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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說

기자실 폐쇄는 핵심이 아니다

by betulo 2007.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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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기자실 폐쇄’라는 주제가 연일 언론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주요 일간지나 방송은 일치단결 비슷한 논조를 보이구요. 인터넷매체를 몇군데 둘러봤는데 예상대로 거기는 좀 다른 시각이 보이는군요.


저는 2003년부터 기자생활을 시작했습니다만 기자실이란 걸 경험해본 건 사실 석 달 밖에 안 됐습니다. 제 눈에 비친 기자실이라고 해봐야 경찰서 기자실 두 군데가 전부지만 그래도 거칠게 제 느낌을 써보려 합니다. 짧은 경험에서 나온 글이니 너그럽게 봐 주시길 바랍니다.


기자실은 기자와 관료 편의 위한 곳


일단 기자실은 해당 부처나 경찰서, 기업, 대학 등 기자실을 제공하는 곳이 ‘기자들의 편의’를 위해 만든 공간으로서 존재합니다. 제공하는 사람들은 뭔가 얻는 게 있으니까 비싼 돈 들여서 그런 편의를 제공하겠지요. (저는 이 글에서 기자실과 개방형브리핑룸을 구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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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실의 두 번째 기능은 ‘기자실을 제공하는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존재한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진작에 기자실을 없애버렸겠지요. 혹은 그런 ‘이익’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 가령 예전에 김두관 남해군수 같은 사람들이나 몇몇 지자체 공무원노조가 기자실을 없앴습니다. (뒤에 다시 얘기하겠지만 노무현은 좀 다른 경우로 보입니다.)


제가 있는 곳은 상황이 좀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기자실은 기자실을 제공하는 사람이나 집단이 기자들을 ‘관리’하기 위한 공간으로 존재하는 것도 부인하기 힘듭니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겠지만요. 왜 경찰청 인사 때 공보 쪽 인사들이 승진 우선순위를 차지할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홍보실이나 공보실 공무원들은 기자들과 자주 만나 관계를 만들려 합니다. 물론 기자들도 마찬가지구요.


안면을 익히고 관계를 만들어 놓는 게 취재를 하는데 상당히 필요한 것인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저를 포함한 기자들이 짚어봐야 할 게 있습니다. 거리에서 벌어지는 집회나 기자회견 현장에 가지 않고 기사를 쓴다면 그 곳은 기자실입니다.


‘알 권리’가 핵심이다


한미FTA처럼 사회적으로 논란이 있는 쟁점에 대해 학자나 시민사회단체 같은 비판론자들을 만나지 않고 공무원 얘기를 우선해서 듣고 기사를 쓴다면 그곳은 기자실입니다. 기자실 폐쇄를 비판하는 기사를 쓰는 곳도 기자실이겠지요. 그것 말고 기자실이 진정으로 ‘국민의 알 권리’에 복무하는가. 저는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역설적이지만 기자실을 가장 필요로 할 사람들은 관료들입니다. 기자실이라는 효과적인 공간을 통해 기자들과 안면과 친분을 만들고 자기들의 이해관계를 설명할 수 있지요. 더 심한 경우 자기들 논리를 세뇌시킬 수도 있겠지요.


이런 공간에서 배제된 언론이 있습니다. 각종 경제지와 인터넷매체들입니다. 개방형 브리핑제로 바뀌면서 중앙부처는 그런게 없어졌지만 경찰서 기자실은 여전히 중앙일간지와 방송국 기자들 차지입니다.


저는 각종 경제지를 퍽이나 부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논외로 치고 인터넷매체를 얘기해보지요. 저는 오마이뉴스나 프레시안, 민중의소리 같은 인터넷매체가 전하는 메시지와 보도내용에 나름 경의를 표합니다. 물론 여러 가지 거칠고 정교하지 못한 부분이 있는게 사실이지만요.


중요한 건 열정과 정의감, 의지 뭐 그런 것일 겁니다. 그런 면에서 오마이뉴스나 프레시안 같은 인터넷매체의 성과가 기자실 덕분이 아니라는 것은 기자실의 존재의미를 역설적으로 생각하게 합니다. 또한 기자실에 하루종일 앉아있는다고 특종이 나오는게 아니라는 건 어느 기자나 다 아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황우석 사태, 기자실 출입기자들은 뭘 했나


한미FTA의 진상을 가장 열심히 보도한 매체는 일간지 중에는 한겨레와 경향이고 인터넷매체 중에는 프레시안이지요. 한겨레와 경향 기자들이 출입처 관료들한테 도움을 받아 한미FTA의 그림자를 추적했던 것일까요?

프레시안 기자가 재경부나 외교통상부 관료들한테 도움을 받아 한미FTA를 취재했다는 얘긴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외통부나 재경부는 오로지 이들 기자들의 날 선 비판에 대해 해명하는 존재일 뿐이지요.


황우석 사태를 다시 떠올려 봅시다. 서울대를 출입했거나 과학기술부를 출입했던 그 많은 기자실 등록 기자 중 누가 황우석 사태의 진실을 밝혀냈습니까? 황우석씨가 기자들을 얼마나 능수능란하게 요리했는지는 이미 세상이 다 아는 얘기입니다.

브릭의 젊은 과학도 중 기자실 문턱을 밟아본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요? 프레시안 강양구 기자가 과기부나 서울대를 통해 진실을 알리는 자료를 받았나요? MBC PD수첩의 PD들은 어디가 출입처고 어디 기자실로 출근합니까?


저는 기자실에 등록돼 있으면서 열심히 노력해서 특종을 하고 사회를 올곧게 세우는 수많은 선배기자들을 폄하하는 게 아닙니다. 그럴 만한 능력과 경험도 없습니다. 다만 기자실이 있고 없고가 아니라 ‘국민의 알 권리’를 중심에 놓아야 한다는 걸 말씀드리는 겁니다.


서두에서 밝혔듯이 노무현 대통령은 상당히 헛다리를 짚었습니다. 그는 한미FTA에서도 그렇듯이 외부충격을 통해 그가 생각하는 기득권층(그 중에는 대선이나 탄핵국면에서 그를 지지했던 이들 가운데 그를 비판하는 모든 이들도 포함되는 것 같습니다)을 혁파하려는 것 같습니다.


노무현, 순진한걸까 단순한걸까


노무현은 너무 순진한 걸까요? 먼저 그런 식으로는 혼란만 있을 뿐 그가 원하는 걸 얻지는 못할 겁니다. 그건 바로 기자실을 필요로 하는 관료들이 언론과 손을 어떻게든 잡으려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자기들에게 유리한 기사를 써줄 수 있는 모든 언론이 되겠지요.


저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당부하고 싶습니다. 기자실 없애든 말든 별로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건 본질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하지만 최근 여러 기사에서도 썼듯이 정부가 기자실이라는 폐쇄적 공간이 아니라 열린 공간에서 투명하게 공개하는 시스템이 없다는게 문제입니다. 거기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런 속성과 관행을 가진 관료들을 너무나 철썩같이 믿고 있다는 것도 문제를 더 복잡하게 합니다.


열린정부, 해외출장정보, 정책연구정보, 알리오, 지방행정종합정보, 지방재정공개시스템, 디지털예산회계시스템 등 노무현 정부 들어 많은 정보공개시스템이 생겼습니다. 과연 그런 시스템을 제대로 운영하고 있습니까? 형식적이고 관료적인 브리핑이 아니라 대통령이 그렇게 (말로만) 좋아하는 토론이 오가는 브리핑을 하고 있습니까?


솔직히 이번 취재지원선진화방안에서 선진화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청와대만 국민들한테 불신받는 게 아니다

언론도 성찰할게 많습니다. 왜 많은 국민들이 취재지원선진화방안에 반대하지 않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국민들한테 불신을 받는 건 노무현 대통령과 정치권, 관료만이 아닙니다. 언론도 불신을 받고 있습니다.


아울러 기자실 폐쇄를 통해 기획취재가 더 많이 활성화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일회성 비판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를 파헤치는 그런 기사를 많이 만들 수 있도록 저부터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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