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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사해/한반도-동아시아

재일동포 차별 여전…한국정부에 관심 호소 (2004.10.1)

by betulo 2007.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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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교육’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재일동포 차별 여전…한국정부에 관심 호소
제10차 동북아시민사회포럼
2004/10/1
강국진 globalngo@ngotimes.net

“재일동포는 해방부터 오늘까지 대국간의 냉전체제와 그 부산물인 민족분단, 나아가 한·일, 조·일간의 복잡한 마찰 속에서 늘 불안정하고 어려운 생활을 강요당해왔다. 그러나 과거의 재일조선인운동이 그러했던 것처럼 대립과 불신의 구렁텅이가 깊으면 깊을수록 우리는 그 해결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칠 것이다.”

지난달 18일 열린 제10차 동북아시민사회포럼 주제발표를 맡았던 홍경의 재일본조선인인권협회 깅키(近畿)지방본부 회장 등은 ‘재일동포사회의 현실과 전망: 인권옹호 과제에 대하여’를 주제로 한 강연에서 재일조선인 인권문제 현황을 소개하며 한국시민사회가 재일조선인 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했다.


특히 홍 회장은 재일동포사회에서 현안이 되는 인권문제로 △외국인등록과 국적표시 △고령자․장애인들의 무연금 △민족교육에 대한 제도적 차별 △지방참정권 △일상생활상의 차별문제 등을 들었다.

이날 포럼에 참여한 학자․시민단체 활동가 등은 재일조선인 국적, 일본 귀화, 민족교육, 재일조선인 운동 등 다양한 주제를 놓고 3시간 가까이 열띤 토론을 벌였다.


동북아포럼은 “한․중․일 3국 시민사회의 역량과 지혜를 모아 이 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촉진하는데 필요한 전략과 비전을 모색한다”는 취지로 2003년 만들어졌다. <편집자주>


재일본조선인인권협회 깅키(近畿)지방본부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민족교육에 대한 일본정부의 제도적 차별을 비판하면서 한국정부와 시민단체가 적극적으로 도와줄 것을 촉구했다.

 

1946년 당시 조선인학교는 5백29곳이었고 학생수는 4만2천명에 이르렀다. 이들 학교는 모두 재일동포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학교였다. 1948년 일본정부는 조선인학교 폐쇄명령을 내렸고 이에 반대하는 ‘한신’교육투쟁이 일어나 조선인 학생이 죽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후 1955년 조총련은 각 지자체에서 등록하는 각종학교 자격으로 조선학교를 설립했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민족학교는 대부분 총련에서 운영하는 조선학교이며 민단에서 운영하는 민족학교는 4곳에 불과하다.

 


각종학교는 법적으로 일본정부의 지원금을 받지 못한다. 대학입학자격도 인정받지 못하고 기부금에 대한 소득공제 혜택도 없다. 조선학교 졸업생들은 대학입학자격 검정시험에 모두 합격해야만 국립대학의 입학시험을 치를 수 있는 자격을 얻을 수 있다. 이 검정시험을 치르기 위해서는 일본의 정시제(야간) 고교 등에 통학해야 한다. 유엔어린이권리위원회, 일본변호사연합회 등에서도 계속 시정을 요구했지만 일본정부는 요지부동이었다.

 

지난해 2월 일본정부는 영․미 교육관계기관이 인정하는 국제학교졸업생에게만 대학입학자격을 인정하는 방침을 발표했다. 일본정부는 영국․미국계 학교는 인정하고 아시아계는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이에 사회 각계에서 반대운동이 일어났고 결국 일본정부는 외국인학교를 세가지로 분류해서 △영미계는 입학자격 부여 △일본과 국교가 있는 나라는 본국이 인정하면 자격 부여 △그 외 나라는 각 대학이 독자적인 기준으로 개인에 대해 심사해 인정한다 등으로 규정했다. 세 번째 기준에 드는 외국인학교는 사실상 조선인학교 뿐이다.

 

문세일 교토대학 교수는 “올해 입시에서는 교토대학 의학부를 포함해 몇 개 국립대에서 각 대학의 개별인정을 받은 조선학교 졸업생들이 합격했고 내년 이후 인정수속은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라며 “많은 국립대학 관계자들이 ‘우리는 차별에 동참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차별반대를 위해 싸웠다”고 소개했다. 그는 “일본정부의 정책은 전혀 변하지 않고 오히려 조선학교에 대한 차별이 더 선명해지고 있다”며 일본정부를 강력히 비판했다.

 

문 교수는 “외국인으로서 살기 편한 사회는 일본인으로서도 살기 편한 사회”라며 “일본교육을 받았든 외국인이든 조선학교 졸업자든 누구라도 우수한 인재는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범부 변호사(재일조선인인권협회 깅키본부 부회장)는 “재일동포에게 가장 큰 문제는 스스로 열등감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라며 “재일조선인으로서 자부심이나 긍지를 가지며 산다는 게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임 변호사는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제대로 모르다 보니 개인적으로 지금까지도 홍길동이 누군지도 잘 모른다”며 “긍지를 심어주고 우리들의 역사와 문화를 가르쳐주는 교육을 받고 싶었고 내 자식에게도 그런 교육을 시키고 싶다”고 말해 민족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민족학교를 다녔다는 문 교수는 “재외동포 가운데 체계적인 민족교육을 실시하는 곳은 중국조선족 빼곤 재일동포뿐”이라며 “재일동포들은 숱한 탄압을 받아온 역경 속에서도 민족문화를 수호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재일조선인운동의 가장 큰 성과는 민족교육”이라고 강조했다.

 

일상 생활에서 느끼는 차별도 많다는 것이 이날 참가자들의 솔직한 토로다.

 

홍경의 재일조선인인권협회 깅키지방본부 회장의 딸은 한국식 이름을 갖고 있고 민족학교를 다닌다. 그렇지만 그는 아르바이트를 할 때는 일본식 이름을 쓴다. 한국식 이름을 쓰면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임 변호사는 재일동포들이 일상생활에서 겪는 차별문제에 대해 “아버지가 지금 내 나이일 당시 ‘지금도 차별이나 편견이 많겠지만 나  어릴 때 비하면 많이 좋아졌다’고 말씀하셨는데 나도 비슷한 말을 해야겠다”며 “차별과 편견이 없어졌다고 할 순 없지만 한마디로 많이 좋아진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재일동포들이 일본인과 눈에 띄는 차이가 별로 없어져서 재일동포가 일본사회에서 눈에 잘 안보이게 됐고 일본인들의 의식도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한 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일동포 인권문제는 계속 제기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조선학교 여학생들이 한복 찢기는 피해를 당해 법무성에 신고하고 경찰에 신고해도 실제 바뀌는 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국가차원에서 인권보호를 위해 제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는게 여전하다는 얘기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한국정부, 재일동포 민족교육 지원해야”

 

홍경의 재일본조선인인권협회 깅끼지방본부 회장

 

“지난 시기 한국정부의 재일동포은 ‘기민정책’이었다. 참여정부는 지난 정권과 달리 냉전․분단에서 벗어나 새시대에 맞는 재외동포정책을 펼치기를 기대한다. 현재 재외동포재단 예산 가운데 90억원이 민단으로만 흘러간다. 재외동포재단이 재외동포 교육과 문화를 많이 신경 쓴다면 민단 외의 단체에게도 지원을 해줘야 한다. 개인견해로는 조선학교까지 포함한 교육진흥기금 식으로 지원하면 재일동포 전체의 환영을 받을 수 있다고 본다.”

 

김종걸 한양대 교수(동북아시민사회포럼 편집기획위원)과의 친분이 인연이 돼 동북아포럼 초청으로 한국을 찾은 홍경의 재일본조선인인권협회 깅끼지방본부 회장은 인터뷰 내내 “한국국민들과 시민단체들이 재일조선인 문제에 관심을 갖기를 바란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는 “많은 한국인들이 재일조선인을 북한국적으로 알고 있을 만큼 재일조선인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네트워크 통해 재일동포 문제 해결하자”고 밝혔다.

 

홍 회장은 “내년이 한일수교 40년이지만 재일동포의 법적지위나 생활상 문제가 여전히 많다”며 “남북화해에 맞게 재외동포정책도 통일을 위해 민단․총련 구애되지 않고 재일동포 지위향상과 안정을 위한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재일동포들에겐 민족교육 지원이 가장 큰 관심사”라며 “조총련계 민족학교 뿐 아니라 일본학교 내 민족학급까지 포함해 한국정부가 민족교육 지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일동포 3세로 조선적을 유지하고 있는 홍 회장은 이번이 첫 한국방문이다. 그의 할아버지는 제주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경우다.

 

조선적(朝鮮籍)은 북한국적이 아니라 무국적이다. 해외여행을 하는데도 여권이 없어 여행증명서를 따로 발급받아야 하지만 아직도 수십만명이 조선적으로 남아있다. 홍 회장에게 조선적으로 산다는 무엇을 뜻할까. 홍 회장은 △일본 정부에 대한 항의표시 △조선 정권에 대한 귀속감 △분단 상황에서 조선이든 한국 어느쪽도 택하지 않겠다는 의지 세가지가 복합적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이 가운데 조선 정권에 대한 귀속감은 최근 급속히 약해지고 있다고 한다.

 

“재일동포들은 지금까지 마음대로 국적을 선택한 적이 없습니다. 내가 조선적을 고집한다기보다는 태어날 때부터 조선적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지금까지 조선적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바꿀만한 특별한 이유도 없구요. 해방 이후 일본 정부가 제 마음대로 조선적으로 재일동포를 규정한겁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일본정부가 재일동포를 제멋대로 대하는 것을 증언하는 ‘고발장’이라고나 할까요. 저는 앞으로도 조선적을 지킬 겁니다. 저항의 표현으로요.”

 

94년 설립된 재일본조선인인권협회 깅끼(近畿)지방본부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산하단체로 재일조선인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설립됐다. 깅끼지방본부 회장으로 임범부 부회장, 양영철 사무국장과 함께 한국을 찾은 홍경의 회장은 오랫동안 재일조선인인권운동에 헌신한 활동가이다.

 

“인권협회는 재일동포의 법적문제, 생활상 문제, 인권문제에 대한 상담활동을 기본으로 합니다. 법제도의 차별을 시정하는 계몽활동, 행정부를 상대로 한 로비사업도 합니다. 재일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아파트에 입주하려다 거부당한다든가 취직을 못하게 한다든가 하는 사회적인 차별을 바로잡기 위한 활동도 주된 활동 가운데 하나입니다. 회원간 친목 교류와 정기적인 학습회 등을 통해 정보교환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인권협회는 재일동포 전체를 대상으로 활동한다. 인권협회에 상담을 위해 찾아오는 사람 중에는 조총련, 민단, 귀화인도 있고 가끔은 일본인도 찾아온다. 물론 일본인이라도 도움을 요청하면 도와준다.

 

오랫동안 인권운동을 해온 홍 회장은 자연스레 한국과 일본의 시민운동을 비교하게 된다. 그는 “아무래도 한국의 시민운동가들은 학생운동 등을 통해 단련된 사람이 많다는 인상을 받는다”며 “일본은 노동․학생운동이 없어진 상태에서 직업적인 활동가들로 구성된 단체가 거의 없다”고 비교했다. 그는 “일본시민단체는 정치적인 문제나 정당과의 관계를 굉장히 경계한다”며 “너무 정치를 경계한 나머지 운동 자체가 확산되지 못하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은 정치권에 동료들도 많이 진출해서 그런지 정치권 등과 관계를 잘 풀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2004년 10월 1일 오전 8시 29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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