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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說/詩

우리가 기억해야 할 마르틴 니묄러의 詩

by 자작나무숲 2012. 7.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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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는 우선 공산당을 숙청했다. 나는 공산당원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유태인을 숙청했다, 나는 유태인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노동조합원을 숙청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가톨릭교도를 숙청했다. 나는 개신교도였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나에게 왔다. 그 순간에 이르자, 나서줄 사람이 아무도 남지 않았다.

- 마르틴 니묄러


어느 블로그에서 찾아보니 이 시의 영어제목은 <그들이 왔다>(First they came)이라고 한다. 브리태니에서 찾은 설명을 인용하면 이렇다.

(Friedrich Gustav Emil) Martin Niemöller
1892. 1. 14 독일 리프슈타트~1984. 3. 6 독일 비스바덴.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진출처=구글 이미지 검색. 사진 밑에 써 있는 독일어 해석은 내 능력 밖이다. 혹시 독일어 아는 분 있으면 댓글 부탁해요.


고백교회의 창설자이며 세계교회협의회 회장을 지냈다. 목사의 아들로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해군 장교로 복무하면서 독일 잠수함 함장이 되었고 전쟁이 끝나고 나서는 뮌스터에서 신학공부를 시작했다.

1931년 베를린 교외의 유행의 거리 달렘에서 목사가 되었으며, 2년 후 국가사회주의자들(나치당)이 교회 일에 간섭하는 것에 저항하기 위하여 목사긴급동맹을 만들었다. 그 그룹은 다른 활동들도 많이 했지만, 점점 늘어나는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차별에 맞서 싸우는 활동을 지원하였다.

광범위한 독일 개신교 교회(루터 교회와 개혁교회) 안에서 고백교회의 창설자이자 핵심요원이었던 니묄러는 나치와 '독일국가교회'(Deutschen Christen)가 독일 교회를 통치하게 하려는 아돌프 히틀러에 대한 반대운동을 펴나가는 데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이 시와 니묄러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아래 링크를 참조하면 될 듯 하다.
http://sarangbang.or.kr/kr/oreum/article.php?id=490

어느 블로거는 이 시의 제목을 더날나위없이 훌륭하게 의역했다. <다음은 우리다>

이 시를 처음 읽었던 건 대학 초년 시절이었다.(그러고 보니 10년도 더 됐다.) 어느 책에선가 나치와 파시즘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 시를 인용했다. 책은 '연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리기 위해 이 시를 인용했고 적어도 내게 그 의도는 적중했다. 나는 연대를 생각할 때마다 이 시를 떠올렸으니까.
세월이 흘러 이 시가 내게 준 감동이 희미해질 무렵 이 시가 별안간 내게 다시 왔다.

박노자는 언젠가 한겨레21에 기고한 글에서 지금 정권이 역설적으로 '장기 보수화'가 아닌 '장기 진보화'를 위한 계기가 될 수도 있다며 진보진영의 노력을 촉구했다. <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에서는 최근 미국사회의 보수화, 불평등, 군국주의화 등이 정치권력과 제도 등에 말미암았다며 신보수주의운동과 레이건 집권 등을 꼽기도 했다.

미래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장기 보수화'가 될수도 있고 '장기 진보화'가 될수도 있으며 '단기 보수화' '단기 장기화' 모두 가능한 얘기다. 결국 '하기 나름'이다. 이런 시국에 니묄러가 고백한 말들이 가슴에 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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