기지 확장 예정지로 꼽히는 대추리이다. 개펄을 간척한 토지에서 가을에 풍성한 수확을 했다고 해서 대추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지금도 대추리는 도두리와 함께 평택쌀의 중심지이다.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마을 위로 지나가는 미군 헬기는 이 마을에서 너무나 자연스런 풍경이다. 마을 주민에겐 귀청을 울리는 헬기 소음도 50년 넘게 이어져 온 일상이다. 

대추리는 마을 인구 4백여 명 가운데 환갑을 넘긴 사람이 1백50명 가량. 다시 말해서 마을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1952년 당시의 "악몽"을 기억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일까. 대추리의 노인들은 미군기지이전 반대집회가 열리면 보통 70∼80명씩 참석하곤 한다. 집회 얘기가 자연스럽고 미군 욕하는 게 당연한 곳이 대추리이다.

마을 이장인 김지태(44)씨는 가을걷이로 한창 바쁘면서도 오는 31일 열리는 평택시민 총궐기대회 준비에 바쁘다. 그는 마을 어른들 호응이 좋다는 기자의 말에 "그 분들 압력에 떠밀려 미군기지 이전 반대 대추리 대책위를 만들었다"면서 "오히려 노인들이 더 적극적"이라고 말한다. 그는 "보상금 때문에 싸우는 거 아니냐"는 주변의 말에 대해서도 "겪어보지도 않고 함부로 얘기하지 말라"며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올해 초부터 미군기지 확장 얘기가 나오면서 대추리 일대에는 부동산투기 조짐이 일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서울 부자들이 기지 확장 예정지 땅을 사들여서 땅값이 전보다 올랐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정작 마을 주민들은 냉소적이다. 땅값 오른 것은 거품일 뿐이고 어차피 자신들은 대추리에 뼈를 묻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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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계탁 기자

 

농민들에게 땅은 생명이다. 대추리 주민들 대부분은 평생 이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땅을 버리라는 말은 죽으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안수녀(78) 할머니는 "평생 농사만 짓던 사람들보고 어디 가서 살라는 거냐"고 하소연했다.

마을 노인회관에서는 항상 마을 노인들이 모여 있다. 그들은 지금도 일본군 기지가 들어설 때부터 미군들에게 쫓겨나던 당시 일을 어제 일처럼 기억한다.

노인들이 화났다

안정리에 일본군 기지가 처음 생긴 건 1941년이었다. 당시 여덟 가구가 쫓겨났다. 당시 평택에선 보국대로 끌려가 죽을 고비 넘겨가며 기지 건설에 동원된 사람이 많다. 김석경(75) 할아버지도 그 중 한 명이다.

김 할아버지는 1943년경에 친척을 대신해 보국대로 끌려가 일본군 기지 공사를 했다. "그 때 내가 16살이었지. 한달 동안 개밥 같은 걸 주면서 죽어라고 일 시키고 밤낮으로 감시를 하더라고. 너무나 배가 고파서 밤에 몰래 일본군 기지를 빠져나와 집에 가서 밥을 먹고 다시 기지로 돌아가곤 했지"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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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계탁 기자

 

대추리 노인들은 평생 미군기지를 짐으로 안고 살아야 했다. 밭일 중간에 담배를 피우는 대추리 주민 뒤로 미군차량이 지나가고 있다. 밭 바로 뒤가 미군기지 철조망이다. 

해방이 되고 일본군이 떠나자 마을 사람들은 그곳에 밭을 일구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한국전쟁 기간인 1952년 가을 이맘 때 미군들은 "기지를 늘려야 한다"며 집을 비우라고 했다. "당연히 아무도 말을 안 듣지. 그러니까 어느 날 불도저로 집을 부수면서 겁을 주더라구. 이튿날 새간살이만 들고 옮겨왔지."

한 마을 할머니는 "불도저로 활주로 만드는데 민가는 신경도 안 쓰더라구. 집 주위에 흙더미를 산처럼 쌓아놓으니 낮에도 집에 햇빛이 안 드는거여. 안 나오곤 못배기겠더라구"라고 말했다. 쫓겨난 마을 사람들은 지금의 대추리에 움집을 지어 낮에는 추수하고 밤에는 집을 지어야 했다. 대추리 사람들은 원래 살던 곳을 구(舊)대추리라고 부른다.

보상은 전혀 없었다. 지게로 한 짐 정도 되는 각목과 군용텐트, 보리쌀 한 가마가 전부였지만 이마저도 못 받은 사람들이 많다.

"쫓겨나는 사람들 심정을 아는가"

미군기지 확장 피해자 주민 방범재씨

"국민핵교 댕길 때부터 나이 칠순 될 때까지 세 번을 쫓겨나는 거네. 뭔 놈의 인생이 이모냥인겨."

평택시 팽성읍에 있는 안정리 미군기지(캠프 험프리, 일명 K-6) 담장을 따라 대추리로 가다보면 세집메라는 곳이 있다. 세 가구가 산다고 해서 세집메라는 이름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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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에 사는 방범재(71) 할아버지는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 1학년 때인 1941년 안정리 주변에 일본군 기지가 생기면서 온 식구가 쫓겨난 경험이 있다. "당시엔 어려서 잘 기억은 안 나지. 하여간 보상 한 푼 못받고 여덟 식구가 짐싸서 기지 밖으로 옮겨와 새로 집을 지었지."

한국전쟁이 터지고 피난을 갔다가 돌아오니 이번엔 미군들이 기지를 넓힌다며 집을 부셔버렸다. "미군들이 문짝 장롱 할 것 없이 다 때려부셨지. 불도저로 집을 밀어 버리더라구."

미군들이 보상이라고 준 건 각목 한 짐이 전부였다. "근데 며칠 있다가 미군들하고 한국인 헌병이 찾아와서 집을 다 뒤지더니 각목 한 짐을 발견한거야. 각목엔 미군들 표식이 있잖아. 우리가 그걸 훔친 거라면서 몰아치더라구. 그러고는 그걸 전부 트럭에 싣고는 가버리는 거야." 결국 미군한테 받은 건 아무것도 없는 셈이다. 그의 가족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못되기는 한국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보상금도 생계지원도 없었다. 당시의 경험은 그에게 정부와 미군에 대한 깊은 불신을 심어주었다. 지금도 미군기지 가운데 일부는 그의 소유지이다.

방범재 할아버지의 집은 미군기지 철조망 바로 옆에 있다. 집 바로 위로 미군 헬기가 뜨고 내리면 창문이 덜렁거리고 전화소리도 안 들릴 정도다. 미군기지가 들어서고 나서부터 50년 넘게 계속된 일상이다. 게다가 보통 새벽 3-5시가 가장 시끄러워서 잠을 설친 적이 많다고 한다. 소각장에서 나오는 냄새와 먼지도 그를 괴롭힌다. "미군기지에서 소방훈련 한다며 일주일에 한 두번씩 폐유인지 쓰레기인지 태우는데 그을음이 집으로 다 밀려와. 냄새는 또 어찌나 많이 나오는지." 그는 "여러 번 시청에 항의를 했지. 근데 시청에서 애기해도 미군들은 훈련이라면서 들은 척도 안 해"라며 불쾌해 했다.

올해 초부터 미군기지 이전 문제가 불거지자 그는 마음이 부쩍 불안해졌다. 안정리 미군기지가 계획대로 확장되면 그는 세 번째로 쫓겨나는 셈이다. 칠십 평생을 농민으로만 살아온 그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시련이다. "우리 같은 늙은이들은 죽으라는 거지. 돈도 없는데 어디 가라는 거여." 옆에 있던 할머니도 "너무하는겨. 땅값이라도 쳐주면 살겠지만 땅값은 개떡같이 나오는데 어디 가서 뭐하라는 건지"라며 거든다.

방범재 할아버지는 미군기지 이전반대 집회나 시위에도 많이 참여했지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처럼만 살았으면 좋겠단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김석경 할아버지의 얘기를 듣는 중에도 헬기 소리는 끊이지 않는다. 그래도 이 정도는 약과다. 대여섯대씩 한꺼번에 뜨고 내릴 때면 텔레비전 소리가 안 들릴 정도다. 할아버지는 요즘은 그래도 사정이 좋아진 거라고 했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미군기지에 폭탄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하루에도 수 백번씩 폭격기들이 드나들었다고 한다. 한 마을 아주머니도 "집에서 키우는 소가 경기를 일으킨 게 한 두 번이 아니다"면서 "마을에서 항의를 해도 미군들은 들은체 만체 한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마을 옆으로 난 철조망 사진을 찍고 있을 때 지나가던 버스 운전기사가 사진 찍지 말라며 손사래를 친다. 그러면서 손가락으로 기자 뒤편을 가리켰다. 뒤를 돌아보니 의경 두 명이 순찰을 돌고 있다. 사진을 더 찍다보니 의경이 어딘가 연락을 한다. 곧 경찰 트럭이 한 대 오더니 의경 여섯 명이 경계를 선다.

"어디가서 살라는 거여?"

대추리에서 미군기지를 바라보면 새로 지은 막사 여러 채가 눈에 띈다. 마을 주민들은 그 막사가 3년 전부터 공사를 시작한 것이라고 한다. 미군기지 주변에는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다. 강상원 미군기지 확장반대 평택대책위 집행위원장은 "미군들이 평택으로 옮겨오면서 파주나 동두천 주변이 한산해졌다"고 일러줬다. 마을 주민들도 "미군들이 평택으로 모일거에 대비해 새 막사를 짓는 거 아니냐"는 반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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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일을 하던 방범재 할아버지가 머리 위로 지나가는 미군 헬기를 바라보고 있다. (양계탁 기자)


노인회관에서 나왔을 때 텃밭에서 참깨 타작을 하는 할머니가 눈에 띄었다. 할머니는 "평생 농사만 짓던 사람들보고 어디 가서 살라는 거여? 막막허지"라며 답답해 했다. 그 할머니는 이라크 파병 문제에 대해서도 "이라크에 젊은애들 보내서 죽기라도 하면 어떡할 거여. 웃겨. 미국 애들이 욕심이 많아. 석유 뺏으러 이라크 간 거 아녀?"라며 미군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대추리를 떠나올 때 평택 시내로 나간다는 마을 주민의 트럭을 얻어 탔다. 여러 해 동안 농민회 활동을 해 왔다는 그는 "요즘 살맛이 안 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농민에게는 조국이 없다"고 푸념했다.

"이곳은 농사짓기 아주 좋은 곳이다. 우리끼리 농담삼아 "축복받은 땅"이라고 부른다. 아무 생각 없이 농사나 짓고 살면 좀 좋으냐. 제발 우리를 이대로 살게 놔둬라."

"농민들의 것은 농민들에게, 미군들의 것은 미군들에게"

성경에 이런 말이 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신의 것은 신에게." 한 대추리 농민은 이 말을 "농민들의 것은 농민들에게, 미군들의 것은 미군들에게"로 표현했다. 대추리 마을 어귀에는 "미군기지 확장 막아내면 다시 오실 수 있습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의경 두 명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그 옆으로는 철조망이 있고 안으로 미군 군용트럭이 지나간다. 위로는 미군 헬기가 오르내린다. 귀청을 울리는 굉음과 함께.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미군, 평택에 3백20만평 요구

주민들 왜 반발하나

지난 2월 럼스펠드 미 국방부 장관이 미 2사단의 후방배치와 용산기지 이전을 언급하기 시작하면서 전반적인 주한미군 재편 구상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알려진 미국의 구상은 전국의 미군기지를 평택지역과 부산·대구 등 2개 중심기지로 묶고 지상군 병력을 줄이는 대신 정밀유도무기를 강화하고 유사시 부산·대구 지역 기지를 증원군으로 파견할 수 있는 통로로 확보한다는 것이다.

주한미군 측에서는 이에 따라 안정리 미군기지(캠프 험프리, 일명 K-6) 주변에 미8군사령부와 2사단을 배치하고 송탄 공군기지(K-55, 일명 오산기지) 주변에는 주한미군사령부 관련시설을 옮기는 방안을 추진, 이를 위해 3백20만평의 부지를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정부에서는 내년부터 토지매입에 본격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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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리 마을 입구는 미군기지와 철조망으로 이어져 있다. (양계탁 기자)


주한미군 재배치의 배경과 의미는 △보다 강력한 전력증강계획의 일환 △서울에서 주한미군 이전한다는 상징성 △동남아까지 확대한 주한미군의 지위와 역할의 증대 △선제공격을 가능케 하는 전략적 재배치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용산 주한미군사령부를 한강 이남으로 이전하는 것은 북한의 장사정포나 방사포(다연장포) 등 야포의 사정권에서 벗어난다는 군사적 의미도 있지만 서울에 외국군대가 주둔하는 데서 오는 반감을 희석하기 위한 상징적 의미가 담겨 있다.

미국은 중장기적으로 한&미 동맹을 동아시아 지역의 지역동맹으로 확대하고 미국의 새로운 안보·군사 전략의 목표에 입각한 새로운 비전과 목표로 현대화하려 한다. 한편 주한미군의 역할은 동아시아로 확장하되 한국군이 한반도 안보에서의 역할을 증대시키고, 전반적인 군사체계도 새로운 군사전략에 따른 보다 효율적인 체제로 개편하는 방향을 설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평택대책위를 비롯한 시민단체는 지난 10월 20일 한미정상회담에서 부시 미 대통령이 "주한미군재배치를 신중하게 하겠다"고 밝힌 것에 대해 "주한미군의 재배치가 애초에 한국민의 의사나 한국의 안보에 따른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미국의 이해관계를 반영한 것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주한미군 평택총집결에 대해 미군기지 주변 농민들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는 강력하게 반발하며 주한미군 확장저지 평택대책위를 구성했다. 평택대책위는 현재 민주노총, 농민회, 평택참여자치시민연대 등 16개 단체의 연대체로 이뤄져 있다.

평택대책위는 △시대흐름에 맞게 주한미군 축소 △미군이 아무런 보상없이 점유하고 있는 땅 반환 △주한미군의 한국정부와 효력있는 협의와 통제 가능 △한미상호방위조약과 소파(SOFA) 평등 개정 등을 주장하고 있다.

평택대책위는 31일 평택역 앞에서 열리는 "주한미군 평택총집결 반대 범국민대회" 준비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평택대책위와 민주노동당 등을 중심으로 날마다 시내 선전에 주력하면서 "10월의 마지막 밤 평택역으로 모여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강상원 평택대책위 집행위원장은 "2천명 가까이 참여하는 평택 역사상 최고의 집회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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