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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4

조세문제, 우리는 여전히 박정희 그림자를 못 벗어났다 증세와 감세, 조세 저항 등 온갖 세금 문제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1960~70년대를 주목할 수밖에 없다. 박정희 정부가 1960년대 추진했던 ‘복지 없는 증세’, 1970년대 본격 시작했던 ‘복지 없는 감세’는 그 뒤 수십년간 한국 정부 조세정책을 규정했다. 전쟁의 상처를 딛고 본격적인 경제개발에 착수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재원이 필요했다. 박정희 정부는 1966년 국세청을 설립하는 등 조세수입 확대에 매진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세수 증대는 모든 국가공무원의 기본과제이며 모든 공무원은 세무공무원(1966년 3월 30일 전국지방장관회의)이라고 강조했다. “납세야말로 국민된 자의 제1차적 책임이며 영예인 동시에 긍지”(1966년 8월 5일 전국세무공무원대회)라고도 했다. 하지만 급격한 세금 부담은 .. 2020. 4. 24.
새만금, 그들이 땅을 얻는 동안 우리가 잃은 것들 1987년 대통령 선거에서 노태우 후보가 전북 지역 득표전략 차원에서 발표했던 새만금 방조제 물막이 공사가 완공된지 11년이 됐다. 3조원을 들여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로 세계 3대 갯벌을 막은 새만금을 통해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인가. 전북도의회와 도내 사회단체가 16일 주최한 ‘새만금 물막이 평가’ 토론회에서 전북녹색연합이 발표한 자료는 새만금의 빛과 그림자를 잘 보여준다. 1991년 11월 착공한 새만금은 전북 군산∼김제∼부안 앞바다 33.9㎞를 잇는 세계 최장 방조제를 쌓아 땅 409㎢(1억 2000만평)를 새로 만들었다. 여의도보다 140배 넓은 땅을 얻었다. 총 3조원이 투입된 새만금 방조제는 기네스에도 공식 등재됐다. 밑넓이가 평균 290m(최대 535m), 높이가 36m(최대.. 2017. 2. 16.
갈수록 태산, 새만금을 어이할꼬 고향이 전라북도다. 20년 넘게 삽질을 이어가고 있는 새만금은 어쨌든 고향얘기라 더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새만금은 여러모로 4개강과 비슷하다. 완전 개 삽질이라는 점이 그렇고, 삽질을 삽질이라고 얘기하는 것 자체를 금기시하는 분들이 있는것도 그렇다. 도대처 왜 시작했는지 이제는 기억도 가물가물한데 삽질을 덮기 위해 더 많은 삽질을 계속하고 있는게 똑같다. 요 며칠 사이에 본 새만금 기사는 막장드라마의 한 장면 같다. 서울신문 2012년 4월18일자 기사에 따르면 새만금방조제로 바다를 막아버리면서 육지 아닌 육지가 돼 버린 매립지에서 소금기를 가득 머금은 먼지가 날려 전라북도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 전북도의원 조병서(부안2)는 16일 개원한 임시회에서 이 문제를 지적하며 "일반 육지 토양에서 발.. 2012. 4. 27.
월남민과 역대 정권, 대선 때마다 ‘주고 받기’ (2005.1.14) 월남민들은 대통령 선거 때마다 일관되게 보수성향 표심을 보여주었다. 이들은 역대정권과 대선 국면에서 정치적 거래를 한 내역이 밝혀졌다. 특히 이북5도청사 건립, 임진각 통일전망대 운영권, 월남민 공원묘지 경모공원 설립, 동화은행 설립 등은 모두 1987년 당시 노태우 후보가 자신을 지지하는 조건으로 허가해준 것이다. 이같은 사실에 대해 이경남 한국발전연구원 원장(전 동화연구소장)은 이승만 정권부터 노태우 정권까지 월남민과 정부의 관계를 “주고받기(Give and Take)”로 표현했다. 그는 “노태우 당선에 이바지하는 조건으로 은행설립과 공원묘지 허가, 5도청 건립을 제시했고 노태우 후보가 이를 승낙했다”며 “이북5도민은 노태우 후보에게 표를 결집해줬다”고 회상했다. 이북도민회는 지금도 통일전망대 운영을.. 2007. 3.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